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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마스 주남여사님의 천국은 확실히 있다 원문보기 글쓴이: 천국 복음
진정한 의미의 “마라나타”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대부분 잘 사용을 하고 있는 용어를 들어 보라고 하면 “할렐루야!”, “샬롬!”, “마라나타!”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을 하여 보면 ‘할렐루야’는 예수님의 초림을 믿는 사람들이 사용을 많이 하고 있고, 샬롬은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대부분 많이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용어가 ‘마라나타’라는 용어가 있다. 할렐루야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여기에 근거로 하여 히브리어로 ‘야훼(여호와)를 찬양하라’의 뜻으로 쓰여지고 있다. 이것이 라틴어에서는 ‘알렐루야(alleluia)’로 사용하고 있다. 샬롬(shalom) = 평화(平和=Peace) 은 사사기 6장 23절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안심하라 두려워말라” 라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으로 여기고, 이러한 위로를 받은 기드온이 24절에서 비로소 “나의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 즉 여호와 샬롬”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샬롬은 ‘평안’, ‘평강’이라는 히브리어 원어로 생각을 하면 된다. 우리가 여기에서 강조할려고 하는 것은 ‘마라나타(Maranatha)’인데 이것은 광범위한 의미로 생각을 하여 보면 성경이 기록된 시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용되는 용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인사말은 ‘마라나타’이었던 것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빨리 재림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용하였던 인사말이 “마라나타(주님 곧 오신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다시말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사는 시대에 주님이 오실 것(?)처럼 생각을 하였다. 바울서신서의 내용을 보아도 우리가 사는 세대가 아니라 자기 세대에 주님이 오실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만큼 주님을 기다리는 열정이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마라나타는 아람어로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표기되어 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If any man love not the Lord Jesus Christ, let him be Anathema Maranatha.(1Co 16:22, KJV)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도 비슷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He which testifieth these things saith, Surely I come quickly. Amen. Even so, come, Lord Jesus.(REV 22:20, KJV) 그러나, 시대를 거듭 할수록 이 말이 퇴색되어 재림의 말씀이 공허하게 들리고 있는 것이다. 2000년이 되도록 재림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점점 멀리 하고 관심의 밖으로 밀려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는 이 말씀을 우리가 명심하고 지금 이 시간이 구원(휴거)의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고, 앞으로도 구원(휴거)의 날인 것으로 여겨야 하는데 무조건 재림 날짜 이야기만 하면 미혹된 것으로, 잘못된 것으로, 이단인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겉으로는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해도 그 마음 속에는 재림을 믿지 않는 불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시간에 안 일어날 확률이 거의 100%라 하더라도 우리는 날마다 주님이 오실 것으로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시간도, 현재의 시간도, 앞으로의 미래의 시간도 모두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그 날에 안 일어난다고 하여도 우리는 날마다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히 13 :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씀 속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구원(휴거)의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미혹된 자일까? 잘못된 자일까? 이단에 해당되는 자일까? 성경에는 분명이 지금이 구원의 날인 것처럼 살라고 하였다. 앞으로도 구원의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도리인데도 재림의 날짜가 한번이라도 틀렸다고 하면 마치 굉장히 잘못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례를 들어 보면 발명의 왕 에디슨이 축전지를 만들기 까지 수만번의 실패를 거듭하였다고 예전에 위인전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또한, 일본이 심해잠수함을 개발하기까지 수백번의 실패를 경험하였다고 하였다. 이와같이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만들기까지도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의 실패를 거듭하는 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휴거에 대한 연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연구해야 될 가치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세대인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마 24:32~34; 막 13:28-31; 눅 21:29-33)에 해당되는 이 세대에는 반드시 휴거에 대한 시기를 알려 주신다고 생각을 하여서 지금도 이렇게 연구를 하고, 또 연구를 하고 계속해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 초림 때부터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이스라엘 독립의 비유)가 이루어지기 전의 세대에는 당연히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마 24:36; 막 13:32) 왜냐하면 주님이 문 밖에 아직 안 오셨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다(마 24:37~39)라는 말을 성경에서 빼어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노아의 때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시기를 노아에게 계시하여 주셨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롯의 때에도 심판의 시기를 계시하여 주신 것이다. 먼저는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고(창 18장), 롯에게 찾아가서 알려 주신 것이다.(창 19장) 하나님이 심판할 시기에도(인자의 때에도) 반드시 알려 주신다는 것이 나의 믿음인 것이다.(마 24장) 마찬가지로 전 세계를 심판하실 이 시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 알려 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실이다.
만일에 오실 때를 계시하지 않으시면 여호와만 몰래 도적같이 오셔야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마 24:36) 물론 아들도 모르게, 천사들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게 온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성경 전체 내용의 맥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노아의 때에도 방주에 들어갈 날짜를 일주일 전에 계시하여 주셨기 때문에(유대력 2월 10일), 홍수가 나기 전에 모든 짐승들을 지시한 대로 방주에 넣을 수 있었다.(유대력 2월 17일) 다시말해서 노아의 짐승들이 방주에 들어간 날짜가 바로 2월 10일~2월 17일 바로 이 사이인 것이다.
만일에 하나님이 사전에 계시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짐승들을 방주에 미리 넣을 수가 없고, 설사 넣었다 하더라도 그 많은 짐승의 오물을 치우는데 전생애를 바치면서 살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 진다. 롯의 때에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지 않는다면 오늘날과 똑같이 사람들도 한결같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는데,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예수님)도 모르는데 하면서 사람들이 방관하며 생활할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옳다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말이 정석이 되어 버리고, 노아와 롯은 바보, 멍청이 꼴(?)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날짜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성경에 기록된 어떤 말씀보다도 이 경고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같이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여행갈 때에도 미리 비행기표를 예약하고(하나님이 계시하시고), 비행기를 타야(미리 방주로 들어가야) 안전한 것이다. 이 시간을 놓치면(휴거를 놓치면)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재림의 날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또 연구를 하였던 것이다. 이 구원(휴거)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초림)과 후에 얻으실 영광(재림)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詳考)하니라(벧전 1:10~11)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하면서 고대하며 기다리면서 언제 오실 지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도 마치 휴거날짜가 틀리면 무슨 큰 대죄(大罪)나 역죄(逆罪)라도 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이상한 현실(?)인 것이다. 그러면 휴거날짜가 틀렸다고 이단일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예(민14장)를 통하여서도 잘 알 수가 있고, 요나의 사례(욘 4장)에서도 잘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느끼는 점은 하나님은 계시를 단번에 우리에게 열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인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또 조금씩 깨닫게 하고 계신다는 사실인 것이다. 마치 커텐을 열면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조금씩 계시의 뜻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이와같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하나님의 영적 비밀인 휴거의 날짜를 알도록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롯의 때처럼 인자의 때에도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 오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수수께끼(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를 내 주셔서 우리가 제대로 풀 수 있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지켜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어제도 구원의 날, 오늘도 구원의 날, 내일도 구원의 날인 것처럼 매일 매순간마다 지금은 구원(휴거)의 날이라고 신앙생활을 매진한 결과 느껴지는 영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사실을 계속해서 연구를 하다 보니까 이제야 서서히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예수님=신랑)과 우리의 사이(성도=신부)는 정말로 신묘막측한 관계인 것이다. 사55 :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 :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55 :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55 :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나는 주님을 공중에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말세에 예비하신 구원의 계획을 알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인지도 모르겠다. 모두 다 주님이 오실 것을 거부하는 이 세대에 미련하게도 오늘도 계속해서 주님오실 것에 대한 연구를 하여 본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5~29) |
출처 :마지막나팔 원문보기▶ 글쓴이 : 형제