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함께라면
소풍이 즐거운 이유는 간단하다.
친구와 함께 가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데 있다.
풍광의 아름다움은 소풍에서 뒤 순위임은 틀림이 없다.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길 강요하지만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함께 하는 벗들과의 노래장단에 허느적 거리며 춤을 추고 쉰 목에 힘주어 노래 부르고 따르는 술잔에 관심이 있을 뿐 비가 오면 어떻고 그 모습이 아름다우면 어떠하냐는 식이다.
호포 항에 들러 맛있는 생선회를 가득 실었으니 마음은 이미 부자요 더 필요한 게 없으니 풍광이 덤이라면 여흥은 최대의 행복을 실어 나르는 촉매와 같다.
지나는 산천이 아름답지만 관심이 없으니 얼마나 야속하다 생각했을까마는 함께 길 떠나는 길손이 더 정다운데 이일을 어찌하겠는가.
옥계휴게소에서 회를 나누어 먹으면서 자연산 회의 위력에 한번 놀라고 조금은 불편할 것도 같은데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니 얼마나 행복한 소풍인가.
아름다운 소풍 길을 하늘도 시샘하려들지 않고 맘 상해 찌푸렸을망정 비는 뿌리지 않으니 생선회의 고유의 육질이 입안에서 살아 숨 쉬어 먹는 이로 하여금 더욱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다.
만약 비가 내렸더라면 초라한 모습일수도 있는 노천에서 자리 펴고 먹는 음식이지만 하늘도 오랜만에 소풍 온 늙은이의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구름만 쓰고 앉았지 비는 뿌리지 않아 한없이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당신 머문 자리는 당신의 인격을 말한다.”라는 문구를 가슴에 세기고 살았는지 단 한 톨의 티끌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감동이 피어오르고 우리처럼 한다면 환경이 쉬이 망가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자부심이 충만해 옴을 느낀다.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버스는 달리고 점심시간을 위해 잠시 멈추었던 열정은 되살아나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잘도 간다.
강원도 낙산사를 들러 동양최대 해수관음보살도 구경하려 하였건만 멈췄던 비가 내려 발길을 돌리고 옛사람이 “해 뜨는 이른 아침이나 달 밝은 가을밤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굽어보거나 호수 너머 동해의 푸른 바다를 대하면 속세는 간 데 없이 온통 선경이요.”라고 표현한 것처럼,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는 경포대에 들러 똑같은 느낌에 젖어보고 주섬주섬 늘려 놓았던 가고 싶은 곳을 정리한 채 마지막 종착점인 울산바위가 건너다보이는 설악산 대명리조트 델피노에 몸을 내린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비는 그쳤지만 연약한 여인네는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행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가슴 조리는 우리를 본다.
여독은 밤낮없이 찾아들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얘기처럼 막상 짐을 풀고 앉으니 밀려오는 피곤함에 다들 사우나에 몸을 씻자면 나서고 오래된 건물 속 사우나에서 남녀가 상봉하는 기쁨도 누린다.
시설은 낡았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피곤에 지친 몸을 씻고 돌아오는 순간 전화기에 도착한 새로운 문자가 나를 반긴다.
수원에서 빗속을 뚫고 달려와 곧 도착한다는 친구의 문자다.
참 열의 있고 열정이 가득한 정스러운 친구다.
만약 나였다면 비가 창대같이 내리는데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혼자서 운전하며 달려올 수 있을까에 생각이 머무니 갸륵하고 고맙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사랑받을 짓을 한다는 얘기가 있듯이 그 친구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
무작정 달려온 친구로 인하여 여행의 피로가 최고조에 다 닳을 때 새로운 활력이 생기고 저녁을 먹으며 누구 하나 제외되거나 예외 없이 술잔 속에 녹아본다.
흥이 오르면 하루 동안 많이도 불러 지칠 만도 한데 또 노래방에 가잖다.
달리는 차와 다른 분위기인지라 그런대로 흥겹고 즐겁다.
흥은 누군가가 일깨웠을 때 배가 되듯이 수원서 달려온 친구의 흥은 아마 몰라도 세상에서 최상급이지 않을까한다.
열정이 있기에 행복한지 모를 일이다.
지친 마음보다 더 큰 열정이 있기에 오늘은 일찍 쉬자며 독려했던 마음 버려두고 잼나게 노래방에서 놀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밤이겠는가.
긴 침묵 속에 비로소 이루어진 소풍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우리는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 와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어 하룻밤 풋사랑 같은 안타까움을 안으며 수원서 온 친구와는 이별을 한 채 남으로 달려오고 있다.
문경새재에서 한정식을 맛있게 먹고 소진되었을 것도 같은 흥은 아직도 남아있어 차에 흔들리고 노랫가락에 흔들리며 청춘을 익어가게 하고 있다.
소풍은 쉬이 이루어지고 결정된 것이 아니다.
가진 자의 배려와 참여하려는 사람의 열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친구를 위하여 배려하지 않았다면 초등학교 다닐 적 소풍을 간 이후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소풍이 기안되지 않았을 테고 마음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부를 가졌다고 해도 고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누군가를 위한 배려를 쉽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비를 부담하고 친구를 모으고 함께 소풍을 즐길 수 있는 그 마음에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싶다.
또 다른 친구는 장군 같다.
그 많은 음식을 어찌 혼자서 알뜰히도 챙겨와서 맛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했는지 머릿속에 계산을 해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희생 그것은 선의가 아니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친구라는 작은 꼬맹이들을 생각했을 테고 그 따뜻한 정이 그녀의 가슴에 가득찬 행복한 요리였기에 우린 맛난 음식을 먹고 배불러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관심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다.
바쁘고 힘들지만 옛날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존재하는 마음속에 작은 그리움 있고 보고픔 있었기에 선뜻 나서준 친구들이 이 소풍의 주인공인 셈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랑을 향해 갈구하고 소망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어린 아이처럼 작은 설램과 기쁨을 안고 떠났기에 마지막 순간 비가 내리는 기후에도 불구하고 우린 열정적이었고 즐거웠고 살면서 너무 많이 웃어 행복한 소풍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린 언제 또 그대와 함께 여행을 떠날지 알 수 없다.
세월이 무작정 흘러 등 휘고 다리아파 거동이 불편하지 않는다면 또 함께 이고 싶다는 마음을 내어야한다.
시간은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고 기회 또한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오래 살아왔기에 알고 있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대와 함께라면” 하고 글 제목을 달고 여러분의 대답을 기다려 보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함께 하고 싶어요.”하고 대답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행복하고 즐겁고 고마운 소풍이었고 또 언젠가 그리워지고 기다려지고 그 고마운 사람 중에 내 스스로가 포함될 수 있는 작은 배려와 용기를 꿈꾸어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소년 소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