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문학 겨울호 수필 신인상 심사평
편영의론
자연 속에서 삶의 길을 열어가는 공존적 사유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편영의 씨의 <다시 안면도에 오다> 외 1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편영의 씨는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찾아서 안면도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어릴 때 열 한 식구가 흥부네처럼 누더기를 입고 흥부네 집처럼 가난하게 살았기에 그는 안면도가 징그럽도록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산이 고향인 아내가 안면도 바다를 보고 반해서 이곳에 별장을 짓고 말년을 보내자고 한 것이 안면도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퇴직 후 편영의 씨는 이곳에서 21년간 펜션을 운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편씨가 안면도에 정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소나무 숲 때문이다. 이 수필의 제재는 안면도와 소나무 숲이다.
인생이란 세월을 전제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것과 시간의 흐름은 당연히 연속되는 사건을 만든다. 사건들은 인생의 긴 행로를 따라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축적된다. 세월이 우리에게 나이만 무게를 보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중년을 넘어서고, 노년으로 접어들면 우리의 등 뒤에는 세월의 부피만큼 온갖 기억들도 무겁게 쌓여간다. 적송으로 된 숲을 소재로 하여 생명감이 넘치는 수필을 써내는 것이 편영의 씨가 해낼 책무다. 그러하기에 그는 소나무 숲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더 빠르게 질주하는 세월을 놓칠세라, 한 점 한 점 그림을 그리듯 소나무 숲에 관광객을 더 많이 오도록 하기 위해 그네를 설치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수필 속에 담아내고 자 한다.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가 빛나는 부분은, “바람이 부는 이유를 알지 못해도 바람은 나무 사이를 지나고, 나무는 '내'가 비상(飛翔)하고 싶을 땐 나무 끝에서부터 흔들려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는 수첩을 들고 메모를 한다. 이 정겨운 소나무 숲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도 싱싱하게 자라는 아름드리 적송들, 수평선을 향해 그림 같은 청청한 소나무! ‘나'는 저 믿음직한 소나무에 기대어 우리 고장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래 위의 흔적만이 관광객의 추억과 전설이 될 수 없으니, 우리들의 천국은 바로 이 소나무 숲이 아닐까, 생각하고 나는 관광객을 위해서 바닷가 소나무에 그네를 맸다.”라고 하는 대목이다.
이 수필의 쾌미는 가난했던 유년기 삶을 관통하면서 청소년기 암울한 추억을 실어 나르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삶과 유리된 수필은 삶을 해친다.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의 추구는 삶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 인간행위의 모든 산물은 삶과 격리되어 있지 않다는 명제를 전해주기 위해 이 수필은 일제의 수탈로 고통받았던 시대의 밑그림을 잘 그려 놓았다. 그래서 소나무 숲의 그네가 주는 낭만적 풍경과 함께 아릿한 흔적도 흘러넘친다. 톨스토이는 남의 기쁨을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슬퍼하며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것을 예술이라고 하였다. ‘나는 수첩을 들고 메모를 한다. 이 정겨운 소나무 숲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우리는 자연의 삶 속에서 삶의 길을 열어가는 편씨의 공존적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안면도에 오다
편영의
안면도에는 백 년 이상 된 적송(赤松)이 수만 그루가 있는 곳이다. 이 섬에서 우리 집은 밭은 없고 논 네 마지기(800평)를 가지고 열 한 식구가 흥부네처럼 누더기를 입고 흥부네 집처럼 가난하게 살아왔다. 아버지는 항상 소나무 숲에 들어가 복령(소나무 뿌리에 둥글게 맺히는 기생 덩어리-한약재)을 캐서 시장 한약방에 팔아서 근근이 가세를 이끌어 오셨다.
안면도의 적송은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일제 때 왜놈이 수만 그루를 베어 배로 실어 갔고, 송진을 빼가느라고 상처를 낸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서 역사의 산 근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빽빽하게 우거진 적송의 숲은 하늘이 보이질 않는다. 바닷가 언덕 모래 위에서도 아름드리 적송들이 청청하게 자라는 것은 곧 우리들의 기상이 아니겠는가!
내가 퇴직하고 아버지의 흔적이 숨을 쉬고, 쑥을 뜯던 어머니의 무명 치마가 그리워서 고향으로 돌아와 노후대책으로 펜션을 짓고 생활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찾아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처음엔 안면도가 징그럽도록 싫었다. 너무 고생해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곳이다. 그런데 부산이 고향인 아내가 안면도 바다를 보고 반해서 이곳에 별장을 짓고 말년을 보내자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래서 무려 3년이나 주말마다 땅을 물색하러 안면도를 왕래하면서 구한 곳이 소나무가 많고 휴양림이 근거리에 있는 이곳이다. 퇴직 후 이곳서 21년간 펜션을 운영하면서 나이는 더 늘어가지만, 건강은 오히려 직장에 있을 때보다 좋아졌다. 그만큼 이 마을은 소나무에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피톤치드'의 함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12개의 해수욕장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해수욕장이 바로 앞에 있고, 그리고 안면도에 오는 관광객은 우리 마을 '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을 모두 다녀간다. 휴양림에 입장하면 수목원까지 함께 볼 수 있고,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나무들이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집은 휴양림 정문에서 불과 200m의 거리에 있다.
바람이 부는 이유를 알지 못해도 바람은 나무 사이를 지나고, 나무는 '내'가 비상(飛翔)하고 싶을 땐 나무 끝에서부터 흔들려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는 수첩을 들고 메모를 한다. 이 정겨운 소나무 숲에서 무엇인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바닷가 모래 위에서도 싱싱하게 자라는 아름드리 적송들, 수평선을 향해 그림 같은 청청한 소나무! ‘나'는 저 믿음직한 소나무에 기대어 우리 고장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래 위의 흔적만이 관광객의 추억과 전설이 될 수 없으니, 우리들의 천국은 바로 이 소나무 숲이 아닐까, 생각하고 나는 관광객을 위해서 바닷가 소나무에 그네를 맸다.
그랬더니 꼬마들이 그네타기를 즐겼다.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리게 된 것이다. 나 역시 그네를 타고나면 하늘을 날아다니다 온 듯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고 삶의 의욕도 배가되었다. 그래서 그네를 2개를 더 만들었다. 즐거운 소리가 울리는 그네 덕분에 마을에서도 좋아했다. 휴양림을 다녀 온 사람들이나 수목원으로 갈 사람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생겼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잘만 이용하면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재삼 깨달은 기회가 되었다. 건강과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행복이 이 작은 변화에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내가 삶을 사랑하고 꿈을 갖게 된 것이 적송 숲 덕이 되었다.
사람이 살면서 보람을 찾는다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관심만 가지면 사소한 일에서 자신도 보람을 찾을 수 있고, 남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본다. 조금만 머리를 쓰고 약간의 수공만 들이면 여러 사람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다. 내가 안면도로 돌아온 보람도 아마 것이 아니겠는가, 거듭 느끼면서 펜션을 운영하는 날까지는 꾸준히 숲지기가 되어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