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풍무(44)
음양지극천에서(3)
"아미타불!"
백산 쪽을 주시하며 멀어지던 요정은,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
자 나직한 불호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모든 무인들이 떠나고, 떨어지던 바위들도 동작을 멈춘 지하세계에
는 일순 적막이 찾아 들었다.
"나는 말이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는다. 천영도 그랬
고, 추렴도, 소령도, 그리고 소운도 그랬다. 전부가 내 눈앞에서 죽었
다. 너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는 앞에서 죽는다면 인정해 주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백산은 석실을 가득 메운 돌을 치워내기 시작
했다.
"그거 아냐? 내가 제갈세가의 만겁불회귀역에서 갇혔을 때 말이다,
내 동생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무너진 동굴은 백 장이 넘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날 찾아왔다. 날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백
산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단 말이다."
그때 녀석들보다는 지금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백산은 쓰
게 웃었다. 녀석들은 제천맹에 쫓기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동굴을 팠
다.
심검 심도를 날리며 바위를 가루로 만들고, 90장을 파고 들어갔다고
하였다. 그렇게 살린 것이다.
지금 강시로 된 상황과는 정 반대로 그때는 머리는 죽고 몸만 살아
있었다.
"4년 동안 난 식물인간으로 살아 남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누굴
봤는지 아냐? 광혈지옥비를 심장에 박아 넣은 소운이었다. 그리고 내
양손에는 애명환(愛鳴環)이 끼워진 손가락뼈 두 개가 둘려 있었다. 천
영과 추렴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더구나. 그렇게 그녀들은 자신들의 죽
음을 인식시켜 주었다. 하지만 넌 아직 확인하지 못했단 말이야!"
울분을 어쩌지 못하고 백산은 거칠게 고함을 지르며 바위덩어리를
치웠다. 들어올리지 못할 정도로 큰 바윗덩어리는 주먹으로 부셨다.
과앙! 광! 광!
정신 없이 주먹을 휘두르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덩어리들이 부
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이다, 난 제천맹에서 녀석들을 보았다. 혈광마겁 때 죽어
간 동생들의 목은 강호를 어지럽힌 공적이라 하여 혈광마인(血光魔人)
이란 명패를 달고 박제되어 있었다. 4년 간 무림인 놈들에게 전시되고
있었단 말이다! 그렇게 녀석들도 내게 죽음을 보여주었다. 제 놈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단 말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바위더미를 치웠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과거
일들을 두서 없이 뇌까리며 석실 안을 치웠다.
"천하제일인? 묵안혈마? 웃기지 말라고 해. 제 형제조차 지키지 못
한 놈이, 제 부인조차 지키지 못했던 놈이 무슨 천하제일이야! 제 자
식조차 지키지 못한 놈이 천하제일인? 그러고도 죽지 못한 놈이 무슨
천하제일인이냐고!"
"오빠!"
울분을 토하는 백산의 귓전에 주하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들었
다.
그녀가 살아난 건 천운이었다. 바위가 떨어지는 순간 무작정 뒤로
몸을 날렸는데 벽이 쑥 꺼져버린 것이었다.
백산과 요정이 그녀의 기척을 놓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더
구나 백산이 밖으로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귀식대법마저 펼쳤으니.
"거봐! 살아 있잖아."
백산은 주하연의 어깨를 붙들고 환하게 웃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온통 눈물로 범벅인 얼굴로 주하연은 백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지금껏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었던 그
의 사연을, 언제나 죽고자 하였던 그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제일인이란 소리는 듣고
있다지만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한낱 가엾은 남자일 뿐이었다.
한 소녀를 구하는 것으로 부인들의 죽음을 방치한 죄책감을 덜어보
고자 하는 나약한 인간.
"뭐하긴 임마, 내 물건 찾아가려는 거지. 만년한철 상자를 네가 가
지고 있었잖아."
"맞다, 이게 나한테 있었지."
백산의 유일한 소유물인 만년한철 상자를 들어올리며 주하연은 환하
게 웃었다. 문득 가슴이 따스하게 풀어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백산이 곁에 있으면 편했다. 만약 목숨이 다한
다면 그의 곁에서 눈을 감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해요,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요. 잘못하면 하연이 죽는단 말이에
요."
망연한 눈으로 쳐다보는 백산에게 벽 아래쪽에 숨겨진 계단을 가리
켰다. 조금 전 그녀가 빠졌던 곳은 단순한 구덩이가 아니었다. 또 다
른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그 곳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읏차! 그런데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는……. 세상에 저게 다 뭐
야?"
주하연을 번쩍 안아들고 계단으로 내려선 백산은 눈앞에 펼쳐진 광
경에 말을 잃고 말았다.
희미한 은사 광채로 에워싸인 지하는 거대한 도시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군데군데 박혀진 기둥들로 보건대 사람이 살았던 곳이 분명했
다.
"아마 파멸안(破滅眼) 때문에 이렇게 변했을 거예요. 그가 아니라면
지저사령계를 이 모양으로 만들……. 오빠 빨리."
백산 곁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주하연은 소스라쳤다 . 조금 잠잠하던
한기가 또다시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길을 따라 무조건 달려요."
"알았다."
파멸안이 파괴했다는 도시를 둘러볼 사이도 없이 주하연이 가리키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백산과 주하연은 기이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동굴
앞에 도착했다.
"일단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주저 없이 안쪽으로 들어섰다. 상당히 길게 이어진 동굴은 은사 대
신 벽을 따라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50여장 정도를 들어왔을까. 두 사람 눈앞에 일 장 폭의 조그마한 연
못 두 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두 연못 사이 조그마한 공간에 붉은 광채를 뿌리는 이끼가
퍼져 있었다. 주하연의 목숨을 구해줄 지극화정균이.
"음양지극천(陰陽至極泉)에서 자라는 게 지극화정균이었어."
"음양지극천?"
평범하게 보이는 두 연못이 음양지극천이라는 소리에 백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을 집어 넣어봐!"
"엥?"
주하연의 말에 오른 편 연못에 손을 집어넣었던 백산은 화들짝 놀랐
다. 어느 정도 감각을 되찾았다지만 아직 강시 몸을 완전하게 극복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반대편 연못은 차갑다는 것이었다.
"음양지극천이란 음(陰)과 양(陽)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생겨난다고 해요."
음양지극천에 몸을 담그면 절대의 내공이 생긴다거나 하는 것은 아
니다. 하지만 주하연처럼 음의 기운이 강하거나, 또는 양의 기운이 강
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치료효과를 발휘하는 곳이 음양지극천이다.
즉 몸 내부를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인 것이다.
"중화독지대와 비슷한 곳이구나."
두 개의 연못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중화독지대 또한 독에 대해서
는 음양지극천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아무리 지독한 독에 중독된다 하더라도 중화독지대는 전부 중화시킨
다.
해서 중화독지대에 사는 독물을 잡아먹고 운기행공을 한다면 만독불
침의 신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맞아요, 하연인 이제 살아난 거예요. 다시 꿈을 꿀 수 있단 말이
죠."
백산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린 주하연은 그 자리에서 빙빙 돌며 소리
를 질렀다. 빙천수라마공이 백산에게 있다는 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지극화정균만 있어도 몸을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을 터인데 음양지
극천까지 존재하고 있다.
재빨리 두 연못 사이로 다가간 주하연은 지극화정균을 한 움큼 뜯었
다. 금방이라도 핏물이 배어날 듯한 붉은 지극화정균을 홀린 듯 쳐다
보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어? 어? 내가……."
오물오물 지극화정균을 씹어먹는 주하연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산은
화들짝 놀랐다.
강시로 제강된 후 처음으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치밀었던 탓이었다.
"별일도 다 있군."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입안에 침조차 고이지 않는 시체가 눈앞의
음식에 욕구를 느끼다니, 머리와 사지를 제외한 몸통은 여전히 강시가
아니던가.
"이건 약이야 약, 약을 맛으로 먹는 사람이 어딨어? 근데…… 정말
맛있다, 이거. 나 물 속에 들어가야 하니까 몸 좀 돌려봐!"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듯 지극화정균을 삼키던 주하연이 손가락을 까
딱, 하며 말했다.
"정말 맛있는 거야 아니면 놀리려고 하는 말이야?"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백산은 몸을 돌렸다.
"그동안 많이 굶었잖아. 10일을 굶었는데 뭔들 맛이 없을까. 됐어요
이제."
주하연은 양천(陽泉) 위로 목만 내놓은 자세로 물 속에 몸을 담갔
다.
"안 뜨거워?"
주하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백산은 고개를 돌리자마자 찔끔 몸
을 틀고 말았다. 물이 너무 맑은 탓에 주하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또 얼굴 외면하고 말한다. 내가 그랬죠, 남하고 말할 땐 언제나 시
선을 마주쳐야한다고. 그래야 신뢰가 쌓이는 거라고요. 날 여자로 생
각하지도 않는다면서 왜 그런지 몰라. 그리고 여기 얼마나 시원해요?
여기서 견디기 힘들면 음천(陰泉)으로 넘어가면 되니까. 오빠도 몸이
나 만들어요. 음양지극천은 나뿐만 아니라 오빠에게도 필요한 곳이라
고요."
"알았어 임마!"
빽 고함을 지르며 백산은 음천으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그녀의 눈
을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음천은 깊었다. 끊임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던 백산의 신형은 30여장
깊이에서 멈췄다. 위쪽보다 다소 넓은 바닥에는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음한지기가 흘러나오는 구멍인 듯 하였다.
"일단 단전부터 되살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백산이 무공을 되찿는건가요
즐~~~감!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하고 사랑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