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큰누이는 1942년생으로 나와 딱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열여덟에 시집을 온 어머니가 열아홉에 낳은 큰딸이다.
바로 아래 두살 터울의 둘째 딸이 백일 막 넘기고 죽으면서 어머니한테는 큰누이가 더욱 소중한 딸이었을 것이다.
큰형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엄니의 유일한 자식이었으니 오죽했을까. 나는 누이가 셋인데 유독 큰누이가 엄니와 외모가 꼭 닮았다.
누이는 어릴 때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할아버지가 사 준 란도세루 가방을 메고 갔는데 가방 멘 아이는 반에서 세 명뿐이었다고 한다.
조부모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그 많던 재산 탈탈 털어 먹는 것을 가장 세세히 알고 있는 사람도 큰누이다.
누이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다섯 달 전에 시집을 갔다.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하고 싶은 것 실큰 하고 난 아버지는 결국 병이 들었다.
병색이 깊어 더이상 살 가망이 없는 아버지는 죽기 전에 큰딸 혼인을 시킨다며 서둘렀다고 한다.
중매로 여섯 살 많은 서산 남자에게 누이는 변변한 혼수도 없이 시집을 갔다. 태안이 서산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인데 큰매형은 태안의 섬 출신이다.
매형은 육지 사람들로부터 섬놈이라며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는데 큰누이와 결혼 후 서산 육지로 나와 정착을 했다.
인연이란 게 묘해서 큰매형은 내 누이 만나기 한달 전쯤 다른 여자와 선을 봤다고 한다.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한두 번 만났어도 여자가 선뜻 마음을 주지 않더란다.
너 아니면 여자가 없다더냐 뭐 이런 심정이었을까. 꿩 대신 닭으로 큰매형은 내 누이와 결혼을 한 셈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서둘러 시집을 간 큰누이는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큰 조카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흔히들 돈이 없어도 마음 부자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 하는 이야기다.
가난은 형제끼리 돈독하게 교류하는 것을 방해하고 사람의 정서를 황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큰매형은 처갓집이 가난한 줄은 알았으나 이 정도까지인지는 몰랐다고 했다.
조실부모한 큰매형 또한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부지런한 큰형과 숙부 덕에 근근히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으나 내 큰매형은 처갓집이 가난해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위를 위한 씨암탉은커녕 이따금 처갓집에 오면 허리가 휘도록 일만 하다 갔다.
처갓집 농사가 많아서가 아니라 떨어진 부엌 문짝이며 울타리 담장 고치기 등 집안 곳곳 손을 보고 갔다.
그럼에도 큰매형은 처갓집에 올 때면 바리바리 먹거리를 짊어지고 왔던 사람이다.
매형네도 반농반어로 사철 바쁜 탓에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는 없었고 번갈아서 왔다. 그래서 큰누이가 집에 왔을 때 모녀는 부둥켜안고 한바탕 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룻밤 자고 돌아갈 때도 서로 눈물이었다.
큰누이는 가난한 친정 걱정에 울면서 갔고 엄니는 고생하는 큰딸이 안쓰러워 멀어져 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랄 때 외로웠다는 큰매형은 자식을 여섯 두었는데 아들아들, 그리고 줄줄이 딸딸딸딸이다.
매형은 아들이 없는 당신 큰형을 위해 장남을 양자로 보냈다가 파양한 경험이 있다.
누이의 장남 역할을 하던 둘째 조카가 20대 때 사고로 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양자로 보낸 큰조카를 다시 데려온 것이다.
지난 4월 벚꽃이 만발하던 때 큰매형이 코로나에 걸렸다가 세상을 떠났다.
몇 해 전 코로나가 창궐할 때도 무사히 넘겼는데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작년 가을 큰누이 집에 갔을 때 매형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평소 워낙 부지런한 분이기는 했으나 허리가 부실한 큰누이를 위해 웬만한 집안일은 당신이 먼저 척척 한다며 자랑을 했다.
매형이 세상을 떠나자 큰누이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다. 하긴 63년간 함께였던 남편이 떠난 자리가 너무 컸을 것이다.
매형이 평균 수명을 훨씬 넘게 살았기에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테지만 부부의 이별이란 이렇듯 남은 사람에게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을 주는 모양이다.
나 또한 올봄은 유난히 부침이 많아서 언제 봄이 왔는지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누이가 병원 생활 며칠 할 때는 이러다 줄초상 치르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무사히 떨치고 일어나서 다행이다.
내게 아버지 같던 큰매형은 떠났으나 엄니 같은 큰누이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있다가 돌아왔다.
이제 누이에게 큰조카가 큰 힘이다. 먼저 떠난 작은 아들을 아직까지 가슴에 묻고 사는 내 큰누이다.
어릴 때는 나를 형이라 부르기도 했던 조카다. 그럴 때면 큰매형은 오삼춘이라 부르라고 알려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함께 늙어간다.
큰조카는 나를 볼 때마다 너무 걱정 말라고 한다.
"삼춘, 걱정 말어유."
"제가 엄니한테 잘 할 게유."
엊그제 큰누이집을 갔더니 텃밭에서 누이가 뭔가를 캐고 있었다. 누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엄니 생각이 나서 울컥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생전의 내 엄니 모습과 꼭 같다는 말인가. 하마터면 누나가 아닌 엄니 하고 부를 뻔했다.
어젯밤 시집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시를 발견하고는 다시 내 엄니와 큰누이가 생각났다.
엄니를 꼭 닮은 내 누이는 꼬옥 안아주고 싶은 젊은 할미꽃이다.
젊은 할미꽃 - 황영주
옆에 설 때마다 엄마는
한 뼘씩 낮아진다
하필이면 눈에 든
할미꽃, 햇살을 담고 있다
원래 꼬부라진 게 아니었네
예쁘다고 만지는
늙은 엄마
고분하게 휘어지도록
열심히 살았다고
꼬옥 안아주는 젊은 할미꽃
*시집/ 말을 씻는 시간/ 지식과감성/ 2025
첫댓글 고향이 서산인근이신가 봅니다
오랜만에 오신 유현덕님의 사연이
가슴을 적시게 만드네요
그산님의 반가운 첫 댓글이네요. 제 고향은 서산에서 한참 더 내려가야 하는 곳이랍니다.
지금이야 금방 가지만 교통이 불편했던 옛날에 누이의 친정 나들이는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또 버스 타고,, 하루에 다녀올 수 없는 곳이었지요.
그산님, 산처럼 늘 넉넉한 날들이기를 바랍니다.
아~~~요즘 왜 안보이나 생각하면서도
워낙 갠적으로 연락을 안하는 스타일이라
어느날 오시겠지하며 기다렸어요
큰일도 치루시고
부침도 있었다니
인생 한구비가 굽이쳐 갔나봅니다
배우자와 사별이 가장 큰 스트레스지수라 들었습니다
아들도 동생도 큰 언덕이 되어주셔야겠습니다.
나이드니 아들은 아버지
딸은 엄마얼굴이 되어가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반가움에 손잡습니다~♡
정아님이 기다리셨다니 저도 반갑네요.
그동안 숱한 풍랑을 맞으며 살았음에도 가족의 죽음을 겪을 때는 여전히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아 잠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정아님이 댓글에 언급하신 언덕이란 말이 참 살갑게 다가오네요. 위로가 필요한 큰누이뿐 아니라 제가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큰누이가 엄니를 많이 닯기는 했어도 며칠 전에 본 뒷모습이 너무 똑 같아서 놀랐답니다.
반겨준 정아님께 저도 손 내밉니다.ㅎ
현덕아우님 오랫만이구만...(^_^)
나하고 11살 차이나는 큰누이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 1학년이고, 나는 다섯살의 나이가
되는 그해 봄날에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지...
그해 여름에 누나 손을 잡고 엄마 산소를 가니
누이는 몇번을 깨며 기절하며 울고 나도 울고...
그때 엄마 산소앞에 피어있던 빨간 할미꽃
한송이가 너무도 강렬하게 내 가슴에 각인이
되었으니, 그 또한 젊은 나이로 떠난 엄마가
우리를 다독여주는 젊은 할미꽃이었으리라...
이제는 그 누이도 엄마산소옆에서 같이
할미꽃으로 바람에 휘적휘적 춤을 추고
나는 가끔씩 그 앞에서 노래를 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저기 고개 넘어 꽃가마 타고가는
엄마도 보이고 누나도 보이는구려...
적토마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제 글보다 형의 댓글 사연이 더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일찍 떠난 엄마의 자리가 형의 큰누이 가슴에는 그 슬픔의 깊이 또한 얼마나 아득할지 가늠하기 힘드네요.
다섯 살에 떠난 엄마를 평생 형이 마음에 담고 사는 것도 종종 눈물이 솟게 하면서 한편 꿋꿋이 견디게 한 원천이기도 했을 겁니다.
어렸을 때는 자주 볼 수 있었던 할미꽃을 본 게 언제였던가 싶네요.
할미꽃이 좋아지면 나이 든 증거라던데,,
그럼에도 저는 할미꽃이 좋답니다. 예쁘면서 슬픈 꽃이어서 더 사랑스럽구요.
형을 오프에서 만나면 할미꽃을 본 것처럼 반가울 겁니다. 그러니 우리 건강하게 열심히 살자구요.ㅎ
@유현덕
그러게...
차갑고 모진 비바람이 휘몰아오는 벌판을
달리는 듯한 인생길에서도 자그마한 들꽃
한송이 함부로 밟지말고 살아가세 ~
우리들의 아픔을 시와 노래로 승화시키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슬픔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이팅~!!
적토마 아우님
현덕 아우의 글을
읽다가
여기에서 뵈니
반갑습니다.
언젠가 현덕 아우와 같이
모임에서
만나면 반가웠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한강변에 살았을 적에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혜전2
네~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는거죠 ?
코로나와 알딸딸한 날씨 변화를 겪으면서
건강에 신경을 더욱 써야되겠더라구요.
늘 좋은날 되세요. 화이팅~!!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하~
제 글이 다빈님의 눈물샘을 자극한 모양이군요. 그래도 가끔 울어주면 감정 정화에 좋다고 합니다.
평온한 날들 되세요.
울 엄마하고 나이가 동갑 이시네요..
늘 짱짱 하실것만 같았던 우리 엄마도
이젠 꾸부정한 어깨와 걸음도 살짝 어눌하게
걷는 그런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해서
늘 안타깝습니다..
유현덕님 올만이십니다..
잘 지내셨죠?
계절의 여왕 5월엔~
히힝~~
칼라풀님 어머님은 건강한 말띠,,^^
제 큰누이도 풀님 어머님처럼 최근 어깨가 많이 쳐진 모습이 안타깝답니다. 한꺼번에 늙기도 한다더니 매형 떠나고 나서 더 폭삭 나이가 들어 보여서 애처롭네요.
그래도 꿋꿋이 잘 이겨내리라 믿네요. 늘 열심히 사는 알뜰한 칼라풀님과 어머님의 건강을 빕니다.
중년의 나이에서 배우자를 잃었을때 슬픔은 말로 다 못합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솟구치고는,때로는 혼자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했었죠
그래도 세월이 약이다 싶어요
시간이 흐르니 슬픔도 차츰 엷어지고요...
공감합니다.
이별을 경험한 섭이님의 증언이 아주 생생하네요. 경험처럼 큰 스승이 없다지만 막상 닥치면 아득해지고 막막한 것이 배우자와의 이별이지요.
때론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더이다. 슬픔을 잘 이겨낸 섭이님도 늘 좋은 날 되셨으면 합니다.
스무살 차이면 누님 으로 부르세요~~
어디 먼 데 다녀오셨나 봅니다?
그리운 율목리.
율목리면...
정미에서 서산으로 진입하는
느낌상 느티나무를 지나 서산 구치소로 가는 그곳 같은데..맞나요?..ㅎ
@가을이오면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삼십여 년 전
그 동네에서 先親 葬事 치렀습니다...
오른쪽 으로 가면 당진읍 방향.
네, 향적님,,
큰누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데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집을 간 터라 함께 산 적이 없지만 그래도 제겐 아주 애틋한 누이랍니다.
제가 누나~~ 라고 부르면 큰누이는 엄마처럼 활짝 웃지요.ㅎ
향적님, 늘 좋은 날 되시길요.
가정의 달 5월에 잘 어울리는 글..
프로페셔널 작가의 글과 비교 할 수 없는 좋은 글..
그런 글을 만나게되어 감사합니다.
ㅎ 가을이오면님,,
가을에 오실 줄 알았는데 따뜻한 봄에 오셨네요.
글이란 게 마음을 유리창처럼 내 보이게도 하지만 때론 커튼처럼 감추게도 하기에 마음에 주름지지 않게 쓰려고 합니다.
못난 글 좋게 읽어주시니 다행이네요. 가을님께 계절의여왕 오월을 몽땅 드립니다.
네~~서산 애기 잘 표현 합니다.
넵!
언제나 맑게 사시는 자연이다님을 응원합니다.
잠시 쉬면서 들어와보니 반가운 현덕님이.
눈시울 뜨거워집니다.
잔잔하게 적으신 이 글을 보고 눈시울 붉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어느집이든 큰딸은 엄마대신이고,
큰아들은 아버지 대신이죠.
누님이 거의 저희 아버지 연배시네요.
엄마대신 삼으시고 그 늙어가는 모습에 또 가슴아프시고..
가정의달. 다시금 가족의 소중함. 애틋함을 느껴보는 글. 잘 읽었습니다.
커쇼님 잘 지내시지요?
큰딸은 엄마 대신,
큰아들은 아버지 대신,, 이라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평소에는 으르렁거리다가도 막상 닥치면 누가 시킨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가족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남편을 보낸 제 큰누이도 이제 하나 있는 큰조카에게 의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형제끼리 그리 돈독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네요.
커리우먼 커쇼님의 푸릇푸릇한 날들을 기원합니다.
꼬옥 안아주고 싶은 젊은 할미꽃..
이 한마디에,
어머니를 닮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동생이 외롭지 않게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모렌도 선배님께 제 마음을 들켰습니다. 할미꽃에 난 솜털처럼 선배님의 보드라운 감성이 느껴집니다.
어제 시를 읽다가 어머니와 큰누이가 생각나서 시를 잊어 먹기 전에 쓰게 만든 글입니다.
자주 볼 수 없는 큰누이였지만 만나면 꼬옥 안아 줄 수 있는 누이가 있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렌도 선배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되시길요.
나야 누이형제 없이 컷으니
동기간의 정을 알지는 못하나 유비님 글 대하니 맘이 짠 해집니다
가난한 친정집이 못내 아쉽고 서러웠을 큰 누님의 아픔이 전해지는군요
오랫만에 올리신 글이라
반갑기도 하구요
누이가 없는 함박산님에 비하면 누이가 셋인 저는 행복한 사람이었네요.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때는 서로를 안 보여 주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이제 살 만하니 빚 걸린 것처럼 애틋해지나 봅니다.
잘 해준 것은 생각이 안나고 못해 준 것만 생각나니 그 또한 후회로 가슴을 치게 되니 저도 참 가련한 인생입니다.
함박산님의 댓글에 저도 반가움이
울컥~~
자주 봅시다요.ㅎ
그 당시의 삶들은 때때로 겨울이고
때때로 봄이였던 것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가는 줄 알았더니
때론 아니기도 했던 ㅡ
마음 저릿한 경계없는 사랑 안에서
소중한 분을 보내신 빈자리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인연들이지만
커다랗고 외로운 눈빛에 현기증납니다.
현덕님의 살아있는 기억
떠나신 분에 대한 감정들이 깨어나며
잉태한 성단에 젊은 할미꽃 피워내시는 글
할미꽃의 굽은 목울대를 살짜기 들추니
더 젊은 할미꽃 한 송이가 피어납니다.
여울처럼 맴도는 그리움
고개들어
보고 싶으셨던게지요.
.
헤알님의 정성 가득한 댓글에 잠시 제 마음을 얹고 생각해 봤습니다.
계절의 순서가 봄부터 온다고 생각하면 봄이 일생의 시작이겠으나 겨울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그 겨울을 내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봄여름가을겨울, 겨울봄여름가을, 가을여름겨울봄, 여름봄겨울가을,,
남들은 순서대로 오는 계절을 즐기고 있는데 저만 뒤죽박죽 헷갈리는 계절에 헛발질을 하느라 허덕이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결국엔 평정심,,
작년에 큰매형 생일 때 큰맘 먹고 안마기를 선물했는데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좀더 일찍 실행에 옮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멋진 헤알님의 댓글에 저의 답글로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ㅎ
얼마전부터 유현덕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토록 오래 글을 쓰시지 않은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일까,,,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혼자만 궁금하던 차!
저의 마음이 전달 되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반가움!
유현덕님께는 잔인한 4월이었군요
가슴아픈 사연에 마음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제 보름 정도 남은 5월엔 자연의 경이로움과 향기로운 오월
누리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과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댓글을 보니 김지원님께서 저의 찐 글팬이신가 봅니다.
전부터 제 글에 달린 지원님의 댓글을 보면 세상 보는 눈이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긴 했답니다.
세상을 오직 눈으로만 보면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가슴으로 보면 가시도 꽃으로 여겨질 때가 있더이다.
제가 이번 봄에 겪은 일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고 이제는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나이임에도 제가 조금 유난을 떤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비록 댓글이긴 해도 뭔가 통한 것처럼 우연한 이심전심의 소통이 참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안팎으로 놓여 있던 슬픔의 통로를 잘 헤쳐왔으니 가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원님도 항상 평온한 날들이기를 빕니다.
현덕아우님의 글을 읽다가
지원님을 여기서
뵙게 되네요.
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혜전2 반갑고 고마우신 선배님
평안하시지요?,,,
글로서 뵈오니 그래도 반갑습니다
늘 건강과 평안을 기원드립니다~~
순박하게 웃는 현덕님 생각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좋은글이 많았어요
좋은밤 돼세요
아하~
호반청솔 선배님 건강하신지요.
부족한 글 좋게 읽어 주시니 감사하네요.
저도 이런저런 일로 심란한 탓에 한동안 카페 출입을 못했습니다. 간만에 오니 반가운 분들도 만나고 참 좋습니다.
호반 선배님도 건강하셔서 이곳에 오래 머무르시길 바랍니다. 고운 밤 되시구요.
현덕 아우
오래간만에 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했었는데
집안에
우환이 있었군요.
이제 다시 기운내고, 일상으로 돌아 오셨으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저에게도 2월,3월,4윌은
즐겁지만은 않은 계절 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더 여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현덕아우님의
건강과 평안하심을
기원합니다.
와우~~
혜전 선배님 잘 지내시나요?
제가 뭐라고,, 잠시 안 보인다고 걱정도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앰블란스 문짝 몇 번 열고 닫고 보니 올봄은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선배님도 지난 봄이 즐겁지 않으셨다니 조금 춥게 지나갔나 봅니다.
혜전 선배님이 술을 참 정성스럽고 맛나게 드시는 것이 참 보기 좋았더랬는데요. 게다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시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렇게 댓글로나마 선배님 안부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맛난 술과 정겨운 대화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오월처럼 싱그러운 날들 되시구요.
너무 삶방을 비운다 싶어서 연락을 해보까 했는데 이렇게 오셨네요
집안에 상을 당하셨으니 그리고 아프셨나요 현덕님도? 누님이 일어 났으니
다행입니다 엄마 맏잽이 누이신데 얼마나 마음으로 의지가 되셨겠어요
매형님도 참 좋으신 분이셨군요 마음 추스리시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덕님도 건강 챙겨 가며 일하세요 봄이 안 좋았으니 여름부터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겠어요
운선님은 뭔가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신 모양입니다. 큰누이 내외 일에다 아내, 그리고 저까지 병원 드나들다 보니 머리 속이 온통 안개로 가득하더이다.
나는 아직 덜 여물었어. 덕분에 이런 깨달음도 얻었고 인생 공부 또한 많이 부족함을 알았답니다.
제가 먼저 운선님께 근황을 알리는 안부 쪽지라도 보냈어야 했는데 무심했네요.
이 와중에 무슨 카페 활동이냐며 한동안 출입을 하지 않았더니 문자와 쪽지로 안부 물으며 걱정해 주신 분들이 있긴 했습니다.
삶방의 터줏대감인 운선님은 아프지 마시고,
더 늙지도 마시고,,^^
항상 좋은 날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