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선물
임미리
부엉이 열쇠고리를 선물 받았다.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장식 때문에 눈이 부신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부터 부엉이를 조각한 선물을 몇 번 받았었다. 엄지손가락 마디만 한 부엉이부터 주먹만 한 부엉이까지 받으면서 차츰 부엉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선물 가게에 가면 나도 모르게 부엉이의 행방을 쫓고 있을 때가 있다.
부엉이는 야행성 조류로 밤에 활동한다. 낮에는 물체를 잘 보지 못한다고 한다. 부엉이는 먹이를 닥치는 대로 물어다가 쌓아두는 습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부(富) 흥(興)'이라고 하여 재물과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서 가게를 운영하는 곳에 가면 장식용으로 즐비하게 진열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부엉이 장식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본에서는 이사를 가거나 새로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 부엉이 인형을 선물하고 집주인은 현관 앞에 부엉이 인형을 장식한다고 한다. 고생하지 말고 살라는 의미로 부와 복을 비는 상징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부엉이는 파르테논 신전의 주인인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함께 다니는 신조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아테나는 전쟁의 신이면서 동시에 지혜의 신이다. 그 곁을 지키는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한다.
다른 한편으로 부엉이는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죽음과 불길함의 상징인 경우도 있다. 밤에 우는 부엉이 소리는 죽음의 전조로 여겨졌고, 부엉이 꿈은 흉몽으로 여겼다. 하지만 점차 재물을 불러오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굳어지고 있는 추세다. 부엉이 곳간, 부엉이살림, 부엉이 집 모두 재물과 관련된 표현이다.
부엉이를 생각하면 겨울밤이란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이야기를 듣지요”라고 흥얼거리다 보면 부엉이 하면 겨울, 겨울 하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할머니랑 살았는데 저녁이 되면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전래동화 이야기에 밤이 깊어지곤 했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법철학』서문에서 “미네르바(아테나)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라고 썼다. 지성과 지혜의 상징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는 말은 모든 사회적 현상과 사건들은 그 사태가 끝 무렵이 되어서야 정확하게 그 실체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에게서 생의 지혜를 배운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와 보냈던 무수한 시간들이 나를 키우는 원동력이었음을 알고 있다. 할머니의 지성과 지혜는 알게 모르게 나에게 전이되었으리라. 그렇게 믿으면서 살고 있다. 홀로 현해탄을 건너 할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할머니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내 삶은 아직도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무수한 날들이 시공간을 떠돌다가 어느 날 찬란하게 대물림되기를 기도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품고 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부엉이 나무 조각품과 마주한다. 부리부리한 눈과 쫑긋하게 열린 귀 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린다. 저 부엉이는 재물과 부귀의 상징이어도 좋고, 지성과 지혜의 상징이어도 좋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재물과 부를 만날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 또한 아테나를 모시던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거닐었던 어느 날 한때를 생각하면 지혜롭지 못했던 젊은 날들이 후회스럽지만 그날들이 있어 오늘이 있기에 그저 수많은 날들에 감사할 뿐이다.
선물 가게 앞에서 부엉이의 행방을 쫓아 들어가듯이 내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아테나 여신의 지성과 지혜를 품고 살 수 있으면 더없이 좋으리라. 그리하여 내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이 많아져도 헛되지 않게 생각하리라. 오늘 받은 부엉이 열쇠고리 선물이 한동안 나를 깨어있게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필집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도 괜찮습니다』 2020. 문학관
임미리 시인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2008년『열린시학』『현대수필』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물고기자리』 『엄마의 재봉틀』 ,『그대도 내겐 바람이다』 수필집으로 『천 배의 바람을 품다』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도 괜찮습니다』 가 있다.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계간지 우수작품상 수상. 문학박사로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글쓰기과정 전담 강사로 봉사하면서 화순군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