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뱀 둘 똬리튼 복희·여와, 풍요·다산 의미
동서양 신화.종교 속의 뱀
▲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투르판의 7세기 고분에서 발견된 ‘복희여와도’.
중국 민족의 시조로 여겨지는 ‘복희’와 ‘여와’가 하체를 뱀처럼 서로 꼰 모습을 하고 있다.
인류역사 속에서 오래 전부터 폭넓게 등장하는 상징 중 하나가 바로 뱀이다. 고대부터 뱀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 중 하나로 여겨져왔다.
동서양의 신화, 종교, 문화예술 속에서 뱀은 다산, 창조력, 치유(힐링), 부활, 지혜, 욕망 등을 상징한다. 뱀은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기 때문에 생식력과 창조력을 나타내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허물을 벗는 습성으로 인해 치유와 재탄생을 상징하게 됐다. 똬리를 튼 뱀이나 자기 꼬리를 문 채 몸뚱어리로 둥근 원을 그린 뱀의 형상은 영원함 또는 영속적인 생명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지역 투르판의 약 7세기 고분에서 발견된 ‘복희여와도’에는 중국 신화 속의 남신 복희와 여신 여와가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으로 묘사돼 있다. 남매인 복희와 여와가 마주본 채 하체를 뱀처럼 서로 꼬고 있는 모습이다. 손에는 오늘날의 자, 컴퍼스와 비슷한 도구가 각각 들려있다. 창조신인 둘이 뱀처럼 서로 몸을 꼬고 있는 것은 만물의 조화와 재생, 풍요를 기원하는 고대 중국인들의 내세관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여와는 황토로 사람을 탄생시키고 결혼제도를 만든 신으로 숭배돼,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와의 사당에 가서 빌면 다산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뱀은 중요한 존재이다. 뱀에 대한 숭배의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곳은 바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이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지키는 존재가 바로 나가(Naga)로 불리는 거대한 뱀 신이다. 앙코르 왕조는 11세기 중엽, 도성 좌우에 거대한 바라이(인공저수지)를 축조해 물 걱정을 해결했는데, 모든 것이 나가의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대한 앙코르와트를 건립하면서 나가 조각을 입구에 세웠다. 앙코르란 말 자체도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나온 것으로, 뱀을 뜻하는 ‘나가’와 ‘산다’란 의미의 ‘라’의 합성어이다.
힌두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7개 층으로 이뤄진 지하세계가 존재하며, 그중 가장 마지막 층인 ‘파탈라’라는 세계에는 수많은 나가가 살고 있다. 나가는 여러 부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부족장들 중 가장 연장자가 아난타이다. 힌두교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가 아난타 위에 몸을 누이고 휴식과 명상을 취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마후라가(摩羅迦) 역시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땅 속의 모든 요귀를 쫓아내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인도 신화의 영향을 받은 불교에서 마후라가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 중 하나이다. 팔부신중이란 천계를 지키는 수호신 천(天), 물 속을 지키며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용(龍), 사람을 도와주는 야차(夜叉), 병을 고쳐주는 건달바(乾?R婆), 여러 개의 얼굴과 팔을 지닌 아수라(阿修羅), 새 형상의 가루라(迦樓羅), 말머리 형상의 긴나라(緊那羅), 그리고 마후라가를 가리킨다. 마후라가는 그림 속에서는 주로 머리에 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조각상일 경우에는 한 손에 뱀을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석굴암의 마후라가상은 오른손에 칼을 든 모습이다.
멕시코의 마야문명권에서도 뱀은 숭배의 대상이다. 유카탄 반도의 치첸이트사에 있는 쿠쿨칸 피라미드와 멕시코시티 교외의 테오티와칸 유적에는 날개달린 뱀 쿠쿨칸과 목에 깃털을 단 뱀 케찰코아틀이 조각돼 있다. 특히 쿠쿨칸 피라미드의 경우 계단 입구 양쪽에 뱀 머리 조각이 새겨져 있고, 돌난간 전체가 뱀 몸통으로 조각돼 있어서 마야인들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신성한 존재로 뱀을 얼마나 숭배했는가를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뱀이 자주 등장한다. 지혜의 신 아테나를 상징하는 동물로 올빼미와 함께 뱀이 등장하며,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뱀 한 마리가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뱀이 의학의 신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 것은 독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며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듯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오늘날까지도 의학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
장승의 기원과 복희-여와신화 히브리, 이집트 신화의 연관성
산정호수 올레길 한켠에 미니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이 성황당의 축소형식인 돌무지 위에 서있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영원히 전승되는 성황당은 신라 박제상이 저술한 '부도지'에 나오는 한민족의 원형신화 마고할미를 모시는 소도이고 돌무지는 성황의 신표이다. 그리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오마쥬(homage)의 원형은 동이족의 '태호복희-여와' 신화이다.
보통 지나인들이 동이족의 원형적 집단무의식의 하나인 복희-여와신화를 자신들 멋대로 각색하여 지나짱개의 창조신화의 하나로 내세우곤 하는데 이는 지나의 25사 윤색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도용한 전례와 이전에 동이족의 땅이었지만 복희-여와 신화의 전승이 존재하는 산동지방이 현재는 지나 땅이라는 역사적 속지주의에 따라 지나짱개의 신화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국인들은 복희-여와신화의 현재적 발현인 장승문화를 그대로 전승한다는 측면에서도 복희-여와신화의 전유자인 것이다.
지나에는 장승문화가 있는가?(복희-여와신화가 왜 장승과 동일시되는 가는 저 밑에 설명해 놓았고 먼저 복희-여와신화의 컨텍스트적 맥락을 살펴본다.) 눈을 씻고 봐도 지나인들이 장승을 숭배한다는 문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 분위기를 지나인들도 알아서 요즘은 태호복희-여와신화는 동이족의 신화로 인정하면서 어물쩍 넘기는 경향이 있다.
-복희-여와도/신강 투르판 출토-
복희-여와신화는 그 원형이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파생된 세계도처에 존재하는 홍수신화 남매설화의 일 형식이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간빙기가 시작되면서 세계의 해수면은 높아지고 역시 우리의 조상들인 고아시아족(북방계 구몽골리안)인 마고인들이 살던 황해대평원 외에, 빙하기로 인해 바이칼 부근에 갇혀있던 북방계 신몽골리안이 간빙기의 해빙을 틈타 알타이와 흥안령 산맥을 넘어 지나(支那-짱개) 서북쪽과 만주를 거쳐 당시 육지이던 황해대평원으로 밀고 내려 온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선주하던 북방계 구몽골리안인 고아시아족과 융화하며 피라밋을 짓고 고인돌을 세워 자연과 하늘을 경외하고 황해대평원에서 가장 흔한 채소였던 순무(강화도에 순무와 고인돌이 있는 것은 예사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것은 황해대평원에 물이 차 오르자 한반도쪽으로 피해가는 마지막 지점에 강화도가 있었던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오랜 일상을 거기에 구현한 것이다.)를 재배해 먹고 황해대평원에서 가장 흔한 식물인 마(麻-이 마는 신전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춤추는 사람의 상형이다)로 만든 삼베옷을 입고 살았을 것이다.
한번 한반도 서해안 지역을 답사해 보시라 모든 바닷가에 면한 마을들에선 할머니들이 방에 앉아 삼베와 모시를 짜고 있을 것이다. 이는 문화와 전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몇백년 반짝 했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 없는 증어인 것이다. 전통은 수만년 수천년 일상에서 권력의 향배와 관련없이 살아 숨쉬고 전승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빙기에 황해대평원 고아시아족과 신몽골리안들이 서로 융합되고 합쳐지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마고신화와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환인의 석유환국(昔有桓國) 전승의 혼재이다. 박제상의 '부도지'에서 환인은 마고를 계승하는 세력이다. 달리말해서 마고는 고아시아족을 은유하고 환인은 신몽골리안 즉 코리족 즉 맥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마고는 신석기문명의 모계사회를 말하며 환인은 부계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겐, 왜곡된 것이지만 지나가 속지주의에 따라 지들의 역사라고 모두 우기며 조작한 25사 조차도 없다. 하지만 문헌고증학에 따라 지나의 25사가 상당부분 조작되고 날조됐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유념해야할 부분이 소위 환빠나 위서논쟁으로 강단사학자들이 기를 쓰고 저지하려는 '환단고기'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단고기는 이전부터 내려 오는 마고와 환인의 후예들인 동이족의 역사를 수천년에 걸쳐서 집대성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강단 친일사학자들의 일방적인 마타도어로 환단고기가 계연수가 창작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 태백일사, 단군세기,북부여기 등의 기존에 수천년전부터 전해져 내려 오던 우리의 실제 역사를 계연수선생이 필사한 것 뿐이다.
사대모화 중심의 조선조 때 조선조정은 수차에 걸쳐서 우리민족의식을 고양하는 단군관련 사서에 관해 금서령을 내리고 수거령을 내려 이를 위반할 시에는 사형을 내릴 정도로 민족사서에 대해 극악한 포악을 자행했다. 이런 상태에서 고려 때는 공식적으로 인정되던 사서도 조선조 때는 사대모화주의에 따라 금서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수대에 걸쳐서 필사의 형식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십대에 걸친 필사과정에서 필사자의 당대의 가치관념이 일부 반영되어 그 부분이 가필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가필이 짱개지나 25사처럼 진싫을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강단사학자들은 환단고기에 보이는 계연수나 이유립의 당대의 관념이 반영된 몇개의 대목을 트집삼아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시하는 무지한 일반화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환단고기가 전해주는 우리역사의 컨텍스트적 맥락까지 강끄리 무시하며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지나 25사나 현재의 삼국사기 등이 밝혀내지 못한 많은 역사적 팩트들이 고고학적 발견과 더불어 확인되고 있으며 그러한 사초들이 풍부하다.
이렇게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한 우리민족의 입장에서 환단고기가 주는 우리 역사에 대한 컨텍스트적 맥락을 확고하게 잡아 줄 수 있는 관점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 아고리언들도 일제가 강요하고 세뇌해 온 실증사학적 관점이라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하게 만들려는 랑케류의 사관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주체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해석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환단고기의 관점도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승이라는 확고부동한 일상적 표상으로 구전되어 전승되는 복희-여와신화 외에도 바로 위에서 언급한 환단고기에서도 태호복희가 언급되고 있다. 짱개지나인들은 삼황오제의 첫머리로 태호복희를 언급하지만(한국사의 도용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태호복희를 배달국(지나의 사마천이 사기를 친 '사기'에서 유일한 팩트인 고천자의 나라이며 동이족의 수장인 치우의 구리국) 제 4대 환웅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짱개지나인들의 오랜 역사적 컴플렉스를 보고 있다 그들은 사마천 스스로가 삼황오제에서 제외했던 이민족인 동이족 고천자의 나라인 구리국의 치우 대신에 역시 동이족인 구리국(배달국)의 4번째 환웅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인 태호복희는 지들 사기스런 삼황오제의 첫 머리에 떡허니 올려 놓는 것이다. 지나짱개들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여기도 동이 저기도 동이 그러니 어느때는 동이족의 누구를 지들 조상으로 모시고 또 어떤 때는 필요에 의해 또 다른 동이족을 지들의 조상으로 모시는 우왕좌왕 횡보를 한다. 즉 태호복희도 구리국의 환웅(천자)의 아들이지만 치우도 구리국(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천자)인 것이다. 그러니 짱개들은 누구를 올려 놓든 동이딜레마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것이다.
지나인들도 역사를 왜곡했지만 쪽팔린 건 안다. 그래서 삼황오제 중에서도 태호복희는 잘 거론 하지 않고 지들을 '염황' 즉 염제와 황제의 자속이라고 썰을 푼다. 그런데 염제나 헌원(황제) 모두 고천자의 나라인 구리국(배달국)에서 임명한 지방관리인 소전(少典)의 자식들이라는 건 또 쌩깐다. 지들의 역사에 그렇게 기록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삼황오제라 하면서 삼황의 첫번째인 태호복희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복희에서 너무도 동이스런 흔적들을 발견하기 때문에 지들이 떠들면 떠들수록 지들이 둔갑시킨 동이의 역사가 바로 지나의 역사라는 것을 토설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80년대부터 요하문명의 엄청난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지나의 실존기반 자체가 무너지니까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동이의 나라 구리의 천자 치우라고 기록했던 치우를 지나족의 조상으로 둔갑시키는 동북공정을 감행하는 후안무치를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복희대신에 치우-황제-염제를 동렬에 놓고 지들 조상이라고 뻥을 치고 있다, 저들 3은 모두 동이족이다. 명백히 지나족의 사기이다.
여하튼 조금 논점에서 벗어 났지만 복희-여와신화를 설명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위에서 살펴 본 지나의 삼황오제나 환단고기의 태호복희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결국 현재의 지나지역이 고대에는 동이족의 활동지역이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웅변하고 당시에 전래되던 동이족의 집단무의식의 구현인 신화형식을 역사적 형태로 후대에 서술한 것이다. 신화는 결국 신화가 아니라 그 집단이 공유한 팩트의 집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희-여와신화는 마고신화의 고아시아족과(여와로 표상) 새롭게 대두되는 부계집단인 북방계 신몽골리안이(복희로 표상) 간빙기인 황해대평원에서 서로 융합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내포한 것이다.
결국 역사적으로는 이렇게 정리된다. 황해대평원에서 샤머니즘적 토템과 애니미즘적 정령신앙을 숭앙하며 피라밋과 고인돌을 세워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던 마고집단은, 역시 하늘을 숭상하며 스스로를 천손족이라 믿던 빙하기에 바이칼에 고립되어 새롭게 진화한 후(눈이 찢어지고 단두형에 키가 크고 얼굴이 긴) 황해대평원으로 밀고 내려 온 북방계 신몽골리안인 환인과 환웅집단과 융합하여 역사적 개념인 동이족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후에 그 마고집단을 예족이라 부르고 천손족인 신몽골리안 집단을 맥족이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인종적 개념상 고아시아족과 북방계 신몽골리안이 3대7로 고루 혼합된 인류학적 역사학적 개념상 퉁구스계 예맥족이며 언어학상 고아시아족의 기본어휘(엄마, 아빠, 쌀 등등)에 교착어(은,는,이,가 등의 조사가 단어를 이어주는)가 특징인 알타이이어의 통사구조가 합쳐진 알타이어족이다.
이런 '태호복희-여와' 신화 전승은 황해대평원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 12,000년 이후의 동이족의 서천(西遷)에 따라 (참조-여러분들은 이 미이라가 어느 인종이라고 생각하십니까?-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884238) 신강-수메르(현 이라크지역)-이집트로 확산된다. 그리고 이렇게 확산된 수메르 길가메쉬신화의 카피버젼인 히브리 구약의 '여호와' 또한 동이신화 '여와'의 저작권 도용이라는 것이 종교신화학자들의 학설로 제시되고 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머리만 있고 몸은 일자로 조각되는데 그것은 복희-여와신화에서 복희-여와는 머리는 사람 몸통은 뱀이 엉켜있는 형상으로 세상의 창조신으로 나타난다. 바로 그 복희-여와의 몸통의 비구상이 장승의 몸통인 것이다.
이집트의 창조신도 뱀으로 상징화되며(스핑크스의 머리에 쓴 관은 뱀이다), 아즈텍 문명의 포볼부신화에 나오는 구세주 '빛의 사람(비라코챠)'은 머리에 뱀의 머리가 형상화 된 관(혹은 모자)을 쓰고 온다고 했고 아즈텍 문명에서도 뱀은 생명 과 창조를 상징한다. 이들 적시한 지역 모두 동이족이 이동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대 히브리인(샘족)들에게도 뱀은 지혜로운 존재인 동시에 성스러운 존재였다고 한다.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출애굽기에서도 암시된다. 그러한 뱀은 고대에 치유의 능력을 가진 존재였으나 동시에 인류에 파멸을 안겨준 사탄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즉 창세기에 등장하는 뱀은 지혜로운 존재로서 이브를 유혹하게 되는데 그것은 히브리민족이 메소포타미아로 건너간 우리 동이족(아모리테-BC17세기경 북부 시리아에 존재하던 동이족의 나라 인도유럽어족인 히타이트에게 멸망/, 힉소스-Heqakhase 외국에서 온 지배자를 뜻하는 이집트어로서 이들은 인류학자들이 동이의 치우신이라하는 세스신을 숭앙했으며 BC15세기경의 하이집트 왕국을 통치했다. 이들은 동이족인 후리족과 샘족의 혼합집단이다.)의 영향하에 있다가 독립하면서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된 은유가 아닌가 한다.
소위 히브리족의 '성서'에서도 앤드류 콜린스가 지적한 '네피림의 주시자들'이 고도의 기술과 문명 그리고 언어를 히브리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고 이는 성서의 외전격인 에녹서에서 아브라함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주시자들에게 문명을 배웠다'고 전한다.
옆의 그림을 보자
Jesus as a serpent-god from bas-relief in Egypt. This drawing was made by a member of Napoleon's army in 1798, on-e hundred years before the same face appeared to the world `for the first time ever' on the photograph of the Shroud of Turin.
위 그림은 1798년 나폴레온의 군대가 이집트에 원정할 당시 이집트 꼽트교 사원에 새겨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부인으로 보여지는 여인(마리아?)의 부조를 한 병사가 스케치로 드로잉한 그림이다. 구약의 외전으로 전하는 에녹서를 기반으로 한 소위 다빈치 코드의 핵심이다..그런데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와 여인의 모습이 바로 여와 복희의 蛇神(serpent God)구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
중국인의 선조 복희伏羲와 여와女娲
전설적인 황제 복희伏羲와 여와女娲는 중국인의 선조입니다.
복희의 정식 이름은 태호太昊이며, 기원전 29세기에 뱀의 몸을 가지고 신神과 같이 신비스럽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몇몇 초상화에 나타난 복희는 나뭇잎 화관을 쓰고 산에서 나온 모습이거나 동물가죽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가 점占에 사용되는 팔괘八卦를 만들어 문자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습니다.
그는 짐승을 길들였고, 백성에게 음식을 익혀 먹는 법, 그물로 낚시하는 법, 철로 만든 무기로 사냥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1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에는 그의 아내 혹은 누이로 알려져 늘 함께 다녔던 동반자 여와女媧와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중매인仲媒人의 수호 여신으로 받들어지는 여와는 복희의 아내로, 중매인의 규범과 결혼의 규범을 세우는 데 이바지했고 남녀 사이의 올바른 행실을 규정했다고 합니다.
여와는 흔히 인간의 얼굴과 뱀이나 물고기의 몸으로 묘사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화서국華胥國에 화서華胥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녀가 뇌택雷澤에 갔다가 우레 신雷神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복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복희는 머리는 사람이지만 몸은 뱀의 형상이었습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이란 책은 송宋나라 때 이방李昉이 편찬한 백과사서百科辭書입니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복희는 네모지게 쌓은 단方壇 위에 앉아 팔풍八風의 기운을 살핀 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합니다.
복희에 관한 내용은 이 책 저 책에서 편편이 전해오는데, 신선방약神仙方藥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 서적『포박자抱朴子』에 따르면, 복희가 거미를 스승으로 삼아 그물을 엮었다고 하며, 초楚나라의 굴원屈原과 그 말류末流의 사辭를 모은 책『초사楚辭』「대초大招」편에 따르면, 그가 거문고를 만들어 <가변駕辯>이란 노래를 지었다고 하고, 송宋나라의 나필羅泌이 엮은『노사路史』에 따르면, 그가 혼인할 때 한 쌍의 사슴가죽으로 예물을 삼도록 했으며,『태평어람』에 따르면 희생을 잡아서 푸줏간을 채웠고,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그가 하늘 사다리인 건목建木을 타고 하늘에 올랐고, 손에 규구規矩를 들고서 일월日月의 운행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복희와 마찬가지로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의 형상을 한 여와는 하루에 그 모습을 70번이나 바꾸었다고 합니다.
여와는 두 가지 큰일을 했는데, 오색의 돌을 불에 제련하여 하늘의 틈을 메웠고, 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여와가 사람을 만듦으로서 혼인의 신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성교는 하늘과 당의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데 하늘과 땅의 성교가 바로 운우雲雨입니다.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저서『논형論衡』「순고편順鼓篇」편에서는 고대 풍속을 말하면서 “비가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여와에게 제사지낸다”고 했습니다.
혹자는 복희와 여와 모두 무당으로 복희는 남자 무당이고 여와는 여자 무당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복희는 전설의 삼황三皇 가운데 첫째로, 무당, 제사장, 국왕의 역할이 집중된 인물로서 용을 토템으로 삼았던 부락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황하유역에서 출토된 채색도기에 그려진 요정 문양을 여와 신화와 밀접하게 연관 짓는데, 이는 여와가 요정을 토템으로 하는 부락의 수령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신화에서 복희와 여와는 남매나 부부 사이입니다.
묘족苗族의 전설에는 복희와 여와는 남매 사이였는데, 홍수가 난 뒤 인적이 끊어지고 둘만 남게 되어 부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