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다빈치 암호’를 해부한다 (상)] ‘예수 결혼→후손 생존’ 황당한 주장(국민일보-2004년 11월 23일)
4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영어판으로 1200만권이나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는,댄 브라운이라는 미국인 영어 선생이 쓴 ‘다빈치 암호’(Da Vinci Code)는 국내에도 지난 3월 번역돼 유행처럼 읽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독서 열풍이 불고 있는 이 책은 철저한 추리소설이다. 어두운 중세 역사에 깊고 폭넓은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독자들은 역사를 그럴 듯하게 왜곡시키는 이 소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거짓된 ‘다빈치 암호’라는 소설은 우리 청소년 독자들에게 급속하게 유행되면서 현재 80만권 이상이나 팔렸다. 이에 따라 본보는 중세 교회사 가운데 ‘종교재판’을 전공한 라은성 교수의 글을 통해 ‘다빈치 암호’의 왜곡되고 위조된 사실들을 밝히고자 한다. 첫회는 줄거리,둘째는 출처,셋째는 해부된 다빈치 암호를 소개한다. 편집자
‘다빈치 암호’는 의문의 살인과 관련된 ‘성배’(Holy Grail)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여 음모이론으로 끝을 맺는다. 모두 10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소설의 첫 부분은 파리에 루브르 예술도서관의 관리소장 자크 소니에르가 백피증을 가진 수도사에 의해 도서관의 주요 갤러리에서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그의 시신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그린 ‘버트리비안 인간’(The Man of Vitruvius)으로 알려진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소니에르는 죽어가면서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한 숫자와 아울러 암호들을 바닥에 그려 놓았다. 죽기 직전에 자신이 죽게 된 여러 가지 상징적 실마리들을 남겨둔 것이다.
파리를 방문중이었던 피살자의 미국인 친구 로버트 랭던은 피살 현장으로 달려가서 소니에르가 남긴 실마리를 풀려고 하지만 쉽게 암호를 풀지 못한다. 그는 죽은 관리자 소니에르의 손녀이며 프랑스 여형사 암호 당담자인 소피 느보의 도움으로 제시된 여러 암호들의 의미들을 추론해 간다. 마침내 죽은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Priory of Sion)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수도회는 성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비밀단체였다. 성배는 프랑스어로 ‘상 그리엘’(san greal)이다. 성배는 단순한 ‘잔’(chalice)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를 담은 여성의 태를 의미한다. ‘상 그리엘’을 ‘상 리엘’(sang real)로 읽으면 ‘왕족의 혈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존재했다는 엄청난 사실이 된다. 이것이 바로 시온의 수도사들이 2000년 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었다. 이것이 만일 세상에 폭로되면 2000년 동안 고이 간직해온 기독교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 비밀을 간직하기 위해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여러 문서들을 도외시하고 신성을 강조하는 사복음서만 투표로 정하도록 했다. 이 일을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옹호하기 위해 중세시대에서는 이단이라는 미명 아래 예수님의 결혼설을 알고 있는 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계속하여 성배의 비밀을 지키려는 시온수도회와 이를 막으려는 로마가톨릭의 ‘오푸스 데이’의 두 축을 이루면서 진행된다. 성배의 비밀 즉,예수님께서 결혼했다는 비밀을 지켜온 기사단들의 명단 중에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들어있었다. 다 빈치는 이러한 비밀을 자신의 그림들에 남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배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실제 잔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결혼했고 ‘사라’라는 딸의 후손이 오늘날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집을 위한 암호였다는 것이다. 성배의 전설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던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암호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암시적으로 전달하는 상징들이다.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들의 정체에 대한 모든 정보는 시온수도회라 불리는 비밀단체에 의해 수세기 동안 그리고 소니에르가 살해 당할 때까지 주의 깊게 보호받았다고 이 소설은 주장한다.
[‘다빈치 암호’의 거짓을 해부한다 (중)] 거짓 주장의 출처는?(국민일보-2004년 11월 24일)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암호’는 두 가지 거짓에 근거하고 있다. ‘오푸스 데이’와 ‘시온수도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푸스 데이의 존재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설의 내용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시온수도회의 존재 여부에 있다. 왜냐 하면 자신의 소설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식으로 독자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 책의 머리말에 말하기를 1차 십자군운동 직후 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단체인 시온수도회는 실제 존재했던 조직이다. 1975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비밀문서’(Les Dossiers Secrets)로 알려진 양피지들이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아이작 뉴턴,보티첼리,빅토르 위고,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시온수도회의 수많은 명단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진술은 위조된 문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명백한 거짓이다.
실제로 시온수도회는 1099년 설립된 것이 아니라 1956년에 피에르 플랑타르(Pierre Plantard)라는 프랑스 몽상가에 의해 설립됐다. 80세로 2000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당시 아네마세에 있는 샤노빈 현장에서 도안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1960년대 그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위조된 수도회의 문서들을 등록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잔-루크 샤멜은 1980년대에 플랑타르의 사기 행위를 폭로했고 그 주제와 관련된 여러 책들을 출판했다. 더욱이 그는 1996년 영국의 BBC2 방송에 출연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이며 거짓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브라운은 이런 사실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만 몰두하여 ‘다빈치 암호’를 썼다.
플랑타르는 자신이 679년 다고베르트 2세의 피살로 공식적으로 사라졌던 메로빙기안 왕조의 후손이라고 억지 주장하며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플랑타르는 1956년 6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온수도회를 창설했다. 그 전에는 그 단체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창설자들에 의하면 ‘시온’이란 이름은 예루살렘의 시온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 있는 몽트 시온(Mont-Sion)에 기원을 둔 말이었다. 그 수도회는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주택 복지를 위한 권리와 자유권을 변호하기 위해 설립됐고 1957년 해체됐다.
1950년대 중엽 플랑타르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작은 공동 부락의 사제의 후손인 노엘 코르부를 만난다. 노엘과 만난 직후 플랑타르는 이야기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1983∼84년 샤멜은 플랑타르의 부끄러운 과거를 세상에 폭로했다. 플랑타르는 1984년 7월 10일 시온수도회에서 사임했다. 1993년 티레이-잔 피에르는 플랑타르의 아파트를 조사하라고 명했고 그곳에서 플랑타르 자신이 프랑스의 왕이라는 위조문서를 발견했다. 조사가 끝난 후 플랑타르는 자신의 위조를 인정했다.
[‘다빈치 암호’의 거짓을 해부한다 (하)] 드러난 소설속 허구(국민일보-2004년 11월 25일)
이미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에 대해 ‘보혈과 성배’를 쓴 3명의 영국 저자 중 2명이 자신들의 소설을 브라운이 표절했다며 그를 기소한 상태에 있다. 두 소설의 내용 차이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거짓되고 위조된 문서들을 기초로 한 두 소설의 핵심은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은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사실로 그들의 후손들이 현존한다는 것이다. 위조된 사실을 숨기기 위한 역사적 근거로 두 소설의 저자들은 1∼2세기 혼합주의 종파인 영지주의자들의 익명의 저작물들인 ‘낙 함마디’(Nag Hammadi) 문서들 가운데 ‘도마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어디서도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했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단지 유대인들의 관습상 모든 남성이 결혼한다는 것,문서들에서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가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그리고 제자들보다 더 사랑했다는 표현을 가지고 결혼했다고 유추한다. 그러나 유사점들만 가지고 유추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그 거짓된 유추는 메로빙가 왕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비근한 예로 프랑크 왕국의 장군 카를 마르텔(686-741)이 메로빙가 왕 다고베르트 2세를 죽일 때 그의 아들 지기스베르트 4세(SigisbertIV?676-687)는 마르텔의 핍박을 받아 레네 러 밴과 레네 러 샤토로 도망쳤다. 그는 블레시아(Blesia)에 있는 샘물 가까이에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후에 그는 어느 감독에 의해 구조됐다고 한다. 후에 그는 레대이의 백작이 되었고 758년에 죽었다. 그는 샤토에 자신이 세운 막달라 마리아 교회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다고베르트 2세가 죽을 때 카를 마르텔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다고베르트 2세를 죽일 때 마르텔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일 뿐이다. 또 블레시아에 샘터가 있지도 않았다.
더욱 거짓된 사실은 메로빙가 왕조의 후손들이 도망쳐 남겼다고 하는 비밀을 템플기사단이 고수했다고 하며 그들의 대지도자들 명단을 공개하지만 그 문서 자체가 이미 밝혔다시피 거짓된 것이고 위조된 것이다. 템플기사단이 프랑스왕 필립 4세와 교황 클레멘스 5세의 공모에 의해 종교재판을 받아 처형이나 화형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끔찍한 사실을 아무런 논리적 근거나 객관적 근거 없이 비밀과 연관시켜 유추하는 것은 너무나 비역사적이다.
아무리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다고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간과하고 수십 가지의 거짓들을 위조하여 소설에 삽입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왜곡시킨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더욱이 댄 브라운은 역사에 대해 객관적 지식을 아직 갖추진 못한 독자들을 우롱하여 합법적으로 주머니의 돈을 끄집어내는 자이다. 그것은 독자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모른다는 것을 가정하여 독자들을 무시하고 있는 처사일 뿐이다. 또 현명한 독자들은 객관적 사실을 알기도 전에 흥미 위주로 왜곡된 거짓을 유포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치 끔찍한 살해를 당한 여러 희생자를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이익을 보려는 자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더 이상 비역사적 사실과 거짓에 우롱당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총신신대원에서 정통과 이단 강의>
■<다빈치 코드> 바로알기 - 문학작품 미명하에 ‘신성 모독’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설 등 예수 그리스도 역사 왜곡 철저한 성경적 개혁신앙 사수 위해 교회사적 지식 필요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고 그분의 역사를 왜곡하는 ‘다빈치 코드’에 세상이 열광하고 있다.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성탄을 맞으며 ‘다빈치 코드의 역사왜곡과 신성모독을 고발한다. 〈편집자 주〉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내년 중순에 영화까지 만들어진다니, 그 파급 효과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 댄 브라운(Dan Brown)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나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 소설은 “예술적 이론을 제공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설에서 그는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교회가 감추고 있다고 말해 여권주의자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육신의 자녀를 두셨다고 주장해 기독교를 혐오하는 자들에게 미끼를 제공했다.
위조된 사실을 진실로 여기는 그는 인간 예수가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정치적 계산아래 투표에 의해 신성으로 격상되었다는 거짓주장을 퍼뜨렸다. 이런 신비한 비밀을 알고 있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레오나르 다 빈치(Leonard da Vinci, 14521519)가 걸작 ‘최후의 만찬’을 그리면서 예수님의 아내인 마리아를 암호로 표현해 넣었다는 것이다.
2003년 11월 3일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에서 사회자가 브라운에게 “이것은 소설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논픽션 책으로 썼더라면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브라운은 대답하기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빈치 코드〉를 쓰게 될 때 나는 회의주의자로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연구하면서 이 이론에 대한 반증을 예상했습니다. 나는 2년 동안 유럽을 수많이 여행하면서 나는 실제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이론에 대한 소실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이론을 그의 소설 첫 페이지에서는 “사실”일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 작품과 견물, 자료, 비밀 종교의식들에 대한 모든 묘사들은 정확한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그의 역사적ㆍ예술적 오류는 수십 가지가 된다.
소설이라는 미명아래 브라운은 예수님의 신성을 이렇게 왜곡한다.
“기독교에 있는 것은 다 원래 기독교의 것이 아니오. 기독교가 도래하기 전의 신, 미트라는 ‘신의 아들’ 또는 ‘세상의 빛’이라고 불렸어요. 미트라는 12월 25일에 태어났고, 죽어서는 암석 무덤에 묻혔소.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했지. 그런데 12월 25일은 오시리스와 아도니스, 디오니소스의 생일이기도 하오. 새로 태어난 크리슈나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 받았지. 심지어 기독교의 주일이라는 것도 이교도에서 훔쳐온 것이라오. …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날을 이교도의 태양숭배일과 일치시키기 위해 옮겨 버린 거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교도의 태양 숭배일, 즉 선데이에 참석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고 있죠…예수의 ‘신성’까지…역사에서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오…위대하고 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인간’일뿐이었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신의 아들이 아니고요?” “그래요.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위상 수립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투표’에 부쳐진 거였다오.”
그가 말하는 미스라이즘(Mithraism) 의식은 고대 로마의 군인들 가운데 행해졌던 것이다. 미스라이즘에 따르면, 미스라는 신의 아들로 불리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제자들을 거느렸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3일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 태어났다. 그는 죄들을 위해 속죄했고 하늘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미스라 의식으로부터 유래 된 것이 아니다. 신앙은 역사적이지 신화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장사되었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신화 같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를 굳이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것이고 구약 성경은 미스라이즘보다 훨씬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것이고(슥12:10),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고(사7:14),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고(시22편),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이다(시16:1)는 사실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45∼46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미스라이즘이 기독교 개념들을 도용한 것이고 1∼2세기 기독교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여러 이교도들은 영지주의처럼 자신들의 가르침에 기독교의 진리를 응용하여 삽입한 것이다.
브라운은 그의 소설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의 사회적 예법을 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결혼을 사회적 규범으로 당연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독신이었다면 복음서에 그 사실이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예외적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에세네파가 그들이다. 역사는 에세네파가 금욕적, 금혼적이었고 영적인 사람들로서 유대인들 가운데 높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에게 신부가 있었다면 그 신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소개된 교회였을 것이다(계19:7). 더욱이 성경 어디서든지 결혼하지 않은 것을 정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고전7:25∼38; 마19:12).
‘다빈치 코드’가 예수님의 결혼을 거론하는 이유는 한 가지, 예수님의 신성을 저해하려는 의도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은밀하게 결혼했으며 프랑스로 가서 사라라는 예수님의 딸을 낳았다고 했다.
“막달레나가 대단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가’ 창녀라는 이미지를 덧씌워버린 거요.… 하지만 왜 초기 교회들은 막달레나가 왕족의 피를 가졌는지에 신경을 썼을까요?…교회를 걱정시킨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왕족의 피가 아니었다오…예수가 세력가인 베냐민 가문과 결혼하는 일은, 두 왕족의 피를 섞는 일이었지. 솔로몬 밑에서 그랬던 것처럼 왕가의 혈통을 회복하고, 왕관을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정치적인 결합을 만들어 냈던 거요.”
실제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고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인이었다(요19장). 마리아는 막달라(Magdala)라는 부유한 마을 출신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으로 인해 나음을 받았고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눅8:2∼3). 성경은 결코 그녀가 매춘부였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소문을 낸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었고 로마의 감독 대 그레고리였다. 그는 자신의 ‘설교 33’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누가가 무명의 죄인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 여인(막달라 마리아)이 누가가 말하는 죄인인 여성이었다고 믿는다. 요한은 그녀를 마리아로 불렀고, 마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 나음을 받았다고 했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초대교회에 탁월한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빌립 복음서’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동반자는 막달라 마리아였고 모든 제자들보다 마리아를 더욱 더 사랑했기 때문에 가끔 입을 맞추었다고 주장한다. 또 제자들은 이로 인해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왜 그녀만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그녀처럼 너희들도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빌립 복음서’는 본래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이루어진 문서였다. 본래 그리스어에서는 배우자나 성교제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1998년에 피크넷(Picknett)과 프린스(Prince)가 쓴 〈템플의 계시〉(The Templar Revelation)의 65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본래 문서에서 사용된 동반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라는 말이었다. 그 의미는 ‘동반자’ ‘친구’ 또는 ‘협동자’라고 한다. 그래서 사업, 선교, 또는 친구 사이에서 나오는 동반자라든지 연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 결코 결혼이나 성교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떤 헬라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의미이다.
더욱이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예수님과 친분을 가졌던 마리아는 3명이었다. 예수님의 모친, 누이, 그리고 동반자였다. 그런데 그 복음서에서는 단지 마리아라고 언급했을 뿐 막달라 마리아를 지칭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리아라고 지칭했으니 셋 중에 누구를 말하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브라운은 자신들보다 더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한다고 불평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에게 가끔 입을 맞추었다고 억지 주장한다. 같은 영지주의 문서들인 ‘피스티스 소피아’(Pistis Sophia)와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역할은 당시에 본질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의 입맞춤은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입맞춤이 바로 ‘지식’(gnosis)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도들이 질투심을 갖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더욱 사랑의 관계를 가졌다고 추론하는 것은 너무나 비논리적인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마리아 복음서에서 영지주의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영지주의 설교자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신비한 지식을 전해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더욱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추측이 일어날 만하다.
〈다빈치 코드〉는 소설이라는 미명 아래 진리를 왜곡하고 허위를 내포하고 전파하고 있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라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주요한 진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또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비역사적으로 묻혀버리고 이단 서적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편집하고 있다. 더욱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영지주의, 여권주의, 그리고 선정적이고 신비적인 글이다. 이와 같은 비사실적, 비역사적, 그리고 가공적인 소설이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거두는 이유는 급진적 여권주의와 여성운동이 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약 성경에만 아니라 1∼2세기에 등장했던 영지주의가 이제는 ‘영성신학’으로 둔갑할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에도 은밀하게 스며들어 오염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한 성경적인 개혁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사적 지식이 요청된다.
첫댓글 다빈치 코드를 제데로 읽으려면 먼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어 보도록 승윤아 시간있을때 읽어보아라
4학년이라 그런지 글씨만은건 딱 질색.짭고굵은것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