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4.
수많은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차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본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물이 그득하고,
산(山)은 여린 잎의 연두색에서 벗어나 녹색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겨울산의 속살이 여름의 녹색으로 채워지자 자연의
공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논가에서 한가롭게 먹이사냥을 하는 쇠백로를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나는 나만의 이상향인 '샹그릴라(shangrila)'를 찾아
떠났다.
그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달린 후 해와 달, 바닷물이 춤추고 바람이 노래하는
바로 그 샹그릴라를 만났다.
10;46
'심곡항 부채길'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에서 수학여행을 온 남녀학생들의 목소리가 싱그럽다.
이곳에서 내 고향후배들을 만나다니,
내가 상산초교 52회요, 진천중학교 16회 졸업생이라고 하니
학생들이 와! 하며 함성을 지른다.
한 여학생은 이곳에서 나랑 만난 게 인연이라 하기보다는
필연(必緣)이라며 제법 어른스러운 표현을 하는데 학생들을
보며 참 맑고 바르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55년 전엔 저 학생과 같은 나이였다.
흘러간 것은 세월이고 단지 남은 건 주름진 얼굴뿐이라지만,
나의 아련한 추억은 장롱속의 앨범과 함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있지.
'샹그릴라'는 티베트 문화권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은 자기가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에서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그렸다.
눈부신 만년 설산, 울창한 원시림과 웅장한 협곡, 청정한
초원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유토피아(Utopia)라,
그곳이 방랑기에 접어든 내가 찾는 그 샹그릴라가 아닌가.
산(山)과 초원이 아니면 어떤가,
산과 바다, 해안단구가 어우러진 '정동심곡 부채길'이라면 내가
그리던 나만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겠다.
천연기념물 제437호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에서
시루떡을 켜켜이 쌓은듯한 해안단구(海岸段丘)를 만난다.
해안단구란 해안선을 따라 발달한 계단 모양의 지형이다.
즉 기반암의 침식면이나 해수면을 기준으로 형성된 해안 침식
지형이 현재의 해수면보다 높은 위치에 놓이게 된 계단 모양의
지형을 해안단구라 한다.
해안단구는 파랑에 의한 침식 작용인 파식작용으로 해식애
(海蝕崖)와 파식대(波蝕帶)가 형성된 후에 지반의 융기 또는
해수면의 하강이 일어나면서 형성된다.
해수면 위로 드러난 암석이 파식을 받으면서 생긴 해안단구에
올라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싶다.
사람들은 정동진의 부채 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었다.
바다부채를 줄여서 표현하면 바로 해선(海扇)이 아닌가.
내가 해선길에 들었으니,
이곳이 바로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가 되었구나.
200~25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볼 수 있다는 해안단구옆을
지나며 눈이 호강을 한다.
단구를 스쳐 온 바닷바람이 사뭇 부드럽다.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를 들으며 부채길을 함께 걷는다.
예쁜 여학생들이 파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앞서나간다.
아마도 학생들은 능파(凌波) 보법을 쓰는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자 바닷가로 길게 뻗은 2.9km의 바다부채길을
따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저 멀리 사라졌다.
저 길은 무슨 형태의 길일까,
직선으로 가다가 꺾어지기도 했고, 바닷길 따라 휘어졌다.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을 옛사람들은 '에움길'이라 했다.
꾸불꾸불 이어지는 길을 보며 예전에 올랐던 덕유산 덕유평전의
지그재그 곡선길과 장수 삿갓봉이 떠오른다.
대자연에서의 길은 소실점(消失點)이 있는 직선길보다 곡선길이
더 아름답다.
낮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자드락길'이다.
바닷가 험한 벼랑과 단구대를 따라 난 길을 '벼룻길'이라 했던가?
끝없이 이어지는 '에움길'에서
해당화도 만나고, 쥐똥나무꽃도 보고, 청미래덩굴과 댕댕이덩굴도
만났다.
'벼룻길'에서 만나는 꽃과 사람들,
우리의 삶은 평생 길 위에 있는 거지.
흙수저는 그 길 위에서 헤매고, 금수저 누군가는 지름길로 간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탄탄대로를 걷다가도 험하고 막다른 길을 만나는 게 인생길이지.
이 나이 되도록 나는 나의 인생길에서 은행원이라는 외길만
걸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라는 노래를 잠시 흥얼거린다.
그는 'my way'라는 노래에서
"not in a say way~
I did it my way yes, it was my way, "라고 했지.
축약하면
[ 부끄러운 점 하나 없이 말이네~
난 나만의 길로 걸어왔다네, 그게 내가 걸어왔던 나의 길이었네 ]
11;20
바람이 분다.
산속의 바람은 나무와 숲에 걸려 뒤뚱거린다.
그러나 바닷바람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아
부드럽게 내몸을 감싸며 저 하고 싶은대로 한다.
서서히 젖어오던 등판에 시원한 해풍이 스며든다.
바닷바람엔 내 머릿속에 알파파(alpha波)를 생성시키는 해조음
(海潮音)이 실렸다.
이 정도의 위치라면 '해수관음보살'이 있을만한 자리인데
뜻밖에 '투구바위'가 자리를 잡았다.
옆에서 보면 이목구비가 확연히 나타나는 투구바위를 바라보며
문득 청송 주왕산 시루봉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시루봉이 시루를 닮았다는데 난 그 바위를
'큰 바위 얼굴'이라 했다.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이라 '투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려시대 명장인 강감찬 장군과 발가락이 여섯 개인 육발호랑이가
내기 바둑을 즐겼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투구바위의 전설을 읽는다.
육발호랑이가 밤재길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스님으로 변해 내기바둑을 두고 이기면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데,
육발 호랑이는 강릉에 부임한 강감찬 장군에게서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는 편지를 받고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는
전설을 읽으며 저 투구바위가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비장한 모습의
강감찬장군 형상으로 보임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그리고 바닷바람소리, 파도소리와 함께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가
몰려왔다.
내가 걷는 길은 철망으로 된 길이지만 철망옆으로 초병(哨兵)들이
걷던 '돌서더릿길'과 '돌너덜길'이 말없이 이어진다.
초병이 사라진 '좌욱길'의 무성한 잡초가 서럽다.
사라진 초병들은 잡초 무성한 자드락길, 돌서더릿길과 돌너덜길을
걸으며 고행길이라 생각했을까,
아님 득도(得道)의 길이라 여겼을까.
요즘들어 나쁜 버릇이 생겼다.
인생의 전성기는 오늘일까 아님 내일일까를 수시로 묻고 답을
하는데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이 바로 전성기가 아닌가.
예전에 나는 글씨를 잘 쓰고 싶었다.
어느날 갑자기 마비가 왔고 그 마비된 팔로 글씨를 쓴다는 건
꿈으로 끝나 버렸다.
은퇴한 후에는 멋지게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
가까운 친구랑 색스폰 학원에 들렸다.
어눌하고 감각이 사라진 손가락으로 악기를 만지는 순간 식은땀이
나며 연주는 나의 길이 아님을 알았다.
아! 꿈은 꿈으로만 끝나가는 건가.
이것저것 하고싶은 꿈이 참 많았는데 지금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곱씹어본다.
바다는 만류귀종(萬流歸宗)이다.
세상의 모든 물줄기와 수많은 물결의 흐름이 결국 바다에서
하나가 되듯이 인생 또한 이 나이가 되면 많은 것이 하나가 된다.
이 대목에서 선(禪)과 열반(涅槃)이라는 화두를 떠올린다.
12;50
세상은 시끄럽다.
SBS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와 같이 본성과 생명의 참모습으로,
이치에 맞고 의롭게 행동하며 흥도(興道)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코인 투기로 스캔들을 만들고, 정치자금 등 돈봉투로 탐욕스럽고
거짓을 행하며 망도(亡道)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세상은 점점 엉망이 되고 있다.
다 같은 길이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내 길을 걸었다.
비록 육신(肉身)이야 아프고 힘들지만 마음만은 아프지 않다.
바다부채길을 걸으며 오늘 나만의 유토피아를 찾았으니 말이다.
2023. 5. 24. 정동진 부채길에서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유토피아를 찿은 석천에게 부러움의 박수를 보냅니다. 아직 헤매고 있는 나는 언제나 찿을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