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버리고 싶었지만, 버릴 게 없었다.
내가 갔는데, 실상 바다에 간 것은,
갈 데가 없는 바다였다
밀물져 오는 바다였지만,
밀리는 건 내 가슴 저멀리에 끊임없이 밀리는 물결이었다
내가 갔는데, 실상 바다에 간 것은,
망상이요,
하얗게 부서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물결이었다,
갈 데가 없는 시퍼런 바다였다 ,
끊임없이 밀리는 물결이었다
끊임없이 밀물이 바다에 밀려오고 있었지만
밀리는 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밀려오고 밀려갈 뿐이었다
바람결 속에서 알 길이 없었으나
잡풀들이 바람결에 엉키며 흔들렸으나,
어디서부터 세월이 엉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바람에 기대었으나, 바람에 떠 가는
밀려오는 알 길 없는 시간
저기에서 들려오는 것인가, 먼 바다에서 오는 소리인가, 멀리 있는 바다소리는 어디에서부터 흘러들어왔을까, 언제부터 내게 너머 올 수 있었을까,
바닷물에서인듯 내게서인듯 귀 밑에, 귀 위에
자취 없는 것들은 자취없음을 어떻게 증명(證明)하는가.
시간은 시간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버릴 게 없음은 버릴 게 없음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묻고 있다, 내가 내게.
버리고 싶었지만, 버릴 게 없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없는데,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는데 흔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도 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묻고 있는지, 나는 내게, 묻는다.
나는 내게 묻는다.
부서지는 하얀 포말에게 , 이루어지지 않은 하얀 포말에게 왜 묻고 있는지,
내가 갔는데, 실상 바다에 간 것은,
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
2
길은 언제부터 길이었는가
언제부터 말은 말이 아니었는가?
길은 언제부터 지나가는 길이었는가
내리쬐는 햇빛을 지나서, 방향이 보이지 않아도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는가
남기는 것 없는 시간 위에서 지나가는 길이 되었는가
시퍼런 바다에서 잃을 것 없는 시간이 되었는가
길은 언제 지나가지 못한 길이 되었는가?
언제부터 나무숲에 떠 흘러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시작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