'민주화 성지' 구실 못하는 명동성당 꾸짖는 문정현 신부 복음화 치중, 교회쇄신 안해 보수세력이 교회를 자기집처럼
명동성당을 바라보고 가파른 길을 올라서 오래된 본당 건축물을 감상하려면 높은 건물이라서 최소 20m는 떨어져서 고개를 뒤로 바짝 제치고 멀리서 한참을 봐야 한다. 명동성당에는 성도든, 관광객이든, 젊은날 추억의 장소이든, 80년대 민주화성지로써 기념장소이든 꽤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한다. 이들은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모를 11월 16일도 혼자 혹은 삼삼오오로 본당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본당 앞에는 을지로와 종로를 거쳐 청와대를 바로보고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예수석상이 약 5m높이로 서있다. 그 아래에는 나무에 칼로 성경구절을 새긴 서각 글들이 전시돼있다.
“보아라 네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이 강을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발가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당신의 모든 것을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순종하셨도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본당마당을 넓히기 위해 쌓았을 축대 끝부분에는 등받이가 없는 나무 벤치가 몇 개있고 그 벤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아래로 계속 향한 채 멀리서 봐도 노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있다. ‘길위의 신부’로 널리 알려진 문정현 신부다. 문 신부는 고개를 숙이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학교 앞 뽑기 구경하듯 들여다본다. 쌀쌀한 날씨에 노인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그가 예수석상 아래 서각을 하는 장본인임을 감지하고 문 신부의 서각예술노동을 진지하게 때로는 신기한 듯 응시한다.
참 인색한 일도 있었다. 내용을 알만한 성당 측에서 야외용 테이블을 치우는 바람에 문 신부는 낮은 목욕용 의자에 앉아 벤치를 작업대로 삼아 엎드려 일하다 보니 무릎과 허리 부담이 말이 아니다. 칼과 망치로 만들어진 내용이 정직한 나무와 어울려야 한다는 문 신부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까칠한 질문을 했다.
"날이 추워져 찾아오는 사람들도 추위에 서있기 힘들 텐데, 내일이 100일이기도 하니 신부님 (건강도 고려하셔서) 그만 끝내시는 게 어떨지요?"
나무밥을 입으로 ‘후후’ 불어내면서 1초에 5번 정도 경쾌하게 망치질을 하던 문 신부는 질문 뒤 무거운 분위기에 한참동안 대답이 없이 일만 하시기에 "무응답이 대답이시네요~" 필자가 나름 정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각작업 기도를 간단히 끝낼 생각이 없는 듯하다.
기도를 조용하게 99일간 진행 중인 문정현 신부는 그날 묵상기도 중에 오는 영감으로 서각글을 정한다고 한다. 양각이 되게 칼날을 망치로 쳐내는 오늘 글은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 네 목숨을 되찾을 것이다”이다. 내용이 너무 강한 게 아닌지 물었더니 "내 말이 아닙니다. 성경구절입니다." 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유신18년이 정말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누구도 유신이 무너지리라 몰랐습니다. 경제를 말하는 이명박 정부도 아직 혼 날줄을 몰라요. 4대강을 통해 민심이반이 확인되는데, 낙동강 주변사람들은 경제가 좋아 질것으로 기대했다가 외려 어려워지고 게다가 강이 썩어가는 걸 보면서 깜짝 깜짝 놀라고 있어요. 우리가 옳은 소리를 말하지 않아도 길가에 돌멩이라도 옳은 소리를 할 것입니다"라고 분노한다.
제자들과 함께온 모 국립대 교수는 문 신부에게 매우 반가움을 표하면서 이런저런 내용으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그가 갈 때까지 문 신부는 이름조차 묻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알아서인지 아님 기억을 못해서인지, 추측컨데 아마도 문 신부가 세속적인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여기 와서 보는 사람들 표정이 대부분 밝네요?" 라는 질문에, 칼날이 무뎌졌는지 천방사포지에 칼날을 갈던 문 신부는 "밝은 표정으로 재미있어하고 어떤 이는 숙연해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성큼 문 신부 작업 벤치에 온 한 중년남성은 주머니에서 1000ml 비타민 음료를 가만히 내려놓고 목례를 하고 돌아선다. 그의 숙연한 미소 속에 어떤 미안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나이 지긋한 어른께서는 같이 있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변연식 대표에게 내일이 100일인데 백일떡이라도 해먹자고 봉투를 건네신다. 문 신부의 명동성당 기도를 지지하고 있는 변 대표는 4대강 반대 여의도 촛불 미사에서 백일떡을 나눌 예정이다.
이후 길거리 어디라도 가서 전태일 어록 서각하면서 살 터
문 신부의 서각기도 10일 후부터 이 자리에 동참하고 있는 천정연 한경아 사무국장은, (국내 가톨릭이) 사회복음화에 치중한 반면 교회쇄신운동을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우리가 방치한 보수세력들이 교회를 자신의 집인 양 지키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오후 4시쯤 되자 수첩에 단어조차 기록하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지고 기온이 떨어졌다. "성경구절만 하지 말고 노동자민중들의 글도 서각하면 좋지 않을까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문 신부는 "그렇지 않아도 이일이 재미있어서 이후에도 길거리 어디라도 가서 전태일 어록을 찾아서 서각을 하면서 살 거야"라고 말씀 하신다.
마침, 필자의 시국관련 재판이 있어 서초동에 갔다가 여의도백반집 식당에서 서각기도팀(?)을 다시 만났다. 명동언덕 바람 추운 곳에서 온종일 있다가 따뜻한 밥을 먹고 난후 졸음을 표하기도 한 문정현 신부에게 미사시간까지 많이 남았으니 더 쉬었다 나가자고 몇 사람이 권했다. 바람 쌘 여의도 길에 혹시 먼저 와 있을 분들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빨리 일어서려는 기색을 막을 수 없었다. 이날 여의도 미사에는 촛불을 준비하고 플랑을 치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는 이들과 수녀와 국회의원을 포함 80여명의 신도와 15명의 신부가 참여했다. 매일 여의도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4대강 반대미사에 참여하는 그들에게서 어떤 위대함이 느껴진다.
첫댓글 문 신부님은 본당이 없나요?
노인(?)이 되어서 은퇴하신걸로 압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아들이라고 외칠 때 ..아마도 그들은 그의 소속이 어디냐고 물었죠 ..자기들이 믿는 가치만을 최고로 여기는 비극의 신앙인들이 더욱 건강해지길 기도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