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내가 너무 어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우리집은 퍽 어렵게 생활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언제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그 안에 파 묻혀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며 세상 시름 다 잊고 유년시절을 보낸 때가 있었다. 그건 장난감 병정들이며, 장난감 모형 로봇들과 함께 하는 세상이었다. 그놈들로 나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서 그 세상을 움직이며, 전쟁하고, 부수고 또 건설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언제나 문방구 진열대엔 더 추가하고픈 장난감 병정과 로봇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나의 세상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당시에는 나의 꿈이었다. 그 놈들을 나의 세상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일년에 딱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설날과 추석이었다. 명절때는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용돈을 주시니깐.
5, 6학년때던가 추석때 . . . . 난 이주일 전부터 진열대의 새로운 놈들을 맘속에 찍어놓고서 그 놈들을 나의 세상에 어떻게 끼워 넣을 것인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잠을 청했었다.
그런데. . . . .추석날이 되어도 어머니가 용돈을 주시지 않는 것이었다. 오후 나절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드디어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추석 용돈을 주지 않는냐며. . . 그 때 어머님 말씀하시길 " 설 때 세배돈 용돈 주지 추석때 누가 용돈 주냐, 이 놈아 " 였던 거 같다. 그랬던가? 추석땐 용돈을 안 받았던가? 나는 공연한 억지 땡깡을 부리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 내가 일주일, 이주일 전부터, 잠들기전 상상하며 이불속에 드러누워 기다리던 용돈은 1000원 이었다. 지금 돈으로 하면 3, 4천원 많아야 5,000원 정도 하려나 보다. 왜 어머니가 내게 그 용돈을 주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쪼달리는 살림에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데, 추석날 장난감 사는데 1000원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그런 식으로 나의 소년 시절이 지났다. 대학을 가서도 어렸을 적 가난의 상처는 지우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다. 1학년때 선배와 술 먹다가 많이 취하면.... 꼭 그런 이야기를 꺼내며, 울곤 했다. 당신들이 배부르게 먹고 살다 대학와서 운동한다고 깝죽대는 그런 당신들이 그런 아픔을 알기나 하느냐고. . . .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 소리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 불편함과 어두컴컴함을 어찌 알겠는가.
직장을 얻고, 꼬박꼬박 나오는 봉급을 받으며, 가난의 기억은 차차 잊혀져 갔다. 과소비는 안해도 부족한줄은 모르며 쓰면서 살았다. 차도 사고, 역시 비싼 옷이 오래 입는 다며 몇 십만원짜리 옷도 카드로 곧잘 긋으며 그렇게... 잘 살았지..
2003년 담임 3년째인데. . 올해는 좀 특이하다.
자립형 사립고인 상산고(등록금이 일년에 400만원정도 되나보다)로 돈있는 애덜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올해는 유난히 가난한 애들이 많이 입학했다. 시골애들도 많다.
입학 이틀만에 자퇴한애가 있었는데, 가정형편이니 뭐니 파악할 틈도 없었다. 아버지가 사업하다 망해서. . 아무것도, 전화도 없었다. 며칠나오다 결석하다가 결국 자퇴를 했다. 많이 어려운가 보다 했다.
학비 감면 신청서를 걷는데, 어떤 어머니가 정말 정성스레 편지를 써서 감면을 도와달라, 신경 써 달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서 아버지가 사업하다 망해서 빚쟁이들한테서 쫓겨서 전주로 도망을 왔는데, 또 빚을 내서 가게도 차리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얼마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쳐 집에 누워있고, 어머니는 후두암이 걸려서 수술을 하고 집에서 요양중이니 도움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입학금도 간신히 빌려서 냈다고. . .
이건 뭔가? 무슨 인생극장, 인간시대란 말인가?
참. . .할말이 없었다. 이 녀석은 창피해서 그랬는지, 지 말대로 못 듣고 그랬는지 점심식사 지원신청도 안 했다. 불러다가 얘길 해보니, 학교올 때 딱 점심 사먹을 돈 들고 온다고 한다. 그 돈도 어디서 꾼 돈일 테지. 그렇게 아빠 엄마 집안에 드러누워서 그 돈은 어떻게 갚나? 고등학교 다니는데 드는 돈이 그것 뿐인가?
참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 수학 여행갈려면 20만원 드는데 갈수나 있으려나. . .
아이엠에프 이후로 망하고 쫓겨나고. . . 신문으로 티비로 보기도 듣기도 많이 했지만, 역시 경험해보는 것이 진짜였다. 이 녀석을 일년동안 내 눈앞에 두고 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참 갑갑하다. 착하기는 또 얼마나 착하고 여린지....어디 이녀석 뿐이겠는가?
첫댓글가슴이 시려옵니다. 막막한 제자의 가정도 그렇고, 또 여린 눈으로 쳐다 보아야 하는 왕자님의 착한 마음도요... 하지만 끝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을 왕자님처럼 바로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두려움도 없어지고요. 소시민적인 안이함이 아닌..
첫댓글 가슴이 시려옵니다. 막막한 제자의 가정도 그렇고, 또 여린 눈으로 쳐다 보아야 하는 왕자님의 착한 마음도요... 하지만 끝까지 내려가 본 사람은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을 왕자님처럼 바로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두려움도 없어지고요. 소시민적인 안이함이 아닌..
이번 일요일에는 첨으로 가정방문이란 걸 해봤습니다. 아이 어머니와 얘기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든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