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名문장, ‘글쓰기 각오’
“내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중략)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중
서른셋에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읽은 이 책은 원제 ‘Hand to Mouth’에서 보듯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무명 작가의 데뷔기다. 지금은 반열에 오른 폴 오스터의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라이프를 읽으며, 나 역시 의지를 가다듬고 글쓰기의 비밀을 깨치기 위해 써내려갔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어떤 사람은 왜 가난하고 곤궁할 것이 뻔히 보이는 창작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가? 그것은 그가 자신의 시간을 돈 버는 데 사용하기보다 세상의 이면을 살펴 글로 쓰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생해 이야기를 쓴 뒤 세상에 그것을 들려주고 싶어 하고, 사람들은 그를 작가라고 부른다.
전업 작가로 나서고 7년이 지나서야 나는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빵 굽는 타자기’의 ‘글쓰기 각오’가 긴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다. 생활고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괜찮아. 나도 폴 오스터처럼 이 힘든 시기에 대해 쓸 이야기가 쌓이는 것뿐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후 다시 8년이 흘러 쌓인 이야기를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나만의 ‘글쓰기 각오’에 대한 답이자 한국판 ‘빵 굽는 타자기’로 작가 지망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으나, 잘 팔리진 않았다. 그래도 답안을 내서일까, 다음 책 ‘불편한 편의점’은 어깨에 힘을 빼고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받아들이게 되었다.
✺ 빵굽는 타자기-젊은날 닥치는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 김석희 ꡶ 열린책들 ꡶ 2008.4.20.]
✵ 책소개 :
미국 문학의 사실주의적 경향과 신비주의적 전통을 포용하면서 기적과 상실, 고독과 열광의 이야기를 전광석화 같은 언어로 표출하는 작가- 폴 오스터. 그의 자서전적 소설로,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어디에서 태동되었는가, 뉴욕과 파리의 거리에서 한적한 시골길에 이르기까지, 그가 적어가는 흥미진진한 모함과 만남들은 신랄하면서도 코믹하다. 양장본.
✵ 저자 : 폴 오스터 소설가
1947년 2월 3일 미국 출생. 마법과도 같은 문학적 기교와 심오한 지성으로 현대 미국 작가 가운데 '떠오르는 미국의 별'이라 불리는 폴 오스터는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현장감과 은은한 감동을 가미시키는 천부적 재능의 작가이다. 또한 현대 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재능과 문학적 깊이, 문학의 기인이라 불릴 만큼 개성 있는 독창성과 담대함으로 독자들을 우연과 운명이 조우하는 세계, 영혼의 고뇌가 깃든 신비스러운 여행길로 인도하는 오스터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문단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실주의적이면서 신비주의적 요소가 한데 뒤섞여 문학 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란 극찬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현재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호평을 받고 있다.
◈ 타자기로 빵을 굽고, 노트북으로 밥을 짓다.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혁주(지현우)는 '백'댄서 생활도 신물이 나고, 여자친구마저 떠난다. 결국 인생 막 살기로 작정하고 술집에서 춤을 추고 흥을 돋우는 도우미로 돈벌이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춤을 췄던 친구 만종(팝핀현준)을 그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의 모습에 실망한 만종은 이렇게 소리지른다. "우린 지금까지 춤을 추기 위해 돈을 벌었어. 그런데 넌 지금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고 있는 거라고. 알아들어? 그냥 앞 뒤 바뀐 말장난 같아도, 그건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라고, XX야!
"춤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혹은 글이든. 직업으로 삼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진 불행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자가 전자를 잠식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꾸준히 발생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서 사는 행복감 뒤에는 그것이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아슬아슬한 공포가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 글을 쓰는 삶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한적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금만 떠들어주면 원고료니, 명예니 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글로 먹고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문열이나 김훈 같은 저명한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거나, 어딘가 소속되어 글쓰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원고료는 상상 이하로 처절하기 때문이다.
"일감이 있을 때도 더 많은 일을 찾을 방법을 궁리했다. 가장 잘 나갈 때에도 마음을 놓을 만큼 돈을 번 적이 없지만, 한 두번 위기를 맞긴 했어도 파산만은 용케 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흔히 말하는 하루살이였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꾸준히 글을 썼다…." - <빵굽는 타자기> 중
<빵굽는 타자기>의 폴 오스터는 그렇게 매문(賣文)의 고통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분히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 소설은 창의적인 한국판 제목 <빵굽는 타자기>나 원제목인 처럼 오늘 한 덩이 빵을 사기 위해 글을 팔아야 하고, 입을 위해 손을 움직여야 하는 작가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실 <빵굽는 타자기>를 처음 읽은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간결하지만 힘있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폴 오스터의 문장력에 감탄했다. 글을 업으로 삼기 전이었다. 이후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배우에 대한 글을 쓰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 폴 오스터의 글은 미문(美文)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 두고 뉴욕으로 떠난 후, 생활고에 직면한 이후에 다시 읽은 <빵굽는 타자기>는 글쓰는 삶을 버티게 해준 성경과도 같은 책이었다.
당시 나는 <씨네21>의 '뉴욕 통신원'이란 허울좋은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그 도시의 삶을 연명하긴 힘들었다. 나에게 허락된 지면은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칼럼 '애비뉴 C'가 다였다. 일주일에 5만 원 남짓한 원고료는, 한 달을 합쳐도 기껏해야 20만원. 도저히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활이었다. 물론 직장을 그만둔 글쟁이들에게 그것은 뉴욕이든 서울이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빵굽는 타자기>에서 포르노 소설을 써야 하는 위기에 내몰리기도 하고, 가명으로 학생잡지에 원고 하나에 25달러짜리 서평을 쓰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수시로 여기저기 잡지에 외고(外稿)거리가 없는지 물어야 했고,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그렇게 다양한 방법이 있는지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어떤 잡지로부터는 6개월이 넘도록 원고료를 받지 못해, 국제전화로 거의 싸우다시피해 원고료를 받아낸 일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 퇴직금으로 산 나의 팬시하고 예쁜 노트북은 이내 빵굽는 타자기, 아니 '쌀사는 노트북'으로 전락했다. 가끔 노트북이 고장이라도 날라치면 마치 도구함을 빼앗겨버린 구두닦이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직업은 그런 것이다. 꿈만으로, 애정만으로, 재미만으로, 그 일을 유지하긴 힘들다. 그러나 반대로 돈을 위해서만 글쓰는 삶을 이어가긴 더욱 힘든 일이다.
폴 오스터가 그런 매문의 과정을 거치고도 아직까지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타고난 재주가, 할 수 있는 일이, 재미있는 것이 이것뿐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한다. 타자기로 빵을 구워내고, 노트북으로 밥을 지어야 한다. 운명, 좋게 말하면, 그런 거다. 징글징글한 운명.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내가 만난 名문장, ‘글쓰기 각오’(김호연 소설가), 동아일보 2022년 06월 20일(월)〉, Daum, Naver 지식백과, 인터넷 교보문고, Cafe 숲속 작은 책방/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줌인포토리거 은영 사진작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떨며 멈칫멈칫 물러서는 산 빛에도/닿지 못하는 것/행여 안개라도 끼이면/길 떠나는 그를 아무도 막을 수 없지.//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것/오래 전에 울린 종소리처럼...”
-이성복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감사합니다 ~
우중충한 날씨입니다.
건강하세요 ♡
고봉산 정현욱 님
전업작가라 할수있는 폴 오스트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가 눈길을 끄네요
책을 재밋게 읽을 나이쯤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시인이 되고싶고 소설가가 되고픈 꿈을 꾸지만 평생 빵을 가저다 주는 타자기앞에 앉기란 쉽지 않지요
그래도 폴 오스트는 일직부터 글쓰기가 자신의 천직임을 일찍부터 깨닫고 각고의 노력끝에 성공한 실화를 들려주는데 작가 지망생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