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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 킹 제임스 성경과 기존 성경의 비교 연구
*본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은 성경 연구에 있어서 원본의 뜻이 가장 잘 전수된 킹 제임스 성경 을 참고하고 이용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성경이 비록 번역상의 문제에 있어서 오류가 생길 수 있고, 몇 부분들에 있어서 원래의 성경 구절의 뜻과 달라지긴 했지만, 그 성경들을 사단의 것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 편집실 -
제5부에서는 한국어 킹 제임스 성경과 종전의 개역 한글판 성경의 같지 않은 성경 몇 구절, 소위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변조되었다고 제기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함께 비교하여 연구해 보기로 한다. 이 성경 구절들은 교리에 대한 잘못된 신학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번역하면 완전히 다른 뜻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성경이 원래 가르치는 교리에 큰 차이를 낳게 되며, 올바른 구원의 도리를 깨우치는데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그러므로 원본이 말하는 올바른 구절의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히브리서 2장 16절 비교 연구
1.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서로 다른 가르침
히브리서 2장 1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경 구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구절의 뜻이 번역상 잘못되어 성경 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진리가 왜곡되게 되었다. 비교 연구하여 보자.
¶·¶ 개역 한글 성경: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 킹 제임스 한글 성경: 이는 주께서 진실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음이라.
¶·¶ 킹 제임스 영어 성경: For verily he took not on him the nature of angels; but he took on him the seed of Abraham.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실 때 어떤 본성을 입으셨는가? 킹 제임스 성경 히브리서 2장 16절은 이 주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의 본성을 입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과 같은 본성, 즉 아브라함과 같은 본성을 취하셨다고 말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신성을 가지셨다. 그러나 그분의 인성에 대하여 연구할 때, 예수께서 입으셨던 인성은 우리와 다른 인성이 아닌, 똑같은 인성, 아브라함의 인성을 입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교리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다. 왜냐하면, 이 주제를 어떻게 알고 믿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 생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렵고 혼돈되는 교리로 인식되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알아야 할 중대한 주제인데, 그 이유는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구원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한 우리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 곧 천사 같은 본성을 취하셨다 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께서 죄를 승리하시고 우리의 모본되는 삶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거절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죄를 승리하실 수 있어도 우리는 죄를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이 범하는 죄에 대하여 분명한 핑계거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즉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 는 성화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일치하는 생애, 곧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죄에 대한 어떠한 핑계도 있을 수 없다.
2. 우리와 같은 본성을 취하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을 입으실 때, 우리의 죄된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그렇지 않으시다면 주께서는 당신의 형제들과 같이 되신 것이 아니요, 우리와 한결같이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지 않으신 분이라면 또한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것처럼 승리하시지 않으신 분이라면 그분은 인간에게 필요한 완전하고 온전한 구세주이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본성이 없이 어머니를 통하여 무염시태(죄의 본성이 없는 상태)로 나셨기 때문에 죄로 기울어지는 아무런 경향을 타고 태어나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주님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제거하는 일이요, 우리가 꼭 필요한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주님을 없애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면에 있어서는, 모든 아담의 자손들과 똑같이 죄의 본성을 타고서 태어나셨다. (죄의 본성이란 궁극적으로 연약성을 말하기 때문에 죄의 본성 자체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기 바람-필자 주). 그러나 그의 신성의 면에서는 그분께서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시고 출생하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인간을 유리한 입장에 놓으시기 위하여 행하신 것이요,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성령으로 다시 거듭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주님께서 자신의 죄된 육체 가운데서 승리하신 것과 같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 같이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계 3:21). 이러한 거듭남이 없이는 유혹에 대한 승리가 있을 수 없고 죄로부터 구원이 없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죄된 본성 을 타고 나셨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한다. 사실 죄된 본성 이란 단어가 듣기에는 좀 거북스럽고 우리 주님과는 어울릴 수 없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실제로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유전법칙을 통하여 타고나는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죄를 지어 본 일이 없으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주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거듭나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본이 되시는 것이지 거듭난 경험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표준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원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아브라함의 본성을 입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고 신성을 가지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세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본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수 있다.
2). 로마서 8장 1절 비교 연구
¶·¶ 개역 한글 성경: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킹 제임스 한글 성경: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 킹 제임스 영어 성경: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원문의 뜻이 그대로 담긴 킹 제임스 성경과 다르게 번역된 성경 구절의 또 다른 예는 로마서 8장 1절이다. 이 성경절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구원의 교리 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구절인데, 번역의 과정에서 그 전체적인 의미가 변조되고 빠져 버렸다. 이 성경절은 우리의 구원이 칭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함께 연구하여 보자.
보통 한글 성경은 로마서 8장 1절을,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번역하므로, 단순히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만 하면, 곧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만 하면, 정죄함이 없고 구원을 얻게된다고 은연 중에 사람들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경절을 이용하며 말하기를,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정죄가 없고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한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이 구절의 뜻은 그것과는 다르다.
킹 제임스 성경의 원래의 뜻을 연구해 보면 이렇다. 즉, 그 원어를 그대로 직역해 보면 이런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여기에 나오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자는 누구인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예수 안에 있다고, 예수를 그냥 믿는다고 말만 하는 자들이 아니다. 원어를 보면,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는 사람들 (영어;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만이 정죄함을 받지 않고, 그 다음 8장2절에 나오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는 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뜻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죄함을 받지 않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함을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부인하고 매 순간 성령을 따라 행하며 사는 사람,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생애가 진행형으로 계속 이어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킹 제임스 성경이 아닌 보통 성경에는 완전하지 않은 번역과 후반부 구절의 내용의 탈락으로 인해 이 성경구절이 뜻하는 중요한 교리가 온전하지 않게 되어버렸고, 그렇게 변조된 채로 그 구절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A.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믿음 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며 예수를 믿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고, 입으로 주를 시인했기 때문에 벌써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을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행함은 율법주의이다. 믿음만이 구원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이러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명될 수 있는 진리인가?
믿음에 대한 오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한 믿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라는 가르침 속에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생활 속에서 편히 안주하게 만드는 위험이 포함되어 있다.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동의하기만 하면 자신에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B.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
그리스도인의 신앙 속에는 믿음과 행함이 반드시 균형지게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 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는 것은 많은 것을 요구하며 포함한다. 예수 안에 있다는 뜻에 대해 잘 설명된 성경절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15장 4,5절에 하신 말씀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육신의 죄된 자아가 완전히 죽고 새롭게 거듭나며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혀져서 온전히 예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은 마치 사도 바울이 간증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고 말할 수 있게 되며, 그 사람의 생애와 성품에는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또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실 하늘 아버지의 뜻(성경 말씀)과 그것에 대한 순종(행함)에 대한 설명 없이, 믿으라, 믿으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 라고 외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그저 반쪽 믿음일 뿐이다.
C. 성화; 성령을 따라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와 용서를 믿으며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다 이루어졌으니 믿기만 하면 된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을 반쪽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은 칭의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후, 계속 성령을 따라 걷고 행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회개할 때, 주님은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고 율법을 범함으로 받게된 형벌을 되돌리신다. 그리하여 죄인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서게 된다. 이것을 칭의 -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것 - 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그 후에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 남아 있는데, 그 일은 영혼이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어야 하는 일이며, 그것이 로마서 8장 1절의 원어가 말하는, 예수 안에 매 순간 거하여 있고, 또 성령을 따라 매일 매 순간 행하며 사는 것이다.
회개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고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하는 품성과 생애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거룩함)이다. 성경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때에 성화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칭의는 변화를 요구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 완전한 회개의 경험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여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다는 증거가 그 생애에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성화를 쉽게 풀어 말하자면 예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화된 사람만이 하늘에서 하나님과 조화되어 살 수 있기 때분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며, 과거의 어두움 가운데서 살던 생활이 너무 싫기 때문에 다시는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다. 그리고 새롭게 주님과 시작한 생활이 너무 좋고, 또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므로 다시는 죄된 생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다. 그런 사람은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되며 혹시 연약하여 쓰러졌을지라도 다시 하나님과 화목한 생애를 이어가게 된다.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서 살 사람은 거룩하게 성화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절에 나타난 예수 안에 있는 경험, 매일 성령을 따라 걷고 행하는 사람만이 정죄함이 없는 구원에 이르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속에서 기쁘게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 구절을 올바르게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3). 요한 계시록 22장 14절 비교 연구
¶·¶ 개역 한글 성경 :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킹 제임스 한글 성경 :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 킹 제임스 영어 성경 : 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
보통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의 확연히 다르게 번역된 부분 중에 하나인 이 성경 구절은 성경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교리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만들고 있으므로 이 원어의 뜻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계시록 22장은 새 하늘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는 장이다. 여기에 보면, 마지막 이 지구의 선악의 대쟁투가 끝나고 새 하늘에 들어갈 사람들의 자격을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킹 제임스 성경을 보면, 계명을 행하는 자들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변조된 성경에는 이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 이란 말 대신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원래의 구절의 뜻과 변조된 구절의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뜻의 차이는 매우 크고, 원래의 뜻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새 하늘에 들어갈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성경의 원문은 분명히 우리에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의 자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 이라고. 계명을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마지막 장, 제일 중요한 마지막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언급해 주신 것이다.
A.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했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했다 라고... 정말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했을까? 그렇다면 왜 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기록인데도 불구하고 계명을 행하는 , 계명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만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계명을 폐하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계명을 그렇게 쉽게 폐해버리실 수 있으셨다면 그렇게 폐해버리시고 그냥 슬쩍 눈감아서 죄인을 구원하시지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율법을 범한 인류들의 죄를 대신하여 그 고통을 당하시며 죄 값을 치루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 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이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죄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은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시고 높이신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쉽게 계명을 폐하여 버리실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셔야만 했겠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완전케 세우신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고 하셨다. 이 말씀은 믿음과 행함에 대한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지만, 그분의 말씀을 순종(행함)하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 오해할 수 없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지적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2,13).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구원을) 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B. 계명과 구원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구원이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계명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율법이 없이는 구원을 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율법의 정죄 때문에 구원의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성경 어떤 곳에서는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시고 우리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Æ 율법의 목적
바울의 신학의 정수인 갈라디아서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음은 바울의 일문일답이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갈3:19 상단).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우리가 율법을 범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율법을 주실 필요가 없었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자.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3:20, 21). 여기서 바울은 참 흥미로운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죽이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3:24).
Æ 율법은 몽학선생
몽학선생은 학생을 도와주는 가정 교사이다. 몽학선생의 할 일은 학생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가기까지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요 목적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우침을 줄 뿐이지 우리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만일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께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율법의 직분은 죽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심히 죄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롬7:13).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서 방황하다가 그 반대의 극단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마음에 이기심과 욕심을 가득 가진 채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자,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정반대의 극단적 가르침을 붙잡게 되었는데, 그것이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는 가르침이다. 그들은 무조건 예수님만 믿자는 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율법주의자들의 종말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니까 포기하고 그와 반대의 극단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C. 구원하는 믿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우리에게는 순종할 힘이 없는데 어떻게 행함이 따르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까? 그러면 여기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믿음에 대해서 알아 보자. 믿음, 곧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역사를 믿는다는 뜻이다.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이런 믿음에 관하여 말씀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하나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성경절에 나오는 능력 이라는 단어는 다이너마이트 라는 뜻인데, 헬라어의 두나미스 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이 능력 이라는 단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묘사하기 위하여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식어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복음을 소개하며 말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 이라고 했다. 만약에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을 믿고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놀라운 능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즉, 율법을 행할 능력을 충만히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로만 입으로만 믿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과 행실까지 믿음과 완전히 일치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기독계 안에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복음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도 자주 넘어지게 되며,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진리들을 반쪽만 언급하며 그냥 믿기만 하라 고 외치고 있다. 믿음에는 그에 맞는 행함, 곧 계명을 지키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D.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순종의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생산해 내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믿음이 없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성령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고 어딘가 잘못된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을 때 우리 속에 성령(그리스도의 영)이 계신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로마서 8장 9절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신다면, 곧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주신다면,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계명이 쓰여지게 된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거듭나므로 악한 것을 싫어하게 되고,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의 사본인 하나님이 계명을 지키지 말라고 해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받음으로 그 생애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저절로 지켜지는 생활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매일 우리를 강권하고 계신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이 마음에 쓰여진, 새겨진 사람, 그리하여 생애에 자연히 하나님의 성품인 계명을 지키는 생애가 이루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며, 그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4). 베드로 전서 3장 19절 비교 연구
¶·¶ 개역 한글 성경 :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 킹 제임스 한글 성경 :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 킹 제임스 영어 성경 : By which also he went and preached unto the spirits in prison
벧전 3:18~20: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한글 성경에 번역된 이 말씀을 언뜻 잘못 읽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직후에 영으로 연옥이나 지옥 어디에 내려가셔서 노아 당시에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경절을 그렇게 믿고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연옥 같은 곳이 정말 있어서 죽은 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가르침은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라는 말씀을 비롯하여 죽는 순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끝난다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와 있다(마 16:27 ; 롬 2:6 ; 겔 18:24 ; 계 22:12).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사상은 죽음 이후에는 일체의 의식이 없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크게 상반된다. 만약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하필이면 노아 홍수 당시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져야 하는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씀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분석해 보자;
전반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 말씀의 뜻을 자칫 오해하여,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어 살아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지니셨던 연약한 인간의 속성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심으로써 원래에 하나님으로서 지니셨던 영적인 속성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경에는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잘못 번역된 말이, 영어 성경에는 made alive by the Spirit (성령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되어 있다. 즉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으셨고, 성령으로 그들을 가르치셨다는 뜻이다.
이 아들로 말하자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롬 1:3~4.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부활하셨던 그리스도께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분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일어나는데,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0,11.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비록 육체는 죽을지라도 성도들에게는 부활이 보장되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다. 바로 이것이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나 영으로는 살림을 받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후반부 :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이며, 옥은 어디를 말하는가? 여기에 나오는 옥은 감시를 통하여 행동을 속박받는 뜻의 감옥(phulake)을 뜻한다. 또한 영들의 헬라어 원어는 프뉴마 로서 생명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옥에 있는 영 들이란 옥에 갇힌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옥 은 어디를 말하는가? 그것은 지옥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영적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뜻한다. 이사야 선지자도 옥 을 어두운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42:7. 또한 시편에서는 옥을 영적인 어두움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내 영혼을 옥에서 끌어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 시 142:7.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옥에 갇힌 사람들, 즉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듯이(마 4:15,16),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죄에 속박되어 영적인 암흑에 갇힌 옥에 있는 영들 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이것이 이 성경 구절의 올바른 뜻이다.
옥에 있는 영들 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경절에서도 분명하게 밝혀 진다. 그들(옥에 있는 영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 이다(벧전 3:20). 여기에 옥에 있는 영들 의 모습이 나오는데, 성경은 그들의 정체를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노아 홍수 당시에 멸망을 당해서 지옥에 간 혼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노아 홍수 당시에도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불순종하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
5). 베드로 후서 2:9 에 대한 번역의 문제점
¶·¶ 개역 한글 성경: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 킹 제임스 한글 성경: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구해 내시고 불의한 자들을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
¶·¶ 킹 제임스 영어 성경: The Lord knoweth how to deliver the godly out of temptations, and to reserve the unjust unto the day of judgment to be punished:
번역된 본문의 차이를 읽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잘못된 한글 성경은 악인들이 마치 심판 날이 오기까지 어떤 형벌을 받는 장소에 가서 계속 불타고 있으며, 미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번역은 로마교회의 오류의 잔재로서 연옥과 잘못된 지옥설에 대한 오해 때문에 기인된 것이다. 모든 악인들도 죽어서, 나중 예수께서 오셔서 마지막 집행 심판을 행하실 때까지 무덤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후에 형벌에 처하게 될 그 심판 날까지 무덤 속에 가두어져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지금 현재 형벌 속에서 고통 하면서 심판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È 마치면서
지금까지 연구한것들 외에도 원문과 다르게 번역되어 뜻이 바뀐 여러가지 성경 구절들이 더 있으며, 아주 빼 버려 없음 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들도 많다. 지면상 그런 것들을 다 밝힐 수는 없고, 또 성경에서 어떻게 이런 중요한 성경의 교리들이 바뀌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다 따질 수는 없지만, 성경의 원문과 성경에 쓰여진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른 성경을 보존해 주시고, 그 진리를 밝히 보여 주시는 것을 감사하며, 그 진리대로 성화되어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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