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가 반안이니 병신합반이 풀리는 남방화운 시기에 귀인을 만나 발복한다
時 | 日 | 月 | 年 | 건 명 |
비견 | 일간 | 겁재 | 편관 | 六 神 |
庚 | 庚 | 辛 | 丙 | 天 干 |
辰 | 辰 | 丑 | 申 | 地 支 |
편인 | 편인 | 인수 | 비견 | 六 神 |
화개 | 화개 | 반안 | 지살 | 신 살 |
74 | 64 | 54 | 44 | 34 | 24 | 14 | 4 | 대 운 |
己 | 戊 | 丁 | 丙 | 乙 | 甲 | 癸 | 壬 |
酉 | 申 | 未 | 午 | 巳 | 辰 | 卯 | 寅 |
▶ 사/주/분/석
【질문】: 이 사람이 초년에 가난하여 고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조상궁에 자리한 병신(丙申)은 편관(偏官)과 비견(比肩)인데, 신금(申金)은 일간의 건록이므로 록지(祿地)에 앉아 있는 편관은 조상의 봉록이 큼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하니 그의 조상은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6대 손이고, 흥선 대원군의 수하에서 활약하던 이회정(李會正)의 증손자입니다.” 그러나 병신합반이 된 구조에서는 몰락한 가문이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합반(合班)이란 두 글자가 제거가 된 것을 뜻하므로 그의 집안의 명성은 과거사이고 현재 그의 초년의 집안은 가난을 면치 어려워 생활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고로 부친은 일찍 사망하였고 초년에 가난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러던 중에 사오미 남방화운을 만나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병신합반으로 묶여 있던 병화가 살아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편관의 이 사람의 록인데 그동안 록이 사라졌으므로 가난을 면치 못해 고생하다가 병화(丙火)의 건록(建祿)이 되는 사화(巳火)운에 이르러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근황
* 이 사주의 주인공은 이기붕씨입니다. 만송(晚松)은 조선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6대 손이고, 흥선 대원군의 수하에서 활약하던 李會正이회정의 증손자이다. 조부는 20세에 사망하고 부친은 30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집안이 궁핍하여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고학으로 문학을 전공하고
28세 甲辰대운 癸亥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에는 뉴욕에서 노동일을 했다.
* 30세 甲辰대운 丙寅년에 성탄절 연극 팀에서 만난 박마리아와 약혼했다.
*중2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승만의 동지회에 가담하고<삼일신문>발간에 참여하다가<삼일신보>를 인수하여 운영하였으나 재정난으로 그만두었다.
* 38세 乙巳대운 甲戌년에 미국으로부터 귀국했다.
귀국 후에 상점을 운영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39세 乙巳대운乙亥년에 혼인했다. 가난하여 처가의 반대가 심했으나 미국에서 약혼했다가 먼저 귀국한 처의 고집으로 혼인했다.
*혼인 후에는 국일관에서 일하면서 02남01녀를 두었으나 여식은 중학교 때 병사했다. 다방,건축청부업,광산 등의 사업을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 50세 丙午대운乙酉년 1945년 09월에 미군이 진주하자 미군정의 통역관으로 채용됐고, 10월12일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이승만의 거처인 돈암장에서 집사로 일했다.
* 50세 丙午대운丙戌년 그의 처인 박마리아가 프란체스카 여사를 알게 되면서 처덕으로 출세하기 시작했다. 1946년에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이사와 조선적십자사 이사를 역임했다.
* 52세 丙午대운 戊子년 己未월戊申일 1948년05월에(丁巳월?)병원 입원으로 일시적으로 이승만의 비서실장직을 내놓았다. 1948년07월22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대통령 비서실 실장이 되었다.
*53세~56세 丙午대운己丑년~丁未대운壬辰년
1949년 06월부터 08월까지 서울특별시 시장을 지냈다.
1949년 08월부터 1951년05월08일까지 다시 서울시장에 재선되었다.
1951년 05월부터 1952년03월까지 제3대 국방부 장관을 지내고
1951년 12월 자유당 창당 조직에 참여하고 이후 자유당의 02인자로 부상하였다.
* 58세 丁未대운甲午년- 1954년06월부터 제3대 민의원 의장을 지냈다.
*그는 병약했는데,권력욕이 강해 이정재 등 정치깡패들과 연계해서 주먹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키웠다.
* 60세庚辰한운 丁未대운丙申년癸巳월壬午일- 1956년05월15일에 부통령 선거에 낙선하였다.
* 62세 丙申한운 丁未대운戊戌년- 1958년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고 민의원 의장이 되었다.
* 64세 丙申한운 戊申대운庚子年- 1960년03.15부정선거를 통해 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04.19혁명으로 사임하고 국회의장직마저 제명되었다. 04월28일 새벽에 경무대 별관에서 당시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아들李康石이강석이 권총으로 이기붕과 박마리아와 동생인李康旭이강욱을 쏘아 죽이고 자살하였다.[자료 출처 송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