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5.9.) 말씀 / 마태 11: 28 내게 와서 배우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지지난 주 독서모임은 신안 천사 대교를 지나 반대 편 산 모실길 정자 위에서 가졌습니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를 읽었는데 아주 쉽게 쓰기도하였지만 평생에 문제의식 갖고 살아야할 주제를 다루는 좋은 책 이었습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 그는 호흡이 깊은 공부를 하라고 합니다. 호흡이 깊은 공부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과거에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 좋은 스펙을 위한 공부, 누군가에 인정 받기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공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즐기면서 배우는 공부, 자신을 발견하고 더 좋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공부, 어떤 인생의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은 내공 있는 그런 공부입니다. 진짜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진정으로 기쁜지? 돈 외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인생 공부를 하는 것이 호흡이 깊은 공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문고전 읽기를 권합니다. 그 이유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감동과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검증된 인생교훈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무엇보다 즐겁습니다. 조금씩 더 알고 깨닫고 배워나가다 보면 행복합니다. 스스로 배움에서 오는 행복이라서 어떤 관능적 행복과 비교가 안 됩니다.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책 한권 읽고 가슴에 담다보면 어느새 정신적 풍성한 마음의 숲을 이루게 되어 마음에 시내가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고,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당연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천지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호흡이 깊은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인생의 어떤 풍파가 와도 쉽게 쓰러지거나 절망하지 않지만 학창시절 점수 따기 위한 공부를 한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한번의 실패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일본 최고의 명문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 학생이 공부를 더하라는 교수와 선배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하여 <마쓰시다 전기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접수시킨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한테서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도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하였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천재는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는데, 수석은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 와 합격자 가족들을 뒤로하고 핏기가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본 불합격에 따른 좌절감과 자존심이 상한 것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을 하고 잠에 들었다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 전보로 '합격 통지서'가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 했던 것입니다. 수석으로 합격하였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 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 있는 그의 이름을 실무자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 천재 청년은 '자존심' 때문에 '자존감'을 포기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을 찾아가 인터뷰하며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 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장래가 촉망 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말을 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서 회사를 엄청난 위기에 빠뜨리고 전 사원의 삶이 걸려 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었을지 알겠습니까?” 자, 그렇다면 이 청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공부를 잘 했는데 사실은 공부를 못한 것입니다. 스펙은 높았지만 인생 살아가는 삶의 공부가 미달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호흡이 짧은 공부를 한 것입니다. 그는 한 번의 실패에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공부라는 것은 단지 머리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공부도 있고 인성공부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실패 성공, 넘어지고 일어섬, 모든 과정이 다 공부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전구, 축음기, 발전기, 가정용 영사기를 비롯해 무려 1093개의 발명 특허를 얻어 발명으로 세계기록을 세웠습니다. 그가 전구 하나를 만드는데만도 무려 9,999번이나 실패를 하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실패를 되풀이할 셈이냐?’고 묻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9,999번의 실패를 한 게 아니고, 다만 전구를 만들 수 없는 9999가지의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많은 실패에 개의치 않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웠던 것입니다. 한번은 많은 발명품으로 마련한 돈을 가지고 그는 공업용 실험실을 세웠는데 불이났습니다.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각종 화학약품과 실험 기구들이 많았기에 불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에디슨과 함께 그 광경을 목격하던 그의 아들은 연로하신 아버지가 받을 충격에 위로의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장이 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에디슨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어서 가서 엄마를 모시고 오너라. 평생 가도 이 같은 장관은 아마 다시 구경할 수 없을게다.” 결국 그는 모든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에디슨이 그런 위기에도 쓰러지지 않은 것은 바로 호흡이 깊은 인생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대게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에디슨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이 독서였습니다. 특히 파커의 「자연과학의 학교」라는 책이 큰 감명을 받았는데 이 책은 어린 에디슨의 머리 속에 항상 감돌고 있었던 '무엇 때문에, 왜'라는 의문을 단번에 해결해 주었습니다. 에디슨은 디트로이트 시립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피난처는 디트로이트 도서관이었습니다. 나는 맨 아래 칸 왼쪽의 책부터 맨 윗줄 오른쪽의 책까지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문고판, 백과사전, 전집을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배움이 엄청난 힘이 되어 어떤 시련에도 쓰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직 1등만을 위해 공부한 사람, 오직 성공만을 위해 공부한 사람은 자신이 한 등수만이라도 떨어지는 것, 실패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사랑할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르고 평범한 인생의 희노애락을 즐길 줄도 모릅니다. 오직 남을 이기는 것만 목표 입니다. 음악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바라고, 인정을 받기 위한 음악을 하는 프로는 작은 실수도 용납 못하여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마추어는 잘하나 못하나 언제든지 음악을 즐기는데 프로는 쉽게 대중 앞에 잘 서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을 남과 비교합니다. 한번 실수로 자존심이 생해서 인생을 포기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부의 호흡이 짧은 공부를 한 사람들의 그렇습니다. 자신의 실패나 약점을 보이는 것을 죽어도 싫어합니다. 그러나 '앤 설리반'은 실패에 대하여 이렇게 충고를 합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한 것은 성취하지 못해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 하는 것을 계속하라.” 여러분, 이게 진짜 공부입니다. 삶의 희노애락을 통해서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실패로 하면 저도 실패 왕입니다. 초등학교 때 형 따라 서울에 올라와서 명문 중학교 시험치르고 떨어졌습니다. 중학교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그 고등학교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습니다. 고등학교 때 간염으로 매일 조는 삶을 살며 대학도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혀 생각지 않은 전라남도 광주까지 내려와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저는 낮아지는 법을 매웠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명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군대를 졸업하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제주 대학교 첫 사역지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다른 센타 목사님들과 환경조건 비교의식으로 또 시달렸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모두가 바다가 육지라면 육지를 꿈구며 살 때 저는 열악한 제주도에 뿌리를 박아야 했습니다. 자식을 낳았지만 첫 아들이 임신 중 약 중독으로 지적 장애로 판명났습니다. 6년후 제주도를 벗어나게 되었지만 다시 옮겨진 곳은 전남 최남단 청계 시골 이었습니다. 88년 시작한 캠퍼스 사역에 8년에 성전건축까지 하였지만 다시 한계에 부딪히고 개혁을 맞아 양들은 뿔뿔히 흩어지는 쓰디쓴 실패를 또 맞보아야 했습니다. 사모도 누가를 데리고 사역지를 떠나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저는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는 떠나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년의 삶으로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잠시 멈춰 서서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앙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은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신앙과 모든 성경말씀의 본질이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태도,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사랑이 있으면 다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평안을 누리게 되고 행복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말씀을 책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크기와 많은 수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역, 내가 행복함으로 그 행복을 나누는 삶, 나를 만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통해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속이 좁고 편협한 시각을 넓히는 일을 했습니다. 있는 것을 감사하고 주어짐 삶을 사랑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은 공부를 하며 세상에서 가장 자유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행복을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배움은 계속되고, 사랑과 행복의 역사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요즘은 독서 모임일 이루는데 모두가 행복해 합니다. 돌아보면 이모든 것은 나의 실패와 어리석음과 실수를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품으로 주신 예수님의 은총 때문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최고 스승 이십니다. 예수님은 저를 배움의 자리로 초청하셨고 지금도 계속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또 알려고 배우려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왜, 우리가 예수님을 배웁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을 배우면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 왜 예수님을 배웁니까?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요한 14:6).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참 길을 알게 됩니다. 끝없는 방황 속에서 진리에 도달하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17:3에 서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1장: 25-26절에서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을 알면 부활과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하렐루야!. 또 요한 8:32을 보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을 배우면 우리는 진정 자유인이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복음 13:1절을 보면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세상의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론으로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먼저 본을 보여주십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랍비들 사이에서 듣기도하고 묻기도 하며 배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시면서도 선생대우를 받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생 된 자로서 친히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손수 닦아주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를 위해 친해 죽으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스승이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시는 스승이 어디 있습니까? 공자도 어떤 성인도 그렇게한 사람이 없습니다. 장자 소크라테스 니체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좋은 말을 배울뿐 그들 자체를 통해서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체가 생명이시고,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앞서 본이십니다. 누구나 쉽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가장 위대한 스승입니다. 이 예수님께 가서 우리 모두 열심히 배웁시다. 할렐루야! 결론,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감사 제목은 위대한 스승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신 예수님을 만난 저와 여러분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를 배움의 자리로 초청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마음 본받아 열심히 주님의 멍에를 메고 따르며 배우고, 더 나아가서 삶으로 실천하고 행함으로 그 큰 은혜 체험하고 세상과 나누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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