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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우리 나라 남부지방을 동서로 나누는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크게 솟구친 산.
높이 1,915m. 국립공원 제 1호로서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리에 달하고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남원군,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 함양, 하동군 등 3도 5군에
걸쳐 있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 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 덕평봉,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 노고단 등이, 동쪽으로는 중봉, 하봉, 싸리봉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
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 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에서 북으로
고리봉, 만복대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 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 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
을 이룬다.
걷기, 걸어야 할 길
2010년 8월 23일 월요일, 친구의 휴가 첫날이다. 밤새 천둥치고 비가 내렸다. 친구가 "이번주 내내 비가 온대요." 하고 전화를 했다. 나는 그러면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취소하자는 줄 알고 좋아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산을 준비하라는 전화였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천둥소리에 실내는 고요하고, 나는 빗속에 갇혀 집에 있고만 싶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제주 올레길을 다녀온 내 친구는 이 번 지리산 둘레길에 기대가 컸다.
몇 주 전부터 지리산길 사이트에 들어가 미리 칼라 프린트를 다 뽑아 놓고, 전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서 공부도 하고 잤다고 했다.
걷는데 뭐 공부까지!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로댕전 마지막날 만나서 나도 그 칼라프린트물을 받았지만, 공부 좀 하라는 말에 알았다고 하고 잘 접어두었다.
나도 가끔은 도서관에서 걷기에 관한 책을 빌려다 읽는다. 요즘 김희경의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라는 책을 읽었다. 추천하고 싶은 좋은 여행에세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도 34일이상 걷는다는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고 싶다.
하지만 걷는다는 의미 이외에 길 자체가 그렇게 걷기 좋은 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에 버스에서 본 스페인에서 저기 순례자들! 하면서 보았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순례자들은 비가 오는 도시길을 걷고 있었다. 실망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걷기 좋은 길이란, 뭔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운 길을 의미했다.
마을이라도 아직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마을을 뜻했다.
우리 동네에도 흔하디 흔한 도시길을 걷는 일은 어쩐지 흥미밖이었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은 모양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난 분들 중에 '길이 포장되어 별로'라고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친구가 뽑아온 프린트물에서 보면 둘레길 사이트에 그런 불만을 단 리플도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걸어서 세계일주를 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에서 나온 길도 수없이 많은 도시를 지난다. 일본 뇌과학자 오시마 기요시가 쓴 < 걸을 수록 뇌가 젊어진다> 라고 하는 책에서는 하루 최소 15분 이상을 걸으면 엉클어졌던 호르몬들이 제자리를 찾고 뇌도 건강해진다고 하였다. 도시길도 매력적인 길이라고, 저자는 오후 도시 산책을 즐긴다고 했었다.
어떤 길이 됐든, 길은 길이다. 나는 오래 전에 이미 산길에서 좀 더 먼 길을 걷고 싶다는 데 동의했고, 그래서 비가 와도 떠나긴 떠나야한다.
천둥치고 비가 오는 월요일 밤 아직 짐도 하나 챙겨놓지 않았고 목에 돌덩이를 압착시킨 것만큼 아팠지만 참고 인터넷을 했다. 쓸데없는 기사들을 구석구석까지 읽고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두 번 알람끝에 간신히 일어나 한시간동안 짐을 챙겼다.
친구는 벌써 우리 동네 터미널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두 번 주었다. 어쨌든 나도 여유있게 터미날에 도착을 했다. 남원까지 가야하지만, 광주행 버스를 타면 도중에 정안이라는 휴게소에서 남원가는 버스로 갈아탈 수가 있다고 했다.
고속도로에도 비가 오락가락 했다. 정안 휴게소에선 비가 그쳐 있었다.
안내소에 가서 물었더니 버스를 갈아타니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핫도그를 사서 반 나눠 먹고, 커피를 마실만큼 느긋한 시간이었다.
남원에서 주천까지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했다.
"더운데 힘들겠네요. " 길을 일러주시던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아, 뭔가 힘을 줘야겠다 싶으셨는지, "그래도 친구끼리 여행, 재밌겠어요."하고 말씀을 덧붙였다. 얼굴은 여전히 힘들겠다! 하는 얼굴이었다.
친절하다, 생각했지만, 정말 땡볕아래서 보니 배낭을 메고 선 모습이 별로 멋져보이지 않았다.
터미널 근처 김밥집에서 비빔냉면과 비빔밥을 먹었다. 짐작이야 했지만, 비빔냉면 속에 야채가 무채 다섯개 밖에 없었다. 맛은 없음. 다 먹긴 다 먹었다.
그래도 손님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정류장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열 분 이상이다. 버스 노선을 물으시기에 열심히 읽어드렸다. 우리가 타야할 주천가는 버스도 왔다.
버스엔 부채가 달려있다. 젊은 기사님이 아주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다. 산에선 금방 어두워진다고 부지런히 걸으라고 했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첩첩산중 아래 우리가 떨어졌다.
아스팔트 길 아래 우리 밖에 사람이 없었다.
지리산 둘레길
공식적인 둘레길 코스는 제5코스까지 열려있다.
친구가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지난 정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산림청에서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코스가 이번 정부들어 난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정부가 지리산에서 하고 싶어하는 일은 지리산댐을 만드는 일이다.
4코스 마을에는 댐건설에 반대하는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경향신문의 공지영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많이 본 플랭카드다.
어쨌든 이 길을 만드는 경비를 산림청에서 복권을 팔아서 마련했다고 한다. 마을간의 경제적인 형평성, 그리고 둘레길 사업의 순수성을 위해서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수익사업을 고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그래서인지, 대부분 지역 주민 참여로 이루어지는 쉼터말고는 둘레길은 상업적인 것과 아주 거리가 멀었다. 늘 동경하던 시골마을의 고요와 청정 그자체였다.
민박이라든가 쉼터 같은 수익사업에서 이익을 보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분배에 대해서도 무슨 고려가 있다고 써져있었는데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어쨌든 보이는 만큼이라도 이런 청정함이 유지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해보았다.
자원이 미비해서인지 둘레길 안내센터는 제2코스가 시작하는 인월에 한 군데만 있다.
모르고 인월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첫코스를 위해 다시 남원으로 나와서 주천으로 가는 수고를 해야한다. 우리는 친구가 철저하게 준비해온 관계로, 첫날부터 시간을 아끼게 되었다. 물을 사는 것을 잊었는데 보리차 한통도 얼려와서 그럭저럭 둘이 나눠마시고 걸었다.
제1코스 주천-운봉 14.3km 예상시간 6시간
2010년 8월 24일 화요일 오후 1시 9분 주천을 출발.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의 표지는 조가비에 노란 화살표인데, 지리산둘레길의 표시는 나무에 새겨진 화살표이다. 빨간화살표는 번호대로 순방향이고 검은 화살표는 역방향이다.
첫번째 구간은 6개마을을 잇는 옛길과 제방길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읽기만해서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주천에서 아스팔트길을 조금 걷자, 논이 있는 마을이 나오고 곧이어 산길로 이어졌다. 햇볕이 뜨거웠는데 방아개비가 폴닥폴닥 뛰고 있었다. 고즈넉한 길에 방아개비가 폴닥거리고 하얀 들국화가 지천이어서 우리도 인사치레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누가 캐어놓았는지 고구마 줄거리들이 쌓여 있었다.
더운데도 가을 느낌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내송마을 개미정지라는 곳에서 조금 쉬고 산길을 부지런히 걸어서 구룡치 까지 갔다.
옛날, 지리산 달궁마을에서 남원장까지 가려면 구룡치 길목을 지나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해마다 백중에 힘을 합쳐 이 길을 보수했다고 한다. 달궁이라면 학교다닐때 읽은 서정인의 소설 제목이다. 읽었지만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어쩌면 끝까지 읽지 못한 책. 그래도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 지리산 여행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폰 검색을 하다가 소설가 이윤기씨의 사망소식을 읽었다.
소설가이지만 내 주변에 그의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그의 죽음을 모두가 애도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번역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몹시 열심히 읽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조르바의 성격 몇 장면 정도.
그리스 신화에 대한 에세이도 열심히 읽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별로 없다.
그의 죽음이 새롭게 다가온 것은 그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의 죽음은 삶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달궁마을에 대해 들으면서 제대로 읽지 못한 소설제목을 생각하고, 그 마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것처럼.
산길
첫날치고는 무리한 산길이다. 나중에 지도에서 고도표를 보니 개미정지가 해발 300미터이고
구룡치가 해발 500미터라고 나와있다.
완만한 길은 아니다. 힘을 들여 오르막길을 올랐다.
땀이 쭉 났다. 그만큼 정신이 가벼워졌다. 구룡치에서 회덕마을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런 길이 좋았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쉼터까지 세 시간을 걸었다. 오후 4시 산을 다 내려와서 비닐 하우스 구판장에 가서 드디어 물을 사먹었다.
빙과도 사먹었지만, 밭에서 오신 할머니까 깎아준 오이가 더 시원했다.
할아버지는 좀 성깔이 있으신 분 같았는데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시고는 우리가 드시라고 권한 오이를 일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셨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맥주를 사먹는 손님에게는 안주없이 어떻게 먹느냐고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오이를 꺼내던 할아버지였는데. 맥주 손님은 안주가 필요없다고 했었다.
할머니가 이번엔 평상에 걸터앉아 걸레로 전화줄을 닦으셨다. 할아버지 뒤에서 우리를 보고 웃는 모습이 천진하시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주인이 보여주는 미소 그대로다.
다시 길, 회덕마을 표지가 있는 아스팔트 길이다.
마을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팻말을 보면서 마을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싸움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들이 큰소리로 싸우시는 소리가 길가로 쩌렁쩌렁 울렸다. 할머니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마을 길에 나와있었다.
잘 꾸며진 화장실 앞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지팡이에 기대어 앉아계셨다. 더운데 왜 회관에
안들어가시냐고 하자 택배를 기다린다고 하셨다.
누군가에게 택배를 부치려는 모양으로 꼼꼼하게 쌓은 꾸러미가 옆에 있었다. 우리에게 물을 마시고 가라고 찬물이 쏟아지는 호스를 가르쳐 주셨다.
햇빛아래지만 저녁이라서 걸을만 했다. 걷는 일은 좋았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세 시간 걸었는데 그랬다. 불평이 없어졌다.
회덕마을부터는 쉬엄쉬엄 걷기 좋았다.
종친 묘가 잘 가꾸어진 길을 지나고, 또 덕산저수지와 얕으막한 산길을 지났다.
저녁 7시쯤 운봉에 도착했다.
마을은 고즈넉했고, 유리문이 달린 정자가 있었다.
요즘은 이렇게 마을정자를 통일한 모양인지 유리문 달린 마을정자를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숙박을 할까 하고 망설이는데 할머니라고 하기엔 젊으신 분이 <인동할매집>에서 나오셨다.
방금 손님들도 왔다고 우리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저녁 7시에 들어간 인동할매집 민박은 이번 여행 민박중에 제일 잘 선택한 민박집이었다.
'건강하신 어머니'가 있는 친정을 그리워하는 여자분들에겐 딱이다.
먼저오신 여자분들이 수박을 먹고 계셨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거실과 방세 개 욕실과 부엌
이렇게 가정집에서 민박을 하는 건지 정말 오랜만에 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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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재미있게 따라 갑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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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 저위에쓴 여정중에 거쳐가는곳중의 하나인 "함양" 이 저의 고향이에요. 부모님이 자고나서 마지막에돌아가시고 묻힌곳 .... 저는 지리산을 못가봤어요. 암튼 영상과 예쁜글로 대신 보게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_()()()_
함양에서 멈췄는데요....거기 시내가 차분하고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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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녀오셨군요..그런데 5월 23일에 떠났어요? 아주 좋은 경험했네요.._()()()_
네^^ 8월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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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5월이 이상했는데 아마도 8월의 오타인 듯? ㅎㅎㅎ
좋은 경험..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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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젊음은 참 좋습니다.혜명화님 부러움이 두배...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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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함께 글속으로 혜명화님이 힘들면 나도 힘이 드는 것 같고...^^ 아주 재미있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