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20여 년 전 우리 아이들과 아내는 음치인 내게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느라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매일 가르쳐줘도 음감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못 부르니 포기 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정말 몇 십 년 만에 배우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의 가사가 정말 좋아서 그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통사정을 하여서 겨우 배우게 되었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하덕규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 ‘가시나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인과 촌장’과 ‘조성모’가 불렀는데 나는 그 가사의 내용과 분위기에 젖어서 곡을 무시하고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노래를 배우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겨우 흉내만 내고, 아직도 엉터리로 부를 뿐입니다.
누가 나에게 인정사정 두지 않고 노래를 시키면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기분 좋은 날은 분위기를 뒤엎기도 합니다. 내가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부르는 유일한 노래이기 때문에 그 노래밖에 부를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노래를 부를 때 아예 나를 빼놓는 배려를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쩍 그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자주 듣습니다. 정말 내 속에는 가사 말처럼 내가 생각지도 못한 내가 너무 많답니다. 그래서 아무도 편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까지도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주 편안한 사람이라고 말들 하지만 사실은 아주 불편한 것을 억지로 견디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를 사로잡고 있는 많은 것들이 가시로 돌변하여 오장육부를 후벼 파면서 가득히 뿌리도 내리고 가지도 뻗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답니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강의하고, 복음 묵상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든 것들이 가시가 되어 내 안에서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세상의 헛된 욕심들입니다. 나는 언제나 헛된 욕심들이라고 하면서도 내 삶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에게 큰소리도 치면서 펑펑 돈도 써보고 싶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뭉텅뭉텅 자선을 행하고도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계획을 세우기도하고,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말려들어 밤을 새워가면서 충고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사업계획서도 만들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헛된 것에 마음이 팔려 있는 나를 보고 극구 말리고 어떤 때는 다투기까지 하면서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어려서 겪었던 많은 아픔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잊은 줄 알고 있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나서 후회와 회한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3-40 년 전의 사건들이 생각나고, 내가 실수한 것이나 잘못한 것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슬프고 우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그 아픔이 다시 아픔을 끌어내고, 그 분노가 다시 분노를 만들어내며, 그 슬픔이 새로운 슬픔으로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를 의지하고 나에게서 행복을 찾는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몫을 생각해보면 마르타의 몫이 나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는 주님의 말씀은 마리아는 주님을 중심으로 살았고, 마르타는 우선 급한 불을 끄는데 치중하고 세상의 일에 매달려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 살면서 급한 불을 끄지 않고, 세상을 무시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매일 내 삶에 올라오는 많은 사건들은 지금 당장 불을 꺼야하는 것들이고, 원칙과 진실을 외면하고 과정을 무시하고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언제 원칙과 진실과 과정을 중심으로 그렇게 차근차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급한 불을 끄고,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에 매달려 살다보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삶을 반추해보면 후회와 회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내 안의 가시나무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할 텐데도 그 실마리를 찾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나를 되돌아보며 이 가을에는 실마리를 푸는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가시나무 -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습니다. 나흘이나 무덤에 묻혀 있던 라자로는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난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때 언니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으나 동생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루카 10,40)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1-42). 주님의 이 말씀에 따라 마르타 성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 성녀는 관상 생활의 모범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마르타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착한사람님
마르타 성녀의 활동이 없었으면 마리아의 영성도 없었겠지요.
열성이 부족한 제 일생을 되돌아 보며 마르타 성녀의 도움을 청합니다.
열심히 살아오셨으니 복받으실 것입니다.
자비하신 주님께는 마르타의 활동이나 마리아의 관상 생활이나 똑같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멘
그럼요. 영성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은총 안에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