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라니…? 재민이가 없어진 걸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시죠?”
이미 모든 걸 눈치챈 지운이였다.
지운과 눈이 마주친 은경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다.
“삼촌…”
재민이도 놀랬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지운을 바라보았다.
“둘이서 사람 여럿 바보 만들었군…”
지운이 주저 앉아있는 은경을 버려둔 채 재민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나왔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고 있는 은경에게 지운이 다가왔다.
“서로 해야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제 사생활이예요… 상관하지 마세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자 지운이 했던 말들이 다시 생각나는 은경이였다.
말이 뾰족하게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썩 떳떳할 만한 사생활은 아닌 것 같은데…
유치원에서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재민이 만큼이나 은경때문에 맘이 불편했던 지운이였다.
해야할 말이 있는 건 사실 자기 자신이였기에…
좀 치사하긴 하지만 은경의 정체를 알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대로 하세요… 전 더 이상 실장님 말 겁나지 않거든요…!!”
지운의 팔을 툭 스치며 지나가려는 은경이였다.
“사과할 기회는 줘야하는 거 아닌가?”
지운의 말보다 지운에게 잡힌 손목에서 나는 열때문에
은경의 삼장이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삼겹살은 어디서 먹는거지?”
요가 강습이 끝나고 나오는 은경앞으로 불쑥 나타난 지운이 뱉은 첫 마디에
은경은 절로 웃음이 났다.
“지금 그걸 사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받아주면 나야 고맙고…”
“근데… 왜 실장님 말이 아침부터 짧게 느껴지는 거죠?”
“내가 굳이 차은경씨한테 존대를 할 이유가 없더군…
나이도 그렇고, 하는 행동을 봐서도 그렇고… 밥이나 먹으러 가지…”
지운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은경은 그 동안 자신이 가슴앓이 했던 시간에 비해
너무 쉽게 지운을 용서해버리는 자신을 느끼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렇게 조그만한 잎파리에 뭘 그렇게 많이 올려?”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자 은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추에 깻잎을 올리고
고기는 물론 파무침과 마늘등 쌈에 올릴 수 있는 것들은 죄다 올리고 있었다.
그걸 본 지운이 놀란 듯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쌈이라는 게 터지게 싸서 한 입에 쏙… 이렇게 먹어야 되는 거거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경의 입안으로 그 커다란 쌈이 쑥 들어가 버렸다.
입안 가득 담긴 쌈을 씹으면서 또 다른 상추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쌈을 싸는 은경이였다.
그리곤 말은 못하고 그 쌈을 지운에게 불쑥 내밀었다.
난처해하는 지운에게 얼른 받으라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은경이였기에
지운이 하는 수 없이 그 쌈을 받았다.
이번에 고개짓을 해가며 입에 쌈을 넣으라고 독촉하는 은경이였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힘겹게 쌈을 입에 넣은 지운을 보자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지는 은경이였다.
“어때요? 맛있죠? 삼겹살은 고기맛도 고기맛이지만 이 쌈맛에 먹는 거라니까요…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하고 사이다 한 병요…!!”
은경이 주문하는 소릴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지운이였다.
지운이 왜 그러는지 알아챈 은경이 씩 웃어보였다.
“오늘은 술 안 마셔요… 전 사이다, 실장님은 소주…
실장님을 위한 거에요… 삼겹살에 소주라는 유명한 말도 모르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이 있어?”
“거봐…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말하는 사이 소주와 사이다가 탁자위에 올려지고 은경이 지운의 잔을 채웠다.
“왜… 지난 번처럼 안하지? 매번 그렇게 해서 뚜껑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은경이 소주병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지운이 소주를 들어 팔꿈치로 병아래를 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 그거… 그냥 재미삼아 해 본거예요… 요즘은 안 그래도 되거든요…
설마 어디가서 그렇게 소주병 딴건 아니시죠?”
은경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지운은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디가서 소주 마실 일이 어딨어?”
약간은 더듬는 듯 힘겹게 말을 마친 지운이 소주잔을 비워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유치원에 다닐 생각인가?”
소주 병이 바닥을 드러낼 쯤 지운이 물었다.
쌈을 막 목구멍으로 넘긴 은경이 가만히 지운을 쳐다보았다.
“이번 달로 유치원 그만 둬야해요… 아는 언니 대신 보조로 했던 일이라서…”
“그때까지 그냥 비밀로 해달라… 뭐 그런 말이 포함된 것 같군…”
“와… 술이 들어가니까 눈치도 생기셨나봐요… 제 깊은 말뜻을 다 이해하시다니…”
은경의 말에 지운은 피식 웃고 말았다.
“유치원 그만두면 그럼 앞으론 뭘 할 생각이지?”
“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스포츠센터에서 강습하는 일들이라 별수 있나요?
하지운 실장님께 로비를 해야죠…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껏 싸던 쌈의 두배는 되 보이는 쌈을 싼다 했더니
그걸 지운 앞으로 쑤욱 내미는 은경이였다.
“제 마음을 가득 실어서 절 좀 잘 봐달라고 드리는 거예요… 이거 로비성 뇌물이니까
그냥 꿀꺽 하시면 안되요… 그러기만 해 보세요… 검찰에 확 찔러 버릴거니까… 흐흐”
“이렇게 큰 걸 어떻게 그냥 꿀꺽 하겠어…”
지운는 입가에 웃음을 한 가득 물고는 은경의 쌈을 받았다.
“너 요즘 연애하니? 왜이렇게 늦게 다녀?”
오늘따라 현관까지 나와 자신은 맞이하는 혜은이였다.
“여태 안잤어?”
신발을 멋자 혜은이 은경을 끌어다 쇼파에 앉혔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조금은 심각해 보이는 혜은의 모습에 은경이 예의상 물었던 건데
혜은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떡였다.
“은경아… 어쩌니… 니 형부, 고향에 발령났어…”
“고향? 강원도로? 왜 갑자기… 그리고 지금 학기 중이잖아…”
“그게… 내가 애기 갖으면서 혹시나 하는 맘으로 니 형부보고 신청해보라고 했던건데
이제야 발령이 났다… 사실 나도 계속 일해야 하는데 서울엔 애 봐줄 사람도 없고…
친정도 시댁도 다 그쪽이니 어떻게 아쉬운 사람이 옮겨야지…”
“그랬구나… 그럼 잘 된거네… 아… 내 걱정은 하지마… 내가 집 알아볼께.
당연히 이 집 빼줘야 할 거잖아… 나 혼잔데 어디 살 데 없겠어?
지금까지 언니랑 형부가 나 공짜로 재워준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감사해…”
은경은 자신에게 미안해 할 혜은의 마음까지 헤아려 편안하게 웃어보였다.
“니가 어디 공짜로 지냈어? 내가 전세금 받으면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해 줄께…”
“언니… 됐어… 진짜 그동안 신세진 것만으로도 충분해… 언니 맘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알았지? 나도 들어간다…”
혜은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은 그렇게 한 은경이였지만
방으로 들어온 은경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은 돈은 죄다 아빠 빚갚는다고 다 날렸고
유치원까지 그만 두면 수입이 턱하니 줄어들 판이였다.
“차은경 선생님… 인사하세요… 이쪽은 차선생님 후임으로 오실 정선생님…
우리도 차선생님이 그만 두신다니까 아쉽긴 하지만
애들한테는 선생님의 공백이 생기면 안되니까…
오늘부터 인수인계한다 생각하시고 잘 좀 가르쳐 드리세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은경은 계속 유치원에 다닐 수 있을 지 물어볼 생각이였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원장이 새로 올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는 게 아닌가…
“네… 그럴께요…”
기운빠진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선생님… 저 선생님 누구예요?”
해바라기 반으로 정선생을 데리고 가는 중에 재민이가 은경에게 달려와 물었다.
“어… 재민아… 저기… 사실 선생님이 이번 달까지만 유치원에서 일하거든…
선생님대신 재민이랑 우리 해바라기 반 친구들 가르쳐주실 새로 오신 선생님이야…”
재민이도 알고 있던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하기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닌 은경이였다.
은경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재민이였다.
“선생님이 원래 이혜은 선생님 대신 세달만 있기로 했었거든…
재민이도 그건 알고 있었지?”
“근데 왜 이혜은 선생님이 아니라 저 선생님이 와요?”
퉁명스럽기 그지없는 재민이의 말투였다.
“아, 그건… 이혜은 선생님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셨대…
그래서 저 선생님이 오시게 된거야…”
“그럼 선생님이 계속 계시면 되잖아요!!”
약간은 신경질적이기까지한 재민이였다.
“재민아… 우린 유치원이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잖아… 그치?”
재민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은경이 재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매일 볼 수 없잖아요!!!”
결국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차오르는 재민이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재민이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
죄송함을 두 편으로 살짝 무마시켜 보려구여...
너그럽게 보아주소서...^^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중편 ]
두 얼굴의 그녀 [21]
라인강의기적
추천 0
조회 1,341
06.05.30 16:56
댓글 3
다음검색
첫댓글 재밌어요~ 그렇지만,,, 짧아요~ 담편 기다리고 있을게여~ 빨리 오세요^^
넘~~오래간만이예요...^^매일매일 얼마나 기다렸던지..벌써 담편이 기다려지니...
님 얼마나 보구 싶었는데요~~~ 넘 반가운거 말 안해두 아시죠??? 담편은 언제 올지 눈 빠지게 기둘리구 있답니다~~~ 벌써~~~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