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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 장씨라서 인동할매
마을 민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한 대부분 두 사람이 3만원이고 한끼 식사는 한사람당 5천원씩이었다. 첫날 들른 인동할매집도 그랬다. 금계에서부터 걸어왔다는 세 친구분은 성당친구분들이신데
할매들이라고 지칭하셔서 깜짝 놀랐다. 나이가 60세 전후라고 하셨다. 모두 젊고 고우셨다.
그런데 이 분들은 또 인동할매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셨다.
주인이신 인동할매도 딱 60세이니 또래인 셈이다. 외모상으로는 조금 차이가 났다. 이야기 나누다 보니 그 삶의 이력에서 나오는 지혜나 이해심 같은 것은 비슷했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와 동네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곤하던 아늑한 마음으로 네 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내 친구는 먼저 오신 분에게 가이드북을 빌려보고 거기 붙인 포스트잇에 적힌 꼼꼼한 지시사항들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워낙 '웰빙'과 '잘 늙어가기'에 관심이 많은 친구이니까, 세 분이서 그렇게 길을 나설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고 했다.
수박도 시원했지만, 양념찧는 소리가 콩콩콩 울리고 맛있는 냄새가 확 끼친다음 김이 훅훅 나오는 밥상은 얼마나 대단했던지, 한 사람의 수고로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푸근해졌다.
모두 하나라도 흘릴새라 알뜰하게 먹었다.
밥맛이 특히 좋았는데, 쌀이 떨어질 때마다 인동할매가 직접 도정기로 찧는다고 했다.
고기찬은 늘 떨어지지 않게 하는데 마침, 떨어져서 저녁에 택시기사에게 부탁을 해 와서 사온 흑돼지 볶음이 맛있었다. 상추를 밭에서 뜯어서 수북하게 씻어주셨는데, 서울에서 상추값이 얼마나 비싸졌는지 집에 와서야 알았다. 반찬들은 시골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대로 슴슴하고 맛있었다.
모두 막걸리도 한 잔씩 먹었다.
마음들이 푸근했는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여행길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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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같은 이야기지만, 다 풀어서 쓴다면 이런 이야기다.
열렬한 구애끝에 남편과 결혼한 이 분은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휴가를 앞둔 어느날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부터 휴가라는 사실이 들통이 난다.
그날 남편이 퇴근을 한 것처럼 집에 왔을 때, 모든 이야기들이 다 밝혀진다.
서울로 짐을 싸서 나왔지만, 친구들이 무슨 짐을 그렇게 크게 싸서 나오느냐고, 돈될거만 챙겨오지 하고 말할 정도로 숙맥이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한 여자였기 때문에 이 분은 아이들을 위해서 참고 살기로 결심한다. 과거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남편은 주말에만 집에 왔다. 남편이 없을 때는 참을 만했지만, 집에 오면 더욱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신앙에 의지했다.
남편의 그 여자가 사는 집앞까지도 찾아갔지만 만나진 않았다.
남편이 차려준 가게에서 그 여자의 남편도 멀쩡히 있었지만 무능한 사람이어서 모든 사실을 알고도 그냥 살고 있었다. 남편이 그들의 아이들까지도 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이 분의 아이들도 만족할만하게 잘 자랐다.
남편은 '당신이 나를 버렸다'고 하면 지금도 화를 낸다고 했다. '어째서 내가 당신을 버렸느냐'고 그러면 이 분은 할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이십년간 각방을 써왔는데 지금은 미워하는 마음은 없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다고 했다.
그냥, 열심히 성당에 다니면서 남편에게 나이 70까지는 살아줘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기가 막힌 이야기였지만, 나는 요즘 자주 읽게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생각했다.
이 분같은 경우를 상담한다면 스님은 분명히 말할 것이다.
"다 이익때문에 사는 것 아닙니까. 참고 살만하면 고맙습니다 하고 살고 그렇지 않다면 안녕히 계세요. 하고 돌아서세요."
그런 법문을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분은 처음 보았다.
2년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의 바람상대인 여자분을 찾아갔는데 그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만 왔다고 했다. 그리고 물을 한 번 휙 끼얹고는 이제 깨끗해졌으니 잘먹고 잘살라고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친구분들이 웃었다. 세 분이 다 평화로와 보였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다는 것, 조분조분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렇게 힘겹게 살아서 뭔가 나눠줄 이야기가 생긴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그분이 떠나가면서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건강해보이셔서 좋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시니까 멋있어 보인다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결국, 젖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젖어서 매몰되지 않는다면, 만족하고 평화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다 괜찮다.
"합방하면 다시 올게요." 하는 우스게 소리를 남기고 세 여자분이 다음날 아침 씩씩하게 길을 떠나셨다.
세 분이 길을 떠나자 마자 비가 후두둑 내려서 나이 사십에 남편을 잃고 그 아까운 음식솜씨는 밥장사를 하면서 풀고, 부녀회장도 하고 봉사도 하며 살아왔고, 둘레길 손님들도 많이 와서 기뻐하시니 날마다 행복하다고 하는 인동할매는, 우리에게 비옷을 챙겨주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세 분에게 비옷을 전해주고 오시는 길에 길 위에서 우리를 불러 손을 흔들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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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코스 운봉-인월 구간 9.4km 예상시간 4시간
조선시대 관로가 지나갔다는 길이다.
운봉들녘을 따라 서북능선과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라고 했다.
운봉읍으로 가는 동안 약초들을 기르고 있는 산림청의 밭들도 보고 학교가 있는 읍길도 구경하며 걸을 수 있었다. 가게터였는데 텅빈 집들도 많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는 거진 꽃들이 보였다. 밭 앞에 꽃을 심은 마음이 좋았다.
가다보니 뜻하지 않게 송흥록생가와 박초월 생가가 있어서 들어가서 흥보가 한대목을 듣고 나왔다.
박초월의 흥보가...놀보가 흥보가 부자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나는 권주가 없으면 술을 못마시니 네 아내가 곱게도 차려입었겠다, 권주가나 한 번 부르라고 심술을 부리는 장면이었다.
옛날 사람들의 집들은 작고 아늑하다.
생각해 보니 남원이었다.국악의 성지라고 할 만한 고장이 아닌가. 다 지리산의 기운탓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항상 길가에 핀 꽃들과 맑게 흐르는 물과, 그리고 먼 산의 정기. 그것도 모자라 아마도 명인들은 저 산속으로 깊게깊게 산공부를 하러 들어갔겠지.
그러니 오래오래 걸어보겠다고 버스를 타고 내려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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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월구간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길은 아무리 마을길이라도
길이 깊었다. 주변이 온통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까지 뿌려주니 깊은 길을 걷는 일이 수월했다.
예쁜 산길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었다.
그런데 막상 산속으로 들어가니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한 가족인 듯한 일행이 서둘러 비옷을 꺼내입었다.
우리도 비옷을 꺼내입었지만,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숲은 괜찮았는데 월평마을로 들어서자 시간은 오후 1시밖에 안되었지만, 도저히
더 걷기가 힘들었다.
제 3코스는 기니까 원래 두번째 날은 장항마을까지 가서 인동할매의 사촌이 운영한다는 아코디언집 에서 자기로 했는데 서둘러 아무곳이나 민박을 정했다.
밥은 해줄 수 없다고 하셨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한 낮이라서 뭐라도 밖에서 사먹어야 했다.
방이 바깥채로 따로 나있고, 목욕탕이며 취사도구도 있는 민박이었다.
씻고 말리고 정리하자 비가 그쳤다.
비 그친 사이에 남원의 유명하다는 추어탕을 먹었다.
사실은 어죽이 유명하다고 쓰인 옆집이 더 많이 추천되는 집이었지만, 우리는 무슨 회관인가 하는데서 처음엔 자라탕 전문이라서 들어가기 꺼렸지만, 추어탕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한 그릇에 7천원 씩이었다.
수퍼에서 과일과 간식거리들을 사고 빵집에서 빵도 사고 집에 돌아오니 다시 비가 쏟아졌다.
이승기가 나오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한꺼번에 3개 이상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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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예^^ 재미있게...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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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군요..^^*
남의 이야기 듣는 것도 재미있지만 참 가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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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ㅎㅎㅎ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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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드라마 영상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후 속 작품을 기다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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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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