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통한 계시(啓示).
창 40:16-23절, 133.412.434장.*
꿈으로 인해 애굽의 노예로 팔린 요셉은 한번 드러가면 황제의 사면이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는 황실 감옥에 투옥되는 기구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돌무덤 속에 갇히신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요셉에게 영광의 여명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그 역시 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감옥에 투옥된 두명의 고위 대신의 꿈을 해석해 주게 되었으며 그 일은 장차 바로에게 등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그 영광은 금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복권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까마득히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보통 기대가 무너지면 낙망하게 됩니다.
특히 믿었던 사람이 약속과 뜻을 저버리고 배신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절망감에 마음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낙망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믿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셉은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1)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선자"로서 그 신앙적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고 올바르며 정직히 행하였으며 또 살아 있는 신앙을 확증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애굽의 두 관원장의 유사한 꿈을 해석하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말하며 꿈이 길조든 흉조든 애매하게,
얼버무리거나 거짓으로 포장하지 아니하고 냉정하고 진솔하게 하나님 편에서 해석하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좋지 않은 얘기는 피하거나 포장해서 진실을 가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자기보다 지위나 신분이 높으면 아부성 발언을 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가 수종 들던 애굽의 두 관원장의 꿈을 미천한 자신의 처지와 신분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의 해석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앙인의 올바른 모습일 것입니다.
2)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포도나무 세 가지가 등장하고 떡 굽는 관원장의 꿈 속에도 흰떡 세 광주리가 등장합니다.(9,10,16절), 그러나 그 두 꿈에 등장(等張)하는 상징적(象徵的) 숫자 "3"의 의미와 해석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요셉의 해몽 이야기는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꿈"하면 상당히 고무적이고 환상적인 태도로 대하며 자기에게 좋게만 갖다 붙이려고 억지 해석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꿈을 통해 계시하고 역사하기는 하시지만 꿈을 함부로 잘못 해석함으로 신앙 생활에 폐해를 가져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이단 사이비들이 자기가 꾼 꿈을 과장하고 확대 해석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꿈 문제에 있어서 성경을 떠난 해석은 지양하고 오직 하나님을 바로 알고 깨달으며,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행하도록 하는 성경적 신앙의 유익을 도모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2.떡 굽는 관원장은 요셉의 꿈 해석에 무심했습니다. 1)떡 굽는 관원장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는 요셉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도 그와 같은 꿈을 꾸었으니 해몽을 해달라고 요셉에게 부탁했습니다.
자기와 유사한 꿈을 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길한 해몽을 받았으니까 자기의 꿈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대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해몽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가 꾼 꿈의 몽조는 사흘 이내에 나무에 달려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너무나 유사한 꿈이 라고 여겨져서 "나도 꿈에 보니"라고 흥이 나서 요셉에게 자기의 꿈을 설명한 터였습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내에 복권되고 자기는 사흘 안에 죽게 된다는 상반된 결과를 듣게 된 것입니다. 이는 자기 꿈에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미화시켜서는 않됩니다.
2)떡 굽는 관원장은 요셉에게서 사흘 안에 매달려 죽을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해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죽는다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태도입니다.
죽을 것이란 말에도 그가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은 것은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보통이면 아무나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에게 살 길을 알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하나님의 권위로 해석해 주는 요셉의 말을 설마하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해석은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꿈이 흉조로 해서되자 남의 얘기처럼 흘려버린 것입니다.
살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으나 그는 불신앙의 태도에 젖어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 떡 굽는 관원장은 바로의 탄일에 매달려 죽고 말았습니다.
영적으로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 사망의 심판을 당한 이 세상의 불신앙인들이 복음을 외면하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것을 보게됩니다.
3.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은혜에 무심했습니다. 두 관원장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이 성 취될 기회가 왔습니다. 그날은 바로의 탄일이었습니다. 요셉 당시의 애굽에서는 바로의 탄생일이 국가적 축일이었으며 그날에는 모든 개인의 셍활이 중지되고 모든 백성이 바로의 생일 축하 잔치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 특히 그날에는 바로가 특별 사면을 하는 동시에 중죄인은 처형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두 관원장은 바로의 탄일에 불려나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예고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는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전날의 직분을 회복한 술 맡은 관원장은 잃어버렸던 삶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의 고통도 곧 잊어버렸으며 그와 함께 요셉의 은혜도 잊어버렸습니다. 어떤 명사분깨서는 말하기를 "불행할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로를 받는 사람들보다도 행복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나는 한층 더 종경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고 사는지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그가 속히 자신의 억울함을 벗게 해주기를 학수 고대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그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그러한 마음을 기억지 못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이는 어려울 때는 아쉬운 소리를 쉽게 하다가도 어려운 순간을 모면하면 그때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케 하는 이야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의 꿈 해석을 성취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들이 이웃에게 사랑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갈6:9-10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機會)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家庭)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선을 행해야 합니다.
이웃이 우리에게 무심하고 야속하게 대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똑같이 무정(無情)하게 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하게 대하므로 주님의 향기(香氣)를 풍겨야 할 것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은 무엇입니까? 바로를 위해서 흰떡 세 광주리와 각종 구운 식물(食物)이 있는데 그의 머리의 광주리에서 새들이 먹어 버린 것입니다.(16-17절),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어떻게 해석하였습니까? 세 광주리란 사흘을 의미하는데, 바로가 사흘 안에 떡 굽는 관원장의 머리를 꾾고 나무에 매여 달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다.
(18.
19절) -애굽 두 관원에 대한 요셉의 꿈 해석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애굽의 가장 큰 경축일인 바로의 탄일에 죄수를 특별히 사면하면서 동시에 극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바로 그날 두 관원의 운명은 갈라졌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직이 회복되었으나 요셉의 공로는 기억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 창40:22-23절에 "떡 굽는 관원장은 매여 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고 했습니다.
왜 ! 술맡은 관원장의 행위마져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섭리였다고 하였을 까요?
애굽에는 공직에 나가려면 30세가 되어야만이 입문할 수있도록 법제화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이 17세 때 형들에 의하여 대상들에게 팔려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왔습니다.
그 집에서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을 보고 가정 집사로 임명하여 재산을 관리하게 한 것이 10년이였습니다.
바로 왕이 꿈을 꾼 후 애굽의 술객과 박수를 다 불러서 꿈을 해석하라하였으나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왕이 안절 부절할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꿈 해몽을 해주었던 요셉을 생각하게되었고 바로 왕에게 자초지종을 알려 요셉을 궁으로 데려오게 하여 꿈을 해몽하게하였습니다.
그 때 요셉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잊어버리게 하였다가 하나님의 섭리하에 꼭 필요한 시기에 생각나게해서 바로 왕 앞에서서 꿈을 해몽해주고 대비책까지 제시해주었습니다. 여러분도 필요한 시기에 쓰임 받게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