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지명의 표기를 바르게 해야” [글쓴이 : 이이화]
1.
필자는 『한국사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새삼 인명 지명의 음표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교과서 등 기존의 역사서에 인명 지명이 원칙이 없이 표기되어 혼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일반 번역서에도 이런 혼란이 자주 보인다. 독자들도 혼란스러워 때론 편지를 보내 질문을 해오기도 했다.
한자는 표의문자여서 뜻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에서는 한자 음운의 이론은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접어두기로 한다.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온 뒤로 변형되거나 관용(慣用)으로 쓰이는 음이 생겨나 중국 사람들이 쓰는 음과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2.
먼저 성명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성은 한 인간의 개체를 나타내는 글자여서 여느 일상용어의 음과 구분해 달리 표기하는 수가 많았다. 우리나라 성의 경우, 김(金)ㆍ차(車) 등이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문인 김성탄(金聖嘆)이나 차천로(車天輅)의 성을 우리 음으로 표기하는 게 관용이었다. 다만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와 금나라 시조 금 태조(아골타)는 예전부터 금으로 표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달리 몇몇 역사인물의 성을 표기할 적에 관용을 무시하고 멋대로 표기하는 때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 몇 사람을 들어보자. 고려 시대 무신정권 시기 유명한 장군인 탁준경(拓俊京)이란 인물이 있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 등 여러 출판물에는 척준경으로 표기하고 있다. 척(拓)이 성으로 쓰일 적에는 ‘탁’으로 표기해야 한다. 중국의 역사인물로 북위를 세운 탁발씨(拓拔氏)가 있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척’이라 발음하지 않고 ‘탁’이라 발음한다.
후백제를 건국한 진훤(甄萱)의 경우, 국사 교과서를 비롯해 모든 기록에 거의 견훤이라 표기하고 있다. 견(甄)이 성으로 쓰일 적에는 ‘진’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한자 자전에도 나오고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에도 주를 달아 밝히고 있으며, 불교사전에 “진훤”이라 표기하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한결같이 “견훤”이라 표기하고 있다.
진훤의 아버지는 이씨였는데 성을 바꾼 것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아버지는 용륭(龍隆)인데 왕건은 왕씨 성을 창성했다. 중세 이전에는 창성한 경우도 많고 사성(賜姓)한 경우도 자주 있었다. 왕건은 신하나 호족들에게 자신의 성인 '왕'을 내려준 사례가 많았다. 오늘날 진훤의 후손들은 성을 ‘견’이라 부르고 있으니 그 유래를 따져 보아야 할 숙제이기는 하다.
중국인을 우리 음으로 표기할 적에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다. 중국의 역사인물인 이문용(施文用)을 ‘시문용’으로, 섭지초(葉志超)를 ‘엽지초’로 표기해서는 오류가 되는 것이다. 중국의 성은 위에서 보기를 든 탁발씨처럼 일반 용어와 달리 표기하는 경우가 더욱 많이 있다.
고려의 명장인 강한찬(姜邯贊)의 경우, 현대의 모든 책에 ‘강감찬’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邯)은 중국의 조나라 도읍이었던 한단(邯鄲)의 경우처럼 한자의 음은 어디까지나 ‘한’이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 기록에는 어디까지나 ‘한’으로 발음하고 표기하기도 했다.
고종의 왕자들은 토(土)를 변으로 한 새 글자를 만들어 이름으로 사용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이름은 탁(坧), 왕자인 영친왕의 이름은 은(垠), 의친왕의 이름은 강(堈)이다. 그런데 이 ‘탁(坧)’을 사전류나 인터넷에서는 ‘拓’으로 쓰고 ‘척’으로 읽고 있으니, 황제의 이름조차 오류 속에 파묻힌 것이다.
승려들의 여러 호칭에는 한자음을 불교식 음으로 바꾸어 부르는 경우가 있다. 보기를 들면, 고려 말기 신돈의 불교 호칭은 변조(遍照)인데도 한자음에 따라 흔히 “편조”로 표기하고 있다. 변조는 변조여래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서울시장을 지낸 양탁식(梁鐸植)은 ‘탁’을 ‘택’으로 바꾸어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탁’을 ‘택’으로 잘못 발음하자 이를 따라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는 당사자가 고쳐 부른 것이니 강한찬의 경우와 다를 것이다.
한편 제도용어에도 혼란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신라의 여왕인 선덕왕ㆍ진덕왕ㆍ진성왕의 시호에 한결같이 선덕여왕ㆍ진덕여왕ㆍ진성여왕으로 부르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어디까지나 이들 여왕의 시호에 ‘여(女)’자를 붙이지 않고 다만 여자임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는 시호의 의미를 왜곡한 경우가 될 것이다.
3.
다음 지명을 알아보기로 하자. 지명도 관용에 따라 한자의 원음을 달리 부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금(金)의 글자가 붙은 지명은 성의 경우처럼 ‘김’으로 발음하는 곳이 많다. 김해ㆍ김천ㆍ김제ㆍ김포ㆍ김화 등 늘어놓을 수조차 없이 전국에 널려 있다. 그런데 금으로 발음하는 곳도 있다. 김제의 금구면이나 금산면, 익산의 금마 같은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김’으로 발음하면 오류가 된다.
경상도의 합천(陜川)은 ‘협천’이라 부르거나 표기하면 틀리게 된다. 또 황해도의 배천(白川)은 ‘백’의 기역이 탈락되어 배천으로 발음한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연안과 배천이 합해 연백군(延白郡)으로 개편된 뒤에는 연백으로 발음하고 표기했다. 이는 지명 연혁에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라 지명의 경우 이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유적지 명칭도 이런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경주에 보존된 박혁거세의 능인 타릉(蛇陵)을 한결같이 ‘사릉’으로 표기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왕이 승천한 지 7일 뒤에 유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다. 왕후도 또한 그랬다. 나라 사람들이 유체를 합해 장사지내려 하자, 큰 뱀이 쫓아와 금지해서 오체를 각각 장사지내 오릉이라고 불렀으며, 또한 타릉이라고도 했다.[王升于天 七日後 遺體散落于地 后亦云亡 國人欲合而葬之 有大蛇逐禁 各葬五體爲五陵 亦名蛇陵]”는 기록이 있다.
원문의 축금(逐禁)은 문맥으로 보아 “방해했다”는 나쁜 뜻이 아니요 “막았다”는 좋은 뜻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큰 뱀’은 용이 못된 이무기로 보아야 하니 뱀이 아닌 이무기의 의미를 따서 발음해야 한다. 같은 글자이기는 하나 음가가 ‘사’일 때는 뱀, ‘타’일 때는 이무기를 나타낸다. ‘타릉’이라 부른다면 전설에 나타난 이무기의 의미를 새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이렇게 관용을 무시하고 잘못 표기된 원인은 근대시기에 들어 국한문 혼용체의 전적이 해방 뒤 차츰 한자를 한글 표기로 바꾸면서 이런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서 저자나 문필가나 언론매체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관용의 음을 모르고 마구잡이로 잘못 표기한 탓일 게다.
오늘날 많은 시험을 보인다. 인명 지명의 경우 관용에 따라 바르게 표기했다 하더라도 오답으로 처리한다. 곧 ‘강한찬’이나 ‘탁준경’이나 ‘진훤’으로 표기하더라도 오답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정답이 오답으로 탈바꿈한 꼴이니 그대로 넘어가야 옳겠는가?
이런 오류는 인쇄매체만이 아니라 이를 그대로 베낀 인터넷에도 나타나고 있어 해독을 더욱 끼치고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요 발음은 언어의 질서이다. 사회적 약속에 따라 새 용어가 생겨날 수도 있고 기존의 언어 질서를 존중해야 언어의 혼란이 사라진다. 인명 지명 그리고 제도 용어를 바르게 써야 언어문화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는 특히 고전 번역에 있어서 더욱 유의해야 할 명제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 이이화/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주요경력
-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서원대 석좌교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역임
•주요저서
- 『한국사 이야기』(전 20권), 2004, 한길사
-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 10권), 2008, 김영사
- 『한문공부』, 2009, 역사비평사
- 『자서전 역사를 쓰다』, 2011, 한겨레출판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