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셋째주 연중 제6주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6.17.20-26)
나는 그날 보았다.
김준정 신부.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한국관구비서
필리핀 민다나오의 한 산악 마을 어르신에게 병자성사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토니 신부님은 한 두어 시간 정도의 거리라 신학생으로
사목 실습 중인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로 올라가다 비가 오면 꼼짝없이 갇힌다고 해
아침부터 걸어서 올라갔는데 훨씬 더 걸렸다.
처음 보는 풍경들에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다가도 이 정도면
오토바이로 와도 되지 않았느냐는 투정이 목까지 차올랐을 쯤에야.
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라고 하지만 매우 허름하고 작았다.
동네에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이면 필리핀 어디서나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었다.
신부님은 나를 한쪽의 작은 집으로 데려갔다.
문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집 입구 가림막 아래로.
빈 그릇들이 버려진 듯 뒹굴고 있었다.
병자성사라고 하더니 곡기를 끊으신 건가?
먹을 것이 떨어진 건가?
살짝 걱정과 긴장이 올라와 조용히 물었다.
신부님. 이 그릇들은 뭐예요?
어르신이 드시고 씻을 힘이 없어서 버리신 거예요?
수사님 . 이것이 우리 필리핀 사람들의 마음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신부님은 그릇 하나를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여기 어르신이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결국 혼자 밥을 해 먹을 수 없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이웃 사람들이 아침마다 자기들 음식을 조금씩 덜어서
이 집 앞에 두고 가기 시작했어요.
자기들 먹을 음식도 빠듯할 텐데....
어둠 속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있던 어르신은 우리를 혼신의 힘으로 맞았고
더 큰 정성으로 성체를 모셨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내 마음 안에 한 웅큼 믿음이 더 자라있는 것을 느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온 지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질병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하신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를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그날의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던 건 아닐까.
그날 나도 외치고 싶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 여러분의 것입니다!
거기서 배부르게 되고 더 웃게 되실 겁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인사를 나누던 마을 분들의 웃음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배부르게 웃으며 지내고 계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나누고 함께하고
사랑하는 일이 부자일 때보다 쉬워지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 하늘나라에 더 가까이 살게 된다는 것은 나는 그날 보았다.
내가 오늘 하늘나라에 얼마나 가까이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