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에서 람세스 2세를 만나다 (6)
윤연모
아스완에서 약 세 시간을 달려 드디어 람세스 2세의 신전이 있는 아부심벨에 도착하였다. 아스완댐을 건설하여 수몰 위기에 놓여 있던 아부심벨! 유네스코가 5년(1964~1968) 동안 현대공학으로 나일 강에서 아부심벨을 끌어올려 원형대로 구조하였다. 하여, 아부심벨이 이집트의 유물이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 인류의 보물이 되었다. 아부심벨은 아스완의 남쪽 지역에 위치하며 기원전 1257년에 제19왕조 람세스 2세가 고대 누비아 지방에 세운 신전이다. 놀랍게도 바위산을 파서 만든 암굴 신전이 발견되어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 문명의 신비로움을 알려주며, 늦게나마 세계인들로부터 꿈의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태양 왕’이란 뜻으로 태양신 ‘라’와 ‘태어나다’라는 뜻이 합쳐진 이집트어이다. 그는 25세에 즉위하여 모든 신전의 주춧돌에 자신의 이름인 람세스를 새겼는데 이것이 람세스의 치적으로 평가된다. 자신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으면 후세에 전달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신의 치적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고 기록한다는 것이 우리 정서상 맞지 않는다. 하지만 람세스 2세의 경우는 꽤 맹렬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후대에 알리는 데 성공하였다. 여행 중, 유적지의 벽화 여기저기에서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람세스 2세의 이름을 상형문자로 새긴 타원형의 카르투시를 보고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부심벨에서 볼 수 있었던 사막의 석굴 미술의 위용, 람세스 2세의 놀라운 포부와 엄청난 야망을 확인하고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새벽에 나올 때는 추웠지만, 시간이 흐르자 온도가 올라가서, 관광객들은 따뜻해진 공기를 만끽하며 햇빛을 쐬고 있다. 마치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도 되는 듯이 신전을 우러러보고 있다. 정면에 누런 사막 색깔의 석굴에 람세스 2세가 네 개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 되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을 앉아서 맞이하고 있다. 좌상의 길이만 20m로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또한 람세스 2세의 조각 작품 사이사이에 자신이 아끼는 손주와 가장 아끼던 왕비 네페르타리를 작은 입상으로 만들어 세웠다. 만약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실물을 본떠서 만들게 했다면, 그는 잘생긴 미남이었을 것 같다. 거대한 조각 작품의 위쪽에는 태양을 환영하는 작은 원숭이들이 있으며 이집트 사람들이 좋아하는 원반을 던지는 호루스 신의 모습도 보인다.
신전의 안으로 들어가면 여덟 개의 거대한 석상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모두 람세스 2세의 얼굴이다. 상상했던 대로 미남 파라오이다. 오시리스 상처럼 특이하게 손과 발을 모으고 있다. 이것은 맨 처음에 내세에 입장했던 오시리스처럼 람세스 2세도 내세로 평안하게 들어가기를 원했다고 느껴진다. 아마 람세스 2세는 내세에서 자신이 환영받기 위해서 오시리스처럼 행동해야 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과거나 현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내세로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일 것이다. 아마 경험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느낄지 모르겠다.
신전 안쪽 벽에 정성스럽게 만든 부조가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람세스 2세가 철기 문화를 가진 히타이트와 싸웠던, 오늘날의 시리아의 카데시에서의 전투를 조각 작품으로 보여준다. 람세스 2세는 왼쪽 위쪽에 앉아서 재판하고 아래쪽에 전투 중에 배신하였던, 사막의 유목민족인 베두인족 두 명이 등을 마주 대고 앉아서 손을 올려서 흔들며 자신들이 한 일을 부인하는 모습이다. 고대에도 배신자가 있어서 색출하여 처벌했다는 장면이 시원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한참 신전 내부를 구경하는데 희한한 신이 눈앞에 등장하였다. 남성의 성기가 족히 80cm 정도로 앞으로 뻗어있고 팔과 다리가 잘려서 하나씩밖에 없는 불구가 된 신이다. 그는 다산의 신인 아몬 민신이다. 전쟁 전에 아내를 이 신에게 맡겼더니 오히려 아내가 임신하여 벌로서 민 신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랐다고 한다. 상대가 고양이인 줄 모르고 생선을 냉장고 채로 맡긴 모양이었다. 그 정도라면 이집트의 민 신은 이탈리아의 최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에 필적할 것 같다.
나룻배를 이고 가는 조각 작품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갈 때 막연하게 강을 건너고 사공에게 노잣돈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여, 돌아가신 분에게 마지막으로 노잣돈을 드리지 않는가. 물론 사자를 다루는 성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갈 때 잘 돌봐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수고비를 주며 노잣돈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집트의 고대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내세로 평안하게 가도록 나일 강 서쪽으로 파라오를 옮길 때, 나룻배에다 시체를 싣고 갔다. 어쨌든, 우리나라이든 이집트이든 사람이 죽으면 저세상으로 배를 타고 가는 공통점이 있어 재미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를 옮긴 다음에 미라로 만들어 안치시켰다고 한다.
신전의 위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일 년에 딱 두 번,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햇빛이 들어와 신전 안의 람세스 상을 비추었다고 한다. 이 사실로 보아, 태양 빛의 위치를 가늠하여 지성소를 지었다고 추측하는 것 같다. 지성소는 파라오가 이곳에 들어와서 신과 대화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로 물에 잠긴 아부심벨을 유네스코가 구출하여 산 위쪽으로 그 위치를 옮겨서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부심벨에 와서 람세스 파라오의 야망과 내세로 안전하게 가고자 하는 갈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마가 발달하며 그리스와 로마 신화는 세계 여러 나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서기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AD 306-337)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비잔티움을 제2의 수도로 삼아 현재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였다. 그 이후로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리되었지만, 동로마는 계속 유지되었다. 하여, 당시 서양 문화가 동양까지 뻗어나가며 그 신화가 구전되고 계승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 신화는 19세기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성과 가치는 높으나 많이 퍼져나가지 않아 안타깝다. 앞으로 세계인들은 이집트 유적과 신화를 통하여 이집트 문화의 놀라움과 신비함에 깊이 빠져들 것이다. 그 옛날의 람세스 2세를 상상하며 ‘람세스 2세에게’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적어 보았다.
어둠의 신들이 춤추는
새벽 네 시 그대를 만나기 위해
사막의 밤길을 버스로 달린다
자신의 사후 세계를 두려워하여
왕가의 계곡에 묘지를 만들고
자신의 딸이며 부인인
왕비 네페르타리를 그리도 사랑하여
묘지까지 만들어준 남자
오! 람세스 2세 파라오여!
그대의 지혜로
보물을 도둑질당하지 않아
그대 나라 이집트를 후대에 알렸는가?
그대 나라가 아무리 가난하여도
그대들의 이집트 문명은 놀라워
그대가 지어 놓은 무덤, 피라미드를 찾아
세상 사람들이 몰려와 돈을 뿌린다네
파피루스를 만드는 갈대꽃이 피듯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
이집트의 영광된 부활을
이 방랑자도 꿈꾸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