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암곡동 산1
신라 제 39대 소성왕(昭聖王, 재위 799∼800)의 왕비인 계화부인(桂花夫人)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비이다.
1915년 주변에서 발견된 세 조각의 비석 파편에 새겨진 글을 통해 ‘무장사 아미타 조상사적비(鍪藏寺阿彌陀造像事蹟碑)’임이 밝혀져 이곳에 무장사(鍪藏寺)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장사(鍪藏寺)는 신라 제 38대 원성왕(元聖王)의 아버지 대아간(大阿干) 효양(孝讓)이 그의 숙부 파진찬(波珍湌)을 추모하여 창건하였다고 한다.
비는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비몸돌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고, 현재 절터에는 부서진 비받침과 비의 머릿돌만이 떨어진 채로 남아 있다.
비받침은 얼굴형상을 알 수 없으나 2좌로 구성된 점이 특이하다.
등 중앙에 마련된 잘려진 비좌(碑座)는 비몸을 직접 끼워두는 곳으로 사각형이며, 네 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하였다.
잘려진 머릿돌에는 용이 구름속에서 앞발로 여의주를 잡고 있는 조각이 있고, 왼쪽 면에는 금석학자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조사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석비는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신라태종무열왕릉비(국보 제25호)를 제외하고
그 이후 머릿돌이 남아 있는 예가 드문 상황에서 당시 머릿돌의 변화과정을 살필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명칭변경; 무장사 아미타불 조상사적비 이수 및 귀부 → 경주 무장사지 아미타불 조상 사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