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폭설의 언덕 4
박성기회장의 웃음소리는 그날 밤 내내 들려왔다. 직원들은 박성기회장의 웃음소리에 우익과 좌익으로 나뉘어졌다.
우익은 보수적이었다. 우리는 사장님을 믿는다. 정신 차리고 사고수습부터 해야 한다. 이렇게 유기오가 허무하게 쓰러질 순 없다. 유기오는 반드시 재기한다.
반면 좌익은 진보적이었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동안 사장은 잘 먹고 잘살았다. 우리는 단순한 근로자다. 퇴직금확보를 위해 유기오자산을 동결하라. 이미 유기오는 물 건너갔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라. 모든 책임은 사장이 져라. 그래서 두 파의 일하는 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우익은 각 거래처와 금융에 차후 수습방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고 좌익은 노동부와 금융에 퇴직관련 문의 또는 새 일자리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어쨌든 두 부류 때문에 유기오수산센터는 썰렁하고 음산했던 분위기를 깨고 다시 분주해졌다. 업무는 우익파가 주도했기 때문에 외형상 어느 정도 수습되어 가는듯했다.
허지만 엎친데 겹친다 했던가?
세계적인 기상재해로 굵직한 뉴스만 다루던 매체가 오후부터 국내의 소소한 사건들까지 다루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 유기오울진수산센터는 위기를 맞게 됐다.
유기오수산센터를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저녁8시뉴스부터였다.
“이상 다음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3일전 오후, 진부령을 넘던 대형수조차가 전복해서 한명이 사망하고 한명은 무사히 구출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사고경위와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조차의 화재로 모든 활어들은 폐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방금 들어 온 뉴스입니다. 조금 전에 방영됐던 수조차는 울진종합수산센터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스폿 뉴스입니다. 남중국해에서 침몰한 컨테이너선은 울진항에서 출항한 싱가포르해운소속의 폴마라니호였으며 선원들은 아직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13일 울진항에서 선적하고 홍콩과 대만으로 가던 두남컨테이너선이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로 좌초됐습니다. 기상조건이 회복 되는대로 자세한 소식전하겠습니다.”
“오오츠크해를 항해하던 씨마루호가 높은 해일로 인해 침몰했습니다. 씨마루호에 유기오울진종합수산센터의 질소냉동활어 수십톤이 선적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피해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8시 뉴스를 마칩니다.”
“긴급 속보입니다. 방금 일본 후쿠시마 동남쪽 60km지점에서 강도9.3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2차 쓰나미가 예상됩니다. 각항구의 저지대 주민들은 기상 속보에 유의하시고 긴급피난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24시뉴스입니다.”
시시각각 방송되는 언론매체에 유기오울진수산센터의 이름이 거명되자 유기오울진수산센터의 모든 거래망은 일시에 혼란을 초래했다.
언론이 뉴스를 내 보내는 것은 당연했지만 결과적으로 유기오수산을 더 깊은 수렁으로 내 몰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방송이 나가자 수많은 채권자와 중소거래처사람들이 유기오울진종합수산센터로 몰려 왔다. 몰려온 채권자들은 인정사정, 기상이변, 불가항력 등의 낱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앞뒤가 없었다. 전화는 거의 불통상황이고, 몰려 온 사람들로 8층 전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빅세일매장을 방불케 했다. 아우성과 북새통을 이뤘다.
정승이 죽으면 그 집안엔 개도 얼씬거리지 않고 부자가망하면 3년은 버틴다는데 유기오울진수산센터는 개가 된 사람들만 모여들었고 3년은커녕 3시간도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그 속엔 순리대로 풀려는 선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위나 법리를 따지지 않는 깐깐한 납품채권자와 선물결제한 영세업자들이었다.
“야! 사장 데려와!”
“내 돈 내놔라!”
“야이, 자식들아 보내준다던 내 고기 어디 있냐?.”
“악덕 사장 유기오! 타도하자 유기오!”
이 정도 아우성은 약과였다. 욕설이 난무하고 집기를 집어던지고 난리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한결같이 자신들의 채권부터 챙기려는 사람들로 인해 유기오수산의 모든 업무는 완전 마비되었다. 다음날부터 믿었던 은행도 가세했다. 모든 금융거래가 주거래은행에 의해 전날 마감시간 전에 직권 압류됐다.
그러나 법이 있는 한 그들과의 대타협은 시작하면 된다. 허지만 가장 곤혹스러운 무리가 있었다.
조직을 갖춘 큰손사채업자가 있었다.
크던 작던 사채를 금기시하던 박성기회장이었지만 무리한 신년오더를 집행하기 위해 제1금융의 대출만으로는 부족했던 박성기회장은 단기간 자금, 신속한 사채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단기 급전사채는 치명적이었다.
허지만, 박성기회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분발했다. 박성기회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 우익파직원들은 더욱 견고하게 단결했다. 밤새워 각 거래처에 보낼 사고경위와 사고수습방향을 세세하게 작성하고 새벽에 전부 발송했다. 분명히 거래처에서는 선물구매해 줄 것이라 믿었고, 그 자금이면 보험사정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박성기회장은 문서발송 후 전국600여개의 단골거래처에 일일이 구원의 메일을 자필서명으로 보냈다. 허지만 모두 냉담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유기오의 영업방침에 그들은 표현하지 못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그들 업체의 시각에 유기오수산텐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갑의 횡포로 여겨졌고, 그 앙심이 깊숙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인 그 불만은 독이었다. 박성기회장에게 선뜻 도움이 되겠다고 선물결제하려고 나서는 업주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전날 돌아갔던 채권자들과 영세업체대표들이 유기오수산센터에 다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유기오수산센터로 들어가지 못했다. 건물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장한 청년들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모두 신문지와 헝겊으로 돌돌 만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고 건물입구를 차단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통과시켜 주는 사람은 검문하듯 일일이 신분확인을 끝낸 유기오수산센터의 우익직원들뿐이었다. 좌익은 아예 나타나지도, 몇몇의 출근한 직원마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좌익은 오히려 건물을 차단한 젊은 사람들을 독려하는 듯했다.
그 시간 박성기회장은 사장실에서 중량깨나 나가 보이는 젊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두 사람의 중년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박성기회장의 자리에 엉덩이를 깊숙이 묻은 중절모의 남자가 박성기회장에게 점잖게 말했다.
“존경하는 유기오사장님, 우리는 법과 도덕을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허지만 법과 도덕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 또한 법과 도덕을 무시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정의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면 우리는 상대의 심장을 가장 날이 무딘 칼로 도려내 버립니다. 우리 머리를 혼란하게 하면 우리는 상대의 머리를 잘라버립니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지요.”
중절모 옆에 바짝 붙어 서있던, 검은 선글라스에 포마드기름을 뒤집어 쓴 남자가 깍듯이 말했다.
“우리 형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시지 않는 것이, 국가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지 않는 애국자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박성기회장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허지만 나를 여기 붙들어 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사건인데 나를 협박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보험청구도 할 것입니다. 보험이 정리되는 대로 우선 변제해드리도록 약속하겠습니다.”
박성기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마드의 남자가 말했다.
“야! 데리고 들어와.”
밀레니엄이사가 총무부장과 함께 벌벌 떨며 청년들에게 끌려들어 왔다. 포마드가 말했다.
“유기오대표님께서 보험이라 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험 있습니까? 실토하십시오.”
“어없습니다 그그것이 전전전전부답니다.”
포마드가 안주머니에서 꺼내 든 서류를 박성기회장의 얼굴에 휙 뿌리며 소름끼치게 웃었다.
“아, 이 서류말씀하셨군요. 이건 이제 종이에 불과합니다. 사장님이 우리를 물로 보시는 군요.”
박성기회장이 바닥에 흩어진 신용장과 보험증서들을 바라보며 밀레니엄전무에게 물었다.
“저분 말이 무슨 뜻입니까?”
밀레니엄전무가 너무 떨어 말을 못하자 총무부장이 대신 해명했다.
“보험의 약관에, 천재지변일 경우 계약효력상실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박성기회장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 뱉았다.
“뭐라구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총무부장이 추언했다.
“전무님이 특약을 제외시키라고 해서.”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박성기회장이 언성을 높이며 총무부장에게 반문하자 중절모가 나섰다.
“자자. 그만들 입씨름하십시오. 나는 몹시 바쁜 사람입니다. 다른 제안은 없습니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중절모가 양미간을 접었다 편 후 명령했다.
“여긴 더워. 아래층으로 정중히 모시고 가!”
“네 형님.”
중절모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마드를 위시한 청년들은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90도로 꺾은 청년들 사이를 중절모는 유유히 빠져 나갔다. 중절모가 떠나고 곧바로 박성기회장은 지하실로 끌려갔다.
유기오수산센터의 지하실은 냉장어류들이 보관된 평균실내온도 섭씨4도의 창고다. 그 창고에 박성기회장은 강제로 감금됐다. 그들은 유기오수산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사장님 추우실 땐 이걸 덮으십시오. 그럼.”
포마드가 담요 한 장을 던져주며 그렇게 말하고 젊은 사람들과 재빨리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계단 입구의 철문이 쾅하고 닫혔다.
첫댓글 참으로 비참 하군요..
그렇게도 잘나가던 박성기가 하루아침에 빗쟁이로 전락하고 말았슴니다.
미래를 알수없는 거...그것이 또한 삶이겠죠
좋은날되십시오
직원들 의견을 존중하고 사업을 했어냐 하는데 너무 독단적인 행보를 강행한 탓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으니 다시 제기할수있는 박성기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만
돈앞에서 자기가 지은 건물 지하에 갖친다는것 비참한 일입니다.
비참하죠..허지만 사람 사는 일은 지나면 다 해결되짆아요?...ㅎ
오늘도 행복한 날되십시오
이런대서 하늘도 무심하다 했을까요..
하루아침에 재해로 말미암아 알거지가 되었으니 한심 스럽슴니다.
너무 속상해 하시지 마세요
나드래님의 고운 마음 다칠까 걱정스럽습니다
박성기 회장 유기오 수산 물류쎈타가 너무 빨리 성장 했다 싶었는데.
순간의 실수로 더욱 큰 손실을 보게 되었군요..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업의 기질이 뛰어난 박성기 이기에 슬기롭게 잘극보했으면 좋겠슴니다
빨리자라는 나무는 뿌리가 깊지 않죠...느티나무님의 감성은 언제나 소녀같습니다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되었죠?
멋진날되십시오
박성기 회장 하루아침에 죽을 맛이네요.. 회장에서 지하냉장고에 같히는 신세가 되었으니
돈앞에서는 냉혹하기만 하다는것 다시한번 일께워 줍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작가님
ㅎ
인생이란 다 그런거 아닐까요?
잘됏다 못됐다...축구보셨죠? 잘했어요 박수보냅니다..
박성기회장 물류차 전복 되여 불타버렸지만 그래도 무사하기에 정말 다행입니다.
많은 재산적 피해는 말할수없지만 그래도 재기할수 있지안을까 조심ㄴ스럽게 점처봅니다.
즐거운 주말 오후 되세요..
걱정해 주셔서 박성기회장 재기 할 수 있겠죠
항상 응원해 주세요
고운 밤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