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탁구장
김정호
아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받는다.
코로나로 집에 갇히고 보니 오가기가 쉽지 않다. 두 달 전쯤에 딸네 집에 갔더니 거실에 미니탁구대를 두고서 외손자 둘이서 똑딱 볼을 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운동이 되는 것 같았다. 작은 손자와 공을 몇 번 주고 받아보니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운동이 된다.
나는 구기球技 운동 중에 가장 잘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지체 없이 탁구라고 한다. 구기뿐만 아니라 전 운동가운데 내가 가장 즐기고 잘하는 것일지 모른다. 탁구와 인연은 중학교3학년 때 친척집에 하숙을 하면서다. 친척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친구가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친구에게 가면 나를 데리고 자기 집 건너편 작은 공장 사무실에 간이 탁구장으로 갔다. 공과 라켓이 그곳에 있었고 수위실에서 이웃집 학생이라면 출입을 허용해주었다. 처음은 둘 다 서툴렀지만 점차 실력이 늘었다. 가끔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잘 가르쳐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재미가 있고 실력이 점점 늘었다. 친구와 입장료를 주고 탁구장에 가서 치기도 해보았다. 탁구는 도구가 간단하고 구기 운동 중에 둘 만 있으면 가능하니 마음 맞는 친구 한명만 있으면 가능하다. 사라호 태풍은 우리나라에 가장 큰 피해를 준 태풍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처럼 우리 집에는 선물을 주었다. 태풍 사라호에 떠내려 온 큰 살평상을 아버지께서 집에 하나 가져오셨다. 가족이 많은 우리 집에 안성맞춤이었다. 가만히 살평상을 살펴보니 네다리에 벽돌을 받치면 거의 탁구대가 될 것 같았다. 주말에 아우들과 벽돌을 받쳐두고 탁구공을 넘겨보았다. 폭은 거의 비슷하지만 길이가 조금 짧았다. 나는 네트를 구해 와서 살평상 변에 작은 나무토막을 대고 네트를 설치했다. 아쉬운 대로 멋진 탁구대가 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시간이 나면 자주 마당 탁구장에서 햇볕이 따가운 여름에도 경기를 했다. 실력이 하루 이틀 달라졌다. 처음은 내가 실력이 가장 좋았는데 얼마 지나니 비슷해졌다. 우리 6형제는 편을 갈라서 자주 시합을 했다.
그러다가 나는 학업을 따라 도시로 가고 아우들은 그 후에도 마당 탁구장에서 형제간에 우애도 나누고 실력도 향상되었다. 대학재학중에는 교내체육대회가 있으면 과대표로 탁구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즈음 명절에 아우들이 모이면 시합을 하러 탁구장에 가기도 했다. 셋째 아우가 실력이 가장 좋았다. 거의 비슷하므로 편을 갈라서 시합을 하게 되면 막상막하였다. 아우들도 출가하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탁구를 치고 할 여유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탁구 운동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학교에 전근을 가니 실습실에 늘 탁구대가 설치되어있으며 몇몇 선생님들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시합하는 것을 관전해보니 적수敵手가 될 만했다. 한번은 겨울 방학 중에 몇몇 선생님들과 열심히 탁구경기를 하던 중에 교장 선생님께서 오셔서 시합을 마치고 교장실로 오라하셨다. 교장실에 불려가서 충고를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듯이 학생들 지도에도 전념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상당한 기간 동안 교장선생님께서 우리들이 시합하는 것을 보셨던 것 같았다. 그 후 탁구 경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테니스가 점차 보급되어 대부분 테니스를 배우게 되었다. 나 역시 테니스를 한 동안 열중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 배운 것은 몸에 체득體得이 되어 조금만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2000년 10월 1일에 탁구공의 크기가 구경 38mm에서 40mm로 바뀌고, 탁구공의 무게도 2.5그램에서 2.7그램으로 바뀌었다. 공인구를 30cm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약 23cm로 균일하게 튀어 올라야 한다. 탁구대는 길이 2.74m와 너비 1.525m에 높이 76센티미터의 매소 나이트 또는 그와 유사한 재질의 목재로 만들어진다. 표면은 마찰력이 적어지도록 부드럽게 코팅되며 탁구대는 중앙에 높이 15.25cm, 폭 183cm의 네트가 설치된다. 국제 연맹은 탁구대의 색상으로 녹색 또는 파란색만 허용하고 둘레에는 폭 2cm의 흰 선이 표시되어 있으며 중앙에 그어진 3mm의 선은 센터라인이라 한다. 표시되는 선은 전부 반드시 흰색이어야 한다,
유럽의 강한 입김으로 탁구 점수제가 2001년부터 21점제에서 11점제로 바뀌었다. 21점제로는 승률이 낮지만 11점제에서는 운으로도 이길 확률이 생기기 때문이다. 육상에서 지구력을 요하는 마라톤에서는 승률이 없지만 단거리로 하면 지구력 보다는 순발력으로 이길 승산이 높은 이치와 같다. 탁구 역사에서 2001년 21점제에서 11점제로 바뀐 역사를 제1 혁명기라 부르며, 2014년 7월부터 탁구공 재질을 셀루로이드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는 계기를 제2 혁명기로 부른다. 탁구공이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면 회전기술을 앞세워 세계를 제패해온 중국 등 아시아권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 세계 탁구판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만리장성(중국 탁구)이 우뚝 버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핑퐁외교로 시작해서 국교가 정상화 되었다. 2.7g의 작은 공이 거대 강대국의 가교 역할을 했다니 놀랍다.
교장이 되어 실업계 고등학교에 부임하니 빈 교실이 있었다. 빈 교실을 두느니 활용을 해야 한다. 체육 선생님께 탁구장을 설치하면 어떠냐고 하니 좋아하면서 정리해서 하겠다고 했다. 교무실 바로 옆 교실에 설치하라고 부탁했다. 탁구 라켓과 공을 넉넉히 준비해서 학생들 교육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에게도 개방해서 체력 증진을 하도록 권유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과 수업이 없을 때는 교사들이 운동을 하도록 허용했다. 나도 틈이 생기면 함께 운동을 했다. 일 년에 한 번씩 관내 교직원 체육대회가 있었다. 출전 종목은 남자는 배구 테니스이며 여자는 탁구종목이 있었다. 여선생님이 나에게 이기면 선수 급이라고 독려督勵했다. 3명이 한 팀인데 2명만 잘 치면 등수 안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대회가 있기 전에 얼마동안은 연습을 열심히 했다. 선수로 선발된 여선생님들께 꼭 이기라고 시간이 나면 연습을 하게 했다. 출전한 선수들이 등수 안에 들어서 상금도 타고 운동도 되어 좋아했다.
퇴임할 무렵에 행여 탁구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좋은 탁구라켓을 두 개 준비했다. 백수가 되고 보니 건강이 가장 염려가 된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운동량도 부족하다. 얼마동안 가까운 탁구장에 등록하여 운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흥미가 없었다. 근래에 자꾸만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할 것을 생각했는데, 마침 딸네 집에 가서 미니탁구대를 보고 우리도 구입해서 하자고 했다.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아내는 생각 끝에 인터넷으로 구입하니 3~4일 후에 접이식 이동 미니탁구대가 설 명절 1주일 전 쯤 바쁜 가운데도 배달이 되어졌다. 참 세상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역시 우리나라는 배달의 민족인가? 배달문화가 급성장하였고 특히 코로나시기에 어지간한 것은 모두 배달이 잘 되니 세상 편하고 좋으며 고맙기까지 하다. 코로나 때문에 운동량이 부족하고 갑갑했는데 집에서 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는 미니 탁구대가 도착했으니 딱 좋을 것 같았다. 펼쳐보니 탁구공도 넷트도 들어 있어 간편하게 설치하여 바로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망설이든 아내가 더 좋아한다. 탁구를 칠 때면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 거실바닥에 매트를 두 장 깔고 탁구대를 거실에 설치하고 여러 번 아내와 연습을 해보았다. 4개의 공으로 치다보니 떨어진 공을 일일이 줍자니 힘도 들고 해서 시내에 나가서 20개정도 더 사 왔다. 오전에 30분 오후에 30분 정도 경기를 하면 땀이 난다. 아내는 나보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 나와 부지런히 치다보면 충분한 연습도 되고 운동도 되니 코로나 예방도 잘되고 여가선용도 되어서 좋은 것 같다.
설날 아우들이 모였다. 미니탁구대를 처음 보는지 신기해했다. 모두 라켓을 잡아보고 간단한 경기를 해보고 어린 시절 마당 탁구장을 회상하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내는 신바람이라도 난 듯 열심이다. 땀을 흘리면서 똑딱 게임이지만 열심히 공을 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덕분에 나도 운동이 되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고향 집 마당 탁구장의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준 미니탁구대가 고맙다.(2022.2.5.)(수필춘추2022. 봄호에 발표)
첫댓글 수필춘추 2022 봄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