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qyb92SpH3U?si=JvKATH8Ew0Aj7UEC
Franz Schubert, 15 Lieder, a tribute to Gundula Janowitz
군둘라 야노비츠 (Gundula Janowitz 1937~ 소프라노)
사진을 통해서 느껴지는 야노비츠의 인상은 영락없는 독일여성의 전형이다. 어찌 보면 딱딱한 인상이면서도 또 다른 쪽에서 보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여인이다. 음반에서 만나는 맑고 단아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벨칸토 발성과 그녀의 사진 이미지는 왠지 엇갈린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노란 빛 디스크 커버, 도이치 그라마폰(DG) 음반에서 만났던 야노비츠의 그 황홀하도록 영롱했던 음악들도 이제는 '옛 것'으로 서서히 모습이 퇴색되는 느낌이다. DG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조차도 그녀의 이름이 이미 등장하지 않는 것에서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독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야노비츠의 그 매력적인 음악들, 특히 그녀가 발표한 수많은 종교음악들을 생생하게 마음에 담고있는 열렬 팬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37년 8월 2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가족들이 그라츠로 이사했기 때문에 그라츠의 스타이어마르크 주립 음악원에서 후베르트 테너에게 성악을 사사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뒤엔 한동안 음악을 떠나 속기사와 타이피스트로 일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가운데 1959년, 카라얀에게 발견돼 빈(Wien) 국립 가극장의 연구생이 됐다. 데뷔 작품은 모차르트의 '휘가로의 결혼'이었는데 그가 노래한 역은 바르바리나였다. 1960년,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처음 출연했고, 빈에서는 '피델리오'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라보엠'에 연속 출연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1963년, 빈 국립가극장의 정단원으로 계약했고, 그 해에 카라얀이 주제 하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초빙됐다. 1963년∼1966년까지 빈과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했고, 1966년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와 계약했다.
1967년, 카라얀이 연출하고 지휘한 잘츠부르크 부활제음악제의 '발퀴레'에서 지그린데를 노래해 격찬을 받았다. 같은 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같은 역으로 등장했으며, 1969년엔 베를린과 빈에서 '시몬 보카네그라'의 아베마리아를 노래했다. 1970년대에도 그녀의 눈부신 오페라 활동은 계속됐지만 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소리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성악가로서 그의 쇠퇴시기는 지나치게 빠르기는 했지만 1989년까지 레코딩 활동을 계속했을 뿐 아니라 1990년대 초반까지 연주활동도 지속했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마농 레스꼬'·'토스카' 등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바그너 등 독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품들과 다양한 배역들이었다. 오페라 못지 않게 콘서트 솔리스트로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는데 가곡과 종교음악에서 엄청난 양의 음반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카라얀이 지휘하는 수많은 연주회와 레코딩에서 독창자로 활약하여 눈부신 진가를 발휘하였다.
야노비츠의 음반은 수없이 많다(총 111종). 카를 뵘(Karl Bohm)이 지휘한 바그너의 '로엥그린' '발퀴레' '신(神)들의 황혼', 카를로스 크라이버가 지휘한 베버의 '마탄의 사수',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베토벤의 '피델리오', 카를 리히터(Carl Richter) 가 지휘한 글룩의 '올페오와 에우리디체', 카라얀이 지휘한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 바흐의 '마태 수난곡' '미사 b단조', 베토벤의 '장엄미사' 등이 유명하다. 글: 곽근수
https://youtu.be/2modSLjiXRQ?si=LKhdSJeYbFRq8Nh7
Schubert: Der Hirt auf dem Felsen, D.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