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삼죽면 미장리가 고향인 염수정(廉洙政, 안드레아, 1943년 출생) 대주교가 지난 12일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염수정 추기경의 서임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묘역이 있는 미리내 성지와 박해와 순교의 상징인 죽산성지가 상징하듯이 일찍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어 박해와 순교 속에서 뿌리내린 안성 천주교 신앙의 결실임은 물론이고, 안성역사에서 차지하는 천주교의 위상과 추기경이 갖는 상징성 등을 볼 때, 안성 천주교와 신자들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안성전체의 큰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안성의 경우 일찍부터 수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을 형성해 신앙이 전파되고 형성된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데 염수정 추기경의 경우, 이러한 안성 천주교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이번에 추기경에 서임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면서 안성시민과 신자들 사이에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2일 발표 다음 달 22일 서임식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 12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기도 직후, 한국의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를 포함한 19명의 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염수정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1969년 서임), 정진석 추기경(2006년 서임)에 이어 한국 출신으로 임명된 세 번째 추기경이 됐으며 다음달 22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추기경회의 중 정식으로 서임식을 갖게 된다.
지난 13일 11시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 주교관 앞에서 염수정 추기경 임명축하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교회가 되는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거듭 “교회는 더욱 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더 돌보고 주님을 닮은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대조부터 신앙 이어와 4대조 안성에서 순교 증조부 때부터 삼죽면 미장리 거주
추기경은 주교직에 부여된 권한을 그대로 행사하면서 만 80세 미만일 경우 교황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추기경회의(consistory)에 참석하여 교회의 중요 사안들을 논의하는 등 그 교회법적 권한보다도 세계 교회 지도자로서 추기경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염수정 추기경은 1943년 안성에서 태어나 1970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불광동 본당, 당산동 본당 보좌신부, 성신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이태원 본당, 장위동 본당, 영등포 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교구 사무처장 등 보직을 거친 뒤 목동 본당 주임신부로 재직 중인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듬해 1월 주교품을 받았다. 2012년 5월 10일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함에 따라 서울대교구장을 계승하여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하였다.
그런데 염수정 추기경의 가정은 5대조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왔을 뿐만 아니라 안성과의 인연도 단지 안성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4대조가 죽산에서 순교하는가하면, 조부 때부터 삼죽면 미장리 교우촌에 거주하며 신앙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명실공히 안성을 뿌리로 한 천주교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발행된 안성시지에서도 천주교와 관련된 부분을 서술했을 뿐만 아니라 안성의 천주교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안성성당 사목평의회 박종권 총회장과 천주교 서울 대교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염수정 추기경의 신앙의 뿌리는 추기경의 5대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양반가 출신으로 가톨릭 신앙을 수용했던 추기경의 5대조 염덕순(요셉. 1768-1827)은 박해가 심해지자 충북 옥천으로 피신했고 이후 4대조인 염석태(베드로, 1794-1850)는 부인 김마리아와 함께 교우촌이 있다는 진천군 백곡면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염석태 부부는 진천 관헌에 체포되어 염석태는 진천에서 부인 김마리아는 죽산성지에서 순교했다.
이후 염수정 추기경의 증조부 염성수(루도비코)는 새로운 옹기점토를 찾아 충주시 신니면으로 이주해 공소(신부가 없는 공동체 기도모임)의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염석태, 김마리아 부부의 시신을 찾기위해 삼죽면 미장리로 이주해 오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기도로 3형제가 신부 안성성당에서 세례 받아
추기경의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과 큰 아버지 염대진은 미장리에 있던 공소의 지도자로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추기경의 할머니 박 막달레나 여사와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1995년 선종)씨는 자식 중 성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매달 안성성당에서, 미리내, 감곡성당으로 순례하며 기도했다.
누구보다 염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어머니였다. 그의 모친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을 재미있게 이야기로 설명해주는 등 신앙적으로 성장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식들에게는 사제가 되라는 표현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집안에서 사제가 나올 수 있도록 매일 같이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집안에 흐르는 신앙의 힘은 5남1녀인 염 대주교 형제 대에 이르러 3남인 염 추기경을 시작으로 4남 수완(68·서울 문정동본당 주임), 5남 수의(65·서울 잠원동본당 주임) 등 ‘3형제 성직자’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추기경은 10살 무렵까지 안성에 거주하며 초등학교 2-3학년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추기경의 큰형은 안법고등학교 1회 졸업생인 염수운이다)
특히 태어난 이듬해인 1944년에는 안성성당(당시 구포동 성당) 조인환 신부로부터 정식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사실이 현재의 안성성당에 기록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서울로 이주한 염수정 추기경은 당시 천주교 소식을 알려주던 ‘경향잡지’에 게재된 “성신고등학교를 가면 신부가 될 수 있다”는 광고를 접하고 신부의 길을 걷기 위해 성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이후 성신대학교(가톨릭 대학교의 전신)에 진학해 사제의 길을 걷게 되며 이후 1970년 사제품을 받게 되고 마침내 추기경에 서임된 것이다.
천주교뿐만 아니라 안성의 큰 경사
이에 안성지구 사제단과 총회장 등은 지난 15일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이 같은 염수정 추기경의 안성과의 인연을 박종권 총회장을 통해 공유하는 한편 지난 18일에는 소속 8개 성당과 2개 성지에서 일제히 염수정 추기경 서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추기경의 고향인 삼죽면 미장리에도 축하 현수막이 걸렸고 안성시와 안성노인회, 안성시 새마을회 등에서도 시내 곳곳에 현수막을 걸며 추기경 탄생이라는 큰 경사를 축하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의하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염 추기경에 대해 “인내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온 덕망 있는 사제”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박종권 안성성당 사목평의회 총회장도 “안성 천주교 뿐만 아니라 안성의 큰 경사이다. 안성땅에 내려주신 은총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염수정 추기경 서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첫댓글 옮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