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관 일지-떡본 김에 제사
‘떡본 김에 제사’라는 속담이 있다.
이왕 하는 김에 하나 더 보태서 한다는 뜻일 게다.
돌 하나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사자성어인 ‘일석이조’(一石二鳥)도 그 비슷한 의미다.
그때가 언제인지 뚜렷한 기억은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내 일상이 그와 같이 겹치기가 끼어들었다.
예를 들어 나와 내 아내의 만년 삶을 위해 마련한 문경 교촌 ‘햇비농원’을 찾은 김에 문경새재를 걷는다거나, 문경새재를 걷는 김에 가까운 현공스님의 보현정사를 찾는다거나, 보현정사를 찾는 김에 점촌에 사는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채종대 친구를 초대한다는 그런 식이다.
갈 곳 많고 챙겨야 할 정분이 많으니, 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겹치기 삶을 살다보니, 이젠 아예 일상이 됐고, 그 일상을 도리어 즐기기까지 한다.
검찰청 수사관시절에도 그랬다.
정보수집이나 탐문수사를 위해 현장을 찾아다녀야할 경우가 있으면, 그 계획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그 부근에 내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라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잠깐 틈을 내서 그 누군가와 차를 한 잔 마시거나 밥을 한 그릇 같이 하거나 해서 정분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고재오 친구나 김용갑 친구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서울 퇴계로 대한극장 부근에 있는 그 친구들의 사무실을 하도 들락날락했기 때문이다.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끝내고 집행관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하루에 10여 건 정도의 집행사건을 처리할라치면, 차를 타고 움직이는 동선을 먼저 구상해야 하는데, 그 구상과 함께 그 동선의 인근에 사는 친구들이 누구일까 챙겨보는 것이 또 하나 일이었다.
그래서 역시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남성원 친구라든가 이정탁 친구라든가 정욱진 친구라든가 김경태 친구라든가 권두혁 친구라든가 해서, 많은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서초동에 법무사사무소를 차려놓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업무의 속성상 법원으로 등기소로 참 많이도 다닌다.
당연히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검찰청도 들를 수밖에 없다.
법원에 들렀음에도 검찰청을 안 찾아보고 그냥 돌아올라치면, 뭔가 내 뒷덜미를 낚아채는 듯 하는 느낌을 받는다.
빤히 아는 인연들을 바로 옆에 두고 못 본채 내빼려니 그런 것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내빼지 않고 그 인연들을 찾는다.
2014년 12월 9일 화요일인 어제도 그랬다.
저 멀리 경기 일산에 있는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에 일거리가 생겼다.
고양지원에 일거리가 생기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의정부지방검찰청고양지청이다.
그 검찰청이 떠오르는 것은 그 청에 소속된 검찰수사관 후배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표였다.
가뜩이나 지난여름에 있었던 인사이동 후에 한 번도 들르지를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 점심 어때요?”
그 청에서 과장으로 있는 검찰수사관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떡본 김에 제사 지내보자는 격이었다.
그 후배의 답은 이렇게 시원했다.
“좋습니다. 다른 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취소하겠습니다.”
미리 잡혀져 있는 약속을 취소하겠다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미리 잡혀져 있는 약속을 취소할 필요는 없어요. 딱히 볼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뒤로 미룹시다.”
조심스레 그 의사를 물어봤다.
“아닙니다. 미리 잡혀 있는 약속이 별 것이 아닙니다. 그 약속은 뒤로 미뤄도 되는 겁니다. 그러나 선배님은 쉽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선배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선배님의 경험담이거든요. 선배님 보고 싶어 하는 직원들도 동행하겠습니다.”
나와의 만남을 소망하는 듯, 그 하는 말에 정성이 가득 배어있었다.
그러했으니, 함께 한 그 점심자리, 다들 가슴에 한 소쿠리 감동이 담기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 검찰수사관 후배들의 그 얼굴에 피어오른 잔잔한 미소가, 그 감동의 증표였다.
첫댓글 인연이란 귀중하고 소중한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