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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코스 인월-금계 구간 19.3km 예상시간 8시간
친구와 나, 이번 둘레길에서 제일 좋았던 코스로 꼽은 길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는 구간이다.
가장 긴 구간이고, 가장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특히 장항마을부터 등구재 지나 창원마을을 잇는 길의 다랑이논이 아름다왔다..
거북이 등을 닮아서 등구재라고 이름지어졌다는 고갯길도 좋았는데 남원의 상황마을과
함양의 창원마을을 잇는 옛 고갯길이라고 했다.
3일째 아침
지난 밤 친구와 나는 사과와 복숭아와 감자로 저녁을 먹었다. 압력밥솥이 아닌 일반 작은 밥솥이 있어서 감자를 씻어서 통째로 넣고 취사버튼을 누르니 알맞게 잘 익었다.
빵과 맥반석 계란도 샀는데, 맥반석 계란이 맛있었다.
아침 메뉴도 똑같았다.
밤새 폭우가 내렸는데 아침이 되자 싸한 공기와 함께 햇빛이 비치면서 수런수런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오래 잤다고 생각했는데 째는 듯한 차소리에 일어나 보니 시간은 겨우 6시였다. 소독약차가 마을에 소독약을 뿌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햇빛이 과한 시골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모든 생활이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독약이 들어오는 창문들을 서둘러 닫고 좀더 잠을 청하는데 마을 방송이 나왔다.
"주민여러분, 누구누구씨가 어제 고인이 되셨다고 합니다."
처음엔 고인이 되었다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두 번째 방송에서 알아들었다. 그런 방송은 처음이어서 난감했다.
그렇잖아도 친구는 지난 밤에 직장 상사분 남편이 위독하다는 문자를 받았었다.
그분은 몇 달 전에 쓰러지셨는데 쓰러지기 전까지는 100킬로가 넘는 거구에다가 급속한 다이어트로 30킬로를 빼고 건강에 자신을 갖던 분이라고 했다. 상사는 40이후 늦게 결혼을 해서 이제 겨우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는 며칠 전까지 오언스라고 하는 미국 여자 작가의 <어머니를 돌보며>라는 책을 읽었었다. 파킨슨 병에 걸린 어머니가 뇌졸증까지 겪고 치매로 전이되면서 사망하기까지 7년간을 돌보며 쓴 기록이다. 미장원에서 시간을 때우려고 빌린 책이었는데 역시 그런 종류의 책은 읽고나서도 심란했다.
파킨슨 병은 몸에서 도파민이라고 하는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병이다. 이 호르몬에 관한 약을 계속 먹어야 하고 점점 육신을 움직이기 힘들다가 여러가지 합병증이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마가 이년 쯤 전부터 이 병에 관한 약을 드신다. 그리고 2월달에 5급 장애인 등록 카드를 받았다.처음엔 한쪽 팔에 힘이 없고, 젓가락질같은 동작을 하기가 어려워서 병원을 찾았었다.
각종 검사를 두 달동안 했었다. 그러는 동안 갑상선이 안좋고, 목디스크가 있고 등등 엄마가 갖고 있는 병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연세때문에 모든 수술을 포기하자 결국 남는 것은 신경과 치료뿐이었다. 의사는 확실히 파킨슨 병인지 잘 모르지만, 약값을 아껴주겠다며 장애인 등록카드를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증세는 점점 이 병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 엄마는 고관절 수술의 휴유증으로 걷기가 힘들다고 주장하시지만,이 병에 의해서 걷는 일이 둔해진다고 생각한다.
언니들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듯이 엄마에게 열심히 운동하실 것만 권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약을 빨리 바꾸지 않을만큼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것. 그리고 비슷한 증세의 작은 어머니도 10년간 이 약을 드시는데 그다지 나빠지시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
작가는 마지막에 쓰기를 '내 마음이, 심지어는 나 자신이 질병이나 다른 퇴화로 인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몸소 고통을 겪으면서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제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그 근원에게 넘겨주는 데 동의하고, 지혜롭게 되돌려주려 한다.'라고 썼다.
나는 그만큼은 아니다. 아직도 그냥 나와 내가 아는 주위분들은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리는 일까지는 겪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3년전 부모님이 거의 동시에 큰 수술을 하시자마자 겪었던 공포심은 이제 조금 덜하다.
아버지는 열에 시달릴 때도 병원에서 주는 식사를 꼭 드셨다. 거의 걸을 수 없을 때도 수없이 걷는 연습을 하셨다. 그 때 아버지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스스로 화장실에 갈수 있게 걷는 것.
지금도 밖에 못나가시지만 지압용발판을 밟으면서 두시간씩 운동을 하신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데 객관적으로 아버지의 글들이 수술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다. 책도 여러 권 더 내실 수 있었고, 엄마가 좋아하는 원고료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몇 몇 글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타자를 쳐드리며 내 마음이 위로되기도 했었다.
엄마는 점점 어린애가 되신다고 언니들이 불평하지만 아버지와 나는 엄마가 점점 더 귀엽고 예뻐진다고 느낀다. 엄마의 인생이야말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언니들은 엄마의 자활을 위해서 절대 금지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드리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관리하게 된 반찬값에서 가끔씩 만원을 드리는 일을 계속해서 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공돈이 생기는 일'을 아직까지 엄마가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보아왔다. 언젠가 이일도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면 가끔은 한숨도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짐을 꾸려 나온 아침 8시, 집을 나서기 전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가 웃으셨다. 진심을 담은 인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게 느껴졌다.
두 시간의 점심호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비옷을 걸쳐입고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가운 계곡이 나오고, 계곡을 지나자 푹신한 산길이다. 길을 만들려고 가지치기를 했는지 나무마다 지팡이 같은 마른 가지가 걸려있다.
비에 젖으면서 오솔길을 걷자,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이 실감된다.
떨어진 꽃잎, 시든 꽃도 아름다운 길을 세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산길이 끝나고 마을길이 나오자 고사리 밭이 나왔다. 햇볕이 쨍쨍이다.
우비를 입고 있어서 후끈후끈 더웠다.
큰 다리를 건너고 신작로를 건너서 무조건 쉴 수 있는 원두막에 들어갔는데 공공장소가 아니라 사유지였다. 대형 된장공장이 들어서는데 관리를 하기 위해 지은 원두막같았다.
우비를 벗고 짐을 정리하고 간식을 먹을 때 주인이 왔다. 미안해하는 우리들에게 괜찮다고 하고 주인은 원두막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서는 무언가를 먹었다.
햇빛아래 다시 나갈 일이 까마득해서 점심 먹을 곳을 물어봤더니 25년 전통의 백숙집이 있다고 했다. 전화를 해도 되고, 직접 태워다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전화를 부탁하자 조금 있다가 작은 차를 몰고 50대 여자분이 왔다. 활달하게 생긴 분이다.
여름내내 손님이 들어서 그곳 사람들은 노고단에 한 번 가고 싶어도 못간다고 했다.
그래도 스스로 생을 개척하는 사람들 특유의 자신감이 몸에 배여있었다.
어머니 일을 돕는듯한 주인집 딸이 갓 부쳐준 호박전이 맛있었다. 조금 비싸지만 (4만원) 적어도 항생제를 먹은 닭은 아니리라 믿으면서 여주인이 권하는 대로 닭볶음탕을 먹었다. 원두막 주인은 닭백숙을 먹어야 약이라고 말했었지만, 아무거나 우리 한테 필요한 건 그늘에서 쉬는 일이었다.
더이상 미적거리면, 그야말로 어두운 산길을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길을 나설 때 여주인이 다시 왔던 자리로 차를 태워주었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달라고 부탁했다.
배탈이 났다는 친구가 먼저가라고 해서 두 말없이 부지런히 걸었다. 미적대다가는 햇빛때문에 의욕을 다 잃어버릴 것 같았다. 마침내 산속에서 큰 나무를 만났는데 앉아서 쉬고 싶은 나무였다.
내가 멋대로 느티나무일거라 생각한 그 나무가 마을도 아닌 산속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탁탁 하고 뭔가를 떨어뜨렸는데 조각난 제 몸뚱이었다.
신비롭다고 생각하는데 뒤늦게 도착한 친구가 '죽어가는 나무'라고 했다. 죽은 나무토막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그래도 그렇게 아름답다, 나무를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나는, 아이폰을 들고 이리저리 나무사진을 찍었다.
나무가 죽어가는 일은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왔고,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왔다. 뚜벅뚜벅 짐이 가벼운 한 남자가 와서 일정이야기들을 조금했다. 첫번째 날인 그 남자는 우리가 쉬었던 장항마을에서 인월쪽으로 가다가 포장길이 재미없어서 다시 3코스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다. 1박2일 휴가차 왔다고 했다.
등구재 쉼터
첫날 민박집에서 만난 분들이 등구재 쉼터에서 꼭 쉬었다 가라고 했었다. 물레방아도 있고,
맛있는 비빔국수도 있다고 했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국수 생각은 없었지만, '등구재 쉼터에 가야지'하는 정확한 목표가 있어서 걷는 일이 수월했다.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고 햇볕만 가득하다면 마을 언덕길을 오르는 일은 힘이 들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을 때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자팡이를 밭둑에 던져놓고 흙에 주저앉아 풀을 뽑고 있는게 보였다.뭉덩이 뭉텅이 뽑아놓은 잡초 사이로 앙상한 들깨나무가 있었다.
"들깨 한 그루 살릴려고 저렇게 잡초를 뽑으시네." 하고 친구가 말했다.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쳤다.조금 더 내려가서 비닐하우스 쉼터를 보고 빙과를 먹자고 들어갔다. 혼자온 듯한 여학생은 가벼운 짐에 500cc 생수 여러 개를 매달고 걷고 있었는데, 쉼터쪽은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스틱도 없었다. 여학생은 그 뒤로 한 번도 길에서 만나지 못했다. 속도가 대단하다고 친구가 부러워했다.
쉼터 주인할머니가 찬도 없이 국에 말은 점심을 드시다가 선풍기를 틀어주셨다.
영업용으로 아주 커다란 선풍기였다. 우리는 잠시 앉아있다가 할머니가 밥을 한 번 더 퍼오실 때 일어나서 선풍기를 끄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할머니가 더 쉬다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없는 편이 더 편하게 밥을 드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빙과를 먹으면서 뙤약볕을 걸었다. 드디어 3시 48분에 등구재 쉼터에 도착했다. 밭에서 일하던 여주인은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젊었다. 우리들 보고 봉숭아 꽃을 따가서 꽃물을 들이라고 했다.
친구는 벌써 어제 손톱에 올려놓다며 꽃물이 희미하게 든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산야초식혜를 먹고 삼십 분이나 놀았다.
말린 나물을 파는 것에서 전에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하신 취나물이 있어서 한 봉지를 만원에 샀다.
여우비
겨울에도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다는 등구재쉼터를 나와 십분쯤 걸으니 여우비가 내렸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티비에서 '내 여자 친구는구미호'를 이어보자고 했다.
한참 가다보니 고개마루에 섰다.
이제 거기부터 경상도로 바뀐다. 같은 길이지만, 뭔가를 바꾼다는 사실 때문인지 조금 마음이
환기되었다.
동쪽으로는 법화산 서쪽으로는 지리산 만복대라는 표지를 읽으면서, 아 법화산 하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법화경을 공부하고 나서부터는 산등성이에 붙여진 이름들이 정답다. 거의가 경전에 나오는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고개마루에서도 이 바람이 법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시원할까, 이름으로라도 든든한 가피를 받고 싶은 옛날 사람들의 바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한숨돌리는데 아까 만난 남자가 그제서야 올라왔다.
갤러리 표지를 보고 내려갔다가 오르막을 오르느라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 역시 우리가 그렇게 좋아한 등구재 쉼터를 그냥 지나친 모양이었다.
첫날 민박집에서 만난분들이 쉼터가 보이면 뭣좀 팔아주고 돈을 팍팍 쓰라고 하셨다. 그래야 길을 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일 아니냐고. 나는 정부에서 주도한 사업이기 때문에 첫날 곳곳에서 보이던 '길을 내어주신 주민들께 감사합니다'하는 표지를 보고도 무감각했었다.
우리는 그래서 쉰 것이 아니라 체력이 달리기 때문에 쉰 것이지만,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연륜은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곳곳에 잘 만들어진 정자들이 있다. 거기에서도 한 번 쉬고 계속해서 내려왔다.
다랑이 논이 본격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구간을 지났다. 그 끝에 또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큰 나무 가지에 매인 그네도 있다. 길에서 봤던 사람들이 하나 둘 그 정자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랑이 논을 열심히 사진 찍었다.
누군가는 그 다랑이 논에서 척박한 삶의 고단함을 보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네팔에서도 고도가 낮은 마을에서 그런 다랑이논을 만났었다. 제3구간은 네팔 어딘가를 트레킹하는 생각이 들었다.나마스테라고 하는 민박집 주인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런데 그 집은 여름한철간만 숙박료가 4만원씩이라고 해서 전화만 해보고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천왕봉을 보면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 좋을 멋진 까페겸 민박집이다. 찻값은 휴게소마다 천 원이나 이천 원 사이로 부담이 없다. 첫날 만난 분들도 이 숙소를 추천했었다.
어쨌든 더 내려가 보기로 하고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시는 할아버지께 어디가 지리산이냐고 여쭸더니 봉우리 이름을 다 가르쳐 주셨다.그리고는 뭐가 좋다고 이렇게 멀리 왔느냐고 물으셨다.저녁 무렵 쌀쌀해진 공기속에 그렇게 칼칼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좋았다.
마을분들이 정자나무 아래 모여있다가 이따가 다시 만나자고 하시면서 웃음을 뿌리며 집집이 흩어지셨다. 저녁을 먹고 다시 모이실 모양이다. 삶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이 금계마을이었다.
7시가 넘어가는데 우리가 열심히 프린트물을 뒤적여서 찾아낸 숙소에서는 주인이 아파서 민박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10분정도 더 걸어서 의중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오늘 하루 쉬면서 걸었지만 어쨌든 11시간동안 길 위에 있었던 셈이다. 피곤하지는 않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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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 저곳의 기행담도 좋지만, 엄마의 얘기를 심각히 읽었습니다.
다랑이논이 어떤 논인가요? 맥반석 계란은요?
엄마는 아직까지 뭐 잘 계시고요^^~~~ 다랑이논은 산속에 층층 계단식 논이고요^^~~ 맥반석 계란은 맥반석에 구운 계란이예요. 원래는 찜질방에서만 팔던데 요즘은 편의점이나 수퍼에 다있던 걸요. 속이 갈색이 되어서 맛있었는데 집에와서 (오늘) 사먹어 보니 그 만큼 맛있진 않았어요^^~~
장마와 더운 날씨에 멋진 여행하셨네요...후속편이 기대되네요 .잘보고갑니다.
여행길 따라등구재를 넘고 ...산촌의 싸한 아침공기 느끼며...둘레길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보기도 가장 멋진 코스 같습니다. 역마살은 없지만 여행 좋아하는 사람.. 가슴이 다 두근두근 젊고 건강할 때 부지런히 다녀야 했는데... 부럽습니다. _()()()_
아름다운 여행기를 읽고 있노라니 내가 간듯한 착각 속에 잠시 빠졌습니다....기다림으로..._()()()_
_()()()_
11시간 동안 길 위에 있었는데 피곤하지 않았다구요 젋음이 좋기는 좋습니다. 나도 걷기는 좋아하지만....^^
젊음..._()()()_
그 다랑이논 하늘에서 보여진 모습 아름답던데 그곳에 다녀오셨군요. 부러워요
여행.....너무 너무 부럽습니다. _()()()_
갑자기 오늘 낮에 읽은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이야기와 섞였습니다. 혜명화님 덕분에 지리산 구경 잘 하고 있어요.
막내딸 바램대로 부모님 모두 오래오래 가족들 품에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젊음을 만끽하는 혜명화님 글로나마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서 고마워요. _()()()_
정말 너무 부럽습니다. 지리산 한번 못가봤기에 .... _()()()_
_()()()_
혜명화님의 생생정보통...잘읽고 잘보고갑니다..넘~부러워요~~~_()()()_
혜명화님, 정말 보고 싶어요.^^* 늘 아름답고 멋있는 혜명화님!
혜명화님 멋진 글 이쁘시심니다
단편 드라마를 본 듯한 멋진 영상과 글 잘 보았습니다. 혜명화님의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집니다._()()()_
아~~정말 좋네요..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한번 꼭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