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행복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더욱 풍성해집니다.
소통의 가장 기본은
자신과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역지사지의 정신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전래동화 “빰 때리는 사또”라는 것이 있는데
재미와 의미를 더해 옮겨봅니다.
옛날 옛날에 고약한 버릇을 가진 사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고약한 버릇이기에 고약하다고 하는가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뺨을 때리는 버릇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또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있겠습니까? 사또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늘 뺨만 맞으니 누군들 함께 일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모두 사표를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재주 좋은 사또라고 해도 혼자서 무슨 사또 노릇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직원채용을 위해서 방을 붙였습니다. 방의 내용은 즉선
“누구든 시험에 합격만 하면 당일 채용하겠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든 합격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보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시험문제가 또 고약합니다.
무슨 문제고 하면, 뺨맞는 것입니다. 사또는 한 사람씩 면접을 봅니다. 이름을 묻는 가 싶더니만 다짜고짜 뺨을 때립니다. “아이구 나 죽네” 고함을 지르며 아파합니다.
그러면 사또는 아파 죽을 환자이니 불합격 그럽니다.
그 다음 사람이 또 뺨을 맞고 말합니다. “얼마나 아픈지 앞이 다 캄캄합니다.”
이런 대낮에 캄캄하다고 하니 소경이 분명할 터 불합격,
“아이고 아파서 눈알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눈알이 빠지면 장애자이니 불합격 이렇게 해서 하루 종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뺨만 때리니
아무도 합격을 못하고 다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 날마다 뺨맞으면서 누가 일을 할까...
흥 별놈의 사또 다보겠네.., 다 기가 차 했습니다.
사또의 고약한 버릇을 알게된 사람들은 아무도 시험보려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삼돌이라는 총각이 사또 앞에 시험을 보겠다고 왔습니다.
“사또! 시험을 보려왔습니다.”
“아니 너는 꼬마 녀석이 아니냐! 어린 꼬마가 시험을 보겠다고...”
“방에 쓰시기를 누구든 시험만 합격하면 채용하시겠다고 했으니...저도 시험을 볼 자격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어디 문제나 내 보시지요”
사또는 올치! 이놈! 혼찌금을 단단히 내서 돌려보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삼돌이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이놈아, 뺨이 얼마나 아프냐?”
그런데 삼돌이는 아무 말하지 않고, 한발 사또 앞으로 내밀고는 사또 뺨을 힘차게 후려치면서 “이 만큼 아픕니다” 고함을 쳤습니다.
늘 남의 뺨 때릴 줄만 알았지, 이렇게 남에게 뺨맞아 본 것은 처음이라 사또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날 지경입니다. 이런 고약한 놈이 있나? 어떻게 감히 사또 뺨을 쳐...
그래도 물은 답에 대한 답변이니 어쩔 수는 없었습니다.
약이 오를 때로 오른 사또는 다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삼돌이 뺨을 치면서 “이놈아 얼마나 아프냐니깐?”
그러자 삼돌이는 연거푸 사또 뺨을 때리면서 “이 만큼 아프다니까요? 아직도 못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알아들을 때 까지 대답해 드리지요”하면서
철퍼덕 철퍼득 사또 뺨을 때렸습니다.
사또는 놀라서 “아이구 사또 죽겠네, 합격 합격” 그랬다지요.
우리는 늘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죄의 고약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지 못하고,
https://youtu.be/a8i6BBxgy1k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내 처지와 입장처럼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황금율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저 사람의 입장에 내가 처해 있다면 어떤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말로 용기를 줄까? 어떤 말이 가장 큰 상처가 될수 있을까?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마음을 쓰며, 말을 하며, 행동해 주님의 향기 되는 삶을 사세요.
알고 나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요.
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녀입니다.
소통의 열쇠는 사랑과 존경입니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마음에 품으면
행복이 절로 옵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
내 것만 고집하는 아집, 고집, 집착이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낳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해보니
이렇게 안 좋은 말을
이렇게 안 좋은 행동을
나는 남에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들은 것
본 것이 교육되어
자신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황금률이라고 알려진
인간관계의 가장 큰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데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내가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신을 잘 모릅니다.
자신은 언제나 정당하고
바르게 한다고 생각하며
착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나는 바르게 정당하게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내게 이렇게 불공평하게 대하지?
생각하기 쉬우나
내가 단지 착각속에 살아갈 뿐입니다.
물런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주는 데로 받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그 말과 태도가 언제나 온유합니다.
행복한 말과 감사의 말이 입에 가득합니다.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그 말과 태도가 언제나 강합니다.
직선적이며 남을 경시하며 무시합니다.
마음에 들 때는 부드럽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내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우리의 언어를 부드러운 음악처럼
말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나
우리가 그런 말과 행동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적어도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마음이 어떨까 정도는 생각해 보고 말해야 합니다.
간단하고 어렵지 않으나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하는 비결입니다.
모두가 다 내 생각 같지는 않습니다.
내가 내 생각을 옳게 생각하듯,
다른 사람도 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옳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듯
상대도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황금율보다 더 좋은 것은
백금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받고 싶은 데로 남을 대접하는 것은
황금율이며,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예수님에게 대하듯 대하는 것을
백금율이라고 합니다.
내가 아무렇게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막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계급이 아닙니다.
내가 많이 가졌다는 것이
결코 남을 무시해도 좋다는 특허가 아닙니다.
내가 좋은 경력을 가졌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많이 배웠다는 것이
잘난 증거가 아닙니다.
그럴수록 더 섬기며
그럴수록 더 감사하며
그럴수록 더 봉사하는 것이
마땅히 가져야할 가진 자의 태도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엄숙히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 25:45)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고,
작은 자를 향해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는
거기까지가 신앙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결국 내가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결국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내가 어떻게 사람과 주님을 대했는가? 관계에 대한 것들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4-6)
https://youtu.be/FREnIyctlsA
https://youtu.be/dpJaimvC4ZQ
https://me2.do/55r0NAm1
https://youtu.be/r6tHc9anJZs
https://youtu.be/5-xjEEkxbiI?list=PLo_mlTnsP-Oujv-SeWL8WOiiBKbxz0Yxf
https://youtu.be/SPKsArSqt0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