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를 남겨두라(유여 留餘)
유여 留餘 란 “여지를 남겨두라”는 뜻입니다. 무얼 남기라는 말일까? 세 가지입니다. 남겨둔 솜씨가 있어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며, 남겨둔 녹봉이 있어야 조정에 돌려줄 수 있으며, 남겨둔 재물이 있어야 자손에게 남겨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다 쓰지 말라는 경구입니다. 나는 있는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살았기 때문에 유여라는 뜻을 새길 필요가 많습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해야 손해를 덜 보는 사회로 한국이 운영되었기 때문에 여지를 남겨두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사회입니다. 여지를 남겨두는 유여한 삶을 살지 못한 덕분에 지금부터는 더 많은 손해를 보는 기간이 될 듯합니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빠르게 손해를 볼 것이란 말입니다. 압축성장한만큼 압축퇴보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지를 남겨두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며 살다가 경제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여지를 없애면서 다음세대가 취약한 사람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에 유여한 삶인 여지를 남겨두고 사는 삶을 새로운 시대를 맡을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못한다고 하여 여지없이 혼내는 방식에 익숙한 경제개발세대들이 있는 한 영적인 가치로 보면 엄청나게 퇴보할 미래로 보이는 한국사회입니다. 그러니 여지를 남겨두는 삶으로 어렵더라도 한걸음씩 내딛어봐야 합니다. 그래야 여지를 남겨두어 사람을 살리는 인간화된 사회가 될 것이고 제가 인간화가 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事不可使盡 사불가사진 :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勢不可倚盡 세불가이진 :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言不可道盡 언불가도진 :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福不可享盡 복불가향진 :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 쓴다
(북송의 승상 장상영(1043-1122)의 글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어서인지 그리고 가진 사람이더라도 금방 어려우면 빈곤이 엄습하는 삶이기 때문에 여지없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곤합니다. 권력을 가졌을 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너무 치졸한 여지없는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듯이 사는 요즈음입니다.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구분이 있는 것이 말인데 너무 그런 구분없이 말하는 세태입니다. 너무도 메스컴에서 자주보는 구분이 없는 말을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합니다. 수치한 사회가 된지 오래라 수치를 모르는 무감각하게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기보다는 괴물로 사는 집단처럼 느껴지기에 자꾸만 눈물이 나옵니다. 남겨둔 복으로 한 사람을 살리고 또 다른 사람이 남겨둔 여지의 복으로 또 다른 한 사람을 살리는 우리사회가 되는 꿈을 꿉니다.
口腹貪饕豈有窮 구복탐도기유궁 : 먹는 것에 어찌 끝이 있으랴
咽喉一過總成空 인후일과총성공 : 목구멍을 넘겨도 비게 되는데
何如惜福留餘地 하여석복류여지 : 어떻게 복을 아껴 남길 수가 있을까
養得淸虛樂在中 양득청허락재중 : 맑게 비우는 마음에 즐거움이 있도다
(북송의 소동파 蘇東坡(1036.12.19.-1101.7.28.)의 계살시 戒殺詩입니다. 조정을 비방하여 황주로 유형을 가 농사짓는 동쪽 언덕이라하여 동파로 이름지었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야 휼륭한 문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소순부친과 소식본인과 동생 소철이 3소로 당송 8대문장가입니다).
있는 복 없는 복 다 담아가는 삶이 멋있다고 선전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고 말해야만 합니다. 있는 복의 일부를 취약한 이들의 것이라고 남겨 둬야만 합니다. 밥할 때마다 식구수대로 숟가락으로 퍼서 담아서 그것은 취약한 사람의 몫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우리의 삶도 그렇게 바치며 살아야 아름다운 삶이 된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립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유여한 삶으로 여지를 남겨두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작은 공동체로 사는 하느님왕국입니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그것이 기반한 공동체가 천국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살라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렇게 성령은 우리에게 복을 나눌 여지를 가지고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전적벽부. 前赤壁賦”의 客曰 편입니다(소동파의 47세. 1082년 7월 16일에 황주의 귀양살이중 양세창楊世昌 친구가 객으로 방문하여 적벽아래서 배를 타고 밤뱃놀이 중에 조조의 대군과 오나라 대군의 적벽대전을 회상하고 자연미와 인생허무를 노래합니다).
駕一葉之扁舟 가일엽지편주하여 : 잎 파리 같은 조각배를 타고
擧匏樽以相屬 거포준이상촉이라 : 바가지 술을 서로 권하네.
寄蜉蝣於天地 기부유어천지요 : 천지에 떠다니는 하루살이요.
渺滄海之一粟 묘창해지일속이라: 아득하고 큰 바다위의 좁쌀 한 톨 신세로다.
哀吾生之須臾 애오생지수유하고, : 나의 삶의 잠시임을 슬퍼하고
羨長江之無窮 선장강지무궁이라 : 장강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며,
挾飛仙以遨游 협비선이오유하고 : 나는 신선과 더불어 노닐고,
抱明月而長終 포명월이장종이라 : 밝은 달을 껴안고 오래 하고자 하나,
知不可乎驟得 지불가호취득하니 : (이를) 신속히 얻을 수 없음을 알기에
托遺響於悲風 탁유형어비풍이로다 : 여음을 슬픈 바람에 붙이네.
(한 조각 작은 배를 타고서 술 바가지와 술동이를 들어 서로 권하니, 천지 간에 하루살이가 부쳐 있는 것이요, 아득한 창해에 한 톨의 좁쌀이로세. 우리네 생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장강이 끝없음을 부러워하며, 날아다니는 신선을 끼고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려 하지만 대번에 취할 수 없음을 아노니. 여운을 슬픈 바람에 부치노라.)
인생이 거창한 것도 아닌데 너무 거만하게 굴며 산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홀로 있다 보면 자꾸만 지난 일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여지없이 산 삶으로 인하여 지 잘났다고 살아서 다른 사람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산 제 모습이 보여 참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여지를 두고 사는 것은 제 안에 다른 사람이 머물 곳을 가진 사람입니다.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살라는 말씀이 바로 유여의 삶입니다.
거성운불주 :살던 스님은 구름처럼 머물지 않고
유적월공현: 남긴 자취로 달만 공연히 걸렸네.
천지유여감: 천지에 남아둔 감회로
추풍루자연: 가을 바람에 눈물이 절로 흐르네(1936 안병희의 글).
사람은 있다 가는 존재이고 잠시 머문 흔적조차 없어지는 법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어지는 삶을 하느님은 성경을 주셔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다음세대들에게 성경을 유산으로 줘야 유여한 삶이 되어 여지를 남겨두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복있는 복된 삶입니다. 성경을 가보로 전달해주는 시골성당의 어르신 회장신도님이 참으로 거룩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 보내고 노구인 자신을 얹을 수 있던 사제까지 보이지 않으니 눈물이 흐른다는 노 시인의 싯귀가 눈물로 다가옵니다.
과음을 경계하는 戒盈杯(계영배)의 가르침을 새기며 과욕을 부리지 않아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 林尙沃(1779∼1855)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계영배(戒盈杯)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가득 참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입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합니다. 우삼돌이 1771년 정조5년에 태어나고 도자기 기술을 익혀 왕께 진상하여 이름 명옥를 하사받기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술과 기생에 놀아나다 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구사일생으로 산 우명옥은 스승 지외장을 찾아갑니다. 지외장 스스에게서 “이젠 그릇을 굽지 말고 네 모습을 만들어 보아라”는 말을 듣습니다. 조선후기실학자인 화순의 하백원(1781-1844)이 기술을 가르쳐 줘 조그만 술잔을 만들게 됩니다. 그것이 계영배라 하여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으로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 수가 있는데, 7부를 넘치게 따르면 넘쳐서 모두 밑바닥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마는 잔입니다. 이 잔이 거상 임상옥에게 전해져 더 큰 거상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영배는 가득찬 의미이고 이 앞에 계는 경계하고 조심하다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가득참을 조심하라는 말로 유여한 삶인 여지를 남겨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지를 남겨두는 삶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너무 악바리라는 모습을 지금까지 세상에 보여주었더라면 이제부터라도 유여한 삶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