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과 진해를 넘나들려면 창원 양곡을 거쳐야 한다. 이제 통합창원시로 하나가 되었다만 얼마 전까지 세 도시 행정구역 명칭은 각기 달랐다. 양곡 등구산은 높지 않다만 산등선에 서면 봉암 다리와 갯벌이 내려다보인다. 웅남동주민자치센터 뒤를 오르면 창원 시가지와 공단 일부가 시야에 들어온다. 건너편이 무학산과 마산 시가지고 발아래가 바다다. 산행코스가 짧음이 아쉽다.
제법 가파른 정상을 오르다 옆길로 들면 산중 암자가 나온다. 두산중공업공장 제3부두 쪽 산등선으로 뻗어나간 희미한 등산로도 다녀보았다. 볼보공장 드나드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약수터가 있어 산행객들이 목을 축이는 자리다. 양곡 사는 사람들은 등구산을 뒷동산 같이 오르내린다. 어느 해 여름 나는 등구산을 거쳐 삼귀해안으로 갔다. 그런데 볼보공장부터 등산로는 끊어졌다.
그때 나는 마창대교 창원 접속도로 교각 밑에서 이름 모를 산을 탔다. 등구산에서 삼귀해안까지 연결된 산이다. 해발고도는 등구산보다 약간 높다만 이정표도 없는 산을 올랐다. 목장마을로부터 흘러오는 개울가 텃밭이 있었다만 사람이 보이질 않아 등산로 들머리를 물어 볼 데 없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산등선에 서고 보니 사람이 오르지 않았기에 이정표가 필요 없음을 알았다.
긴긴 여름 낮 삼귀해안까지 숲을 헤쳐가면서 땀을 흘렸다. 그날 등산로가 없는 삼귀해안까지 산등선을 타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조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었다. 식수와 간식은 준비했다만 병영의 유격훈련 못하지 않는 무모한 산행이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옻나무는 물론이고 독사도 보았다. 군사시설철조망이 가로막고 산비탈은 가팔랐다. 손가락은 나나니벌에 쏘여 따끔거렸다.
이번 추석에 이어진 토요휴무일 하늘은 높고 파랬다. 예전 같으면 시골 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다. 산업화로 인해 대부분 도회인들은 고향을 잃어버리다시피 했다. 아직 학업 열중인 두 아들 녀석이 하루 간격으로 제자리로 돌아간 아침 나는 등산화 끈을 묶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창원대학 앞으로 갔다. 대학 앞개울에 방망이로 빨래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몇 해 전 겨울은 그보다 조금 아래서 빨래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박수근 그림 ‘빨래터’가 떠올렸다. 편리한 세탁기를 두고 개울 빨래터에 나온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나는 새롭게 보였다. 나는 창원대학 앞에서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곳에서 150번 버스를 타고 내가 목표한 신촌삼거리로 갔다. 나는 신촌삼거리에서 양곡중학교를 지나 오봉사 입구에서 내렸다.
범죄심리학에 범인은 죄를 지은 현장에 다시 가고 싶은 심리가 있단다. 완전범죄는 없기에 발자국이나 지문 또는 머리카락을 남겨 놓지나 않았을까 싶어서일 게다. 그러기에 형사들은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사건현장을 밤새워 지켜야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태 전 산행에서 고생했던 현장을 찾았다. 악몽 같던 산행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모하게도 혼자 그 산을 다시 오를 참이다.
내가 내린 목장마을 오봉사 입구는 버스를 타고내리는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 그런데 뒤따라온 시내버스에서 쑥색 옷을 입은 한 보살이 내렸다. 보살은 굴다리 지나 절로 가고 나는 역방향으로 길도 없는 개울 건넜다. 자동차가 창원과 진해에서 마창대교를 건너려면 만나는 들머리 터널 앞이었다. 높다란 육교 밑을 지나 편백나무조림 숲을 올랐다. 지정 등산로가 없음은 물론이다.
피톤치드가 한창 뿜어져 나올 아침나절이었다. 나는 경사가 급한 비탈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참나무와 오리나무가 빽빽했다. 산등선 나뭇가지 사이로 시가와 바다가 보였다. 장복터널로 드나드는 자동차소리가 들려왔다. 멧돼지가 간밤에 도토리를 찾느라고 삭은 가랑잎을 헤집어 놓았다. 서너 시간 걸려 하산하니 개울가 텃밭의 빨간 고추잠자리가 반가웠다. 10.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