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한때는 시집 꽤나 읽었던 나. 문장 하나에 또르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한없이 따스해지기도 했던 기억들이 참 좋아 지금도 책장 한 칸만큼은 나의 책들로 채운다. 아이들 책이며 장난감에 점점 자리를 내어주며 책들은 정리되고 또 정리되었지만. 그나마 남은 책들도 먼지만 소복이 쌓여가고 있지만 두고두고 꺼내어 보리라는 바람을 간직한 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근 10년 동안 내가 읽은 책은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이 전부였다. 일주일에 한 번쯤 도서관에 갈 때도 내가 읽고 싶은 책보다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고르고 또 골라 오곤 했다. 물론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 만화책도 재밌다. 뭉클한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책에 폭 빠져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자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드디어 나의 욕구에 반응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읽을 책을 함께 정했기에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벼르고 벼렸지만 읽지 못했던 책을 결국 다 읽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이란,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이야기를 만나고 빠져들었을 때의 희열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 읽기라 가능한 것이었다. 나의 좁은 시야로는 바라보지 못했던 우리 사회,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며 느꼈던 미안함, 부끄러움, 안타까움, 때로는 분노. 읽기는 어떤 면에서는 무디어진 나의 감각을 그렇게 깨워주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기자단 활동을 하며 함께 읽은 14권의 책.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울림과 배움이 있었다.
쓰고,
쓰기는 읽기보다는 어려웠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활동이었지만, 막상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비평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썼다 지웠다가 반복됐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몰입이었다. 과제를 위해 밤을 지새워 본 것이 언제였던가. 피곤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몸의 곤함을 뛰어넘는 만족감이 있었다. 신기하다. 남편도 아이들도 집안일이 아닌 일을 집중해서 하는 나의 모습에 적잖은 응원과 칭찬을 건넸다. 엄마도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듯 얼마나 했는지 확인하고, 기한을 넘기지는 않았는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오~~~~ 좀 멋진데.” 아이들을 재우다 먼저 곯아떨어지기 일쑤인 내가 늦은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는 모습에 엄지척을 날려주었던 남편. 그 표정과 반응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별것 아닌 작은 일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주변의 반응이 반가웠고 기분 좋았다.
쓴다는 것, 나 아닌 누군가가 읽을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했다. ‘후원으로 힘을 보태는 것 이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일까’(2023년 노워리 기자단 모집 공지 글 中)에서 시작된 작은 선택이 다양한 글쓰기 경험으로 이어졌다. 강의 스케치 기사, 인터뷰 기사는 처음 써보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하는 건 맞나. 걱정이 앞서고 긴장도 되고 그래서 어설펐던 부분도 많았지만 그렇게 한 편 한 편 내가 쓴 글이 쌓였다. 뿌듯하다.
이야기하라.
혼자 읽고 쓰려고 했다면 얼마나 할 수 있었을까. 읽고 쓰는 모든 시간이 돌아보니 한결같이 좋았다 싶지만, 때마다 어려운 책도 있었고 유독 읽히지 않는 책도 있었으며, 도저히 쓸 수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했던 글도 있었다. 그럼에도 2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만나는 시간, 화면을 채운 기자단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면 반가웠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책은 내가 읽은 것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풀리기도 했고, 보지 못했던 부분이 비로소 보이기도 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구나.’ 매번 공감과 확장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읽으면 읽은 대로, 못 읽으면 또 못 읽은 대로 그랬다.
서로가 쓴 글을 읽고 합평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두근두근.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쓴 글에는 뜻밖의 호평이, 나름 만족하게 술술 썼던 글에는 혹평(?)이 더해질 때 짜릿함과 찌릿함을 오갔다. 그렇게 내가 쓴 글을 나보다 꼼꼼하게 읽고 평가해 주셨던 선생님들이 있어서 조금 더 매끄럽게 거듭나는 글들도 있었다. 이 또한 뿌듯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크든 작든 그만큼의 용기, 시간, 마음,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잘하지 못하면 어떡할까.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생각하면 할수록 많아진다. 그렇게 쭈뼛거리다 기회는 지나가 버리곤 한다. 그런데 눈 딱 감고 일단 한번 해보지 뭐. 하다 못하면 말지 뭐. 그렇게 시작하고 보니 내가 내어주고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작은 용기가 일상에 소소한 생기를 더하고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올해도 용기 내어 선택할 수 있었다. 기자단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이어가 보기로.
첫댓글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쭈뼛거리다 놓친 기회가 많았죠~^^
마음으로만 품었던 하고 싶은 일에 다시 용기를 내볼까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