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이후/ 문정희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알 떠넣는 일이다
나 슬픈 것은
옛날 그 사람 되어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경(瓊)이에게/ 김춘수
경이는 울고 있었다.
풀덤불 속으로
노란 꽃송이가 갸우뚱 내다보고 있었다.
그것뿐이다.
나는
경이가 누군지를 기억지 못한다.
구름이 일다
구름이 절로 사라지듯이
경이는 가 버렸다.
바람이 가지 끝에
울며 도는데
나는
경이가 누군지를 기억지 못한다.
경이,
너는 울고 있었다
풀덤불 속으로
노란 꽃송이가 갸우뚱 내다보고 있었다.
첫눈/ 김용택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여인애가(女人哀歌)/ 김남조
나중엔 편하니라
젖가슴을 쑤시는
은바늘 끝에
눈물이듯 삭이고
수정빛 눈물이면
해 아니 솟는대두
정을 준 건 잘했니라
너 가지 마라
노래 지어 불러 줄께
너 가지 마라
자식 낳아 길러 줄께
손톱 손톱 딿도록
너만 보고 살고
너 가지 마라
이 세상도 나랑 살고 훗세상도 살자
돌기둥이라도 됐더면
하늘에나 뻗쳐둘 걸
치미느니 통곡이라 눈물 기두이사
어다 세우나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가고사
아니 오네
천길 모랫 띄약볕 천지
못내 죽은 하나 그 불러
날 보랬지
사랑도 사랑도 내 사랑은
하늘 한 조각 얻어 섧다네요
제 좋대믄 제 간대믄
보내련다
저 없이 사노라면 속 쓰려 멀겠네
예쁜 색시 얻어서나 산대믄야
검은 머리 희도록에 검은 머리 희도록에
아들 장가셈 치지
나는 사랑이었네라/ 권국명
나는 피였네라,
처음은 다만 붉음만이었다가
다음은 조금씩 풀리는
아픔이었다가,
석남꽃 허리에 아픔이었다가,
이 어지러운 햇살 속에
핏줄 터져 황홀히 흘리는
피였네라,
내 피는 남산을 적시고
남산과 대천세계를 적시고
그래도 죽지 않는 더운 사랑이었네라.
하루/천양희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
나는 잠시 나를 내려 놓았다
어디서 너마저도
너를 내려놓았느냐?
그렇게 했느냐?
귀뚜라미처럼 찌르륵대는 밤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거짓말하면서
그 거짓말로 나는 나를 지킨다.
바람의 말/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 가버릴꺼야
꽃잎 되어서 날아 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혼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수선화에게/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고비가 오면 빗갈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건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 울려퍼진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안다 /배은미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을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도 서러워
꼬박 며칠 밤을 가슴 쓸어 내리며 울어야 했을 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살고 싶었을 때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짚시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은 지난 몇달 동안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으며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필요한 누군가가 나의 사랑이어야 했다
그립다는 것이
그래서 아프다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부터 알았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 모질게 내 뱉은 말조차 이제는 자신이 없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안다
그나마 사랑했기에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마저 없었을 땐
숨을 쉬는 고통조차 내 것이 아닌
빈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나의 나/이시영
여기에 앉아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마.
나는 저녁이면 돌아가
단란한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여름이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날아가
몇 날 며칠을 광포한 모래 바람과 싸울 수 있는
나일 수도 있고
비내리면 가야산 해인사 뒤쪽
납작 바위에 붙어앉아
밤새 사랑을 나누다가
새벽녘 솔바람 소리 속으로
나 아닌 내가 되어 허청허청 돌아올 수도 있어
여기에 이렇듯 얌전히 앉아있는 나를
나의 전부로 보지마
詩,
혀에 엉켜 떨어지지 않는 시들, 하나쯤 외우는 것도 좋아요.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이 서른이 되어 시 하나 외우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퍽퍽한 것이냐. 라고요. 배경 음악은 '바람과 함께 눈을 떠' 라는 곡입니다.
댓글천사!!!!부탁행.ㅜㅜㅜ너무 마음이 아리다.
댓글뿅!
댓글하나만 쪄줘요ㅜ,ㅜ
뿅!
나도 댓글하나만 부탁해...ㅠㅠ아...5편읽고 4편 찾아 왔는데 정말 가슴이 짠해진다
언니 댓글좀.. 이거 드래그 허용해주면안돼? 퍼가고싶어..
댓@!
댓글 달아달라구말해두되?ㅜ.ㅜ
되용
[시모음]너무조타.....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