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에서 대리운전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대부분 당연히 서울 강남을 꼽을 것이다. 이 때문에 대리운전원들은 오더 수행을 완료하면 대부분 이른 시간 내에 다시 강남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교보사거리에 가보면 대리운전원이 일반인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지역에서는 다른 곳에 비하여 콜을 받을 확률이 높을까? 나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있으면 강남으로 복귀하려고 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우선 택시를 타든 셔틀을 이용하든 3천 원 이상 비용이 들뿐더러 그만큼 이동하는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인데 그 정도 시간과 금액을 투자하여 구태여 강남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이득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택시나 셔틀을 이용하려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제일 께름칙하고 불안스럽다는 점이 심리적으로 멀리하게끔 작용하였을 거 같다. 대리운전과 마찬가지로 택시나 셔틀도 시간 싸움인지라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신호위반과 과속 운행이 예사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자신의 생명을 내걸어야 한다는 점이 아주 못마땅했다.
하여 경력이 좀 쌓이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총알택시나 셔틀을 이용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될 수 있으면 자제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떡해서든 그 지역 일대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다. 물론, 인적이 드물고 불빛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번화가 쪽으로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움직일 때도 있고, 대중교통이 끊어진 한밤중에 오지에 떨어졌을 때 마침 지나가는 택시라도 보이면 부득이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생긴다.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경험을 통해 역시 내 나름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낫겠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제는 동두천시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두천은 서울에서 꽤 떨어진 데다가 내가 지역사정을 잘 몰라 처음에는 콜이 들어와도 선뜻 캐치하지 못하였다가 언젠가 시험 삼아 한 번 들어가 보니 그럭저럭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후부터는 적정한 금액으로 콜이 올라오면 가끔 잡아 수행하곤 하게 되었다.
기지촌의 대명사로 불리는 동두천은 미군부대의 영향으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권이 발달하였던 곳인데 미군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상당히 위축하게 되었다. 지금은 미군 일부가 잔류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지만 예전에 화려했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고 가게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상태이다.
내가 도착한 지역은 보산동이었다. 시각은 11시 20분쯤이었는데 도로변 상점은 전무 문을 닫아 컴컴하였다. 여손은 2~3킬로는 다시 나가야 콜이 나올 것이라고 하여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 네이버지도를 검색하니 약 500m가량 떨어진 곳에 보산역이 있었다. 그 일대 주변검색을 하니 술집이 몇 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철 시간을 보니 막차가 11시 44분에 있으므로 충분히 탈 수도 있었다.
이때까지의 실적은 세 건에 65K였다. 밤새 허탕을 치게 되면 수입에 상당한 차질이 오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기왕 들어간 마당이니 탈출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그곳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막차가 떠나는 소리를 들으며 역사 주변을 둘러보니 전철역 상권치고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문을 연 술집과 음식점들이 꽤 보이고 네온사인이 번쩍이기도 했지만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점들이라 대리운전 콜이 나올 조짐은 없어보였다.
▲ 보산역 근처에 있는 동두천시 외국인 관광특구
중앙로를 따라 생연동 쪽으로 내려오니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과 주점들이 한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콜이 가끔 뜨기는 했지만, 대부분 도착지가 내가 도전하기에는 지명도 생소하고 겁나는 지역인지라 선뜻 터치하지 못했다.
그렇게 콜 하나 수행하지 못하고 두 시간가량 지났을 즈음 강한 진동음을 울리며 화면에 나타난 오더는 나를 흥분하게 하였다. 35K, 도착지는 남양주 진접. 내가 사는 동네로 복귀하는 콜이고 금액도 후한 편이다. 캐치하여 손과 조우하니 옆에 있던 친구가 40K를 주며 잘 부탁한다고 한다. 근데 정작 차주는 구태여 가지 않겠노라고 고집이다. 친구는 제발 가야 한다고 강제로 차에 밀어 넣으려고 해도 차주는 그럴 수 없노라고 완강하게 버틴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던 친구는 할 수 없이 수고비 10K를 제외하고 30K를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해서 환상적인 콜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10K라도 건진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다시 한 시간쯤 흘렀을까. 생연동에서 인근 지역으로 가는 10K 콜이 뜬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이런 것이라도 주워담을 수 밖에. 손과 만나 출발하였는데 500미터쯤 지났을 때 세우라고 한다. 그곳이 목적지라는 것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차를 그대로 두었다가 아침에 찾아갈 수도 있을 법한데 구태여 대리운전을 통하여 귀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해 보였다.
이렇게 세 시간이 지났다. 막차가 나오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무료하게 버티기에는 다소 긴 시간이다. 해서 근처에 유일하게 보이는 피시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PC방은 일층 건물에 있었다. 자리에 앉자 여사장은 커피를 타다 준다. 내가 그동안 수십 군데 피시방을 가보았지만, 커피를 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로그인을 하였다. 한 시간 정도면 바둑 한판을 두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적당한 사이다. 바둑 사이트에 들어가려는 찰나 진동음이 울린다. 목적지가 의정부시 금오동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컴퓨터 전원을 끄고 계산대에 가서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고 하니 컴퓨터를 이용한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로그인까지 했고 커피까지 얻어먹었으니 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고맙습니다.' 하고 나오면서 내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손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 만나서 운전대를 잡고 목적지를 물으니 다름 아닌 금오동 홈플러스 앞이란다. 그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 아닌가. 도착하고 보니 홈플러스와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 이렇게 해서 동두천에 들어가서는 40K를 손에 쥘 수 있었으니 그럭저럭 현상유지는 한 셈이다. 의정부에 도착해서도 콜이 연속하여 터지는 바람에 포천시내, 길음동, 노원역으로 다니며 170K로 마감할 수 있었다. 7월 실적이 다소 부진한 편이었는데 제일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이날 일을 마치며 느낀 것은 초반에 실적이 저조하다 하여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버티면 반드시 높은 성과를 올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제는 초저녁부터 잘 풀리는 편이었다. 아파트단지에 있는 집에서 프로그램을 켜고 있다가 인근에서 콜이 뜨는 바람에 시작하게 되었다. 광릉내, 의정부 용현동, 신곡동, 상봉동, 호평동으로 이어지며 자정쯤 되어 90K를 올릴 수 있었다. 호평동 이마트 앞에 가니 대중교통은 끊어지고 대리기사들이 서너 명씩 짝을 지어 강남으로 가는 택시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대리기사는 서울 택시를 잡고서는 인원을 채우려고 '강나암~~~' 하고 소리 지르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에 개의치 않고 나는 내 스타일 대로 그곳에서 버티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에 자동배차 콜이 부르르 뜬다. 10K에 묵현리가 목적지이다. 여느 때라면 당연히 무시했을 텐데 이 순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공연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캐치하고 말았다. 초반에 괜찮은 실적을 올렸으니 오늘은 모험을 한 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손과 만나 이동하면서 말을 건넸다. '사실은 이 시간에 이 가격으로는 안 들어가는 곳인데 오늘은 모험을 한 번 해보기로 하고 잡았습니다. ㅎㅎ ' '그러셨어요? 그 지역이 콜이 나오는 곳은 아닌데요?' '그렇습니까? 전혀 가망이 없는 곳인가요?' '그렇지요. ㅎㅎ 그런데 왜 잡으셨어요?' 손은 콜을 잡은 내가 이상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런 소리를 할 것 같으면 왜 그런 가격으로 올렸어요?' 하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마치터널을 지나 내려가다가 묵현리로 들어가고자 좌회전을 하자마자 손은 내리라고 한다. 그곳에서부터는 자신이 끌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10K에 나를 그곳까지 오게 한 것이 미안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 묵현리는 호평동 바로 옆 동네이긴 하지만 대리운전을 하기에는 그 환경이 천지 차이다. 상당한 주택이 있긴 하지만 몇 개 있는 상점이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기 때문에 콜이 나올 확률은 매우 낮다.
선참 친구에게 카톡으로 내 위치를 알려주니 어서 택시 타고 나오라고 알려준다. 이에 '난 그래도 끝까지 버티어보련다.'라고 답장을 보내긴 했으나 내심 은근히 걱정된다. 차라리 주택가 한가운데로 들어가 볼까? 아니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택시나 셔틀을 이용해 나가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마침 대리기사 한 명이 묵현리에서 내가 서 있는 도로변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그때 택시 한 대도 뒤따라 나오다가 멈춘다. 둘이 뭔가 이야기하더니 기사가 택시에 탄다. 그리고 택시는 서서히 내 옆으로 다가와 멈춘다. 강남에 나가지 않으시려오? 그래. 오늘은 강남으로 한 번 가보자. 택시를 타니 대리기사는 나까지 두 명이다. 계속해서 가다가 더 태워야 할 터인데 택시기사가 갈림길에서 순간의 판단착오로 고속도로로 올라타고 말았다. 택시는 내친김에 속도를 내고 내달려 강변북로를 거쳐 영동대교를 건너 청담사거리까지 가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새벽 02:00 쯤 청담동에 내리니 거리에 보이는 사람마다 손에 든 전화기 화면에 나랑 똑같은 프로그램을 켜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유흥업소가 만만찮게 몰린 이곳을 대리기사들이 가만 둘리 없을 테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전화기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죽어 있다가 마침내 분당행 콜이 하나 뜨기에 겨우 잡았다. 도착하고 보니 내가 선 위치는 중앙공원 옆 아파트단지 한가운데로 비는 내리는데 우산도 없어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때 마침 좌석버스 한 대가 지나다가 신호에 걸려 정차해 있었다. 얼른 뛰어가 기사에게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내니 고맙게도 문을 열어주어 운이 좋게 탈출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남양주 묵현리에서 강남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추가로 얻은 소득은 20k에 그치고 말았다. 그것에서 수수료, 택시요금, 좌석버스 요금을 제외하면 10k밖에 안 남는다.
오늘 아침 일을 마치고 나서도 느낀 게 있다. 초저녁에 잘 풀렸다고 하여 절대 자만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연히 부화뇌동하여 남들 따라 택시 타고 강남으로 가 보았자 별 게 아니니 웬만해서는 도착 지점에서 끝까지 버티어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
경비를 제하고 순소득을 계산해보니 강남으로 갔던 어제 실적이 동두천으로 갔던 그제 실적의 65%에 그치고 말았다. 역시 나는 내 평소 스타일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강남행 콜을 구태여 마다할 이유도 없지만, 일부러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강남으로 찾아 들어갈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 새벽에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에서 만났던 5년 경력의 베테랑급 기사가 일러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불빛이 화려한 곳에는 대리기사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가보았자 별 볼 일 없습니다. 확률이 낮아져 까딱하다가는 시간만 죽이기에 십상이지요. 그렇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장소에서 오히려 좋은 콜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
첫댓글 알고는 있는데 쉽지는 않타는....
그렇지요
똣대로 되기가 쉽지는 않지요^^
잘읽고 갑니다.
시답잖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글맨아래 구운동 제가지금 구운인데 한시간 죽고있네요 소사20 봉천 20썩을것들. .
ㅎㅎ 그러시군요
저도 그때 오더 잡지 못하고 첫차로 나왔더랬어요
@생명의빛 다행히 평촌이 떠서 잡고왔네요 손과 통화하자마자 얄궂게 더 ·즣은게 들어오네요 ㅎ
이상하게 정독하네~요
장문을 정독하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ㅎ
ㅋㅋㅋㅋㅋ
강남은 지방에서 금액 잘찍히면 갈까 아니면 안가는 1인임.
네~~고수들은 그러는 거 같더라고요
강남은 콜잡고는 절대 안가는 1인 ... 손이 목적지 변경되어 가면 요금 쎄게불러 가면 가고 아님 하차...
ㅎ 절대 안 가는 분도 계시는군요
근데 저는 귀가하는 버스가 강남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퇴근길에는 어쩔수 없이 갑니다 ㅎ
체험글 잘읽고,감사드립니다.
가끔 읽는 빛님의 글 친근함이 느껴집니다~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
대리는 어차피 운수사업입니다.. 동두천을 가던 호평을 가던신림동을 가던 운이 있으면 만원 콜이 사만원 되는것이ㅣ고 운없으면 아무리 좋은 곳 착지 했다 하더라도 캔슬 두방에 맞탱이 가서 손 까락 빨면서 집쪽 버스에 몸을 싫는 운수 사업 인것입니다...
운이 작용하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력과 열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빛 전 마음가짐 50 경력 35 운빨 15
이리 생각합니다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퐈이팅~~^^
님께서도 항상 힘내시고 건강하시고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
재밌게 잘 읽고 갑니대이~~^^
고맙습니다 ^^
재밋게 잘읽엇습니다 투잡이신가요
대리 시작한지 1년 반이 넘어가는데(파주 운정)
강남에 아직 한번 안가봣네요^^
글 자주 올려주세요
아주 좋습니다
투잡이 아니고 지금은 전업인 셈입니다만, 나중에 다른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이 일을 병행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투잡으로. 하게 되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을거 같습니다 첫째, 술을 안 먹게 되니 건강을 지킬수 있다 둘째, 술값이 안 듵어가고 오히려 돈이 생기니 한달에 최소한 일백만 원 이상 저축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