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전둘레산길, 이동의 공간 너머 치유와 재충전의 공간으로
현재 대전에는 문화의 거리인 으능정이 거리 이외에도 과거 길의 함의와 변별되는 함의를 지닌 길들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중앙로가 오늘날 문화라는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몇몇 길들은 그 본연의 의미에서 벗어나 생태환경과 미래라는 함의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전의 산들을 연결하여 시민들이 대전 주변의 산을 한 바퀴 돌아보게 하려는” 27) 목적과 함께 2004년에 창립된 <대둘>은 ‘생태환경’을 의미하는 길을 탄생케 한다. 대전둘레산길 이외에도 대청호 오백리길, 계족산 황톳길은 현재 생태환경이란 의미를 앞세우는 길들이다.
특히 대전둘레산길은 “대전의 산을 시민의 품으로 !” “대전의 산천을 알아야 대전의 문화가 보인다!”라는 구호를 내세운, 전국적으로 걷기 운동을 확산시킨 최초의 길이다. 그 길 제 1구간 ‘보문산길’은 보문산 중턱 청년광장에서부터 고촉사를 거쳐 보문산 시루봉에 올라 시작한다. 보문산 시루봉에서 구완터널을 거쳐 오도산에 이르면 지나온 보문산을 뒤로 하고 식장산이 서대산을 배경으로 버티고 서있다. 걷다 보면 어느 틈에 금동고개에 도착하여 한숨을 돌린다. 금동고개에서 시작하는 2구간은 떡갈봉과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몇 개가 이어져 능선 타는 맛이 아기자기하다.
1, 2구간은 대전둘레산길 중에서 참나무와 떡갈나무가 유난히 많은 길이다. 특히 가을에 걸으면 레미 드 구르몽의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로 이어지는 “낙엽”이란 시가 떠오르고, 다이애나 루먼스의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에 나오는 싯구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가 환기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안산을 지나고 먹티를 건너 만인산을 가파르게 오르면 남동쪽으로 서대산과 정기봉이, 뒤쪽에는 보문산 능선이 멀어져 간다. 내리막은 태실을 거쳐 만인산 휴게소에서 끝난다. 만인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어 태봉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중심부 봉수레 골짜기에서 대전천이 시작된다.
만인산에서 시작하여 정기봉에 올랐다가 골냄이 고개와 머들령을 지나 닭재에서 덕산마을로 빠지는 3구간 머들령길에서는 대전의 시인 정훈의 시를 읊조린다.28) 4구간 식장산길은 삼괴동 덕산마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옛 고개 닭재, 즉 계현성터에서 시작이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길 반복하다보면 망덕봉 지나 곤룡터널 위 곤룡재29)에 다다른다. 여기서부터 식장산을 내다보며 장쾌한 전망을 즐길 수 있는데, 봄에는 능선에 진달래가 지천이다. 식장산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598m) ‘보만식계’라 불리는 보문산,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 산줄기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식장산은 골이 깊어 물이 좋아 세천 수원지가 형성되어 대전시에 수돗물을 공급했다.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먹을 걱정이 없이 쌀이 끊임없이 솟아 나는 맷돌이 있었다는 설화도 식장산의 울창한 생태계와 연관 있을 것이다. 둘레산길에서 3월 말부터 4월 내내 진달래와 연달래(철쭉)가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구간이 3-4구간이다.
5구간 계족산성길은 역사 공부의 길이다. 5구간은 동구 삼정동의 세천고개에서 대덕구 읍내동, 연축동, 장동의 꼭짓점인 계족산(424m)까지이다. 이 구간은 대체로 완만하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갈현성, 능성, 질현성 등 산성과 남간정사(南澗精舍), 동춘당(同春堂), 제월당(霽月堂) 등 유교 유적을 지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좌측으로는 유유한 갑천과 대전시내를, 우측으로는 아름다운 대청호와 그 호반을 조망하며 선계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질현성 못 미쳐 대청호 조망터에서는 아름다운 대청호를 감상하느라 발길을 재촉할 수가 없다.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서 이런 비경을 품에 안을 수 있단 말인가!30) 또한 석양에 물드는 계룡을 바라보며 용산낙조(龍山落照)의 감동에 빠졌던 선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계족의 일출에 흥분하던 현대 시인 곽무희31)를 추억할 수도 있다.
6구간 금강길은 계족산에서 유성구 봉산동 버스기점까지이다. 이 구간은 계족산 북쪽 자락과 대전 북쪽의 금강이 어우러진다. 금강을 따라 걷는 5km의 구간은 대전둘레산길잇기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도 한다. 특히 가을에는 금강 둔치와 강길 사이에 핀 억새꽃이 하늘로 닿는 은빛꽃강을 이룬다. ‘강이 하늘로도 흐르는구나’라고 느끼게 한다.32)
7구간 금병산길은 유성구 봉산동 버스기점에서 유성구 안산동 버스기점까지이다. 이 구간은 대전 분지의 북쪽 경계 서쪽 절반을 차지하며 한밭 벌을 북쪽에서 병풍처럼 막고 있다. 뒷바구니 마을을 지나 오봉산에 올라 능선을 시작한다. 고려시대 덕진현이었던 보덕봉을 지나 왼편으로 원자력 연구소를 끼고 용바위 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구룡동 마을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금병산 능선에 오르면 왼편으로 자운대의 시원한 벌판이 깔리고 눈을 들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산들, 우산봉과 갑하산, 도덕봉과 금수봉, 빈계산 능선이 하늘 금을 긋고 그 너머로 계룡의 연봉들이 머리를 내민다. 노루봉부터 거칠메기 고개까지(5km)는 국방과학연구소가 능선을 철책으로 가로막고 있어 철조망 밑으로 비탈진 경사면을 뚫고 나가야 하는 험난한 구간이다. 이 구간의 중간점은 금병산의 노루봉이다.
8구간 우산봉길은 안산동 버스기점에서 유성구 갑동 버스정류장까지이다. 어디서나 대전 서편 하늘을 바라볼 때 보이는 하늘금이 우산봉과 갑하산이다. 아늑한 안산동 어두니마을 입구에서 길마재산으로 올라 서문지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안산동산성을 돌아보고 우산봉(573m)을 향한다. 우산봉을 거쳐 신선봉에 이르면 계룡산의 용트림을 잘 조망할 수 있다. 다시 갑하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으면 동학사 골짜기를 끼고 장군봉에서 천황봉으로 다시 황적봉으로 말발굽같이 휘도는 계룡의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갑하산에서는 풍수가 뛰어난 갑동 현충원 묘역을 감상할 수 있다.
9구간 수통골길은 삽재로 올라 흑룡산이라는 별칭을 지닌 도덕봉(534m) 도덕봉, 백운봉, 금수봉, 빈계산을 도는 여정이다. 계룡산 못지않게 아기자기하고 빼어난 전망을 즐기며 원점회귀할 수 있는 한나절 산행이 가능해 요즘은 대전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10구간 성북동 산성길은 유성구 계산동 ‘수통골주차장’에서 방동 ‘방동저수지버스정류장’까지로 이 구간은 대전 분지의 서쪽경계 중심을 차지한다. 11구간 구봉산길은 유성구 방동 ‘방동저수지 버스정류장’에서 중구 안영동 ‘안영교’까지로, 이 구간은 대전분지 남쪽경계의 서쪽일부를 차지한다. 아기자기한 구봉산 능선과 내려다보이는 하회마을 같은 노루벌, 괴곡동의 ‘대전괴곡동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545호)’를 감상할 수 있다. 끝으로 12구간 동물원길은 안영교에서 유등천 좌안으로 1km걸어 쟁기봉에 다시 올라 시작한다. 뿌리공원에서 유등천을 건너 보문산자락으로 들어선다. 국사봉 거쳐 동물원 울타리 옆으로 숲길 따라 까치고개를 오르면 가끔 맹수의 포효소리도 들을 수 있다. 다양하고 쉽지 않은 마지막 구간은 보문산 서쪽능선으로 시루봉과 만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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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전둘레산길> 안내도의 글 인용.
28) 머들령
요광원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내리고
등짐장수 쉬어 넘고/ 도적이 목 지키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꾸기 자주 울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란 갑사댕기/ 손에 잡고 울었더니
흘러 간 서른 한 해/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29) 곤룡재에서 산내초등으로 빠지는 곤룡골은 한국전쟁 때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역사적 교훈의 장소가 조성되고 있다.
30) 호수
호수가 저리도 아름다운 건/ 산을 안았기 때문이다
하늘과 구름을 담았기 때문이다/ 바람을 품었기 때문이다
물과 바람이 손잡고 물비늘을 지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손잡고 넉넉하게 받아준다면/ 아름다운 호수가 될 수 있을까(2022. 8. 28. 본인 졸시)
31) 계족산 일출
새벽 바람이/ 드러나/ 살갗을 쌀쌀히 쏘고
성미 급한/ 가로수 잎들이/ 얼마쯤 신음하는/ 초가을 아침
구름에 밀리듯 끌리듯/ 하늘 동편에 솟는 해
희뿌연히/ 피어나는 아침을/ 벌겋게 피워 놓고
계족산 딛고는/ 창공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계족산 일출
32) 금강 억새꽃
슬퍼하지 말라/ 계절이 왔다 가듯이/ 세월도 돌고 도는 수레바퀴라
흥겹게 가볍게 나풀거리는 춤사위/ 은색 비단의 강/ 금강의 억새꽃 강
( 2022. 10. 16. 신탄진 금강길에서, 본인 졸시)
첫댓글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이라는 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보문산 1구간에서 시작하는 대둘의 12구간이
대전을 품고 있어 풍수학상 금계포란형의 포근한 도시가
계속 형성될 것입니다
이어질 대전둘레산길의 '인문학적 사유'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