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트라이앵글 (로마서 12:1-2)
성경은 신앙생활의 지침이 되는 책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태평양의 물이 아무리 많아도 병에 코르크 마개를 막으면 물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을 닫고 있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씀대로 살고 순종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은 구체적으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주의깊게 들으셔야 그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그 씨앗이 길가에 떨어진 씨앗같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같고,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전에 시무했던 교회는 일본 신사가 있던 곳입니다. 해방이 되자 미군정이 들어섰는데, 선교사 언더우드가 미군정 일을 보았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하여 어떤 목사님이 적산 가옥인 그 신사를 불하받았고, 감리교본부에서 250만환을 주고 매입을 하여 교회를 지었던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였던 곳과 절이 있던 곳에 교회를 지은 곳이 여러 곳이 있습니다. 제가 시무했던 그 교회는 가토 기요마사 신사였던 곳입니다.
2007년 6월 반바지 차림의 일본사람이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노조무 타키모토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일본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노조무 목사님은 신사 터가 어떻게 되었나,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2층 난간에 서서 보면 멀리 광화문이 보입니다. 옛날 중앙청자리, 조선총독부 자리입니다. 우측 2시 방향을 보면 남산 전망대가 보입니다. 일제시대에 조선신궁, 신사가 있던 곳입니다. 총독부와 조선신궁, 가또 기요마사 신사는 삼각형, 트라이앵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트라이앵글은 일본이 서울과 한국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구조라고 했습니다. 트라이앵글 구조가 일본사람들에게는 지배와 번영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이앵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골든 트라이앵글 (golden triangle)이라고 해서 풍요와 번영의 상징입니다. 나일 삼각주, 고센 땅이 이에 해당됩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때에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갔고, 바로왕이 하사한 땅이 나일 삼각주에 있는 비옥한 고센 땅입니다. 그풍요한 땅에서 400년만에 72명이 수백만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나일 삼각주는 은총과 번영의 땅입니다.하나는 죽음의 삼각주,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라고 해서 미국의 오른쪽 플로리다, 버뮤다, 프에르토리코를 잇는400만 제곱km의 바다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마의 삼각주,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라고 합니다. 마의 삼각주에서는 배나 비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많은 사고가 버뮤다 삼각주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생명의 트라이앵글, 은혜의 트라이앵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굽의 고센땅에서 받았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2절에 그 비밀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우리는 은혜와 축복의 트라이앵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아야 합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영어 퍼펙트(perfect)라는 단어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바둑을 잘 두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아마 3단이라는데 한 9급을 두는 사람과 바둑을 두면 9급은 단 한집도 짓지 못한다고 합니다. 퍼펙트게임이라고 합니다.
믿음생활에서 완전해 지려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곧 로고스, 패토스, 에토스입니다. 이것은 이성과 감정, 의지를 포함한 전인적인 신앙을 말합니다. 바른 신앙의 지식, 로고스와, 주님에 대한 열심, 패토스와, 신앙 실천의 의지, 에토스가 균형있는 트라이앵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생활을 하고 은혜와 복을 받아 살려고 하면, 하나님과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알아야 지키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지 않으면 믿는 것이 헛것이 됩니다.
로마서 10:2에 보면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들이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으므로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헬라어로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 그 분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분의 음성에 마음을 열고 계시다면, 트라이앵글의 하나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상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2014년에 어떤 여자 전도사가 대한민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가 홍혜선입니다. 2014년 12월14일 오전 4시 30분 전쟁이 난다고 했습니다. 홍혜선 전도사라는 분이 유투브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쟁이 일어나니 해외로 피난을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걸 믿는 사람이 있을까? ... 싶은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홍혜선 전도사의 말을 믿고 태국, 미국, 필리핀 등 여러 나라로 피난을 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014년 12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국 취재진이 해외로 피난 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황당하게도 하나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믿음에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 마음대로 이상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것은 패토스, 감정의 문제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내 마음이 하나님을 기뻐하는가? 내가 하나님의 대한 열심히 있는가? 뜨거운 마음이 있는가? 사랑의 문제입니다.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있습니다. 두 창기가 아이를 낳았고 한 여자가 자다가 아이를 깔아 죽었죠. 아이를 바꿔치기하고...그래서 재판을 했습니다. 서로 산 아기가 내 아이다...... 솔로몬은 칼로 이 아이를 쪼개어 하나씩 나누어 주라했고, 아이 친어머니는 마음이 불이 붙는 것 같아서 ‘왕이시여 이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소서 그를 죽이지 마소서...’ 그러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이에 대한 사랑입니다.
불타는 마음, 뜨거운 마음, 열정을 패토스라 합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요, 주님에 대한 사랑은 주님의 몸인 교회에 대한 사랑입니다. 주님의 교회, 주님의 몸인 만민교회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은 마음, 뜨거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할 때, 그 마음이 있습니다. 누가 몸의 중심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를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다. 했습니다. 교회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이 교회의 중심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었던, 뜨거운 마음이 있었던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에 백성이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압지역을 통과 하려고 할 때, 모압왕은 복술가 발람을 데려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았습니다. 발람은 돌아가면서 교묘한 꾀를 써서 이스라엘이 함정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모압 신전에서 죄를 짓게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한 족장이 백주에 모압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불타는 마음으로 고스비와 남자를 한 창에 찔러 이스라엘에 악을 제거했고 비느하스의 열정이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다고 합니다.
나의 관심이 무엇인지 보면 내 사랑이 무엇인지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애를 씁니다. 어떤 청년이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만나면 온통 그 아가씨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하고 그 집 앞을 서성거리고 멀리서 그 아가씨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온갖 정성으로 선물도 하고... 이것을 열정, 패토스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교회가 사랑의 대상이요 열정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뜨겁게 사랑할 때, 트라이앵글의 하나가 완성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선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에토스의 문제입니다. 일찍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은 본성으로 선과 악을 분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선과 악을 알기는 하지만 선을 행할 능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을 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도리어 악을 행합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내게 악이 함께 있어서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로마서 7:19)
미가서 6:8에는 ‘사람아 선한 것이 무엇인지 네게 보이셨다. 하나님이 바라는 선은 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사는 것이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나하나 살자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돼지를 많이 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파리가 우글거리고 악취가 나서 사람들이 집에서 문도 못 열고 산다면...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되겠지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그 지침을 주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의 메시지는 너희는 선한 이웃, 선린이 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강도 만난 사람이 거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이 그냥 지나가고 레위 사람도 못 본 척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다가가서 그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에 데려가서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 사람이 선한 사람이요, 그가 한 일이 선한 일입니다. 이것이 선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선한 사마리아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안수현 의사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 같습니다.
그는 고대 의예과 91학번입니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예수님처럼 3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을 통해 33세에 죽은 젊은 의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를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안수현은 영락교회 출신으로 교회장을 치루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문상객 4천명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선가 몰려 온 4천여명의 사람들을 통해 33세 청년이 살아왔던 인생의 스토리가 알려졌습니다.
그는 인생을 예수님처럼 살았습니다. 그가 인턴, 레지던트로 일할 때, 아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고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어린아이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선물을 사 들고 부산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병원이 파업을 할 때, 왕따를 당하면서 환자의 침상을 지키던 의사였습니다.
안수현은 병원앞 구두딱이 할아버지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인사하고 손을 잡고 위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의 세탁하던 아주머니에게 하나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로고스와 패토스 에토스가 조화를 이루어야 축복의 트라이앵글이 됩니다. 로고스와 패토스가 있다 할찌라도 에토스가 부족하면 트라이앵글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