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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서머나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위드
성령 충만
이번 시간에는 성령 하나님과 성부와의 관계, 그리고 성령을 받았다, 성령 충만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우선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신학에서는 인간을 이야기할 때 영과 육, 또는 영, 혼, 육으로 나누죠? 제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영이 있습니까? 예, 인간에게는 영이 없습니다.
인간을 영과 육, 또는 영, 혼, 육으로 나누는 것을 이분설, 삼분설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인간을 그냥 몸, 육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냥 육체예요. 영이 없단 말입니다. 창세기 3장에는 이런 인간들에 대한 저주가 나옵니다.
(창세가 3장)(개역개정)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이 하나님과 분리가 되는 순간 그냥 흙이 되어버립니다. 숨 쉬고 움직이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냥 죽은 흙이에요.
천주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 일부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인간론이 아닙니다.
그럼 성경은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요?
(창세기 6장)(개역개정)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 수명이 백이십 년이라는 뜻이 아니라 노아가 방주를 다 짓기까지의 날 수가 백이십 년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육신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의 성령은 어떻게 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그것은 이 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가 부어져서 산 생명체가 되는데(창 2:7), 여기서 생기는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시는 숨, 호흡, 생명의 기운 같은 것이고 그 상태를 혼이 있는 산 존재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네페쉬입니다. 그리고 그 혼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서 하나님과 교통 교제가 가능하게 된 것을 영적 존재라고 합니다. 이것을 사람이라고 해요. 아담이라는 말 자체가 아다마(흙)에 피가 부어짐입니다. 하나님의 피가 부어져서 비로소 산 존재인 것이 아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냥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 생명 있는 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짐승이에요. 전도서에도 나오죠?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은 그냥 짐승이에요. 그래서 땅 속에서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지옥이죠.
성경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두고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없는 것,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지옥은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인간은 흔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몸이 있고 혼백이 따로 있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이 떠나간다고 하고, 공포영화를 보면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무서웠던 영화가 ‘월하의 공동묘지’였습니다. 그것 보고 며칠 잠을 못 잤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거나 한이 많은 귀신은 찾아와서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은 그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런 잘못된 오해가 구약에도 나옵니다.
사무엘상 28장에 보면 사울이 접신한 여인을 찾아가서 죽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 역시 세상교회들이 잘못된 해석을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혼령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라는 데에 초점이 있습니다. 무당 여인이 본 것은 사무엘의 혼이 아니고 엘로힘입니다. 엘로힘은 하나님이에요.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내라고 하자 엘로힘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이름으로 타락한 인간인 사울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신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만큼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판받아야 할 이스라엘이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신접한 자들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 좋은 말로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꾀하는 자들이 세상 교회에 가득합니다. 소위 말하는 영성훈련, 관상기도, 성령집회 신사도운동 등을 통해서 신의 경지를 넘보는 자들입니다.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양복 입은 무당으로 나타났단 말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분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전인적인 한 몸으로만 이야기를 합니다. 원래 히브리인들의 인간관도 영과 몸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분설, 삼분설은 고대 헬라의 스토아 철학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를 영이 기거하는 집이라고 본 겁니다. 영을 가두는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헬라철학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영이 몸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 헬라 스토아 철학입니다. 그러니까 영은 선한 것으로, 육은 악한 것으로 구분을 했는데, 이런 철학 사상이 초대교회 때부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지주의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경도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릇된 번역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영, 혼, 몸, 육(육도 같은 육이 아니거든요)을 혼용해서 함부로 번역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원어를 잘 안하려고 합니다만, 르와흐, 프뉴마, 푸쉬케, 소마, 사륵스, 네페쉬, 네솨마 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보니 막 혼용을 했습니다. 당시 성경을 번역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는 언어학자들이었습니다. 성령론과 인간론은 조직신학적으로 분리해서 파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인간(사람)이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해부터 바르게 되어 있어야 성령이 일하시는 내용을 이해할 수가 있는 거에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첫 창조와 새 창조 사이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제가 지난 시간에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 하나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의 진술에 근거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영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어떤 설교자도 여러분들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설교자는 함께 여행하는 가이드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론을 하면서 다른 것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불을 받는다든지 방언이 터지고 뒤로 넘어지고 금이빨 만들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증언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14:26)(요16:14-15)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성경 말씀을 진리로 가지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이 무엇이며, 그리고 성령께서 그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가지시는가 하는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고 생명이니라”... 예수님에 관한 66권의 말씀이 영이고 생명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진리로 가지게 되면.. 그러니까 말씀은 지키는 게 아니라 말씀대로 살라는 게 아니라 말씀을 여러분의 생명으로, 심장으로 가지게 되면 여러분이 산존재,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겁니다. 아들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성경말씀은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탐심을 부추기는 문자, 계명에 다름 아니란 말이지요.(롬7:5-6)
그래서 성령께서 그냥 내어버려두시면 모든 종교인들은 성경을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자기 가치를 챙기기 위한 경전으로밖에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성경은 심판의 책이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이 어떻게 예수님의 주되심을 증거 하는지를 자기 교회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알게 하신 그 예수, 십자가지신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은 다 가짜입니다. 성령집회니 산 기도회니 그런데 가서 아무한테나 안수 받고 기도 받고 하면 큰일 납니다. 아까 고린도서에서 읽었듯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진리의 영을 받은 것이고, 진리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내어버려두신 사람은 반드시 거짓 것을 믿게 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이 몸, 아담에게서 난 이 몸은 절대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좋아하지도 않고 십자가 지신 예수를 영접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저주할 자라 하게 됩니다. 우리 몸이 그런 몸이에요. 제말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명시를 하고 있어요 (요1:10-13)
보편적 인간들이 거짓 것을 믿게 되는 것을 두고 성경은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심판을 받게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혹의 영, 미혹의 역사를 보낸다고 하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개역개정)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여 하심이라
미혹의 역사를 누가 보낸다고요?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하죠? 이 말은 일부러 보내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내어버려두시면 세상 신의 미혹에 모두 한 줄로 서서 끌려가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그 세상신의 역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진공청소기로 빨아 당겨지듯이 끌려가는 거예요 (고전12:2) 하나님의 저주 아래 태어난 모든 아담은 땅과 결합된 채 태어나서 그 땅에 갇힌 인생을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런 그들을 땅으로부터 강제로 찢어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파요...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를 근거로 땅에서 분리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잖아요. 너희들은 모두 마귀의 세간(가구)들이라고... 마귀 집에 붙들려있는 가구란 말입니다. 가구가 자기 혼자 걸어 나갈 수 없잖아요. 예수라는 강한 자가 와서 그 세간을 탈취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약속, 씨가 심겨진 자들은 때가 되면 그 씨가 발아를 하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일을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주어져서 너희들은 이미 그 어둠의 권세, 사망의 권세로부터 옮겨진 자들인데, 그 옮겨진 것이 어떤 하나님의 희생과 섬김으로 옮겨졌는지를 배우는 기간이 성도들의 인생이라는 겁니다. 흔히 세상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 잘 믿어서 천국 가고 상급 받고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요. 예수를 믿어도 내가 믿고 구원을 받아도 내가 받는 그런 건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행위라고 합니다. 영원 전에 이미 약속 안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만 세상 속에서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령이 오시면 우리 안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몸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새 피조물로 지어져 가는 새사람 사이의 충돌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 우리 옛사람은 날로 후패하나(무너져 내리나) 그 완전히 무너져 내림 위에 새 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지어져 간다고 합니다. 세상 건축자들이 버린 모퉁이 돌이신 예수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 한 몸으로서 구원이에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정익제 김진규가 따로 받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구원이에요.(이부분은 대전강의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미 너희들은 그 흑암으로부터 하나님의 빛의 나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지만, 그게 이미 묵시 안에 완성되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너희들의 질그릇(티끌) 안에 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첫창조가 필요했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역사, 즉 구속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능이란 이미 창세전에 약속하신 그것, 이미 이루어진 그것들을 그 약속대로만 다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다 이루어진 약속을 그대로 선물로 담아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반드시 다른 영의 역사가 함께 등장합니다. 빛은 항상 어둠을 배경으로 하니까.
(역대하 18장)(개역개정)
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0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21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23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
재미있죠?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실체예요. 어떤 분이 말하길 소위 말하는 정통이라고 하는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이 제대로 배웠는데, 배운 대로 하지 않아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신학이지 십자가 복음이 아니에요. 영적인 것은 영으로만 안다고 했잖아요 사람의 학문이 육을 영으로 바꾸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학이 진리가 되어버린 현실, 그게 미가야 때처럼 거짓선지자들이 난무하는 이땅의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영, 악한 영도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뺨을 맞는 것은 미가야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영적 존재의 지배를 받고 있는 몸입니다. 이게 육체가 된 인간이에요. 우리의 생각에는 인간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그냥 그릇일 뿐입니다. 무엇이 담기느냐, 어떤 영(말)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서 그의 영원이 결정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예수님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창조된 자들이지 자기를 위해서는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게 참 힘든 일이죠. 우리는 본성적으로 나만 사랑하고 내 인생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때 행복을 느끼거든요. 내가 원하는 인생을 내가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착착 이루어져 가는 것을 성공이라 하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릴때부터 배운게 그거잖아요 boys be Ambitious!
그런데 성령께서는 너 그거 아니야.. 그 길로 가면 죽어.. 너는 너를 위해서 살도록 지어진 자가 아니야.. 너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너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 지어진 자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힘든 거예요. 세상사람들 같이 내 인생 내가 노력한만큼 결과물도 내가 가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거든요 내 안에서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단 말입니다. 그거 없으면 성도 아니에요, 누가 막 사는게 복음이라고 그따위 헛소리를 하냐고...
우리가 어렸을 때 몸에 좋다는 건 안 먹고 불량식품 사먹고 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은 입을 억지로 벌려서라도 꼭 먹어야 할 것을 집어넣으십니다. 우리가 원하고 달려가고 싶은 길은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으시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의 돌보심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도 사용하시고 거짓말하는 영도 사용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열심히 즐겁게 종교생활을 하던 그곳으로부터 밀쳐냄을 당하게도 하십니다. 모두 실감하시죠? 그게 모두 주께서 일으키시는 사건입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에요. 욱여쌈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일이 없으면 우리는 그냥 그 자리에서 재미있는 종교생활 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겁니다 마치 난로 위 주전자 안에 개구리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그런데 그 세상이, 그 종교의 신전이 우리를 토해내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내힘으로 나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없는 자라는 정체성을 계속 확인을 시켜주십니다. 용서와 은혜의 필연성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구원은 우리 손을 떠나 있음을, 우리 소관이 아님을 차츰 알아가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자기 일을 쉬게 되는 거에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만약 주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기도대로 다 들어주셨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정말 날로 복에 복을 더하신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저먼 그런 건가요 그래서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에요. 매일 이런 말이나 하니까 교인들이 다 나가지 교회에 붙어있겠습니까? 우리 교회만 해도 거쳐간 사람들 상당히 많거든요.
에베소서에 보면 성도는 창세 전에 사랑하시는 자 예수 안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흙, 티끌에게 아들의 피가 부어져서 아들들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창조의 완성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이고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새 창조가 이미 첫창조 안에 이루어졌고,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되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4장)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그 역사에 피조물인 인간이 도움이 되거나 협조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개혁신학에서 말하는 성령 받아 거듭난 자의 하나님 나라 확장 같은 건 여전히 인간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인본주의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성령을 그런데 써먹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교회에 오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자기 몸 된 교회에 입혀주시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지금도 여러분에게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성령 세례를 받은 성도라면 성령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여러분이 원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울트라 종교인이 되게 해주시지도 않습니다. 가만있어도 그렇게 탐심이 솟아나고 정욕이 솟아나는 육신을 예수의 죽음,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를 통해서만 자기목숨을 미워하고 부정하는 믿는 자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건들이 여러분의 인생에 없거든 자신이 진짜 예수를 믿고 있는지를 한 번 돌아보셔야 합니다. 씨심는 죽음에 넘겨지는 그 성령의 일이 반드시 있어야만 우리가 또한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자유입니다. 내가 나를 놓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죽거나 살거나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내 인생 내가 살아봤지만, 죽을 짓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죽이시든 살리시든 주의 뜻대로 하세요.. 그것만 선입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자리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 자리입니다.
특별한 것 없습니다. 인생 살면서 세상에 남길 것이 뭐가 있습니까? 불살라질 세상에 아무것도 남길 거 없습니다. 우리는 이 고백 하나 하고 가는 거예요.
이런 고백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로마서에서는 산 제물의 삶, 산 제물의 영적 예배, 새 생명으로 행하는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바울이 그러잖아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나의 시작과 완성이 그 십자가 안에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믿어서 믿는 게 아니라 그 아들의 믿음 안에서, 다른 말로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뭐가 더 필요합니까?
이런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은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니에요. 십자가라는 사랑... 우리가 아니어도 아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 스스로 충만치 않기로 한 그 사랑 그 창조적 사랑 그거 아는 게 성령충만이에요. why me
에베소서의 말씀이에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유를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아니면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이 되시지 않기로 하셨단 말이에요. 이것만 사랑이에요. 이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요한1서에는 뭐라고 합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또 원래 없음인 티끌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는데, 그 피로 살려내신 사랑만 사랑이에요. 그 피가 부어져야 사랑이 뭔지 눈이 열리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그것만 사랑이에요 다른 사랑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옆에 있는 분에게 인사하면서 형제님, 자매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그러라고 하는데 사랑이 뭔지나 알고 사랑을 해야지요. 하긴 몇 년 전에 서로 사랑하자고 코인사기단을 만들어서 대구에 캠프를 차린 사람들도 있었는데, 남의 주머니에서 돈 훔치는 게 서로사랑이라고 하니까 참 할 말이 없습디다만...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으면 사기꾼들까지도 예수 팔고 성령 팔고 사랑을 파는 짓을 해요. 그럼에도 그것을 꾸짖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그런짓하면 안된다고 하니까 나보고 강 장로는 왜 사랑이 없냐고 하데요 ㅎ 그렇게 죄에 대해 꾸짖고 아니요 하는 게 사랑인데 말이죠...
성경이 말하는 성령을 받았다는 게 뭔가 하면 ‘나는 아니요 당신이 하나님 맞습니다.’입니다. 간단하죠? 그런데 이 말 한 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하나님의 열심이 자기 성도들을 그 자리로 이끌고 갔는지 모릅니다. 선악과 입에 물고 태어난 우리에게는 그런 고백이 나올 수가 없으니까. 당신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그 고백,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으신 사람은 그런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그 자리입니다. 그 자리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일을 성령께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영원전에 피뿌림을 얻은 아들의 십자가 아래에서 천국 갑니다. 그 은혜만 꼭 붙들고 가는 거에요.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날마다 그 자리로 내려가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감동 감화요 성령 충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것들을 채우시고 나의 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을,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는 성도가 맞구나.. 할렐루야~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에서는 흔히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눈물 콧물 짜면서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지요. 그럼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고 하는 일마다 막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저주받은 건가요?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생을 마치는 그때에도, 그렇게 관제로 부어지는 그때까지도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면 불간으한 죄인의 괴수가 맞습니다.. 하는 고백을 했는데, 이 고백이 성화의 절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충만한 바울의 찬송이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을 빈틈없이 인도하신 그 성령의 돌보심이 아니면 우리에게는 그런 고백이나 찬송이 나올 수가 없단 말입니다. 우리 육이 원하는 하나님, 나를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나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을 성령께서 지금도 자기성도들에게 실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로 말미암고 주를 위해 있고 주께로 돌아가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에서 말했던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했던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세상은 더 좋아합니다. 내 가능성을 챙겨주고 내 가치를 챙겨주는 그런 예수를 섬기는 온갖 종교 행위에는 절대 버릴 수 없는 ‘나’라는 우상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는 절대 우상숭배를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성령의 개입이 없는 그들에게는 십자가까지도 우상이에요. 달리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섬기는 것들은 다 우상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우상이라는 말 앞에 항상 ‘자기를 위하여’ 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자기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일이란 말입니다. 그 책망이 없으면 우린 우리가 조작한 죄, 의, 심판밖엔 알지 못해요.
서울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일하게 새벽기도에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지요. 그런데 그런 짓들이 십자가의 원수라는 걸 본인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열심을 내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미혹의 영을 보내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시고 또 열심을 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 받아야 할 사람은 반드시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완전성이라는 말은 그 심판까지 포함한 완전성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옥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거예요. 지옥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구원은 단순한 구원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에게 심판의 당위성이라는 것까지 알게하는 구원이에요. 왜 하나님이 아들의 피를 흘려야 할 만큼 죄인인가를 모르면서 예수 믿으면 다 가짜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에게 있어서 죄란 하나님의 의를 알기 위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거룩한 죄에요. 성령이 알게하시는 죄는 그런 거란 말이지요.
왜 십자가인가? 왜 십자가 은혜인가? 왜 나는 예수의 피 흘리심이 아니면 안 되는가를 아는 자가 성령의 책망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입니다. 십자가의 영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걸 가지고 빌립보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것. 다른 게 영광이 아니에요. 백억, 이백억짜리 예배당을 지어 바치는 것이 하나님 영광 아닙니다. 세상 오지에 가서 선교하다가 죽는 것이 영광 아니에요. 예전에 어떤 교회처럼 이슬람지역에 가서 참수당해 죽는 거 잘못하면 개죽음 되는 수가 있어요 주님이 말슴하신 땅끝은 지금 내가 선 자리가 땅끝이란 말에요. 먼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그 이름 앞에 내 몸과 마음이 전인적으로 무릎 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잖아요 그런 성도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예수이름 앞에 무릎꿇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아담에게서 난 우리에게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던 인간도 자기 외에 다른 존재에게 전적으로 자기를 의탁하는 게 불가능해요 다들 선악과 먹고 신이 되어버렸으니까..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십자가 지신 저 분이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처럼 성령께서 눈을 열어 보여 주실 때 알게되는 진짜 하나님이에요
반면에 악한 영 마귀도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성령의 개입이 없이 내어버려 두시면 모든 인간은 악한 영이 끄는 대로, 우상이 끄는 대로 죄의 노예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은사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2장 서두의 말씀은 우리가 반복해서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개역개정)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저주 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사도가 분명히 못을 박아놓았지요 성령으로 하지 않고선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 !
그러니까 세상 교회에서 전도주일 전도훈련이라고 해서 동네사람들을 끌어다가 예배당에 앉히는 것이 얼마나 눈가림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짓인지를 알아야 하는 거에요. 예수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할 수도 학습할 수도 있지만 그분이 나의 주님이 되시는 관계는 세상교회가 만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걸 하겠다고 온갖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자훈련을 하고 그러는 게 하나님의 원수 된 교회인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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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서머나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