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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제 2 권 뜨 거 운 밤[夜] 편
제33장 7월 2일 아침부터 정오까지
제34장 같은 날 오후
제35장 그날 밤
제36장 7월 3일
제37장 그날 밤
제38장 7월
제39장 7월 11일
제40장 7월 12일
제33장 7월 2일 아침부터 정오까지
모산(茅山)에서 소모산(小茅山)까지.
마차는 새벽 동이 트자 출발했다. 험준한 산길을 밤중에 달린
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모산에서 양주부까지 가는 길은 정각령(丁角嶺), 백면령(白免
嶺)을 거쳐 소모산(小茅山)에 당도한 다음 산을 돌아서 다시 고
자령(高資嶺)을 넘는 험한 길이었다. 고자령을 넘어서야 평평한
관도가 나온다. 그 관도를 따라서 진강부(鎭江府)에 진입해아
한다.
진강부에서 백강(伯江)을 건너면 양주부 경내(境內), 아마 도
착하면 늦은 땅거미가 깔릴 즈음일 것이다. 그때부터는 다시 원
래의 일에 돌아가게 된다.
'우선은 양주, 그 다음은 강남!'
야광충은 마차 안에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된 검은 관 안에서
이후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다.
양주에 터를 내리기까지의 세부적인 계획은 거의 진운이 짠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황은 미리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돈도 없었고, 달리 갈 곳도 없던, 게다가 누가 봐도 수상할
그들 일행이 숨기 편한 곳을 찾자니 유항경자가의 후미진 구석
에 근거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부랑자, 수배자들이 숨어 드
는 을씨년스러운 빈민가였다.
거기서 그를 만났다.
좌검자(左劍子).
유항경자가의 떠돌이 늑대, 좌검자였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양주에 터를 잡는 작업은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 * *
유항경자가.
그것은 물결치듯 걸었다.
그는 침상에 누운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 머리맡으 로 초록색 도마뱀 한 마리가 벽을 타고 기어올라가
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멈추어 섰다.
움직일 때는 잔물결처럼 찰랑거리며 걷더니 일단 서자 바위처
럼 꼼짝도 않고 있었다.
놈은 그렇게 멈추어 서서 정면을 주시하더니--어쩌면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놈은 사팔이처럼 눈을
따로따로 굴리고 있었다.--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들어 파리 한
마리를 삼키고 말았다. 역시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나 보다.
그럼 눈알을 굴린 것은 기만 전술이었을까?
파리를 노리고 있다는 낌새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봐. 난
지금 다른 곳을 보고 있잖아.'라고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하찮은 미물도 사기를 치다니!'
그는 문득 불쾌해졌다.
그러나 곧 기분을 풀었다. '먹고 살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
가, 더구나 미물이!'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할 수 있겠다는 마
음이 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있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정말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었다.--광경에서 심오한 삶의 문제를 고민
하고 나니 그는 어쩐지 머리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이떻게 편히 쉬지도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앉아서 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등을 벽에 기대니 누워 있
던 것 못지않게 편해졌다.
'진작 앉아서 쉴걸!'
답답할 것 같아서 그는 눈은 감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사흘
간 눈꺼풀 안쪽은 실컷 보았던 그였다.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눈을 감고 지냈으니 말이다.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이 보고 싶었다.
짜증을 유발하거나 신경을 써서 봐야 할 것 말고 다른 무언가를!
눈꺼풀 안쪽은 나중에도 또 볼 기회가 있을 테니까.
어두운 방 한구석에는 변함없이 탁자가 있고, 나무로 대충 혀
은 의자가 있고, 요강 대신 쓰는 항아리가 있다. 자주 비우면
귀찮으니까 큰 것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그나마 이제는 넘쳐서 흐르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남이 볼 때는 요강에 오줌을 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방바닥에 그냥 오줌을 누는 효과였다.
그도 도마뱀처럼 기만 전술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양심상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그렇게라도 눈속임을 않을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
어야 하니 말이다.
자신이 들어온 방이 사실은 즉간으로도 쓰인다는 것을 알고
어느 손님이 좋아할 것인가!
보고 있는 중에 탁자 밑에서 두 치(寸)는 되어 보이는 남경충
(南京蟲;바퀴벌레) 세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순식간에 벽틈으로
사라졌다.
양주는 남경과 가까운 탓인지 유난히 남경충이 많았다. 그러
나 그것들을 보고 그의 기분이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쐐가 고플 때, 흑은 심심할 때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어 쭈는
그것들이 방엔 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녀었다. 그는 단지 조
금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못 보던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저만한 크기라면 진작에 먹어 치웠을 텐데!'
머리가 맑아졌다. 좁지만 그만의 영역 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돌아다닌다는 위기감이 흐릿한 정신을 일깨워 준 것이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서 남경층들이 사라진 벽틈을 노려보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초조해 하지 않았다. 시간은 넘칠 정도로 많았
고, 그에게는 끈기가 있었다.
이곳 유항경자가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단 한번도 시
간에 쫓겨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최대의 무기였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더듬이들이 벽틈에서 나왔다. 그 더듬이
끝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그래서 무엇을 보려는 것처럼
그것들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놈들은 무척 시력이 약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침
상에 자신들을 노리는 한 마리 늑대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
았을 것이다.
천천히 한 마리씩 나오는 것을 보며 그는 침을 삼켰다.
제일 큰 놈은 분명 두 치 세 푼은 되어 보였고, 나머지 두 놈
도 두 치에서 약간밖에 안 모자란 놈들이었다. 그리고 세 마리
다 통통하게 살찐 놈들이었다.
'음, 자세히 보니 낯익은 놈들이군!'
그는 그놈들이 달포 전에 보고선 너무 작아서 잡아먹지 않은
놈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경충은 벌레 중에도 대단히 빠른 것들에 속한다. 게다가 대
단히 뛰어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다. 불이 밝혀지면 순간적으
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마 놈들이 무공을 배웠다면 아마 대단한 검도 고수들이 되
었을 것이다.
그는 그놈들과 자신이 묘하게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어둡고
음침하며, 습기 차고 더러운 곳을 좋아하는 것부터 필요없을 정
도의 반사신경에 끈질긴 생명력까지!
'나도 이름을 남경충(南京蟲)으로 고쳐 볼까? 당주도 벌레인
데! 그래도 야광충보단 남경충이 나은 이름 아닌가!'
머리 한구석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놈들은 점점 더 방
중앙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한 순간 밝아졌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속도로, 그리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
은 적절한 거리! 힘은 필요없다!'
이제는 떠나 온 사문의 검법구결을 떠올리며 그의 몸이 번개
처럼 움직였다가 멈추었다.
원래의 자세 그대로 침상에 앉아 있는 그에게서 다른 것은 왼손
손가락 사이로 삐져 나와 꿈틀거리는 몇 개의 더듬이뿐이었다.
짧은 순간에 그의 몸은 침상을 내려가 남경충들을 낚아채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가고, 입이 벌어졌다. 손에 든 것들
이 곧 이빨에 씹히는 비릿한 맛, 그 다음엔 혀끝에 감도는 고소
한 맛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 그의 손이 멈추었다.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표
정이었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커지고, 그 소리는 방문 앞에서 멎었
다. 대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일(玄一) 형님 계십니까? 접니다, 황삼(黃三)!"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번도 찾아오는 사람을 반간게 맞아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일까?
찾아온 사람도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안에서 아
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도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눈을 껌벅거리며 서 있더니 벽을 짚고 더듬더듬 옆으로
걸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뭐하십니까? 불이라도 밝히시지 않고서!"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낮이 오면 지붕을 뚫
고 들어오는 빛이라도 있는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황삼녀석은 올 때마다 어둡다고 불평이었다.
눈을 떴을 때보다 감았을 때가 더 많은 사람이 불은 왜 밝힌
단 말이냐.
등불이 밝혀졌다.
비쩍 마른 체구의 황삼과, 그보다 더 마른 현일, 유항경자가
의 떠돌이 늑대 좌검자의 모습이 불빛 속에 드러났다.
깜박이는 등불에 비친 그의 얼굴은 누렇고 냉혹해 보였다.
주림과 질병으로 뺨이 움푹 패인 것처럼 눈 아래쪽은 온통 그림
자가 졌다.
횐자위에 시뻘건 쑈발이 선 그의 눈은 황삼을 향해 공허한 시
선을 던지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어두움이 그 눈과 머리 안에 자리
하고 있는 것 같아 황삼은 몸을 떨었다. 볼 때마다 가슴을 찌르
는 깊은 절망감의 정체를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기분 나쁜 감정을 떨쳐 버리려 급히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지삼야가 모셔 오라고 해서!"
좌검자는 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러면서 그는 황삼이 보지 않게 손을 괴서 남경충들을 놓아 주고
있었다.
살려 두면 나중에라도 타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먹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맛있
는 것은 혼자서 몰래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다. 혹시 같이 먹자
고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황삼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대답을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렇게 찌든 짧은 바지 하나만 걸치고 앉은 그의 벌거벗은 상
반신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와 눈으로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유쾌하지 않은 적막이 방안을 감돌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아무것에도 부딪치지 않고 헛되이 공중에 흩어지는 둣한 허탈감.
황삼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모두 모여 있습니다. 회의가 있다고!"
"당주는?"
높낮이가 없는 말을 들었올 때의 기분이 어떨까?
황삼이 지금 느끼는 기분이 그것이었다. 분명 사람과 말하지
만 그런 것 같지 않은 느낌.
그는 오래 전부터 좌검자를 알아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매번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묘한 기분에 횝싸이게 되곤
했다.
머리를 저으며, 그는 대답했다.
"못 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당주에 관해서는 추측이란 없다. 적어도 그
들 '황 자(化字)' 이하의 당원들에게는 그렇게 주지되어 있었다.
못 본 것은 못 본 것으로 끝나야지 섣부른 추측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좌검자가 느릿느릿 일어낫다. 일어나는 것도 싫고, 어딜 가는
것도 싫지만 하는 수 없이 간다는 태도였다.
황삼은 그렇게 그냥 문밖에 나서려는 좌검자를 불러 세욋다.
"저, 이거!"
침상 아래 나뒹구는 낡은 웃옷이었다. 거친 베로 짜여졌고,
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데다가 오른쪽 소매는 중간쫌에서 묶여져
있다.
좌검자의 상의에는 적어도 오른쪽 손이 나올 구멍은 필요없었
다. 오른쪽 팔꿈치 바로 위에서부터는 둥구스름한 살뭉치였던
것이다.
외팔이.
좌검자는 외팔이였다. 그 하나 남은 왼쪽 손으로 검을 쓴다고
해서 좌검자인 것이다.
그 내력을 아는 자 아무도 없고, 그 본명을 아는 자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항경자가에서 그를 모르는 자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자도 하나도 없엊다.
그것이 유항경자가의 떠돌이 늑대 좌검자였다.
좌검자는 아무 소리 없이 황삼이 건네주는 옷을 걸치고 다시
건네주는 장검 한 자루를 왼쪽 어깨 너머로 손잡이가 나오도록
메었다.
검집은 나무로 만들었고, 끈이 달려 있어서 어깨에 걸어 메기
편했다.
손잡이에는 아무 장식도 없이 그저 때에 절어 누리끼리한 천
만이 감겨 있었다. 길이는 세 자 두 치 정도.
길거리 대장간에 가면 동전 몇십 문으포 살 수 있는 싸구려
검임이 분명했다.
문이 열렸다.
좌검자는 사흘 만의 외출을 하고 있었다.
"형제 셋이 죽었습니다."
황삼이 말했다. 내내 무심하게 걷고만 있던 좌검자가 그 말에
야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하나는 능파당 놈들의 손에 죽었고, 다른 둘도 역시 그렇습
니다만, 지사생 형님의 손에 죽은 거나 진배없습니다."
"진배없다?"
"무모한 명령을 내려서 반항도 못하고 그냥 칼을 받도록 만들
었습니다.
"……?"
황삼은 어젯밤 구지가의 창고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했다.
"그들은 당의 명령이라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죽음을 받았습
니다. 그러나 그들이 꼭 죽어야 했습니까? 그냥 힘으로 밀어붙였
어도 될 일 아니었습니까? 지사생 형님은 그게 가장 적은 손실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었다고 했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황삼!"
황삼은 좌검자의 부르는 소리에 말을 멈추었다. 좌검자의 말
소리가 귓전에 스산하게 스쳤다.
"형님의 말에 의흑을 품어 당을 깨자는 것이냐?'"
황삼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런! 소제는 전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그럼 다물어라! 다시 한번 그런 소리가 들리면 너부터 베겠다."
황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이 좌검자를 알고 있었다, 한번 말
해서 지키지 않은 적이 없는 사람, 그것이 좌검자인 것이다.
거리는 대낮인데도 소란스러웠다. 운하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지나가고,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다원,과 주점들은 손님으로 북
적거렸다.
그런데도 좌검자와 황삼은 오가는 행인들과 어깨 한번 부딪치
지 않고 텅 빈 거리를 걷듯 걸어가고 있었다. 묘하게도 그들의
앞으로는 행인들이 물살이 갈라지듯 비켜 서고 있었다.
짧은 바지에 허름한 상의는 노역꾼들의 일반적인 복장이니 이
상할 것이 없다고 해도, 좌검자는 분명히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차림새였다.
외팔이에 검을 멘 모습이 그렇고, 그의 몸을 감싸고 도는 이
상한 분위기가 그랬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들조차 없었다. 어쩌다가
시선을 마주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곳을 보거나 딴전을 피웠다
그들은 무엇인가 를 두려워하는 둣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좌
검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골목을 돌아서 좌검자의 집이 있던 곳만큼이나
허름하고 지거분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
로 돌변했다.
햇살도 잘 들지 않는 음침한 골목, 며칠 전 내린 빗물이 아직
도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좁은 골목에는 벌거벗다시피 한 아이
들이 뛰놀고. 간밤익 픽로가 풀리지 않은 창기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아이들이 먼저 보고 소리쳤다.
"좌검자, 좌검자!"
겨우 걸음걸이를 하는 꼬맹이에서 제법 왈다리가 길어진 소년
들까지 좌검자에게 따라붙어 같이 걸었다.
좌검자의 초췌한 안색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들을 지나쳐 걸었다. 창기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좌검자의 뒤를 졸졸 따라가
는 아이들을 잡았다.
"귀찮게 굴지 마, 바쁘신 분이야!"
좌검자는 그 들에게 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골목의 끝
으로 걸어갔다.
이 골목에서, 아니 유항경자가에서 좌검자라는 이름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멸문한 장락방의 행패가 극
(極)을 달릴 때에도 그가 나서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란 없었다.
그래도 장락방이 다수인 데다가 그가 어지간한 일에는 참견을
않는 성격이라 서로 균형을 이루긴 했지만, 끝내 정신을 못차리
고 횡포를 부리던 그들이 결국 멸문을 당하게 하는 데에 그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장락방 대신 그들 흑수당이 여기 유항경자가의 창기들
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이 모두 좌검자의 영향력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도 당
연한 일이었다.
좌검자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문득 좌검자가 말했다.
"내가 그에게 물어 보겠다."
여태 뚱한 표정이었던 황삼이 그 말에 비로소 표정을 풀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씀드립니다만, 지사생 형님이 전횡(專
橫)을 않도록 못을 박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목 끝에 선 초라한 목옥의 문을 열며 좌검자는 고개를 끄덕
였다.
황삼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다한 셈이었다. 그는 만족한 얼
굴로 문밖에 주저앉았다.
이제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그는 거기 있을 것이다.
목옥 안에는 몇 명의 사내가 주사위를 굴리며 쌍륙(雙六)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좌검자가 들어와도 힐끗 쳐다만 볼 뿐 아
는 척도 않았다.
좌검자도 그들을 아는 척하지 않고 뒷문을 열었다. 좁은 마
당, 그 다음은 목옥, 사나이들, 뒷문, 다시 마당과 목옥이었다.
방안에는 이미 여덟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진운, 방각, 도신과
도귀, 백리극, 월몽영, 원도살과 중년의 사내였다.
그러나 좌검자는 방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한 사람이 있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항상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등평이었다.
좌검자도 처음 흑수당에 가입할 때, 인사를 한 후 아직 한번
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중원에 들어온 이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사실은
흑수당에 참여하기로 한 이후부터였다. 지옥성에서 자신이 했던
혈편복의 역할처럼 그는 어둠 속을 돌아다니며 정탐과 감시를
주임무로 삼고 있었다.
좌검자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진운이 손을 마주쳐 작은 소리
를 내었다.
"이제 시작합시다."
그는 서론없이 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지난 보름간의 정리 작업을 통해서 우리 흑수당은 유항경자
가와 기루의 거의 전부를 장악했소. 유항경자가는 현일과 황삼
이, 그리고 고급기루는 지십이매(地十二妹)가 책임지고 있소."
그의 손이 좌검자와 지십이매라 불린 월몽영을 가리켰다.
"또한 우리는 과거 순의방이 맡고 있던 영역을 대부분 장악했
소. 이 부분은 지삼야가 현이(玄二)의 도움을 받아서 관리하고
있소."
그의 손이 다시 지삼야, 방각과 현이라 불린 중년 사내를 가
리켰다.
순의방은 원래 상가의 보호를 맡고 있던 방파였다.
그러나 사실은 불량배나 도적들로부터 상가를 보호한다는 명
목으로 보호비를 갈취하고, 각 상가에서 일용직으로 쓰는 일꾼
들을 대 주고 소개료를 받아 챙기는 것이 순의방의 고유 영역이
었다.
그 일을 방각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이, 중년 사내의 도움이 없다면 순의방을 몰아내었다고 하
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이의 원래 이름은 정일(丁一), 원래 순의방의 영역 안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이었다. 운하를 타고 오가는 물품을 중간에서
거래해 주는 거간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의방의 횡포에 저항하다가 그 등살에 장사를 말아
먹고 거리에 나앉은 자였다. 장락방을 몰아내고 유항경자가를
장악한 흑수당에 순의방 축출을 제의한 장본인.
좌검자의 친구이기도 했다.
진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대도회는 지이옹(地二翁)께서 맡아 주고 계시오."
대도회는 소금 밀매자들의 조직, 군소 소금밀매자들을 규합해
서 대도회를 쓰러뜨리고 그 영역을 삼킨 사람은 지이옹이라 불
리는 원도살이었다.
"이렇게 해서 양주부의 근간이 되는 세력 네 개 중 셋을 우리
가 관리하게 된 것이오. 거기에 수고해 주신 여러분의 노고에
당주를 대신해서 감사드리오."
양주부의 근간이 되는 세력이라는 것이 장락방, 순의방, 대도
회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그들이 여태 장악하고 있던
기원, 상가, 염상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들이 진정한 힘의 근원인 것이다.
그들 흑수당이 이 세 세력을 장악한 것은 단지 그들의 무력이
강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들 혹수당의 독특한 체계에 있다고
해야 했다.
그들은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먼저 그들 세력의 근저에 있
는 불만 세력, 이 경우 착취당하고 있는 계층을 먼저 혹수당의
당원으로 끌어들이고, 대신 이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급속히 세
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대도회가 중간에 갈취하던 막대한 이득들이 염상들 스스로에
게 돌아가고, 상가에서 폭리를 취하던 순의방이 없어졌다. 유항
경자가의 기원들도 이제는 장락방에게 보호비를 내지 않아도 되
었다.
흑수당은 애초에 열세 명에서 시작된 방파였고, 이득보다는
낯선 곳에서 자리잡기를 더 웡했던 인물들인 것이다. 야광충의
눈은 양주가 아니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 운하의 배들을 거머쥐고 있는 능파
당을 홉수하기만 하면 우리 흑수당은 양주부의 밤의 세력은 완
전히 장악한다고 볼 수 있소. 그게 오늘밤 이루어질 것이오.
진운은 흐뭇한 미소를 만면에 가득 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완전히는 아니지."
"응?"
진운이 금세 김샜다는 표정으로 좌검자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인가, 현일?"
좌검자가 귀찮다는 둣 짧게 말했다.
"단자가, 양가장!"
"……?"
진운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좌검자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정일이 설명챘다.
"양주부의 가장 중요한 세력 두 개가 그것입니다. 단자가와
양가장이죠."
단자가는 포목을 거래하는 단자포들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거기에는 염색을 하는 수공업자들도 포함이 되는데, 양주부의
가장 중요한 세력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양주부에서 최고의 소
득을 을리는 수공업은 염색업이었다.
그 단자포들의 배후에도 하나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 정일의
설명이었다.
"단자가는 다른 어떤 방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
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세력을 무시해서는 곤란합니다. 장락
방 등의 삼류방파에 비해 오히려 월등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요. 그들을 갈취하는 혹도 세력이 없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양가장입니다."
양가장은 고금 제일부인 양유행의 부귀산장.
돈이면 저승사자도 움직인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해도 대부분
의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사실에 근접한 표현인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두 개의 힘 중 하나인 돈을 움켜쥔 그들
을 무시하고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지만!"
진운이 약간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단자가는 자기들의 이득만 지킬 수 있으면 우리에게 위헙적
인 행동을 않을 자들이고, 양가장 역시 그렇기 때문에 계산에
넣지 않은 거요. 그리고 사실, 양가장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자멸을 자초하는 행위일 테니!"
진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양가장의 무게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일까?
"양가장과는 될 수 있으면 충돌을 않는 것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한 나라와 싸울 수
는 없는 일이니까!"
양가장은 거의 한 나라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진운
의 분석이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원도살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가 말끝을 흐렸다.
"아니, 관두지. 불확실한 일을 증거도 없이 말하고 싶진 않
군. 능파당 문제나 얘기해 보세!"
진운은 좌검자를 보았다. 좌검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흑은
아무 생각도 없는지 그저 공허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
었다.
'저놈에 대해서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군! 저
정도 실력에 특치한 용모면 분명히 무림에 이름이 났을 텐데……?'
진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요. 오늘의 만남은 원래 당주님이 가시기 전에 허락을
받아 놓은 것입니다만, 현재 전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조금 문
제가 있소. 당주님이 안 오시면 대취옹과 책임있게 만날 사람이
없는지라!"
월몽영이 못마땅하다는 둣 툭 내뱉었다.
"당주님이 없으면 그런 사소한 일 하나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인가? 대취옹이 당주님이 나서서 만나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인
물인가?"
"원래는!"
진운이 말했다.
그의 말투가 진지해졌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진지해지는
것이 남자의 속성인 것이다.
"당주님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르오. 호연삼형제는
무명소졸은 아니지만 그렇게 대단한 인물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소. 대취옹, 대취옹 당노선생은 정말 의외
의 복병이었소. 그 사실을!"
그는 보이지 않는 등평이 거기 있기라도 한 듯이 천장을 바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야께서 회합 직전에 파악해 주시는 덕분에 미리 알았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소. 거기 모인 자들의 숫자와 함께 말이오."
지구야, 등평은 원래 어제의 모임에는 관여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회합 직전에 진운이 보낸 지원 요청으로 달려
온 그가 능파당의 실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술과 술잔은 그래서 그 자리에서 급히 구한 것이었다.
방각이 문득 물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데, 어제의 지원 요청은 왜 한 것인
가?"
"원래는 다른 일이 있었지만!"
진운은 구련자에 관한 일을 말해야 할까 잠깐 생각했다. 그리
고 말을 않기로 결정했다.
"별일은 아니니 나중에 기회있을 때 말하기로 하지."
구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이 가괴자에게 한 사기
행각도 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어제의 일격은 큰 싸움 한판을 이긴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었소. 그 한판으로 그들은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오.
거기에 쐐기를 박아 완전히 우리 휘하에 들어오게 하려면 바로
당주가 계셔야 한다는 것이 소생의 소견이오. 대취옹을 죽이고
능파당을 부수는 것은 우리들만으로도 쉬운 일이지만 포셥한다
는 것은 당주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니 말이오.
원도살이 물었다.
"그를 꼭 포섭해야 하나?"
"꼭! 반드시! 그는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에게 역이기( 其)가, 장비(張飛)에게 엄안(嚴安)
이 필요한 정도로 필요합니다."
월몽영이 물었다.
"역이기? 엄안? 그게 무슨 소리?"
진운은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잘난 척을 했군요. 죄송하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 막
료(幕僚)였지요. 수레의 식(軾;앞턱 가로나무)에 기댄 채 세 치
의 혀를 휘둘러 제(齊)나라 칠십여 개의 성을 항복시켰다는 일
화로 유명하지요. 엄안은 유비가 파촉(巴蜀)을 정벌할 때, 장비
가 포섭한 파촉의 장수였소. 그가 효장서서 관문의 장수들을 항
복시켰기 때문에 장비가 아무 어려움 엎이 성도(成都)에 진격해
유비를 구해 내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죠."
"그들과 대취옹이 무슨 관계?"
월몽영은 이상하게 진운을 싫어했다. 그래서 말도 직접 하기
않고 다른 곳을 보며 묻는 것이다. 직접 말을 하게 되면 나이로
보나 위치로 보나 존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용상 분명히 진운에게 물은 것, 진운은 불쾌한 기색
없이 설명했다.
"역이기와 엄안은 그들 자체로 중요했다기보다는 더 중요한
어떤 일을 성취하게 했기 때문에 중요한 자들이오. 역이기는 제
나라 칠십 개 성을, 엄안은 파촉을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지
요. 대취옹도 우리에게 그만한 것을 넘겨주게 될 것이오. 바로,
장강수로십팔타(長江水路十八舵)를!
"장강수로십팔타?"
"그렇소. 장강수로십팔타! 중원을 가로지르는 양자강 십팔만
리를 휘어잡고 있는 장강수로십괄타가 우리 손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대취옹은 역이기, 엄안의 역을 하게 될 것이오. 그가 우
리 흑수당에 넘어오는 그때부터 장강병탄(長江倂呑)의 대역사
(大役事)가 시작되는 것이죠!"
월몽영은 한동안 그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하여튼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람이야! 그게 우리 지금 세력으
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방각이 덧붙였다.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장강까지 집
어삼켜서 뭘 하겠어?"
진운이 눈을 껌벅거리며 그들을 보았다. 그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이었다.
"가능하냐고요? 물론 가능하죠. 당주, 황룡, 화영, 백리 장군
아니, 백리극, 혈문룡, 원도살, 좌검자 도신 도귀 등, 무림 역사
상 우리처럼 초절정고수들이 한 방파에 몰려 있는 경우가 있다
고 생각하시오? 아니, 있긴 있었죠. 과거 소림이 그랬고, 예전에
천산파와 마교(魔敎)가 그랬죠. 지금은 무당파와 우리가 그렇
고, 소림, 천산, 마교가 어땠습니까? 당시 천하에 그들의 이름을
듣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무당파는? 목하
무림의 중심이 되고 있소. 전무림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단 말씀이오. 그럼 우리 흑수당은? 양주에만 있을 겁니까? 중
원 십팔만 리를 검은 손으로 움켜잡아 볼 생각은 없습니까?"
월몽영이 피식피식 웃으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진운의 말이
더 빨랐다. 그는 손을 들어 월몽영의 말을 제지하고 열띤 어조
로 말했다.
"흑도(黑道)의 본령(本領)이 뭡니까? 하늘의 뜻을 받들어 행
하는 것? 약자를 돕고, 악한을 누르는 것? 무림인들을 모아서
친선도모를 위한 흑도백도(黑道白道) 연합무림대회(聯合武林大
會)라도 열까요?"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진운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심지어는
좌검자의 표정에도 약간의 변화가 보일 정도였다.
"사람 사는 세상은 많은 생활권이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오.
모종의 같은 테두리 안에서 사는 인간들은 그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며, 그 테두리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는 것이오. 그러니 다른 테두리에 사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고 으시대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못한다고 억울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이오. 저마다 다른 삶의 방
법이 있으니 말이오."
월몽영이 입을 삐죽거렸다. 틀린 말 같지는 딴지만 어쩐지 궤
변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진운이 계속 말했다.
"우리 흑도의 본령은 이득을 보는 것이오. 필요하다면 약탈을
하고, 살인을 하고, 위협을 해서라도 이득을 보아야 형제들을
먹여 살릴 것 아니오? 설마 무림인은 찬바람만 마시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이득을 보는 데 가장 합
당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세력을 넓히는 것이오. 세력이 넓
어지면 사소한 약탈을 않아도 자연히 이득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외다."
원도살이 말을 막았다.
"나도 도적단 두목이었네. 자네 말은 알겠으니 좀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하지. 오늘 모임에 당주가 반드시 온다고 생각
은 하지만, 혹시 오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서 준비를 하기로 하
지. 누가 나가면 되나?"
"지이옹께서 수고해 주십시오. 그리고 현일, 또."
진운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백리극을 가리켰다.
"지팔야(地八爺)께서도 수고해 주시겠소?"
백리극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늘 다른 일이 있어서 못 가겠소."
진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중한 권고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지시나 다름없는 말이
었는데 거절을 당한 것이다. 그가 총사(總師)의 역할을 맡고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때 방안에 낮고 음침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내가 대신 가지!"
"아, 지구야! 그럼 됐소. 수하들도 몇몇 데려갈 텐데 우리가
많이 갈 필요는 없겠지요."
목소리의 임자는 어딘가에 은신해 있는 등평이었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이걸로 끝내소!"
진운이 일어났다. 그때 좌검자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어제의 일에 대해서……."
그의 공허한 눈이 진운을 향했다.
진운이 미소 지으며 그를 마주보았다.
"뭔가 의문이라도?"
좌검자는 입속으로 웅얼거리둣 말했다.
"꼭 필요한 일이었던가 묻고 싶소!"
진운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는 이 좌검자라는 인물이
극도로 위험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바로는 좌검자의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광인(狂
人)인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고집쟁이와
광인이었다.
고집쟁이는 잘못된 일이라도 끝까지 하려 하고, 광인은 무엇
이 잘못된 일인지 모른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들에게는 속임수
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진운은 천천히 대답했다.
"꼭 필요한 일이었네!"
좌검자의 초점없는 눈이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그
는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도 그런 일만 하기를 바라겠소."
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러도록 노력해 보지."
원도살은 백리극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주를 마중 나가려는 것인가? 예언자 말대로?"
백리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러고 싶어져서!"
도신 도귀가 일어서서 그의 앞에 섰다. 그를 따라가겠다는 뜻
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너희들은 지이옹을 수행해라! 이번에는 혼자 가겠다."
그는 돌아섰다.
그의 어깨를 원도살이 잡았다.
"말을 주지. 몽고에서 타던 것만은 못하지만 요 부근에서는
그래도 가장 좋은 말일 걸세."
그는 백리극의 어깨를 놓고 중얼거렸다.
"분명 그 예언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어. 그것이 예언이 맞
는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 * *
남양도상(南揚道上).
남경(南京)과 양주를 잇는 관도(官道)인 남양도상(南揚道上).
검은 마차, 온몸에 문신을 한 건장한 체구의 묘족 사내가 모
는 검은 마차는 관 하나를 싣고 정각령 고갯길을 넘어 백면령
(白免嶺), 다시 소모산(小茅山)을 돌아 고자령(高資嶺)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마차의 뒤로 두 필의 말이 나타나더니 자욱한 먼지를 일으
키며 따라붙고, 이내 추월해 버렸다.
말 위에는 관복을 입은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말에 채찍을 가하던 한 사내가 방금 지나쳐 온 마차를 힐끗
돌아보며 소리쳤다.
"뭔가 수상한 마차인데요?"
그는 체격은 컸지만 이제 갓 소년을 벗어난 것처럼 솜털이 보
송보송한 동안(童顔)의 청년이었다.
옆에서 말을 달리던 사내가 대답했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이 없어. 그냥 가세!"
한족으로서는 보기 드물게도 매부리코에 깊이 들어간 눈, 가
늘게 찢어진 눈꼬리가 특이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남경의 총포
두(總捕頭), 신응(神鷹) 유소백(劉少栢)과 수하 포두인 철환(鐵
丸) 등적(鄧滴)이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 그들은 양주추관(揚州推官) 모충국의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왜 병력 요청은 않고 총포두님만 불렀을까요?"
등적이 다시 소리쳐 물었다.
유소백은 말 위에서 흔들리느라 흘러내려 온 바람막이를 다시
끌어올려 입가를 가리면서 간단히 대답했다.
"가 보면 알겠지!"
등적이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포두가 된 지 이제 갓 석
달인 그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총포두와 단 둘이 수사 지
원올 나간다는 비정상적인 일.
그러나 그는 그가 수행하는 유소백, 그리고 지원 요청을 한
모충국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강남칠성(江南七城)의 총포두 신응 유소백이라면 북경(北京)
에 있는 강북육성(江北六城)의 총포두인 독호(毒虎) 금세기(金
世紀)와 더불어 천하 양대명포(兩大名捕) 중의 하나인 것이다.
명백한 사실에만 근거한 수사를 하기 때문에 만에 하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잘못 잡는 경우는 없다는 명포두.
모충국은 직급상 위인 추관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 유소백의
제자였다.
강장(强將) 아래 약졸(弱卒)이 없다는 말대로 사법을 맡은 관
리이면서도 수사쪽에 더 재능을 보였던 그였다.
그런 그가 사부의 힘을 요청했다.
등적은 일생 경험하기 힘든 경험을 이제 반나질 후면 도착할
양주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느끼며 홍분해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고자령, 거기만 넘으면 진강부였다.
* * *
경연루.
술은 장미로(薔微露), 잔은 장식 하나 없이 투명한 유리잔이
었다. 혈문룡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잔을 기울이고 있
었다.
장미 이슬을 닮아 피처럼 붉은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달콤한 향기 코끝을 간지르고, 혀끝을 자극하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오른다. 마치 입에서
식도까지 원통형으로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다. 입을 벌려 숨을
토하면 보이지 않는 불길이 솟구쳐 나오고, 코끝이 찡해질 정도
로 강한 술.
그는 그 강렬한 뒷맛을 완전히 즐기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술은 정말 이름 그대로 장미를 닮았다.
달콤한 향기, 아름다운 꽃잎, 그 이면(裏面)에 감추어진 날카
로운 가시.
장미는, 그리고 이 술은 사랑을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
각했다.
처음엔 아름다움에 취하고, 벅찰 정도의 달콤함, 그리고 뜨거
움. 그 이후에는 가슴을 상하게 하고,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이다.
혈문룡은 지그시 눈을 떴다.
가슴이 아프면 어떤가, 죽을 것 같으면 또 어떤가?
장미와 이 술에는 그 오든 고통을 보상해 줄 정도의 달콤함과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사랑도 그럴까?'
혈문룡은 아침부터 마신 술로 약간 몽롱해진 눈을 들어 여인
을 찾았다.
소녀, 며칠 동안 그가 데리고 잔 그 기녀는! 혈문룡은 문득 그
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려(麗) 뭐라고 했던가?
그 려씨 성을 가진 기녀는 창문 난간에 기대어 서서 창문에
드리운 휘장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
었다. 옷이라고는 겉옷 하나를 걸치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무릎까지 내려온 비단 배자(背子;겉옷의 일종) 아래는 맨살이
었고, 길고 검은 머리채가 그 위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휘장 사이로 고개만 내민 그녀가 앞으로 몸을 더 기울이자 옷
이 올라가면서 양쪽 무릎 뒤쪽의 움푹 패여 들어간 부분과 허벅
지의 뽀얀 곡선이 드러났다.
혈문룡의 눈은 그 눈부시게 하얀 두 다리와 조그마한 맨살을
몽롱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리없이 일어서서 침상에서 내려
왔다.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장미 이슬에
자신도 모르게 취해 버렸는지도 몰랐다. 혈문룡은 잠시 비틀거
리다가 중심을 잡았다. 소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바로 뒤로 소리없이 걸어가 어깨를 잡았다. 소녀
가 돌아서며 그를 보았다.
열려진 옷을 그녀가 채 여미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아담하고
볼록한 젖가슴과 장밋빛의 동그란 젖꼭지, 하얀 피부가 드러난
늘씬한 허리선 그리고 두 다리 사이의 거무스레한 부분까지도
보고 말았다.
그녀는 잠이 덜 깬 듯 약간 부운 눈으로 그를 차갑게 쏘아보
았다.
'왜 이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혈문룡은 그녀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돈을 냈고, 며칠 동안이지만 그녀를 샀다. 그러면 그녀
는 그에게 봉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녀가 그런 눈으로 그를 바
라볼 이유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상관없어!'
혈문룡은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 앞을 보게 한 뒤, 뒤에
서부터 옷을 걷어 올렸다. 그녀가 몸을 뒤틀었다.
"싫어, 싫어요."
'싫긴, 뭐가?'
기녀가 손님의 행위를 싫어해도 되는 걸까? 아마도 안될 것
이다. 그래서 혈문룡은 그녀의 말에 상관없이 하던 행동을 계
속했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들어올려 창문 가의 벽에 밀어붙였다. 옷
은 이미 허리 위까지 들어올려져 있었다. 도발적으로 튀어나온
엉덩이를 그는 탐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소녀는 더 이상 반항
하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혈문룡은 귀찮은 듯 문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그 자세 그대
로 멈춰 버렸다. 들어온 사람은 월몽영이었다.
월몽영은 그들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잠시 바라보더
니 툭 던지듯 말했다.
"지루해 할 줄 알았더니 재미있게 지내나 보군!"
혈문룡의 품에 안긴 소녀가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놓아주면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월몽영의 앞
에 다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그녀를 들어올려 안고는 말했다.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 하던 중이었지."
월몽영은 고개를 끄틱여 보이고는 다가와서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들어올려 냄새를 맡았다.
"연락이 왔었어. 철불사를 감시하던 형제들에게서."
그녀는 술병을 들어 입에 대고 기울였다. 잠시 그녀의 인상이
잔뜩 찡그려졌다.
그녀는 숨을 토해 내고 중얼거렸다.
"좋은 술이네? 이름이 뭐야?"
그녀는 혈문룡이 '장미로'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모금을 삼켰다.
술병이 비자 그녀는 말했다.
"그들이 왔어."
"누구?"
"기다리던 사람들!"
월몽영은 나갔다. 소녀는 혈문룡의 팔에서 풀려 났다. 혈문룡
은 벌거벗은 채 침상에 앉아 있었다.
소녀는 침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거리고 있었다.
혈문룡이 물었다.
"수치스러운 것인가?"
대답은 없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수치스러우냐고 물었다."
소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번들
거리고 있었다.
"당, 당신은……."
그녀가 입을 벌려 말을 토해 내었다. 목소리까지 눈물에 젖은
듯했다.
"저 여자를 사랑하는 거죠?"
혈문룡의 눈이 커졌다. 상상도 못했던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
"당신은 나와 자면서도 저 여자 이름만 불렀어요!"
소녀는 밖으로 뛰쳐 나가고, 혈문룡은 입을 벌리고 침상에 앉
아 있었다.
* * *
철불사(鐵佛寺).
"용광사에 금불상이 생긴 후로 향객(香客)이 줄어서 요즘 조
금 한산합니다."
도연(道衍)은 속으로 웃었다.
벌써 세번째였다. 철불사의 주지인 정원선사(正願禪師)는 용
광사의 금불상 이야기를 의식직인지 무의식적인지 벌써 세번째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이는 많지만 배분상 그의 사질(師姪)뻘이 되는 노승, 정원
을 그는 갑자기 놀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없애 버릴까요?"
"예?"
"용광사에 가서 금불상을 훔쳐 오든지, 아니면 부순 다음 저
자에 가져 가서 녹여 버리면? 그래서 다른 모양으로 금불상을
조성해서 여기다 두면 어떨까요? 금불사(金佛寺)라고 이름도 고
치고 말입니다. 철불(鐵佛)보다야 금불(金佛)이 낫지 않겠어요?
색깔도 좋고!"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하는 도연을 칠십 노승인 정원은 창
백해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노, 농담이시겠죠? 사숙. 불투도(不偸盜)는 오계(五戒) 중
하나인데! 게다가 부처님을 부수어서 녹여요?"
도연은 그의 눈을 빤하니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부처님이 아니죠. 그냥 불상, 금붙이로 만든 불상을 얘기하
는 겁니다."
"그래도!"
"생사(生死)가 구별없는데 네 것 내 것이 무슨 구별이 있습니
까! 네 것 내 것이 없는데 금불상이야 아무곳에나 있으면 어렇
습니까! 용광사에 있든 철불사에 있든 마찬가지 아닙저까? 수고
비만 조금 생각해 주시면 제가 사질들을 데리고 가서 감쪽같이
처리하겠습니다."
"수고비라고요?"
"뭐 별건 없고, 그냥 곡차(穀茶) 몇 항아리에 개다리나 열댓
짝 있으면 충분하죠. 저희들은 양이 작아서!"
"개다리! 곡차!"
정원은 이젠 몸까지 부르르 떨어가며 되물었다.
"어? 사질 풍기(風氣)가 있나요? 고행을 오래 하시다 보니 몸
이 허해지신 모양이군요. 일단 건강해야지 수도(修道)도 있고,
성불(成佛)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되겠군요! 공양주(供養
主) 스님을 부르시죠. 개고기라도 좀 자셔야겠습니다 남는 게
있으면 저희도 조금 나눠 주시구요. 소승이 본산에 있으면서 약
왕당(藥王堂)에 들락거릴 때 배운 것입니다만 몸이 허한 데는
그저 개고기가 약이죠. 제가 싸움질하다 다쳤을 때도 밤에 몰래
나가서 한 마리 잡아먹으면 다음날은 거뜬히 일어나곤 했다니까
요. 약왕당주(藥王堂主) 스님이 저보고 천부의 근골(筋骨)이라
고 감탄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개고기를 드시면 됩니다라
고 말했다가 노스님 한 분 해탈시켜 드릴 뻔했죠. 무공은 높으
신 분이 담이 작으셔서. 근데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
죠? 아, 개고기!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냄새를 맡으면 안될
테니 같이 산에라도 가서 먹어 볼까요?"
정신없이 주절거리다가 바라본 도연의 앞에 정원선사는 이미
없었다
소림사에서 온 이 나이 어린 사숙(師叔)을 그로서는 더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도연은 피식 웃으며 멀리 용광사를 바라보았다.
불상이 나무면 어떻고 금이면 어떻단 말인가?
썩은 나무토막 하나 대응전에 앉혀 놓고 부처님이라고 절하면
그것이 부처인 것이다.
그는 문득 목이 마르다는 것을 느꼈다. 한참 되는 소리 안되
는 소리 주절거렸더니 그런 모양이었다.
"정말 곡차에 개다리나 한짝 있었으면!"
그는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절도있는 발걸음 소리, 살기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심장을
압박해 오는 기세!
소림사에서 같이 내려온 사질들임을 그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어딜 가든 표시를 낸다니까!'
그가 돌아보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말했다.
"도연 사숙, 또 사질을 놀리셨다면서요?"
사각으로 각진 얼굴에 머리만 유난히 동그래서 항상 그가 '명
백히 현존(現存)하는 불균형'이라고 놀리는 중년 승려, 정각(正
覺)이었다.
그가 그렇게 놀리면 그는 정중하게 절하며 '반구제기(反求諸
己)하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응답하곤 했다. 네 꼬라지부터 머
저 반성하라는 뜻이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날카로운 면이 있는 소림십팔나한(少林十
八羅漢)의 수좌승(首座僧), 그가 정각이었다.
'괘씸한 놈!'
도연은 그를 볼 때마다 '반구제기'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덕분에 중답지 않게 험악한 자신의 인상을 한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뭔가 골려 줘?'
정각이 도연의 왕방울 눈이 뒤룩거리는 것을 보고 그 머릿속
을 금세 짐작했다. 그는 얼른 말을 붙였다.
"그가 있는 곳을 알았습니다."
"어딘데?"
"그것이, 경연루라는 기원이랍니다."
"경연, 기원? 여자가 있고 술이 있는 곳?"
도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번도 못 가 본 곳, 그러나 가 보고 싶던 곳이다!'
정각이 난처한 라으로 말했다.
"저희들 가기에는 곤란한 곳이라! 사람을 시켜서 밖으로 부를
까요?"
"왜 그래야 해?"
도연은 굵은 동곤(銅棍)을 움켜쥐며 말했다.
"우리 같은 화상이 누굴 심부름 보내고 해서 수고를 끼쳐서야
쓰나! 조금 곤란하긴 하지만 사문의 명이니 그냥 우리가 거기로
찾아가세!"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산문(山門)을 나갔
다. 쓴웃음을 지은 정각이 같이 산에서 내려온 소림십팔나한 중
둘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ㅈㄷㄱ~~~~~~~~````````````````
잘읽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