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배의 <검단동 가을> 감상 / 이동훈
검단동 가을 / 박윤배
붉나무 둥치를 모서리 많은 바람이 툭툭 차서
애꿎게 쓸려 다니는 마른 잎의 행간
눈 기다리는 마음은 비좁다
흰 길 이리저리 남기는 전투기들
버스 기다리는 변방 하늘을 날아도
아무 걱정 없다는 듯, 금 간 아파트 담장 아래 포장마차
바퀴는 고정되어 있다
계절에 안 어울리게 펄럭이는 꽃무늬 치마
둥근 허리 접고 앉은 젊은 여자
간장에 어묵 오래오래 담그는데
함부로 바퀴 굴리지 않는 포장마차 주인 그녀도
얼마 후 표정은 닮아있다
몇 해 전인가 장맛비로 불어난 강물에
아이를 고무공처럼 쓸려 보냈다는 그 여자
한 방향으로 쓸어 넘긴 머리는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인 듯 흐느적거렸다
슬픔에 흰 머리핀 꽂아주고 날아가는 전투기에
퉁퉁 불은 어묵이 이유 없이 슬퍼
금호강 간장 종지 속 가을은
팔 할의 썰린 청양고추가 채우고 있다.
- 『알약』, 시와표현, 2015.
* 대구 북구 검단동을 둘러서 금호강이 흐른다. 동네 한가운데를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K2 공군기지와 대구공항이 바로 인근이기도 하다. 고속도로 북편 검단 들에 새로운 개발 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거 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낙후된, 대구 안에서도 “변방” 인 셈이다.
무릇 중심보다 변방에 가까운 게 서민의 삶이다. 대처로 쭉쭉 나가지 못하고 이 지역(검단동)에 폭폭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이 시의 밑그림이다. 여기에 포장마차 손님과 주인의 표정이 덧칠로 닮아가고 마지막으로 간장 종지에 포인트를 주며 그림은 완성된다.
짜게 슬프게 맵게 살아온 여자. 어묵 하나 받아두고 싱거운 것이 익숙지 않아 간장에 오래오래 담아두되, 정작 자신은 퉁퉁 불 때까지 먹지도 못하는 여자. 또 그런 여자를 헤아려 긴이야기, 긴 침묵 다 받아주는 또 한 명의 여자. 이 두 명의 여자를 베껴 쓰는 시인까지 한꺼번에 그림에 들어 있으니 가을 하늘이 제법 묵직하다. 그 가을 하늘을 담은 간장 종지는 8할의 청양고추로 인해 더욱 맵다.
하지만 매운 맛 일색은 아니다. 슬픔을 표현하고 들어주고 받아 적는 가운데 2할 그 이상의 개운함도 있으니, 글로 표현된 그림이 그만 아름답다고 얘기해버려도 실례는 아닌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