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만·필리핀·태평양 도서국도 '핵폐수'... 환경단체 "ALPS 처리해도 오염수"
[김시연, 강석찬,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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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가 방류하려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정부 차원에서 '처리수'라고 부르는 국가(파란색)와 '오염수'라고 부르는 국가(붉은색). 각국 정부 공식 자료 확인(자료 정리 : 오마이팩트 김시연·강석찬) |
ⓒ 이종호 |
<중앙일보>는 지난 5월 11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우리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Contaminated Water)라는 공식 용어를 '처리수'(Treated Water)로 바꾸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단독]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용어 변경 검토 착수).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오후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오염수라고 부르고 있다"면서 "'처리수'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성일종 국민의힘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태스크포스' 위원장이 같은 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바깥으로 방류하는 물에 대해서는 처리해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염 처리수'라고 쓰는 게 맞지 않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언론도 IAEA·미국은 "후쿠시마 ALPS 처리수", 중국·북한은 "핵오염수", 러시아는 "방사성 물"(<조선일보> 5월 12일)이라며 이분법식으로 사안을 다뤘다. 심지어 "중국-러시아-한국'만 오염수라 불러"(<더퍼블릭> 5월 12일)라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라고 부르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일부 국가뿐일까? <오마이뉴스>는 각 국 정부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살펴봤다.
대만 '삼중수소 폐수', 필리핀 '오염된 방사성 폐수', 태평양도서국포럼 '핵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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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내 방사성 오염수 저장 탱크. |
ⓒ 연합뉴스 |
일본 정부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붕괴 사고 이후 원전 주변에 보관하던 약 133만 ㎥(2023년 4월 20일 기준)에 이르는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추진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다핵종 제거 시설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로 '삼중수소(트리튬)'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핵종)을 처리했다는 의미로 'ALPS 처리수'라고 부르지만, 일본 주변 국가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며 여전히 '오염수'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과 바다를 접한 한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은 물론 대만과 필리핀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 태평양 도서국 18개국이 속한 PIF(태평양도서국포럼)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도 대부분 '오염수(Contaminated Water)'나 '핵폐수(Nuclear Wastewater)', '방사능 폐수(Radioactive Wastewater)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대만 원자력위원회(AEC)는 홈페이지(https://www.aec.gov.tw/english)에 '후쿠시마 삼중수소 폐수'(Fukushima Tritiated Wastewater)라고 표기하고 있었고, 필리핀 국영 뉴스에이전시(PNA)는 지난 2021년 4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발표와 이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우려 입장을 전하면서, '오염수(contaminated water)'나 '오염된 방사성 폐수'(contaminated radioactive wastewater)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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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방류 오염수 국가별 표기 방식. 자료 : 각국 정부·기관 홈페이지나 국영 통신사 보도 |
ⓒ 김시연·강석찬 |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쿡제도, 피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키리바시, 마셜제도, 마이크로네시아, 나우루, 뉴칼레도니아, 니우에, 팔라우, 파푸아뉴기니, 사모아, 솔로몬제도,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 등 18개국이 소속된 PIF(태평양도서국포럼)도 지난 2월 6일 '일본의 핵폐수 방류 팩트시트'에서 "PIF 입장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와 정보가 있는 경우에만 '핵폐수(Nuclear Wastewater)'를 방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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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은 지난 2월 6일 ‘일본의 핵폐수 방류’(Japanese Discharge of Nuclear Wastewater) 팩트시트에서 “PIF 입장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와 정보가 있는 경우에만 핵폐수(Nuclear Wastewater)를 방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 PIF |
중국-러시아-북한, '방사능 오염수'나 '핵 오염수'로 불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3월 21일(현지 시각) 모스크바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계획에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핵오염수(nuclear-contaminated water)'로,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방사능 오염수'(radioactively contaminated water)라고 보도했다.
북한도 2021년 4월 15일 중앙통신 논평('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용납 못할 범죄')에서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인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라며 해양 방류 결정 철회를 촉구하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방사능 오염수'로 불렀다(첨부파일 :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2021.04.16. 북한 관영매체 주요내용).
미국은 '처리수' 방류 환영했지만... 유럽 국가는 "환영한다고는 못해"
반면 국제기구인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일본을 제외하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공식적으로 '처리수'라고 부르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 국무부는 2021년 4월 12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발표에 대해 "미국은 일본 정부가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에 저장된 '처리수(the treated water)'의 관리와 관련된 몇 가지 옵션을 검토했음을 알고 있다"라면서 "우리는 이 접근 방식의 효과를 모니터링하면서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조정과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한다"고 밝혔다(미국 국무부, "Government of Japan's Announcement on Fukushima Treated Water Release Decision").
일부 언론은 영국과 EU(유럽연합)도 후쿠시마 오염수를 'ALPS 처리수'라고 부른다고 보도했지만, 일본 정부와 협의한 내용이 담긴 외교 문서이거나 IAEA 이사회에서 EU 대표가 한 발언이어서 미국처럼 '처리수'란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국 정부는 2022년 11월 2일 도쿄에서 열린 제11차 영-일 연례 핵 협의에서 "일본은 현장에서 'ALPS 처리수'를 배출하는 과정을 포함해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재 상황에 대한 자세한 업데이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일본 정부 입장을 전달하는 대목에만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IAEA EU 대표도 2023년 3월 6일 IAEA 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EU는 어떤 방류든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전 ALPS 처리수를 해양으로 방류하려는 계획에 대한 IAEA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IAEA 검증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지, EU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동조하거나 '처리수'라는 용어를 적극 수용했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16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린 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회의 공동성명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담으려고 시도했지만 독일 등 유럽 국가의 반발로 무산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당시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이 "원전 사고 후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가 노력한 것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처리수 방류를 환영할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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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회의 공동 기자 회견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바니아 가바 이탈리아 생태전환부 국무차관, 길베르토 피체토 프라틴 이탈리아 환경장관, 니시무라 아키히로 일본 환경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장관, 스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 패트릭 그라이첸 독일 경제기후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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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ALPS 거쳐도 삼중수소 남아 '처리수'로 불러선 안 돼"
국내외 환경단체 전문가들은 ALPS를 거친 오염수에도 여전히 삼중수소 등 고위험 방사성 물질이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처리수'로 불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지난 12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하면 마치 과학적으로 안전하게 관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국민의힘과 일본은 ALPS라는 다핵종 제거 설비를 거쳤기 때문에 처리수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방사성 물질이 다 제거되지 않아 오염돼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오염수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도쿄전력 홈페이지에도 지금 저장돼 있는 133만 톤 가운데 70%는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포함돼 있어서 다시 재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나머지 30%를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맞다고 해서 처리수라고 부르는 것"이라면서 "그러면 기준치 이상인 건 오염수라고 해야 하는데, '처리를 기다리는 물'이라는 뜻인 '처리도상수'로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경숙, 5월 12일 오마이뉴스 기고, 이게 처리수?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이 정도로 위험하다)
삼중수소의 생물학적 영향을 다룬 논문 250건을 전수 분석한 티머시 무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교수는 지난 4월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주최한 해외 전문가 초청 기자회견에서 "삼중수소는 저에너지여서 외부에서는 피부도 투과하지 못하지만, 생물 체내에 들어가면 고에너지 감마선보다 2배 이상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변인희 녹색연합 활동가도 12일 <오마이뉴스>에 "전문가들도 방류 계획의 문제점, ALPS 성능의 문제점, 오염수 탱크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고, ALPS가 섭취 후 치명적인 삼중수소를 제대로 거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건 안전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고려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염수 방류가 일본 외에 어떤 국가에도 이익이 없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나 ALPS 성능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처리수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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