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소설 [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39)
4. 녹향에서(6)
시험을 출제하지 않는 교직원들도 나머지 인원을 2개조로 편성하고 경비를 위한 당직 근무를 해야 했다. 여교사와 연세 높은 남자 교사들은 낮 당직을 하고 그 외 남자 교사들은 야간 숙직을 했다.
식사는 이웃 지정 식당에서 식사를 끼니때마다 배달해 와서 강당으로 들여놓았다.
그럴 때에도 출제위원과 외부인사의 직접 접촉이 되는 기회를 막았고, 드나드는 식기마다 혹시 유출되는 문서 같은 것이 있을까봐 교장과 교감, 교무, 서무 직원 들이 직접 살피곤 했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시내에서 전문 필경사가 자신들이 쓰는 필경 도구와 등사판을 지니고 들어왔다.
강당 내부를 어떤 식으로 구조를 변경해놓았는지 몰라도 출제위원들이 강당 창가에 얼굴이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타내지 못하도록 한 모양이었다.
더운 여름을 선풍기가 어떻게 동원되었을까 그런 것도 사실 궁금한 사항이었으나 명색이 교직원인 매리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하기는 알려고 해야 할 까닭이 없었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마지막 날, 곧 나흘째 되는 날, 필경사들이 투입된 다음 날, 비로소 출제위원들이 강당의 창가에 모습을 나타냈다.
남자 교사들 뿐인 탓인지 그들은 창가에 일렬로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 창밖으로 연기를 뿜어냈다. 그동안 그들은 담배도 피울 수 없었나?
강당과 교사(校舍) 사이에는 운동장이 바다나 강처럼 가로막고 있어서 교무실과 강당 양쪽의 교사들이 서로 창가에 붙어 서서 마주 보고 손을 흔들고 반가움을 나타냈다. 참으로 기이한 해후 광경이라 해야 했다.
매리가 그들 중에서 양수를 알아보았다. 그는 양수도 자기를 본 것 같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매리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날 오후에 어린 수험생들의 소집이 있었다. 다음 날 있을 시험을 위해서 수험표를 나눠주고 여러 가지 유의 사항이나 공지 사항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에 학교에는 낯선 버스 한 대가 들어오더니 출제위원들을 싣고 어디론가 빠져 나갔다. 그들은 포항 송도 해수욕장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들을 위로할 겸 시험문제의 비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다음 날 매리는 시험 감독을 하면서도 오후에는 그들이 돌아온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도무지 그는 그 자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가 왜 양수를 그토록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 가책하면서 두 마음이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매리는 스스로에게 ‘안돼! 안돼! 그럴 수 없어.“를 부르짖듯이 꾸짖었지만 그 다음 순간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었다.
출제위원들이 포항 나들이에서 돌아와 그 다음 날 학교에 출근했을 때의 심경을 매리는 자신의 수기“미망”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교직원 전체가 응시생 답안지를 채점해야 했으므로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직원이 평소처럼 출근하였습니다. 다만 출근해서 작업하는 것은 오로지 교무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이도 출근했었습니다.
---------------------3월 15일 (목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