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땅, 네이멍구 (2)
몽골족의 고향, 초원에 서다
초원에서 별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별을 볼 수 없었다. 사방에서 쏟아지기는 커녕 듬성듬성 반짝인다. 둥근 달만 두둥실 떠 있다.
네이멍구 우란차부(烏蘭察布市) 쓰즈왕치(四子王旗)의 거건타라(格根塔拉) 초원의 밤은 조용히 깊어 갔다.
초원은 몽골 민족의 영원한 고향이다. 초원에서 태어나, 초원에서 살다, 초원으로 돌아간다. 7월이 오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놀이마당'을 펼친다.
거건타라 초원 뿐 아니라 어얼뚜오스(鄂?多斯) 등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에 따라 '나다모(那達慕) 축제'를 갖는다. '나다모'는 몽골어로 '오락'. 남자들이 말타기(賽馬), 씨름(??), 활쏘기(射箭)를 하던 것에서 유래됐다.
네이멍구자치구의 구도(區都)인 후허하오터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거건타라 초원에선 몽골족을 비롯한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 3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7월25일부터 31일까지 나다모 축제가 열렸다.
거건타라 초원은 후허하오터에서 북쪽으로 약 90km 떨어진 시라무런(希拉穆仁) 초원과 함께 대표적인 네이멍구의 들판이다. 먼 옛날부터 따칭산(大靑山) 북쪽 자락에 자리 잡은 천혜의 자연 목장으로 삶의 터전이었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평탄한 초지가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새벽 공기를 머금은 초원은 푸르다. 여명이 밝아오자 어디서 왔는지, 낙타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떼 지어 움직이는 말들도 여기저기 풀밭을 서성인다.
말몰이꾼도 이젠 말만 고집하지 않는다. 편리한 오토바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무리에서 벗어난 말을 찾아 아침 먼지를 날리며 오토바이를 내몬다.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밤새 텅 빈 하늘을 지키던 달은 이미 서쪽 지평선 뒤로 넘어갔다. 중천을 향해 움직이는 태양은 불덩어리. 서서히 들풀의 초록을 앗아가더니 드넓은 대지를 누렇게 태워버린다.
나다모 축제는 땡볕 아래 시작됐다. 먼 길을 달려온 승용차들이 줄지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행사장으로 들어온다. 초원엔 그늘이 없다. 소수의 초대 인사만이 단상에 마련된 임시 천막을 이용할 뿐이다.
몽골 여인들도 양산을 받쳐 들고 햇볕을 가린다. 무대에서 축하 공연을 하는 악사, 무용수, 가수들의 탈의실은 하얀 색 전통 바오(包) 한 채, 분장실은 바오 옆에 친 그늘막이 전부다.
몽골족 최대의 잔치를 즐기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자연스레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을 만든다. 때때로 경계선이 무너지면 푸른 제복의 공안들이 질서 유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햇볕은 따가워도 바람은 시원하다. 누구 하나 어수선함을 탓하지 않는다. 짜증내지 않는다. 뜨겁다는 마음 뿐 덥다는 느낌은 덜하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 하얀 전통 옷을 입은 승마 기예단이 단상을 중심으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내달린다.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좌우로 바꿔가며 양 다리를 옮긴다. 2인1조로 말에 올라 뒤 사람이 벌떡 일어선다. 세 마리가 나란히 달리면서 6명이 합동으로 피라미드를 만든다.
단상을 바라보면 임시로 만든 붉은 무대 위에선 몽골 전통 공연이 이어진다.
분홍 옷에 하얀 하다(哈達)를 양 손에 들고 군무를 춘다. 뙤약볕도 아랑 곳 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머리 장식이 화려하다.
한 차례 공연이 끝나면 후다닥 무대 뒤쪽 바오로 달려가 다음 공연을 위해 옷을 갈아 입고, 화장을 고치고, 장식을 가다듬는다.
거울 앞에 선 몽골 여인은 진지하다.
거건타라 초원 멀리, 나지막한 구릉 위가 뾰족하다. 몽골족의 전통 제단 '아오바오(敖包)'다. 그 곳에 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황당처럼 돌을 쌓아올린 신성한 곳, 12간지의 동물을 새겨 놓은 12개의 돌기둥이 지키는 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소망을 빈다.
울긋불긋, 겹겹이 매달아 놓은 하다마다 수많은 소망이 걸려 있다.
초원은 생명이다. 초원이 타들어가고 있다. 곳곳에 마른 풀 사이로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황토가 드러난다.
붕붕-. 건조한 날씨에 적응한 메뚜기들만이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어린 시절 우리네 후각에도 익숙했던 말똥 냄새가 뜨거워진 공기를 따라 떠다닌다.
초원의 한낮은 뜨겁다.
아주 먼 옛날, 이 곳은 칭기즈칸이 4명의 왕자에게 하사한 땅이다. 그래서 지명이 쓰즈왕치(四子王旗)다.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한족은 다른 지역과 달리 네이멍구에선 '멍(盟)'과 '치(旗)'란 몽골족 전통의 행정 단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눈감아 준다. 왕자가 지배하던 시절, 초원에는 말과 낙타와 양을 한꺼번에 풀어놓아도 충분할 만큼 풀과 꽃이 무성했으리라.
초원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살아남기 위해 능수능란하게 말을 타야 하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필요하다.
구리빛 몽골 전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씨름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승자는 쉼 없이 도전을 받아들인다. 패자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고, 새로운 도전자가 들어올 때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손 기술, 다리 기술은 기본이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능력과 함께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지구력이 필수적이다.
몽골족은 유목민이다. 초원을 따라 평생을 떠다닌다. 생을 다한 부모의 무덤 조차 제대로 만들지 않는다.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탓이다. 들판에 내놓아 육신은 새의 먹이가 되고, 그 영혼은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길 기원한다.
몽골 아이들은 걸음마보다 말 타기를 먼저 배운다. 칭기즈칸처럼 여섯 살만 돼도 말을 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초원의 말 경주는 들판이 관람석이고, 들판이 경주로다. 군데군데 깃발을 꽂아 말과 기수가 달려야 할 길을 알려줄 뿐이다. 관객들이 한발 두발 출발선 쪽으로 몰려나오면 어디선가 나타난 승용차를 이용해 뒤로 물러서게 한 뒤 출발 신호를 보낸다.
안장도 없이 말에 오르기도 하고, 이제 갓 10대를 지난 듯한 소년도 경주에 참가한다.
한 바퀴, 두 바퀴-. 말도 사람도 힘겹다. 사람은 간데없고, 하얀 말이 홀로 대열을 빠져 나와 반대편 초원으로 달려간다.
세 바퀴, 네 바퀴-. 앞선 말과 뒷선 말의 간격이 갈수록 벌어진다. 말도, 사람도 숨소리가 거칠다. 참다 못한 한 마리가 또 대열을 벗어난다. 기수가 고삐를 당겨보지만 좀체 말을 듣기 않는다.
초원은 거친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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