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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 전주에는 지금도 '도시 전설' 하나가 유령처럼 명멸을 거듭한다.
'6·25 때 전주는 북한군이 폭격을 가하지 않았다. 왜? 김일성의 선조 고향이니까! 또 전쟁이 나도 전주는 안전할 것이다.'
'전주에서 간첩을 가장 많이 잡는다. 왜? 북한 간첩이 어둠을 틈타 김일성 시조 묘에 잠입하여 새벽녘에 벌초를 한다. 그럼 국정원 요원이 잠복했다가 조용히 잡아들인다.'
실제로 전주의 영산 모악산 자락에는 김일성 주석의 시조 묘로 알려진 김태서 공의 무덤이 있다. 북한 김일성 집안에서도 이를 알고 있다(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경주 김씨로 밝혔는데, 김태서 역시 경순왕의 후손이므로 경주 김씨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김대중 자서전에 따르면, 2000년 6월 14일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막판 회담 때의 일이다.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순서였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긴장감이 흘렀다. 이때 김정일 위원장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누그렸다. '대통령(김대중)과 제(김정일)가 본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어쩐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무엇인가 걸맞게 응해야 할 상황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전주에 김일성 시조 묘가 있다는 것이 떠올라 되물었다.
"김 위원장의 본관은 어디입니까?"
"전주 김씨입니다."
"전주요,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닙니까.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인 셈입니다."
갑자기 '경상도 김대중 전라도 김정일'이 되면서 분위기는 부드러워졌고 회담은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미 1990년대부터 모악산은 김일성 시조 묘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전국에서 등산 겸 구경 삼아 찾는 이들이 많아 명소가 되었다. 지난 1월 12일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 전에 내린 눈으로 빙판길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이 하는 말을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저기 장군봉 지맥이 떨어진 곳이라 김정은이 장군이 되었는가벼….'(실제로 모악산 8부 능선에 거대한 암괴로 된 장군봉이 있다.)
'이곳 모악산에는 천혈(天穴), 인혈(人穴), 지혈(地穴) 3개의 길지가 있는디…. 그중 하나가 이곳이고 나머지 2개는 아직도 못 썼다는디….'
'아녀, 장군봉에는 몇 해 전에 전주의 유력 인사가 벌써 써부렀당께. 무덤이 있을 터닝께 가보더라고….'
그날 이들 말고도 전주 김씨 시조 묘에 정성스럽게 참배를 하는 김민순(여·43)씨가 있었다. 평택에서 일부러 이곳을 찾았단다. 김씨의 부모 고향은 함경도였다. 6·25 때 부산으로 피란 왔는데 한동안 전주 김씨임을 숨기고 살았다. 김일성과 같은 본관이라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서였다. 북에서 온 전주 김씨들이 모두 그랬단다. 김씨에게 굳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부모가 북에서 왔던지라 남한에는 성묘할 조상 묘도 없고, 또 이곳 모악산 영산을 찾으면 아픈 몸도 나을 것이란 희망 때문에 왔다'는 답변이다.
김일성 집안은 모악산뿐만 남한의 다른 영산과도 인연이 깊다. 김정은 위원장의 외가 선영은 한라산 자락에 있다. 또 이복형인 김정남의 외가 선영은 창녕 화왕산 지맥에 자리한다.
그렇다면 '백두 혈통'을 주장하는 김 위원장에게 백두산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풍수의 '주술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통치 이데올로기로 활용한 나라가 북한이었다. 백두산은 그 매개체였다. 다음에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