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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토론회에서 함께 했던 회원입니다.
화화공자님보다 나이 많은 여동생만 두었지만,
남편 두고 혼자서 프랑스로 공부하러 떠난, 화화공자님 만큼이나 의협심이 강한 내 동생을 생각하며
누나의 심정으로 몇 장 적어 봅니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서 꾸짖을 때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글도 말처럼 아무리 의미를 잘 전달하고 싶어도 내 손을 떠나면,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 해석 되어 버려
내 뜻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의미를 내포시킨다는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대학 선배이며 국어 선생님이셨고 결혼 전
너무나도 일찍 결혼을 하시는 바람에 평생 소원인 시인은 이루지 못했지만 항상 글을 쓰셨던 엄마를 보며 자라
작가의 꿈을 가졌고 작년 청도로 오기 전까지 그 방면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서 최대한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했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 주세요.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제가 영사관 자원봉사자라고 소개를 했으니 당연히 제 닉네임을 보고는 선입견을 가지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제 소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제가 작년 청도에 오기전 6개월 먼저 남편이 왔습니다. 혼자 생활 하던 남편에게 하루는 조폭이 왔습니다.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위협을 가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돌아 왔을까요? 남편은 고민을 하다 황도 개발구에 있는 정말 사이 좋지 않은 동창이지만 연락을 하고 피신을 했습니다. 남편 자랑 좀 할게요.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에는 대만에서, 입사를 한 후에는 천진의 남개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국교 수립이전부터 홍콩을 거쳐 출장을 다녔어요. 이른바 중국통입니다. 전 총영사님은 남편이 천진 한국공단에서 업무에 임할 때 북경대사관에서 협의를 해 주신 분입니다. 이런 남편이 왜 피했을까요? 자신이 아무리 중국 전문가라고 해도 사고가 생기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온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행동했을 겁니다.
영사관이 도와 줄 수 있다 없다는 나중 문제입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티벳과 해남도를 제외하고 중국 성시를 여행하면서 직접 경험하면서 느꼈겠죠. 남편에게 잘못이 있겠지 라고 치부하는 분들에게 노파심에 부연 설명을 하면 그렇습니다.
한 거라고는 3년 동안 8번이나 책임자가 바뀌는 중국지사를 마음대로 해 먹은 여자 회계를 못하게 막았을 뿐입니다.
그 뒤 이사 하면서 집을 구할 때 제일 먼저 본 게 안전이었습니다.
누군가 범인을 잡으라며 피해자에게 신고를 하라고 격분해서 말하더군요. 토론회에 나오신 분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북경에서 학생이 포함된 폭행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학생도 조사를 받게 되자 학교에 그 사실이 통보 되어 퇴학 조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의 일이지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하고 말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저는 당직전화 담당이므로 출동을 할 수가 없다는 말에 전화를 끊었다고 인정하셨는데 정말 급박하고 긴장된 순간이라면 저라면 아니요 꼭 연락 해주세요 되도록 빨리 와주세요 라고 외쳤을 겁니다. 한국 사람이 다쳤기에 신고를 하신 것처럼 한국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외면 할 분들이 아닙니다. 전화 받은 직원 칭찬합시다에 들어가 보세요. 여러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서 고맙다고 칭찬을 받은 직원입니다. 제가 자원봉사 할 때 보면 활달한 성격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야무지게 잘 처리하는 직원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사고 현장에서는 그 현장의 누구라도 첫번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민원영사님의 말씀을 함께 들었는데 신고를 하셨던 그 마음 그대로 함께 병원도 가주고 상황을 영사관에 연락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무섭다고 하더라도.
지난 여름 밤입니다. 남편이 한국 사람이라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한족 중국어 선생이랑 아파트 도로 변을 걷고 있었어요. 어디에선가 갑자기 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길 건너편에서 남자가 여자를 마구 때리고 있더군요.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렀고 상황을 보니 여자를 의심해서 일어난 일 같았어요. 게다가 조선족 부부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나온 어린 여자 아이들도 있기에 도저히 대한민국 아줌마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중국어 선생을 두고 길을 건너 갔습니다. 사람도 많은데 무슨 일이냐며 남자의 팔목을 잡았습니다. 제 말씨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채곤 마누라가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닌다며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말하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남들 특히 아이들 눈도 있는데 집에 가서 조용히 대화로 풀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잘못 알고 그런 거라고 하고 해서 여자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모통이를 돌아 사라지자 남자에게도 말로 하지 때리지 말라고 하곤 중국어 선생 곁으로 돌아 왔습니다. 중국어 선생 왈 형님 안 무서웠어요. 제가 그랬죠 뭐가 무섭냐고 난 어릴 때 물린 기억 때문에 개 말고는 무서운 게 없다고
그래요 세상에 무엇이 무서울까요? 자신의 신념과 소신만 있다면.
총영사님께
모노님의 글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고 나가시면서 당구장 사모님이 나쁜 아이 아닙니다. 잘 좀 봐 주세요 라고 부총영사님께 하신 말씀 저는 똑똑히 기억하는데 볼혹을 지난 저보다 기억력이 못하신가요. 그래서 유독 카페에만 가면 자신이 넘치고 고개 세울수 있는지요? 자신의 모든 잘못을 갈릴 수 있고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그 기온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학비를 대 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언급을 하였는데 미루어 짐작하는 바 타인을 도와 주기 위해 전화까지 한 점을 보면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기대를 저버린 일에 대해서 정말 함부로 말하고 행동과 일치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진정 좋은 사람인가 의심이 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해서 카페 회원들에게 위로 받고 싶었나요? 의협심이 강한 청년 열혈 남아라고 호칭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 한지요? 그렇다면 부총영사님 앞에서 당당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신이, 신념이 있는 30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총영사님 비방한 것 잘못 사죄 드리고 그 담에 말을 이어 갈려고 할때 공안국 외사과 부과장님이 너 이새끼 감히 이렇게 말이 끓겼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자신의 말이 잘린 건 중요하고 그 접수 직원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건 당연하다고 보시는 지요? 그 덕분에 한국직원들이 당직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현지 직원들이 사건사고 접수를 받았다는 것에 또 열을 내어 말씀하시는 분이 있던데 사건 사고는 심야 시간에 대부분 일어납니다. 그러면 연락을 받은 이가 최초 접수자가 되는데 사건사고의 경우는 그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한번 이상 확인을 받을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중국어를 잘 한다고 한들 중국인보다 못한 한국사람이 설명을 하는 게 나을 까요? 한국말을 하더라도 같은 국적인 중국인이 정황과 사건 접수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게 나을까요? 안 보아도 뻔한 이치입니다. 이리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번복하게 만드는 군요. 왜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을 들으니 무시하고 싶지는 않으셨습니까?
전화를 받은 직원을 만났습니다. 총영사님 오시고 삼덕운동으로 영사관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개선되고 1주년 행사도 아주 잘 치루었는데 자신의 실수로 이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 간 것 같아 뵐 면목이 없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한국 사람이며 중국인인지요. 총영사님을 부모에 비유하셨던데 아무리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도 자녀는 자기 엄마 아빠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옆집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존경하여 자기에게 나무라는 꼴은 무슨 경우일까요
다친 사람을 위해 신고하였지만 여권만 빼앗기고 추방령이 떨어졌다는 점에 많은 분들이 격분하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토론회에서도 정말 놀랐지만 그렇게 모르는 게 많은 게 자랑이 아닙니다. 최소한 자신의 신변에 관한 점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변에서 비자 이렇게 하면 돼 라고 가르쳐 준 사람들 지금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 어떻게 자신의 신변과 직결되는 점을 단 한번이라도 정확한 경로를 통해서 확인도 해 보지 않을 수 있는지 아무리 이해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네요. 몰랐다고 해서 면피가 되지 않습니다. 네 많은 분들이 그와 같은 처지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분을 잘 알면 어떻게 했을까요 영사관에 연락만 해 주고 사건 처리를 멀리서 지켜 보기만 하면 되겠죠.
네 몰랐다고 하면 다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용서를 받을 기회 조차 주지 않는 다는 걸 우린 아프카니스탄에서 있었던 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열린 대화방에서 들었습니다. 걸프전이 발발 하기 24시간전에 미국 국민들은 전세기를 타고 철수하였습니다. 일본국민들은 전쟁 개시 후 하루 안에 다 떠났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전쟁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우왕좌왕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디에 누가 나와 있는지 연락처도 모르니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얼마 전 재외 국민등록공방으로 이 카페가 뜨거웠습니다. 재외국민 등록을 왜하냐구요. 이렇기에 합니다. 1월에 사건 사고 담당 영사님이 산동성에 교민이 십만명 거주하고 있다면 약 2만명 정도만 등록을 했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그럼 전부에게 연락이 가야 할 중대한 사안이 생긴다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단 20%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중국은 안전하다구요. 그럼 사스는 왜 있었나요? 미국대사관이 자국민의 인적 사항을 FBI를 통해서 알았을까요 CIA에서 통보 받았을까요? 재외국민등록도 법률에 나와 있습니다. 미국국민을 구출하는 미특공대가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에 매료되어 가슴 졸이며 많이 보시죠 저는 이와 달리 이런 생각도 드네요. 초강대국이라는 미국 국민에게도 외국은 위험한 곳이라는 반증도 된다고.
이제 또 글이 달라 졌더군요. 사례를 수집해서 올리시던데 그렇게 공자님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선량한 사람들을 두 번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할까요 1994년에 총영사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 임기가 있다는 걸 잘 아실 텐데 그 때부터 계셨던 분이 얼마나 되시는 지요.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안보이고 지난 시절에 했던 과오를 물고 늘어 지면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현재 계신 분들의 활동이 위축되어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 악영향이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왜 외면하십니까 이는 그래 나는 이미 추방령을 받은 몸 물귀신이 되어 괴롭히겠다는 건가요. 오히려 공자님에게 냉정하지만 올바른 충고를 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세요. 토론회에서 그렇게 말을 하고 설득을 시켜도 자신의 귀에 달콤한 것도 들으니 지금까지의 중국생활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일이 생긴 건 뻔한 이치 아닌가요
누군가는 저에게 어용이라고 하시겠죠. 뭐 그런 뒤다마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말한 대로 내겐 상식을 벗어 나지 않는 신념과 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20년동안 일선학교 상담봉사를 하신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위원으로 작년 연말에 대통령 표창을 받은 우리 친정어머니도 어용이시겠네요. 20년이라니 믿기지 않는 다구요. 부산시 교육청에 가셔서 왕회장님을 찾으세요. 진짜 성이 왕자라서 찾기도 쉬울 겁니다. 칠순을 바라보시는 친정어머니께서 학교 상담을 제일 처음 시작하실 때 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어용인 제가 바쁜 일에 손 하나 더 보태려고 민원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총영사관 자원봉사를 1년동안 할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요? 제가 처음 자원봉사 하러 온 이들에게 더 빨리 일을 파악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용 매뉴얼을 만들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요? 방학 동안 봉사 하러 온 학생들에게 연락하고 일정표를 직접 짜 줄 때 어디서 무엇을 하셨나요? 제가 매주 토요일
나에게 안보인다고 내게 보여 주지 않는 다고 함부로 말하고 근거 없는 사실을 말할 때 마치 그것이 사실이냥 다른 사람에게 인식 되어 질 때 누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남 이야기 아닙니다.
그럼 처음에 화화공자님이 그렇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제 수정, 삭제해 달라고 해도 그렇게 안 되는 이 카페에서 (삭제요청 쪽지를 보내주세요) -그렇게 쓰셨던데 정말 총영사님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아시나요.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그런 지식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이 피해자를 위해 신고했다고 는 하지만 또 다른 타인인 총영사님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를 하셨는지요?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 입니다. 총영사님께서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배치를 받은 부서에서 상관되시는 분이 불러서 물었다고 합니다. 아무런 두서 없이 법대야 상대야 전해 주시던 분의 부연 설명을 빌리자면 여기서 S대란 말이 생략 된 거라고 합니다. -2007년 1월 송화강을 보신 분이라면 아니면 외교 통상부 홈피에서 재외공관장 이력서를 찾아 보신 분이라면 알 수 있겠죠. 아 그러고 보니 송화강 이달 호에 나왔군요. 입양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작년 연말 한인입양아를 버린 네덜란드 외교관이랑 비교되어 찾아 보았습니다- 해당사항이 없는 총영사님께서는 아닙니다 라고 하셨고 그 상관은 그럼 됐어 가봐 라고 하셨다는 군요. 자리로 돌아와 앉은 총영사님은 이런 처지에 빽도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시다가 그럼 1년에 5명씩 빽을 만들지 라는 결심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총영사님을 좋아하신다고… 그럼 지금 여기에서 누가 총영사님의 빽이 될까요? 여기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일까요 사내라면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충성으로 섬기겠지만 보잘 것 없지만 자신을 믿어 주고 존경의 눈길로 바라봐 주는 민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교민들입니다.
우리들의 지지 속에 중국 공무원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소신껏 국익을 위해서, 우리를 대변 해서 당신의 목소리를 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불이익 우리에게 되돌아 옵니다. 그 불이익 누가 만듭니까?
토론회에 참석한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풍부한 인력에다 저렴한 인건비로 게다가 한국말도 할 줄 아는 그렇지만 다른 목적으로 이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보고로 이 땅의 주인들은 총영사님을 대할 때 겉으로는 웃음을 짓지만 속으로는 자국민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라는 인식을 지울 수 있을 까요. 이런 현지인들에게 소위 말하는 말빨이 먹힐까요?
외교관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분들은 휴가를 나온 게 아니라 잠시 국가 권력을 부여 받고 우리가 외국이라는 모국과는 거리가 떨어진 곳에 살기에 우리를 도와 주러 왔다고. 그런데 일이 발생해서 오면 너무 늦어 버리기에, 그리고 일이 생겨 모국에서 생뚱 맞게 누군가 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이의 말에 현지 공무원들이 얼마나 경청해 줄까요 우리와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생활 해야지 우리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물론 열린대화방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맡은 지역이 너무 넓다 보니 4시간 이상 이동 시간이 걸리는 두 지역에서 동시에 사고가 생긴다면 어쩔 수 없이 도와 주고 싶어도 못하고 맙니다. 누가 영사협력원을 말씀하였는데 벌써 하고 있습니다. 영사관 홍보만 탓하지 말고 우리 영사관 아닌가요 홈피 들어가서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은 직접 챙기십시오.
정년을 앞둔 공관장들은 자신이 정년 퇴직할 지역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관례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제도시 상하이보다 발달하지는 못했지만 삼덕 운동의 서포터즈들이 포진한 청도를 생각하신 것 같은데 그런 분이 당신을 소환해 달라고 하셨을 때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요
제가 영사관 자원 봉사를 하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하면 서운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임기가 끝나면 돌아 가실 분들이기에 여기 계시는 동안 잘 지내면 됩니다.
그렇지만 청도에 오래 거주 할 계획을 가진 제게는 저와 함께 사는 분들이 더 소중합니다.
그 분들과 함께 힘을 합쳐 우리가 사회,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이 곳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이익이 된다는 면도 모르시고 여러 말씀을 하시는 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달라 져야 합니다. 임기가 끝나면 갈 사람들이라고 하지 마시고
그 분들을 통해 우리들이 이 땅의 주인들에게 반드시 얻어 내야 할 것들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
이런 소모전 보다는 부임해 오면 빨리 업무를 파악 할 수 있도록 도웁시다.
하나됨이 우리에게 유리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열린대화방에서 학교 문제를 지적하는 학부모님의 불만이 있었습니다.
1994년 영사관 개관이래 2002년 한국계 학교 처음 생기기 전에도 이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때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사람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까요 .
그 피해 고스란히 우리가 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런 모습 누구에게 돌아 갈까요.
연대한국학교는 위해에서도 가고 신축된 교사에 학비까지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이유까지 생겼는데
저처럼 오자마자 오판하시지 말고 청도에서 한국 교육이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청운학교에 힘을 보태세요.
멀어서, 교사가, 건물이 그런 말 하지 마시고 보내셔서 학교가 그런 부분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시죠.
영사님 자녀 다니냐고 하시던데 영사님 개인 생활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994년 개관부터 근무하신, 같은 국적의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일군 한국인 행정원의 자녀는 재학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한인상공회 관계자분 말씀대로 자원해서, 혹은 생활의 이유로 외국 특히 중국에 거주하는 순간 한국에서 누렸던 혜택 들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교육, 의료, 치안 등에서 자신이 직접 알아 보고 대처해야 합니다. 누구도 가르쳐 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영사관 자원 봉사 때 어떤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임대 계약을 3년 했는데 1년 살아보니 마음에 안들어 나갈려고 하니 주인이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며 영사관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화 돌리기 전에 힘들 수도 있겠다고 하니 영사관에 국민을 위해서 나와 있는데 왜 이런 것 하나 해결해 주지 못하냐고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임대 계약 하시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조언을 구하셨냐고. 그런 것도 도와 주냐구요. 한번이라도 사이버 민원을 이용해 보세요. 일본 정부가 얼마나 잘 하는지 목청 높이지 마시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요소들을 잘 활용할 방법을 찾으십시오.
청도가 어렵다고 합니다. 저는 부산 사람인데 대학 시절 서울에 친구 만나러 놀러 가면 타지 사람들 부산 사람이면 다 뭐 맞는 줄 압니다. 구정에 한국 가니 청도 사람들 다 야반도주 하는 줄 알더군요. 어려운 거 사실입니다. 정말 깡그리 실패하셨다가 다시 일어나신 어느 선배님이 그러시더군요.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어려운 게 나에게만 해당이 되면 너무 힘들다로 끝나지만 다같이 힘들면 부속하나라도 원가를 절약할 수 있는 비법을 알 수 있다면 내가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그런데 위기라고 생각되지 않는 분들이 있더군요. 영사관 자원봉사단은 재중국공예품협회에 연관이 있으신 분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영사관에서도 아줌마들이 단체로 오겠다고 하니 한달이나 하고 말겠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100일이 다가오니 케익이라도 잘라야 할 것 같고 1년을 바라보자 이제는 자랑을 막 하고 싶었을 겁니다. 다른 공관에서 따라 하려다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번 삼덕 기념 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이 분들에게는 위기가 없다고 생각 되더군요. 서로 경쟁사이면서도, 사소한 불만도 있지만 결정이 되면 단결된 모습을 보여 줄 때 정말 공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공예품 협회에 속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신청했지만 함께 일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삼덕 운동입니다. 제발 꺾지 말아 주세요.
비록 지금은 수정되어 버렸지만 삼덕운동 기념집에서 이런 원고를 썼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다른 동물과 가장 큰 차이점을 가지는 것 중에 하나가 태어나서 걷고 말하는데 1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춘하추동 그 사계절이 다시 돌아 올 때 비로소 누워서 배가 고프면 울던 어린 생명이, 인격을 갖출 소양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직립 보행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년이란 시간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너무나도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혹자는 고작 일년인데 하는 생각에 뭐 대단한 별일이 있었겠냐는 좁은 식견을 내 보이기도 하겠지만 우아한 백조의 자태는 끊임없는 물장구로 완성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격언을 상기시키고 싶다.
한미르님 말씀대로 자숙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학교에만 근신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자신의 처신이 잘못 되어 물의를 일으켰으면 자중하고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칭한모에서 대출되는 영사관 도서관 책도 빌려서 읽고 영사관이 청도 교민 사회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건의를 찾아 보세요 그럼 예전의 위치로 돌아 갈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란 쉽게 흥분도 하지만 쉽게 망각도 한답니다. 그럼 진정한 열혈 남아 의협심 강한 청년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을 겁니다.
추신) 하는 일이 많아 공개 토론회가 벌어진 날부터 글을 시작했지만 컴퓨터 사정으로 글도 날아가고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화화공자님도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그만 놓으십시오. 시간은 이미 흘러 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님의 손에 남아 있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고 다시 돌아 오지 못할 젊은 날을 감사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남의 손에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맡기지 말고 직접 챙기십시오.
첫댓글 지당하신 말씀 많이 하셨지만 절대 아닌 말씀도 있군요
님 글을 읽으니까 정말 이 청도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저도 님처럼 청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노력할께요. *^^*그리고 긴글 적으신다고 너무 수고하셨어요. ^^
귀에 담아들을 내용도 많군요. 잘 읽고 갑니다.
늘 봉사하시면서 지내시는 모습 정말 귀감이 됩니다. 저는 여전히 실천하지 못한채 지내고 있네요..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구요ㅎㅎ 오늘도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적기에 적절한 글로 잘 마무리 해주셨네요. 이제 좀더 진취적인 내용들이 나올거라 기대합니다. 온라인 글은 받아 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달리 읽히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영자들 아무도 안 나서는 겁니다. 중립을 지키기 위해, 타카페의 내용이 중첩되기에 한마디 회의 없이도 모두 조용한겁니다.), 꼬리글 달기도 어려운 이 분위기 속에서도...글이 길면 길수록 꼬투리 잡힐 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해 할 수 있도록 잘 마무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방이 이젠 좀 웃을수 있는 내용들이 올라 올려나~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휴 넘길어서 읽기 힘드네~~ 인터넷에서 긴글은 쥐약
청아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그치만 청아님 이렇게 봉사하실때 전 뭐했냐고 그러시면 저도 나름대로 청도 교민분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이건 저에대한 인신공격 같은데요....수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자숙하고 있습니다....또 죄송합니다...제가 무슨 봉사를 한지 궁금하시면 이멜로 보내 드리겠습니다...그럼 행복하세요...
그 동안 청소년 음악회와 상해 동문회 일로 너무 바빠 카페에 못들어 왔습니다. 이제야 댓글을 보았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총영사관 홈피에서 호도 하신 분들께 수정해 달라 하시고 자신의 글에서도 잘못된 표현들-우리 애들도 안하는 말들 - 바로 잡으시면 저도 그러겠습니다.
구구절절 바른말, 좋은말 같아보이는데, 이상하게 공감이 안가는 부분이 많아요...(순전히 저의 생각임.)
한반도공자님, 뵙지는 못했습니다만, 맘속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힘내시고 신념을 지키세요. 남 못지않게 굳은 신념과 소신이 있는 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지 않은 분 같은데요, 알게 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보다 낫다!!!"
그냥 욕 먹을께요.....제가 무슨 자격으로 일일히 회원님 의견을 수정을 시킬까요?........제가 부탁드려서 수정해주실꺼 같았음 진작 했겠죠....청아님 좋은일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