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특성 따라 욕구 충족시킨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
뉴타운 건설이 한창인 서울 은평구. 지하철 연신내역에서도 버스로 10여분 더 들어가면 뉴타운 건설 공사로 적막한 변두리가 나온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노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다. 시기상으로는 여름을 지나 초가을에 진입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은 한여름의 날씨를 방불케하는 9월의 어느날 은평노인종합복지관(관장 고재욱)을 찾았다.
아침 10시. 이른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은평노인복지관은 입구에서부터 장사진을 이룬다. 이미 복지관에서 볼일(?)을 본 후 순환버스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뉴타운 건설로 인해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허름한 입구에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복잡한 주차장을 지나 건물입구로 들어서기 위해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던 찰나에 또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앞마당에 조그맣게 마련해 놓은 게이트볼장. 머리가 히끗히끗한 60~70대 할아버지 10여명이 모여 게이트볼 경기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대단들 하시다’는 생각을 하며 들어선 건물 현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풍경이 TV시청실 및 휴게실 좌석은 이미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할아버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입구 왼편에 위치한 안내데스트에는 4~5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등록하고 안내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또 오른쪽에 마련된 휴게공간에는 7~8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등 이른 아침에 벌어질 수 있는 풍경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어르신들이 이미 복지관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관 사무실도 직원들과 복지관을 방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북적대기는 마찬가지.
황영숙 팀장은 “보통 8시에서 8시 반 사이에 출근하는데 이미 어르신들은 직원들보다 더 일찍 나오셔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며 “몇 년째 이런 광경을 봐오다보니 신기할 것도 이상할 것도 전혀 없다”며 웃어보였다.
은평구, 노인인구 많은 고령화지역
은평종합사회복지관이 위치한 은평구는 전체인구 47만3456명(2006년 12월 기준)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3만7676명으로 은평구 인구의 8%에 해당한다. 또한 서울시 자치구별 고령인구 분포에서도 여덟 번째로 노인인구가 많은 지역에 속한다. 특히 독거노인이 6000여명,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2000여명, 장애노인은 700여명 등이 거주하고 있어 재가복지사업 및 대상자를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의 필요성이 매우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따라 복지관은 ‘어른 공경’ ‘더불어 사는 삶’ ‘밝은 사회’를 관훈으로 ▲어르신을 위한 복지 통합 관리실천 ▲어르신의 사회적 역할 형성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정보 전달 ▲생활속의 복지환경 조성 ▲생산적고령화 시스템 구축 등을 복지관 비전으로 제시하며 ‘어르신 위주’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등록회원 4만여명 1일 평균 1300여명이 오가는 복지관에서 일하는 직원은 36명. 비정규직 직원을 포함해도 60명이 고작이다. 하지만 3800여명의 등록자원봉사자 가운데 하루평균 8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두 팔 걷어부치고 나서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에게 편안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그나마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짜임새 있는 공간활용, 만족도 높여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복지관은 짜임새 있는 공간활용으로 복지관을 찾는 노인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지상 1층에는 사무실, 회의실, 관장실 등 복지관 직원들의 공간 외에 이․미용실, 자원봉사자실, 고령자취업알선센터, 안내데스크, 상담실, 노인용품대여센터, 서예실, 진료실, 물리치료실, 기능회복실, 주간보호실, 경독서코너 등이 마련돼 있다. 경독서 코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공간이 아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물리치료실, 기능회복실, 진료실은 복지관의 기능회복사업이 이뤄지는 주요 요지다. 노인들의 질병을 미연에 예방해 건강한 삶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는 이 사업에서는 타 복지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물리치료실 한 켠에 마련된 부스가 바로 그것.
일반적인 노인복지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치과진료실을 마련해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구 내에서 치과를 운영중인 5명의 의사들이 매주 토요일, 교대로 진료를 나와 수급자 노인들에게 진료를 하고 틀니까지 무료로 제공해 준다. 이들이 1년 평균 투자하는 금액은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라고 한다.
황 팀장은 “처음에는 한 선생님이 혼자서 몇 년 동안 하시다가 몇 해 전쯤 그 분이 의사지회에 봉사활동에 대해 건의를 한 후 4명의 의사선생님들이 동참하겠다고 나서주셨다”면서 “의료기기도 모두 봉사자분들이 직접 가져오고 들어가는 모든 재료까지 자비를 털어가며 진료하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미용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퍼머는 5000원, 커트는 2000원의 비용을 받고 있지만 수급자에게는 전부 무료다.
김순희(65) 할머니는 “3년 전쯤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처음 복지관을 찾은 이후 최근에는 집에 환자가 있어 잘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오늘은 오랜만에 퍼머를 하기 위해 찾았는데 오랜만에 와도 반겨주는 친구가 있어 편안하다”고 말했다.
진료실 맞은편에 위치한 주간보호실에는 초록색 조끼를 입은 노인들이 여기저기 않아있었다. 초록색 조끼에 노란색 줄무늬가 들어간 조끼는 초기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 초록색 조끼는 중풍 노인 등 봉사자들이 환자들의 특성을 쉽게 파악하고 수월하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조끼의 디자인을 다양화하는 센스도 엿보였다.
130여개 특성화 프로그램 운영
대강당, 사구․포켓볼장, 탁구장, 바둑․장기실, 사회교육실, 클럽활동실, 정보화교육실, 휴게실 등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신나는 댄스 음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음악의 진원지는 대강당. 10시부터 시작된 스포츠댄스 강의에 100여명의 노인들이 짝을 이뤄 흥겨운 리듬에 몸을 싣고 있었다. 강단에 나선 시범조교의 율동을 그대로 따라한다고는 하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이 우스워보였지만,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박모(63)할머니는 “몇 년 동안 몸이 좋지 않아 병원도 다녀보고 했지만 병명을 알 수 없어 우울증까지 겪었다”며 “그러던 중 동네 친구를 통해 복지관에서 하는 스포츠댄스를 같이 들어보자는 권유를 받고 고민하다 나왔는데 이 후 병이 말끔히 나았다. 복지관을 다닌 이후에 가족들도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진행 중인 스포츠댄스를 비롯해 어학당, 동양철학, 웃음건강치료, 검정고시반, 서예, 음악, 문화바우처, 시사토론반, 어르신기자단활동, 정보화 프로그램 등 총 28개 분야 130여개의 프로그램은 노인복지관만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임상종합상담사업, 가정봉사원파견사업, 평생학습관사업, 주간보호사업, 소득보장사업, 자원봉사육성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중이며, 이동재활차량사업, 이동목욕사업, 장례서비스사업, 이동미용차량사업, 경로당공간활용사업 등 은평노인복지관만의 특성화사업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황 팀장은 “올해 시작한 난타반은 추첨을 해서 수강생을 뽑아야 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며 “어르신들의 욕구가 점점 다양화, 외향화 되어가는 경향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복지관은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등 사회복지분야에 부는 새로운 변화에 동참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대상자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산하단체 등과 연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적용자는 더욱더 다양하고 질 높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또한 각 연령과 성별의 욕구에 맞는 차별화된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추구할 계획이다.
또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노년기의 긍정적인 부부관계 프로그램’이 인기 프로그램으로 급상승 중이다. 올해 서울시 사회복지기금지원으로 마련된 ‘황혼에 다시 찾은 신혼기’ 프로그램은 최근 급증하는 황혼이혼을 예방하고 노년부부 관계 개선을 위해 기획됐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1회 노인부부 10쌍을 모집해 부부관계개선, 너와나 이해, 노후설계, 잉꼬부부몸짱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연극․영화․유적지 관람, 부부 야외 나들이 등의 문화체험도 곁들이고 있다.
하루 평균 1000~1500여명의 노인들이 쉬어가는 복지관. 애초 예상과 달리 타지역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노인들이 늘고, 특히나 내년까지 진행되는 은평뉴타운 형성으로 새로운 주거환경 및 생태전원도시가 조성되면 지역노인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복지관의 신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황영숙 선임팀장은 “다른 지역에서 친구의 소개로 오는 사람도 많고 은평구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후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많게는 일일 1500여명의 어르신들이 방문을 하다 보니 사실 장소가 협소한 감이 없지 않다”며 “그래서 현재 리모델링이나 신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처 - 복지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