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정신병원, 홍제동 화장터, 망우리 공동묘지
이런 곳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시골역 같은 어느 지상 전철역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기다리던 중 남편이 말했습니다.
‘맞아, 전화를 걸고 홍제동 화장터예요? 하는 장난 전화가 유행이었지.
그럼 전화 받는 사람들이 불길해 하면서 많이 언짢아 했고’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 하던 중.
‘지난 월요일 올림픽 도로로 여의도에 가면서 보이는 풍경은 참으로 무섭더라.
강건너 아파트촌은 스모그 속에 싸여 있고
앞 쪽의 31빌딩이 잘 보이지도 않더라구’
‘그래. 그날 미세먼지가 제일 심했어.’
‘아니아니.
63빌딩’
‘하하, 난 그냥 알아 들었어’
옛날은 그립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우연히 티브이에서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
한국 가요계에서 한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들을 불러내어 지난 날에 힛트한 노래를 듣는 프로였습니다. 초빙한 가수들을 객석에서 퀴즈 형식으로 맞추면서 진행이 되었는데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10대에서 40대까지를 세대별로 25명씩 앉혀 놓고 그 날의 노래를 조금씩 들려주면서
가수를 맞추는데 세대마다 기억하고 있는 가수들이 달랐습니다.
‘슈가맨’이란 말은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Searching for Sugarman’에서 빌려온 제목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가수였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퍼스타가 된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삶을 조명한 영화라고 합니다. 1970년에 발매한 앨범의 흥행에 실패한 후 육체노동자로 일하던 그를
1990년대 남아공 국민이 찾아낸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다시 가수 생활을 활발히 했다고 합니다.
슈가맨2에서
스무고개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나타난 왕년의 명가수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즐겁지만은 않았고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기도 했지만 다시 마이크를 잡은
그 가수들 자신이 힐링의 시간을 갖는 느낌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얼마전에 ‘무한도전’의 ‘토토가3’(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프로에서 ‘H.O.T’가 완전체로 출연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추억을 선물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며느리도 어린 시절 그 그룹 펜클럽의 일원이었고 아버지가 공연 티켓을 사주시기도
했다는데 그 프로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런 감성이 아직도 살아있는 며늘아이가 부러웠습니다. 과연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감동이 남아있을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기억 속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도 있겠고 남모르게 가슴
아팠던 추억도 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빛나던 모습에 아직도 연연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며 잊고 싶으나 힘들었던 고비를 떨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살다보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좋았던 시절,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되살아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 중에 내 안의 슈가맨을 불러낸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요.
오래 전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 형태와 정도에 개인차는 있겠지만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신이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참으로 행복하고 건전하게 사심없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보람과 기쁨을 가지고 힘든 일도 마다 않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부족을 채워가는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주일 설교를 듣고 기도할 때 그 말씀이 감고 있는 눈 앞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면서 목사님께 들은 꾸중의 준엄함이 한없이 다정하게 다가와 새로운 힘을 얻고 본당 계단을 오르곤 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정성스레 섬겨 가면서 '와 보라!' 한마디를 던지며 그 본당으로 자신있게 손을 이끌고 내려갔습니다. 다락방에서 지난 한 주의 일들을 풀어내고
밥상을 채운 소박한 찬으로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아파트 동호수 쪽지를 손에 구겨들고 뒤늦게 들이닥치는 아이들을 맞이하면서 모두 한식구가 되는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순장님은
게으름을 피우는 순원들의 현관 앞에 미리 진을 치고 기다려서 다락방으로 이끌기도 했고 김밥을 싸가지고 일상에 지친 순원들을 햇살 가득한 풀밭으로 데리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구절이라도 말씀을 깨우쳐 실생활에
적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순원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해 주시는 순장님의 뒤를 따라 본인들이 순장이 된 후에도 그 모습을
떠올리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져 갔지만 세상은 조금씩 각박해져 갔고 교회 역시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그 안에서 저 자신도 예외없이 조금씩 변해 갔겠지요. 설마설마 했던 나쁜 일은 우리들의 코앞에
들이닥쳤고. 삼삼오오 마당에 모이기
시작하여 오늘이면 마칠까 내일이면 마칠까 하는 가운데 또 다시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난 5년여동안
우리들의 감성과 영성은 어떤 모양으로 변해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 각자의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를 잃고 저마다 길을 헤매는 중이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각양 신학이 난무하고 세속화 된 교회가 지천이니 우리들 지친 영혼의 쉴
자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이 듭니다.
‘물은 셀프’라는 것이 눈에 익어 있듯이 우리들 자신도 셀프
치유를 하지 않으면 치유의 이름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 더 흔한 세상입니다. 우리들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나 자신도 잊었던 슈가맨의 모습을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칭찬을 받을
만 해서도 아니고 딱히 거룩한 일을 수행해서가 아닌 그저 나 자신이 기특했던 순간들, 행복했던 순간들을
찾아내 보았으면 합니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그 어느 곳에서든 인생의 빛나던 순간들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더불어 상처의 순간들도 끄집어 내어 치유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제 나이들고 보니 나도 너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됩니다.
세상이 살기에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세상은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깨우치게 됩니다. 믿음의 높이와 깊이가 넘볼 수 없게 느껴질수록
믿음은 단순하게 말씀 그대로를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좋은 날들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이 지나온 인생길에는 온 세상을 비추는 햇빛 같았던
순간도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길을 환히 비추어 주던 달빛처럼 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밤과 같은 날들을 지내면서
흑암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별빛에 의지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오염이 심하기에 구름 속에 갇혀 흐릿하게 깜빡이는 별, 가끔씩 휘잉 긴 포물선을 그으며 땅으로 떨어지며 사라져 버리는 별똥별 같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맑은 공기 속에서 흐르는 검은 하늘의 은하수가
햇빛보다 더 영롱하듯이 우리 안에 숨겨진 찬란한 별빛들을 불러내었으면 합니다.
내일은 부활절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해
왔다면 이제 십자가에 숨겨 있는 반전의 복음을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 목사님들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십자가 상의 형벌이 기쁜 소식으로 변한 것. 이 복된 소식은 인간 생각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으로 우리가 길들이고 싶어 하는 하나님, 자기의 논리에 끌어들인 하나님을 전하지 말자. 우리가 하나님을 파악하는 순간, 하나님은 더 이상 그런 분이 아니시다. 나를 위해 울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비틀었음을 회개하자. 오히려 교회 안의 사람들이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종교집단이 되어 예수님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지 않은가. 십자가의 도를 내면화하고 구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향한 감상주의에서
벗어나 그 안에 숨겨진 열정의 성부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포기 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확증하고 그 열심이 우리의
열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는데 앞장선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님을 따랐으나
목적이 달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던 제자들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고난 주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
내 죄의 얼룩에 집착하지 말고 내 안에 살아 계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삶으로 초청해 내어 내 안에
숨기어진 진정한 슈가맨이신 부활의 예수님을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다섯살짜리 손자가 흥이 많아서 춤을 추고 싶다며
아들에게 노래를 틀어 달라고 가끔씩 휴대폰을 가져다 손에 쥐어 준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 아들의 선곡은 ‘돌리고
돌리고’였습니다. 손자는 변변한 스텝도 동작도 잘 모르니 팔을 휘두르며 자신의 주먹을 코에 자꾸 박으면서
콧등이 새빨갛게 되도록 앙징맞은 작은 몸을 신나게 흔들어 댑니다.
‘돌리고 돌리고 돌다보면은 좋은
날은 다시 돌아올거야.
돌리고 돌리고 돌다보면은 꽃피는 봄날이 돌아올거야.……
돌리고 돌리고 돌다보면은 잃어버린 내 청춘 다시 올거야’
꽃피는 봄날입니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젊은 날의 순수했던 그 열정을,
예수님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차 오르던 그 감동을,
강남역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떠오르던
그 평안함을
돌리고 돌리고 자꾸 돌려서 다시 이전 보다 더 좋은
날을 맞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안의 슈가맨!! 나와 주세요!!!
첫댓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 모습 그대로 자녀 삼아 주시고
그 많은 허물 덮어 주시고
못자국 흉터난 팔로 따뜻이 보듬어 주시는 주님
늘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그 주님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신 온마음님
고맙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이전에 싱싱한 신앙 생활을 하던 때를 돌아보고
주님께 감사하며 새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형편에서 용기를 부어주시려는 권사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없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칠삭동이와 같은 저에게도 주님의 형제 자매와 더불어 주님의 교회를 바로세우는데 동참케 하신 은혜가 있는 지금이 저에게는 슈가맨 시절이니 더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부활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원투가 해브 예스 (일리가 있다) 이신 말씀이십니다.
이즈맨 이즈 고맨 고(있을 사람은 남아 있고 갈 사람은 간다)의 시절에
끈기 있게 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은혜의 자리로 만드는 지금이 슈가맨으로서의 전성기 맞네요.
내일도 피켓기도회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사님께서는 우리의 슈가맨이시면서 쇼맨이기도 하십니다. 힐링의 글로 공동체에게 도전의 마음을 부여하십니다.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께서 애를 쓰고 계시는데.
문득문득 무미 무취 무색의
관념적이고 습관적인 크리스찬이 되어가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저마다의 알을 깨고 자신의 세계를 깨뜨려가며 새롭게 태어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희망찬 메시지를 들려줄
마당기도회로 힘차게 나갑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습을보시고 흐뭇하게 웃고계실겁니다 화이팅 !
늘 감동과 감사, 그리고 부러움으로 권사님의 글을 읽는 열성독자입니다.
글솜씨 없음을 한탄하며 썼다 지운 댓글이 얼만지요.
이글도 이토록 뒤늦게, 인사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 누를 길 없어 몇 자 적습니다.
권사님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피켓기도회에 가는 날입니다.
즐거운 댓글 감사드려요.
주저리주저리 읊는 글을
좋게 읽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글은 글을 물어오고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즐거운 편지님도 홧팅!!!
한줄 두줄 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