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 / 고미선
푸르스름한 먹돌이다. 빈 구멍 없이 윤기가 난다.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모습은 은사님의 얼굴을 닮았다. 어디에 두어도 잘 어울릴 듯하다. 먹돌을 바라보니 차르륵 거리는 탑동의 파도 소리가 들린다. 크고 작은 먹돌 틈에서 닳고 닳아 모남이 없다.
은사님은 특별히 나를 아껴주셨다. 은사님은 제주시 탑동 바다 수면이 매립될 즈음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먹돌 하나씩 모았다. 이사 간다며 평소 모아둔 먹돌을 나에게 주려고 오라 하였다. 내가 아파트로 이사 간 선물로 무엇을 전할까 생각하다가 먹돌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스무 개 정도면 베란다에 실내정원을 꾸미기에 좋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큰 선물을 주는 셈이니 가져다 놓아두면 보물이 될 것이라 하였다.
먹돌은 무거워서 보조 가방 하나에 서너 개밖에 넣을 수 없었다. 은사님과 나는 양손에 먹돌 가방을 들고 자동차 뒷좌석에 내려놓았다. 사람 무게보다 더 나가는 듯하였다. 아파트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로 여러 번 이동하였다. 귀한 선물 옮기느라 허리가 아프다.
앞 베란다 정원은 어떻게 꾸며 볼까. 두꺼운 비닐을 두 겹으로 겹쳐놓고 에스 곡선으로 꾸미려고 책도 찾아보았다. 금붕어 몇 마리도 사다 놓고 수초도 넣으면 좋겠다. 높이가 다른 나무토막도 사야겠고 흙은 몇 포대나 옮겨올까 구상하였다. 심어야 할 꽃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꽃을 높낮이 맞게 심으면 먹돌로 경계 삼고 나무토막으로 장식할 생각이다. 작은 화분도 몇 개 사다 놓고 거실에서 바라보는 층층이 진 조그만 정원을 꾸미려는 꿈에 부풀었다.
그중에서 먹돌 두 개는 남기겠다. 장아찌를 만들어 먹돌로 눌러 두면 골고루 간이 배 좋겠다는 바람이다. 항아리는 입구가 좁기에 작고 무거운 누름돌은 탑동의 먹돌 만한 것이 없다. 장아찌도 삭힌 발효의 맛이기에 여름철 입맛 없을 때 군침 도는 밑반찬이다.
한 달이 지났다. 돌을 옮기느라 아픈 허리도 좀 쉬어야 했고 주말에는 손을 보려고 작정하던 중이었다. 거실 사이 문을 열어 보니 무언가 허전하였다. 아, 어디로 갔지. 분명히 내가 가져왔는데 어디로 갔을까.
“여기 먹돌 보았나요?”
“불필요한 돌멩이가 많아서 현관 입구 화단에 버렸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남편 행동이 가관이다. 얼마 전 집으로 올라 올 때 푸르스름하고 예쁘장한 돌이 몇 개만 화단에 있어서 어디서 본 듯하다고만 여겼다. 다음날 내려가 보았더니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 바로 그 먹돌이었다. 아파트 사람들은 귀한 모양의 묵직한 누름돌은 안성맞춤이어서 한두 개씩 나누어 삽시에 가져가 버렸다. 작은 정원을 예쁘게 만들려니 돈이 조금 들 것 같아서 미루고 있던 터였는데 갑자기 꿈은 사라졌다. 옮겨오던 아픔만이 가슴을 억누른다.
내가 남편에게 누름돌 역할은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았다. 남편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세파에 닳고 닳아 흔들림 없는 강인한 존재였다. 두 어머니에 이복동생까지 챙기려니 허허 털털하게 지내며 먼저 물러서려 하였으니 얼마나 눌렸을까. 모든 일을 좋게만 생각하고 동생들이 가족 일에 변동을 부려도 억지로 누르며 살아왔다.
남편은 내가 튕겨 나가려는 분별없는 혼돈 속에서도 잠재우고 눌러야 했다. 사업을 하려는 나의 의지나 교사가 되려고 몰래 합격증이 도착한 일도 식구들의 안녕을 위하여 나를 눌러야 했다. 온 힘을 다하여 단단한 누름돌 역할만 하였다. 남편은 중심을 너무 잡아서 요지부동이다. 좋은 삶이란 균형과 조화로움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 누름돌은 이미 내 가슴 속에 들어앉았다.
나는 시할머니가 삼 년 동안 치매를 앓을 때도 시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눌러야 했다. 배회성 치매여서 대문을 잠그고 지낸 시절도 있었다. 할머니는 억지로 대문을 열 때는 힘도 좋았다. 어쩌다 대문 밖을 나서면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이 반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먼 동네까지 올라가서 파출소에 신고한 일까지 있었다. 가족은 여름철에 불귀객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였다. 그해 여름을 힘겹게 지냈다. 겨울 초에 힘이 없는 듯 식사를 열흘간 못하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늑막암으로 나타났다. 옆구리만 아프다더니 암이었다. 시한부 인생 육 개월이라더니 이 년을 더 모셨다. 그사이 좋은 음식과 뒷바라지를 위해 나의 가슴은 묵직한 누름돌이 두어 개 얹어져야 했다.
시어머니는 팔십이 되도록 밭에만 다니셨다. 며느리로서 불효인 것 같아 밭농사를 쉬게 하였다. 집 앞 경로당에 다니는 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 오륙 년쯤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더니 알츠하이머로 나타났다. 금방 돌아가실 것만 같았기에 우리 집으로 모셔와 온 정성을 쏟다 보니 십 년이 지났다. 내 가슴 속에 몇 개의 돌덩이가 더 얹어졌다.
이제 어른들은 가고 없다. 세월이 흐르면 모두가 변한다. 썰물이 되면 서부두 방파제에서 탑동에 이르는 무한히 펼쳐진 동글동글한 돌이 생각난다. 밑바닥이 납작한 먹돌 틈 사이의 보말도 잡을 수 없다. 석양이 돌에 비치면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사진가들이 주로 찾았던 석양의 탑동 바닷가는 사라졌다.
건설회사는 탑동을 매립하여 그 자리에 라마다 호텔이 들어서게 했다. 방파제에 커다란 시멘트 덩어리가 겹겹이 쌓여도 누름돌을 대신할 수 없다. 자연을 거스르면 피해를 준다. 월파 피해가 종종 나타났다. 탑동은 태풍이 올 때면 물바다가 된다. 호텔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기기도 한다. 매립 후 수면이 높아진 영향이다.
탑동 명물이었던 누름돌은 사라졌다. 내 가슴 속의 누름돌은 언제쯤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